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이
닐 셔스터먼.재러드 셔스터먼 지음, 이민희 옮김 / 창비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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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은?

미국 남부 캘리포니아에 가뭄이 계속되면서 물 부족 현상이 일어나는데, 가까운 애리조나주 등에서 물 확보를 위해 수로를 차단하면서 점점 상황은 악화된다. 10대인 얼리사는 어느 순간 위험을 직감하고, 켈턴과 개릿 등 그 주변인들 역시 각자의 삶 속에서 위험을 마주한다. 이어지는 갈증과 그로 인해 변해가는 사람들로 도시는 더 이상 안전한 곳이 아닌 발을 내딛는 모든 곳이 위험한 곳이 되어 간다.



주요 포인트는?

단수로 인한 물 부족이라는 원인이 나오긴 하지만 지역적인 조건도 이 소설에서는 중요하게 보고 있다. 물 부족이 큰 문제라는 것은 동감하지만 배경이 동남아나 유럽쪽이라면 또 이야기가 달랐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러고보면 배경 자체를 ‘미국’으로 한정하다보니 차근차근 읽어 나가다가 '당연히 이렇겠지'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기시감이라고까지 얘기하긴 어렵지만, 다양한 영화에서 보아왔던 사건들, 예컨데 혼란들, 총기사고, 점점 격해지는 갈등들이 ‘미국’이니까-라고 생각될 여지는 있는 것 같다. 도대체 미국은 내 머릿속에 어떻게 그려지고 있는 건지 온갖 사건 사고의 온상이어도 된다는 영화적 상상의 한가운데 있는 듯 하다.


이 와중에도 정말 다양한 사람들에 대한 얘기가 나오는데, 전혀 이런 상황을 예상치 못했다가 난처함을 넘어서 위험에 노출되는 주인공과 그 주변인들, 그리고 힘을 이용한 약탈자들, 누구보다 먼저 살아나기 위해 주변인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이기주의자들, 지위를 이용한 약싹빠른 미운털들, 그 와중에 이익을 챙기는 독종들까지 정말 다양하게 나온다. 게다가 그들에게도 이름이 있으니 중간중간 맘껏 비난하고 욕할 수가 있다. 그들에 대해서는 ‘누가 이랬다고 한다 누가 이런 사람을 만났다’같은 간접적 서술이 아닌, 카메라가 잠시 머물러 그런 사람들을 하나하나 비추듯이 행동을 그대로 보여주는 묘사가 좋았다. 

그녀는 잠시 고민하던 뒤 덧붙였다.

“커버해줄 거 아니면 자르세요.”

좋아. 이미 저질렀어. 앞으로 어떤 상황이 벌어지든 일단 물이 있는 곳으러 가자. 산정 호수의 수위가 평균보다 낮아졌을지 몰라도 호수는 어디까지나 호수니까. 라일라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베트콩의 빗발치는 공격을 피해 가까스로 헬기에 올라타 세상의 절반을 돌아왔을 때 선배기자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느껴보면서.

P. 65


책 읽는 동안 과연 지금 내게 이 일이 벌어진다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특히 가을에 접어들기는 하지만 아직은 더운 계절의 끝. 500ml 생수를 옆에 두고 편하게 마시는 그 시간을 이 책을 읽는 동안이 아닌 이상 최근 특별하게 생각해본 적은 없었던게 나로서도 놀랍긴 하다. 하지만 숨쉬는 산소의 고마움, 전기의 고마움을 따로 생각하지 못하듯이 물의 고마움도 같을거라 생각한다. 이런 상황에서라면 어찌되었든 누구보다 먼저 선점하고, 누구보다 빨리 유리한 지점을 찾고, 누구보다 강해져야 한다는 생각을 안할 수가 없었다. 그게 준비가 잘 되어야 하는지, 아니면 모든 걸 예상하고 있어야 하는지와는 별개이지만.

