숨 좀 쉬며 살아볼까 합니다
스즈키 다이스케 지음, 이정환 옮김 / 푸른숲 / 2018년 6월
평점 :
품절


 

 

 

 

설마 했는데······ 정말 그런 날이 왔다. 말을 할 수 없고 손가락을 움직일 수도 없다. 시야는 흐물흐물 일그러져 보인다. 보행에는 지장이 없는 듯하다. 아, 이건 분명 뇌의 문제다. 젠장, 왠지 모르게 신뢰가 가지 않았던 정형외과 의사는 틀림없이 오진을 한 것이다. 아니, 애당초 며칠 전부터 편두통 때문에 두통약을 먹고 손가락을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을 때 ‘예상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은 뇌질환이야’ 라고 생각하기는 했다. (p.27)

 

골치 아픈 스위치가 켜졌다. 뇌경색 이후 나에게는 손가락 마비와 인지 장애 외에 ‘감정실금’이라는 장애가 남았다. 뇌에는 감정 억제를 담당하는 부위가 있는데 이 부위에 충격을 받아 희로애락의 모든 감정을 격렬하게 드러내는 증상을 ‘감정실금’이라고 한다. 실금은 제어하는 기능을 잃은 상태를 뜻한다. (p.98)

 

2015년 초여름, 마흔한 살 젊은 나이에 우뇌 뇌경색이 발병하여 후유증은 심하지 않았지만 몇 가지 고차뇌기능장애를 얻은 저자. 이 책은 저자가 스스로를 취재한 것이다. 자신의 글이 고통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당사자에게, 부모 형제의 고통을 이해할 수 없어 괴로워하는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장애로 인해 발생하는 불편한 감각과 고통, 생생한 느낌을 최대한 언어로 표현해놓았다. 단순한 투병기가 아니다. 뇌의 변화 때문에 자신에게 생긴 변화를 충실하고 처절하게 관찰하고 기록한 에세이다. 뇌경색이 발병한 시점에서 시작해 6개월의 입원생활, 그리고 퇴원 후 일상까지, 불편한 뇌와 손으로 그날그날 자신의 상태와 심리를 자세히 취재하고 기록했다. 

마흔한 살 젊은 나이에 뇌경색으로 고차뇌기능장애를 얻은 저자는 감각과 행동의 변화를 겪는다. 감정실금(희로애락을 격렬하게 드러냄), 반측공간무시, 주의결함 등 겉으로 보았을 때 남들이 쉽게 알 수 없는 ‘보이지 않는 장애’, ‘알아보기 어려운 장애’를 안고 살아간다. 고차뇌기능장애는 본인은 물론이고 가족, 의사조차도 상태를 파악하기 어렵다. 심지어 본인이 병에 걸렸음을 알지 못하거나 주변 사람들도 장애가 있는지조차 알아채지 못하기 때문에 주위에서는 단순히 행동이 이상해졌다고 받아들이기도 한다. 저자 또한 마찬가지, 발병 이후, 반년 동안 재활치료를 했음에도 상당히 오랫동안 가벼운 주의력 결핍, 공황과 더불어 ‘어눌한 말투’ 같은 장애가 남았다. 건강할 때는 모른다. 건강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병실 침대에서, 퇴원 이후의 일상생활에서, 취재기자인 저자가 할 수 없게 된 일과 겪어온 고통은 상상을 초월한다. 고통을 타인에게 설명할 수도 없고, 고통이 아예 없는 사람 취급을 당하는 경험이라니 얼마나 잔혹하고 괴로울까. 저자도 당사자가 되고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고 한다. 취재를 하며 짐작했던 고통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건강할 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지난날의 취재 대상을 떠올리면 강렬한 후회가 밀려왔다. 저자가 경험한 고통은 건강했을 때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크고 오래 갔다. 그동안 기자로 살아오면서 나름 그들을 이해한다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그들의 고통을 단지 이해하는 척했을 뿐이었다. 당사자가 겪는 참을 수 없는 고통은 말로 표현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기가 쉽지 않았다.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이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알면 알수록, 조사하면 할수록 이 고차뇌기능장애가 왜 보이지 않는 장애로 불리는지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세상에는 ‘말로 표현하지도 못하고 고통을 혼자 감내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무언가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어서 정말 불편하지만 사람들은 그걸 이해하지 못한다. 이를 언어로 표현할 수도 없으면 맨 먼저 초초함을 느낀다. 그런데 초조감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면 사람들은 혐오감을 느끼고 피해버린다. 씁쓸한 뒷맛이 남을 뿐이다. (p.92)

 

흔히 볼 수 있는 질병인 뇌경색과 다소 생소한 고차뇌기능장애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고통을 남에게 설명할 수도 없고, 고통이 아예 없는 사람 취급을 당한다는 게 얼마나 괴롭고 억울할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처음 뇌경색에 걸렸을 때 저자는 “차라리 발병했을 때 죽어버렸어야 했어”라고 할 정도로 죽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몇 번이나 했었다. 할 수 있는 일보다 할 수 없는 일이 더 많아졌기 때문이다. 재활치료를 받으며 상태가 점점 나아지지만 뇌경색이 발병한 이후부터 매일 풀리지 않는 의문에 시달렸다. 일상생활에서 절제하며 자기 관리를 잘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왜 하필 내가? 운동을 좋아하고, 제때 밥 먹고, 규칙적으로 살아온 내가 왜?” 퇴원하고 일상으로 돌아온 그는 완벽주의에 집안일은 혼자 다 짊어진 채 하루에 단 30분도 쉬지 않았던 자신이 얼마나 숨 막히는 인생을 살아왔는지 깨닫는다. “뇌경색에 걸리기를 잘했다”라며 질병을 계기 삼아 ‘인생 개조’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책은 병에 관한 이야기들임에도 재활치료를 과자 뽑기에 비유하는 등 이야기들이 무겁지 않고 유쾌하게 이어져 쉽게 읽힌다. 정말 건강은 자만하지 않아야 하고, 건강할 때 지켜야 한다. 병으로 힘들어하면서도 지지 않고 그 속에서 깨달음을 얻으며 긍정적인 마음으로 병을 이겨내려는 저자의 모습에서 그 어떤 것에도 더 이상 지지 않겠다는 강인함이 느껴진다. 무엇을 하더라도 내가 건강하지 않다면 뭔들 할 수 있을까. 역시 건강이 최우선! 자기가 병에 걸렸다고 알게 되는 순간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약해진다. 병이 가볍고 중한게 문제가 아니라 병 그 자체만으로 사람들의 기를 꺾어놓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저자는 굴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 이 상황을 극복하고자 긍정적인 마음으로 이겨내려고 노력을 기울인다. 자신이 살아온 길을 되돌아보며 자신이 가진 많은 것들을 서서히 내려놓기 시작하는 저자의 모습은 결국 우리가 살아나가면서 나를 위해 또는 가족들을 위해 해야 할 일이 아닐까 싶다. 뇌경색을 계기로 하여 새롭게 태어난 저자. 저자가 이 책을 쓴 진짜 이유는 인생을 찾는 방법을 알려주기 위해서가 아닐까. 하루하루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들, 바쁜 일상에 쫓겨 여유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삶, 이대로 살아도 되는 걸까. 저자의 삶을 바라보며 이내 스스로를 뒤돌아보게 된다. 돈이 많다 한들 무엇하리오. 건강하지 않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질병에 걸리면 인생이 불행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행복은 다시 찾아온다.
내리막이 있으면 오르막도 있으니까.
- 스즈키의 아내가 독자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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