마지막으로 우리 같은 부류다. 매크래건 일가. 난세의 목자들. 그렇다 겉으로는 늑대형으로 보일지 모른다. 커다란 송곳니, 날카로운 발톱, 필요하다면 폭력을 불사할 의지까지. 하지만 우리가 나머지 부류와 다른 점은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있다는 점이다. 양 떼를 인도하가다도 상황에 따라 보호할 수도 있다. 아빠는 우리가 선택권을 쥔 소수이기에 진자 위험히 닥쳤을 때 살아남는 쪽이라고 했다. 357매그넘 한 자루, 글록G19 세 자루, 모스버그 펌프액션 산탄총 한자루를 갖추었기 때문만은 아니다.우리는 언젠가 사회가 돌이킬 수 없이 붕괴하리라고 보고, 오래전부터 수단과 방법을을 가리지 않고 만반의 준비를 해 왔다.

P. 43


500페이지 가까운 책 속에서 지구의 멸망도 아닌 어느 지역의 물과 관련된 이야기로써 다양한 사람들과 그보다 많은 사건들, 그런 것들을 지나치지 않고 세세하게 표현하면서 짧은 시간동안 벌어질 ‘물로 인해 벌어질 수 있는 문제’는 다 보여주는 것 같다. 넘겨짚자면 기존의 재난 영화들에서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상황들을 <물>에 대입한거라 예상할 수는 있을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는 예상 가능한 부분도 있지만, 그럼에도 충분히 다음 페이지에 나올 이야기를 기대하게 한다.


벌어지는 사건에 대해서는 늘어지지 않아 좋지만 그 ‘사건’을 위해 앞에 묘사가 좀 긴 편이다. 이 때문에 호흡이 길어지는 느낌이 종종 드는데 아무래도 사건 자체보다 그것에 이른 사람들에 더 집중하기 위함은 아니었을까 하고 동의를 구해본다. 그리고 스포일러가 될 거 같아 전개에 대해서도 자세히 말할 수는 없지만, 슬프거나 열린 결말로 끝나지는 않는다.



인상깊은 부분은?

원인과 결과를 보여주는 건 좋지만 앞에 물로 인한 엄청난 재난 이후 ‘불’때문에 겪는 사투는 ‘산 넘어 산’이라는 피곤함이 든다. 물론 물이 없는 안타까운 상황에서 충분히 닥쳐올 수 있는 어려움이지만 주인공을 더욱 힘들게 만드려는 말 그대로 '고난을 위한 고난'으로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개인적으로는 소설 중간쯤 불로 인한 엄청난 재난을 겪고 힘들게 내려왔을 때 더 아비규환이 된 도시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더 변해버린 사람들오 인한 위험이 더 극적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나는 노인의 손을 잡았다. 더는 물이 튀게 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다른 손으로 나를 밀쳐냈다. 그리고는 컵을 자기 입가로 가져갔다 노인에게 나은 물도 이 물이 마지막이었던 것이다.내가 이 물을 뺏으면 노인은 죽는다. 뺏지 않으면 내 동생이 죽는다. 

나는 끔찍한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뺨을 후려쳤다. 있는 힘껏. 노인은 중심을 잃자 나는 손에서 컵을 빼앗아 들었다. 물이 왈칵 넘쳤다. 이제 남은 물은 얼마 되지 않았다. 고작해야 두세모금. 누군가의 갈증을 풀진 못해도 내 동생을 살릴지 모른다.

P. 405

위 내용은 불이 난 숲속에서 벌어지는 사건 중 하나인데, 주인공도 결국 사람이다-라는 걸 보여주려는 부분인데, 아무리 이 부분이 필요하다고 해도 물을 찾아 이동하다가 큰 불을 만나게 된다는 건 너무 극적이긴 하다.


이 소설에서 좋았던 건 얼사를 비롯한 주요인물과 그 주변인, 그리고 외부에서 돌아가는 상황에 대해 중간중간 영화에서와 같이 장면 전환을 통해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런 부분은 친절하게 종이 색깔도 다르고, 폰트도 다르게 해서 확실히 차이나게 보여주기 때문에 눈길이 가기도 했는데, 특히 후반주 ‘헬리콥터’에서 조종사가 바라보는 부감씬은, 어쩌면 영화나 드라마 제작을 염두에 두고 썼다고 생각할만큼 바로 영상으로 만들어도 되는 콘티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번역의 힘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작가의 센스인지, 아무튼 원어로는 읽지 못해 판단하기 어렵지만 순간순간 와닿는 문장들이 있다. 


그 와중에 책임자가 중대한 실수를 저질렀다. 망가진 기계 앞에 있던 사람들에게 멀쩡한 기계 뒷줄로 가라고 지시한 것이다. 쌍욕이 핵무기였다면 이미 지구를 쓸어버리고도 남았을 것이다.

P. 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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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하염없이 구호물자를 기다리는 지금, 할리의 머릿속에는 케케묵은 인용구 하나가 떠올랐다. 

‘한 번도 가지지 못한 것을 원한다면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것에 도전하라’

언젠가 축구 코치가 했던 말이다 진부한 말인데 왠지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한 번도 가지지 못한 것이 아닌 가졌다가 잃은 것이라면? 그런데도 여전히 간절히 원하는 것이라면?

P. 208


기가 막힌 유머라고 하기도 어렵고, 저 문장들의 앞위를 생각하면 상황도 좋다고 할 수는 없다. 그래서 그냥 그냥 웃고 넘길만한 말들이 아니긴 하지만 책 읽고 나서도 떠올릴 수 있는 문장들인 것 같아 옮겨본다.


책을 읽으면서 조금 더 현실적이고 극적인 재미를 느끼려면 ‘헨리’가 나오는 부분부터는 그 인물의 행동들을 주시하면서 읽으면 ‘만약 나라면 저렇게까지 할까?’라는 생각이 절로 들 것이다. 그 인물에 심정을 대입할 거까진 없다. 후반부에 가면 절대 안그러고 싶을 가능성이 높다.



덧붙인다면?

1. 닐 셔스터먼(Neal Shusterman)은 이미 ‘분해되는 아이들’로 우리나라에도 소개된 작가이다. 난 아직 읽어보진 못했지만, 제목만큼 충격적인 내용이라고 하니 그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2. 공동 저자인 재러드 셔스터먼(Jarrod Shusterman)이 형제인줄 알았는데 닐 셔스터먼의 아들이라고 한다. 시나리오 작가이자 다큐 감독이라고 하니 언젠가 다른 작품에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리고 작가가 쓴 '감사의 말'을 보면 영화화가 확정되었다고 하는데 언제인지 모르지만 살짝 기대해봄직하다.


3. 물이 없는 세상이 어떨지 궁금하거나, 아직 겪어보지 않은 지구의 또 다른 위기를 간접적으로나마 느끼고 싶다면 추천, 살인과 잔인한 약육강식이 끝도 없이 이어지는 와중에 매드 맥스 같은 영웅이 등장하는 암울한 apocalypse를 기대한다면 비추.



* 이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개인 블로그에 올린 서평 내용 일부를 편집한 것입니다.

* 이 서평은 출판사 '창비'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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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혹한 어머니의 날 1 타우누스 시리즈 9
넬레 노이하우스 지음, 김진아 옮김 / 북로드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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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은?

어느 한적한 동네, 예전 수도원이었던 터에 지어진 주택에서 살고 있던 80대의 노인인 '테오 라이펜라트'가 시체로 발견되는데, 그는 나이에 비해 비교적 건강했고 사이가 썩 좋진 않았지만 이웃집 아이도 왕래할 만큼 평범한 사람이었다. 하지만만 그가 죽은 후 그가 키우던 개가 사용하지 않던 견사에서 발견되고, 그 개가 땅을 파헤치면서 그 밑에 묻어 둔 사람의 시체가 발견되면서 그가 범인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면서, 삶도 평범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된다. 그리고 그가 예전에 그 집에서 여러 아이들을 입양해 키웠다는 점과 함께 그 자식들도 조사를 받게 되면서 감춰져있던 놀라운 사실들이 드러난다.



주요 포인트는?

미스테리의 시작으로써 주인공 또는 그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인물의 숨겨진 과거, 그리고 전혀 관련이 없을 것 같은 몇 가지 이야기의 교집합과 어느 순간 교차점은 굉장히 스릴감있고 한 순간 큰 놀라움을 주는 좋은 장치이다. 전에 언젠가 다른 소설의 서평에서 언급한 적 있는데 난 소설의 프롤로그가 주는 느낌을 아주 크게 생각하는 편인데, 역시나 넬레 노이하우스는 이전 작품과 같이 긴장감있는 프롤로그를 짧고 강하게 준비하고 있었다. 아마도 이런 프롤로그가 다음에 어떤 부분과 이어지면서 다시 한번 돌아가보게 하는데, 역시 이번에도 틀리지 않았다. 

심장이 터져나갈 듯 거칠게 뛰었다. 숨이 가빠오도록 달리고 또 달렸다. 커다란 집에 다다를 때까지 마주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개구리연못에서 아이가 죽었다는 소식이 오후 늦게 전해졌을 때 사람들의 머릿속에 떠오른 건 그가 아니라 젖은 옷으로 집에 돌아온 또 다른 소년이었다. 존재감이 없다는 건 때론 큰 장점이었다.

그날 밤 잠자리에 누웠을 때 그는 삶이 죽음으로 변하는 순간이 얼마나 특별하고 사람을 흥분시키는 것인지 깨달았다. 그날 맛본 전능의 힘을 다시는 잊지 못할 것이었다. 그는 매트리스와 침대 틀 사이의 비밀공간에서 조심스럽게 머리카락 한 줌을 끄집어냈다. 노라와 몸싸움을 하는 와중에 뜯어낸 머리카락이었다. 머리카락에 코를 대고 냄새를 들이마신 뒤 자신의 뺨에 갖다댔다. 그는 이제 더 이상 희생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오늘부터 그는 사냥꾼이었다.

P. 14 ~ 15(1권)

더 이상 겁쟁이 피해자가 아니라는 것이 너무 확연한 차이로 드러나는 장면인데 여기서 한번쯤 다시 봐야 할 부분은 '젖은 옷으로 집에 돌아온'이겠다. 책을 읽다보면 저절로 '아하!'하게 될 것이다.


처음엔 순차적으로 아무 생각 없이 읽다가 어느 순간 과거와 현재의 시차가 눈에 띄면서 사건과 사건 사이의 간극이 무엇인가 너무 깊게 생각하면서 보게 되었다. 하지만 각 chapter별로 날짜와 장소가 표기되고 읽어 나가다 보면 장면별로 분명한 차이가 있으니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중간중간 시체로 발견된 피해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서 그에 대한 '범인 시점'으로도 이야기가 진행되기도 한다. 살인자의 독백? 아니면 살인자의 자기고백 같은 느낌. 물론 이 고백들이 뒤에서 발견되는 시체들과 겹쳐지면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중요한 부분이기도 한데, 그 외에도 처음엔 좀 낯설었지만 헷갈리거나 이해하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어서 그 부분들에서는 여러가지 상상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예를 들면, 이 범인이 앞서 나온 등장인물 중 누구일 것 같다-라든지, 범인은 여자일까 남자일까-같은 사소한 생각들도 했던 것 같다.

나는 백미러를 통해 아무도 본 사람이 없음을 확인하고 차를 출발시킨다.

"강간하거나 그러진 않을거죠?" 그녀가 불분명한 소리로 중얼거린다. 

(중략)

그녀에 대한 증오심이 내 안에서 폭발한다. 그러나 평정을 유지한다. 사실 나는 이 여자를 전혀 미워하지 않는다. 그녀는 그저 껍데기일 뿐이다. 

(중략)

"무슨 그런 소릴!"  나는 미소를 짓는다. 그녀도 웃는다. 술취한 사람의 흐리멍덩한 미소, 그녀는 내게 관심이 없다. 왜? 난 미군이 아니니까. 그녀는 내가 누군지 모른다. 하지만 몇 시간 후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될 것이다.

P. 109 (1권)


이번에 읽은 건 출간 전 가제본 편으로 2권으로 나눠져 있는데 합치면 약 700페이지에 가까운 분량이다. 본 출간버전이 1권으로 나올지 지금과 같이 2권으로 분권될지는 모르겠는데 읽은 책으로 얘기하자면, 1권은 역시 사건과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그래서 등장인물(엑스트라도 여럿이다)도 관련자들의 각자의 이야기가 다각도로 서술되면서 처음엔 좀 헷갈릴수도 있다. 하지만 어느정도 읽어나가면 스토리가 갖춰지면서 하나하나 정리해가는 느낌이 들어 2권부터는 쉽게 읽을 수 있다. 그리고 2권은 사건 그 자체에서 있었던 단서와 감춰진 이야기들이 하나하나 드러나면서 속도도 빨라지므로 범인이 누구인지를 상상하면서 보면 더욱 빨리 읽을 수 있다. 다만 처음 1권은 가능하면 나른한 오후보다는 휴일 오전이나 잠이 오지 않는 긴 밤에 읽기를 권하고 싶다.



인상깊은 부분은?

앞서 제목에 대해서도 얘기했는데 피해자들이 대부분 '어머니의 날' 전후에 실종되고 그 후에 살해되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렇다면 이 '어머니의 날'이 주요한 날이 된 이유가 있을텐데 이에 대해서는 밝힐 수는 없지만 아가사 크리스티의 단편소설인 '쥐덫'이 떠오르긴 했다.(* 쥐덫 : 아가사 크리스티는 왕대비의 주문으로 1주일만에 쓴 라디오 드라마용 작품 <세 마리의 눈먼 생쥐>(Three Blind Mice)를 1950년 단편소설로 고쳐 썼고 이듬해에 다시 희곡으로 수정했다. 희곡은 1952년 10월 6일 노팅엄 로열 극장에서 초연되어 같은 해 11월 25일부터 런던 앰배서더 극장에서 60년째 공연 중이다. 출처 : 위키백과)  내용이 '어머니의 날'과 유사하다고 얘기하긴 어렵지만 배경이라 말 할 수 있는 과거 사건이 비슷해서 그런지 그 작품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주변 사람들이 알지 못한 '학대'에서 살아남은 아이들. 피해자이자 약한 존재인 그들이 종국에는 가해자이자 극한으로 치닫는 반사회 인물이 되는 게 안타깝고 슬픈 일인데 그 부분에 대해 냉정하고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게 강점인 것 같다. 이 소설에서 그런 아픈 부분을 돌려서 말하거나 묻어두는 건 전혀 없는 것 같다.


그리고 크게 두 가지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앞서 얘기한 '테오 라이펜라트'의 살인사건과 예전에 입양했던 자식들의 이야기, 그리고 또 다른 이야기는 아빠를 찾고자 하는 '피오나 피셔'의 이야기이다. 인물간 겹치는 부분도 없고 연관성도 없어 보이는 두 이야기가 접점이 되는 순간 앞서 이야기한 내용들이 다시 한번 떠오르게 한다. '피오나'의 이야기도 시작부터 뭔가 평범하지는 않겠다라는 생각이 들긴 했는데 그저 엄마가 죽은 후 아빠의 얼굴이라도 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하지만 보다 충격적인 사실을 마주하게 되면서 더욱 그 일에 깊이 들어가게 된다. 특히 2권에서 '지베르트'씨를 찾아 집에 방문하고, 그 이후 일어나는 일들은 앞서 나온 전개상에서는 예상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부분 때문에 영화로 만들기는 좀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등장인물도 많고 사건도 단순 살인사건만을 해결하고자 달려가는게 아니다보니 앞에서 펼쳐놓았던 이야기들을 뒷 부분에서 하나하나 모자이크 조각을 맞춰 하나의 큰 그림을 만들어내는 뒷 부분은 역시 넬레 노이하우스의 전개를 믿게 한다. 

"그럴 가능성이 있어요." 헤닝이 이마의 주름을 잡으며 대답했다. 

"냉동되기 전에 익사했을 수도 있어요. 몸에 별다른 외상의 흔적이 없어요. 

(중략) 

강간, 고문, 학대의 흔적이 없고요, 타인의 유전자가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옷도 분석실로 보낼겁니다. 레머! 거긴 어떄요?"

잠시 후 레머 박사가 열린 문 사이로 나타났다. 

"입에 똑같은 거품 흔적이 있습니다." 그가 말했다.

익사, 냉동, 랩으로 싸기.

보덴슈타인은 라모나 인데만이 한 말을 떠올렸다. 욕조에 처박고 아이스박스에 가두고. 우연을 믿기에 그는 너무 형사 생활을 오래 했다.

P. 197(1권)  


단지 땅속에서 발견된 세구의 시체에서 시작된 수사가 그들의 과거 행적, 과거에 일어난 사건, 그리고 현재의 범인에 이르는 과정이 세밀하고 지능적이다. 물론 시체들의 발견과 모습들이 썩 유쾌하지 않지만 피가 사방에 튀고 팔다리가 굴러다니는 잔인함은 아니어서 더 생각할 지점이 많은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쉽게 범인을 상상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마지막을 위한 마지막 계단 오르는 기분으로 읽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CSI에서 간혹 보아 온 과학수사(검시를 포함) 장면이 좀 많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좀 더 치밀한 사건이라는 느낌을 주기 위한 장치라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는 2권에 접어들며 주인공 '피아'형사에 대한 이야기가 좀 더 많이 나온 것 같아 반갑긴 했다. 그 부분이 모두 아름답진 않지만 주인공이 더욱 범인을 잡아야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하고, 결국 그녀도 고민을 안고 사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드니 좀 더 인간적으로 느껴지긴 했지만, 사건과 연관되어 있다는 점은 극적상황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건 나도 모르죠" 니콜라 엥엘이 어깨를 으쓱했다. "킴은 이해하기 힘든 사람이예요. 자신의 삶에 불만이 많은데 바꾸려고 하진 않아요. 아무리 좋은 의도로 해주는 조언도 듣지 않고 그냥 발전이라는 걸 거부하는 것 같았아요. 그래서 나하고도 계속 다투게 됐던 거고.

(중략)

엥엘의 허심탄회한 태도에 피아는 놀랍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다. 짜능나는 상사이기도 하지만 결단력과 용기, 논리적 분석력만은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왔기에 이 솔직한 이야기를 자신을 진심으로 신임한다는 뜩으로 받아들여도 될 것 같았다.

(중략)

"전혀 몰랐어요" 피아가 말했다. "그런 말 한마디도 안했거든요."

"저한테도 안했어요." 엥엘이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나도 우연히 알게 돼서 물어봤는데 말도 못 꺼내게 하더라고. 킴은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 무시해버려요. 비밀이 아주 많은 사람이지. 아마 그 비밀 중 하나에 덜미를 잡힌게 아닌가 싶어요."

빗줄기는 점점 거세어졌다. 선선한 공기중에 쇳내가 났다. 니코틴 여파로, 예상치 못한 상사의 솔직함에 피아는 멍해진 기분이었다.

P. 176 ~ 177(2권)


그냥 '가족'끼리 있을 수 있는 다툼이나 갈등 정도로 그려졌으면 더 낫지 않았을까 한다. 그리고 예전에 비해 좀 더 나이를 먹어가는 느낌이 들기도 해서 좀 아쉽기도 했다. 물론 보덴슈타인 형사도 마찬가지.



덧붙인다면?

1. 여전히 넬레 노이하우스는 여성작가의 디테일함과 강한 필력을 자랑한다. 게다가 의외로 문장들이 길지 않기도 하다.(번역의 힘인가?) 그만큼 책은 두꺼워지지만 그걸 읽어내는 독자로써는 그런 전개와 반전이 반가울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다만 갖고 다니기 불편함은 인정.


2. 얼마 전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 용의자가 뉴스에 나오기도 했는데 DNA로 인한 수사의 쾌거로 회자된다. 이전 넬레 노이하우스 소설들보다 조금은 더 빠르게 인적사항을 찾고 그들의 행적을 추척해 나가는 방법이 변화해 가는 것과 궤를 같이 한다는 생각이 잠시 들기도 했다.


3. 넬레 노이하우스의 이전 작들을 읽어 본 적 있고, 끝까지 긴장감을 유지하는 섬세한 미스테리 소설을 원한다면 추천, 피가 터지는 잔인한 설정, 그리고 정신이상의 범죄자가 나오는 자극적인 범죄물을 원한다면 비추.



* 이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개인 블로그에 올린 서평 내용 일부를 편집한 것입니다.

* 이 서평은 출판사 '북로드'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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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스토리 디자인 -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브랜드 스토리’ 만드는 법에 관하여
호소야 마사토 지음, 김현정 옮김 / 비엠케이(BMK)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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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고객을 향한 접근이 필요하다. 그것의 중요한 포인트로 ‘브랜드 스토리’를 이야기하는데, 모두가 잘 알고 있는 것 같지만 한가지로 정의하기엔 어려운 개념이기에 제품 하나하나, 디자인 하나하나마다 숱한 이야기가 나올 수 밖에 없다. 그 중에서도 작가의 경험과 실무 디자이너, 기획자들과의 인터뷰 형태로 함께 고민하고 토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주요 포인트는?

흔한 말로 ‘디알못’이지만 여느 사람들처럼 디자인이 좋다 나쁘다, 쓰기에 편하다 불편하다는 입에 달고 사는 것 같다. 어쨌든 사용자로서 제시할 수 있는 의견이라고 생각하고, 개인적으로는 이 책 제목 중 '스토리'라는 단어에서 주는 느낌이 좋았는데, 요즘 같은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시점에 디자인에서도 가장 고민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제품도 다양해지고 그만큼 시장이 넓어지는데 있어 똑똑한 디자이너, 더 똑똑해진 소비자들이 있기 때문에 눈에 가장 먼저 꽂히는 것 뿐 아니라 그 와중에 더욱 손길이 가게 하는 마법의 순간을 만들어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4장에서는 ‘원풍경이 있을 것’에 관한 사례를 소개한다. 원풍경이란 사람의 마음이나 기억 깊은 곳에 있는 원초적인 풍경을 의미힌다. 실재하는 풍경이 아니라 마음속에 하나의 이미지로 자리잡은 풍경일 수도 있다. 이는 생활자의 가치관이나 사고방식에 따라 크게 변하기도 한다.

P. 166


한 때, 정확히는 내가 어릴 적엔 웅장한 크기를 자랑하는 제품들이 멋지던 시절이 있었고, 그 다음 어느 떄인가 작은 크기에 온갖 기능을 집어 넣는 우대받던 시절(아마도 워크맨 같은 것이 아닐가?)도 있었다. 또 그 뒤엔 simple이 제품이 가진 미덕이던 때도 있었는데 최소한 내가 알지 못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시대에 따라 디자인도 변한다지만, 그 속에서도 꼭 지켜지는 기본이 있었을 것이다. 


이 책은 어느 한가지 제품을 깊이있게 논의하고 그것의 장단점을 파헤치는 연구서가 아니다. 하지만 실제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의 입으로 전해지는 이야기, 그리고 그것에 대한 의견을을 다룸으로써 좀 더 다른 방향으로 볼 수 있을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는 전공자 또는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부분들도 여럿 있다.

마케팅이 이론이라면, 크리에이티브는 현실, 본질적으로 이 두가지 시점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관점은 180도 다르다. 

자주 거론되는 문제점 중 하나는 두 부서 간의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다는 점이다. 마케팅 부서와 디자인 부서 간에는 브랜드에 관한 해석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발주하는 측인 클라이언트 뿐만 아니라 서포트하는 측인 디자인 회사나 광고 회사도 같은 문제점을 떠안는 경우가 있다.

P. 18


수단으로서의 브랜드에 관한 이야기, 또는 필수적으로 고려해야 할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들이지만 실제 어느정도 업무에 적용 가능한지는 내가 판단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최소한 우리가 그냥 지나치는 게시판이나 인터넷 광고에서 보여지는 제품 이미지들을 볼 때 그것들에 어떤 고민이 담겨 있는지는 한번쯤 생각해볼 여지를 줄만큼 다루는 실제 사례들은 흥미로웠다.



인상깊은 부분은?

이 책은 1년 5개월 간 17회에 걸쳐 잡지 ‘닛케이 디자인’에 연재한 글을 모은 글이다. 그래서 그런지 일부 대화 참여자들이 겹치는 부분도 있고, 시점 자체 몇 년 전이어서 hot한 광고나 제품들에 대한 사례가 아닌 점은 아쉽다. 하지만 이번에 중쇄가 된만큼 읽어봤던 사람들 사이에서는 어느 정도 참고할 수 있는 내용들이 있어서는 아닐까 생각해본다.

일상이라든가 자라온 느낌, 취미, 그런 것들이 전부 합쳐져셔 브랜드 스토리가 됩니다. ON가 OFF를 모두 포함해서 만들어지는 것이지요 억지로 생각한다고 해서 만들 수는 없는 부분입니다.

역시 창업자는 무엇을 만들건, 무엇을 팔건, 일단 자신의 꿈이 확실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아마추어 같은 방법이건, 무엇이 되었든 간에 계속해서 입 밖으로 그 꿈을 표출해야 하구요.

P. 241


내가 디자인이나 브랜딩같은 직접적인 업무를 하는 건 아니어서 이 책에 나오는 대화들에 대해서는 정확히 판단할 수 없지만, 지역사회와 함께 브랜딩하고 여러 제휴를 통해 유명해진 홋카이도 이시야 제과의 ‘시로이 고이비토’(고급 과자류)에 대한 사례와 역시 지역사회의 브랜드로써 자리 잡은 삿포로 오도리 ISHIYA SHOP, 대표적인 가전회사로 잘 알려졌지만 이번 기회로 좀 더 다양한 것을 만드는 걸 알게 한 파나소닉의 미용제품, 특히 2010년 기업의 대표적인 캐치 프레이즈를 ‘바쁜 사람을 아름다운 사람으로’라고 바꾸면서 얻게 된 변화된 기업 이미지에 대한 내용, 이치방 시보리 ‘투톤 나마’ 맥주 칵테일에 대한 예는 재미있고 흥미롭게 읽었다.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로 접근한 것은 좋았던 것 같다.


디자인도 결국 유형의 어떤 것을 원하고 받아들이는 소비자에 의해 만들어지고, 그와 함께 성장하고, 변화하다가 쇠퇴하는 가장 최전선에 있는 작업일텐데, 소비자로써 그것을 전부 이해하기한 어려울 것이다. 다만 이 책에서 알려주고자 하는 건 좀 더 깊이 생각하기 인 것 같다. 브랜딩에도, 디자인에도, 그리고 거기에 더하는 스토리에도 한걸음씩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예시로써는 가치가 있는 것 같다.

 ‘그저 팔리기만 하면 된다’가 아니라 ‘어떻게 해야 다음에 또 사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하는 시대다. 물론 제품은 ‘팔리는 것’이 사명이다. 그러나 즉효성은 추구하는 시스템이나 디자인은 순간적으로 팔리는 것일 뿐 제품이 본래 가진 근사한 부분은 책과 마찬가지로 서서히 인정을 받는 것이 이상적이다.

P. 98



덧붙인다면?

1. 디자인과 브랜딩에 관한 책이라고 해서 이 책을 읽는다고 Creative한 아이디어가 샘솟는 것은 아니다. 이 책에서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닌 다른 전문가들이 고려했던 관점과 그 당시 트렌드나 어떤 부분을 고민했는지 같은 것을 reference한다고 생각하는게 맞지 않을까 한다.


2. 책이 작고 두께가 두껍지 않아 휴대성이 좋고 중간중간 컬러 이미지도 있어서 이해를 하는데 도움이 된다. 편집도 잘 되었지만, 책 크기가 작은만큼 글자가 좀 작아 그 점이 아쉽긴 했다.


3. 디자인, 브랜드, 마케팅 등의 업무를 하고 있거나 평소 제품의 초기 Life cycle에서 고려하는 것들에 대해 관심있는 분들에겐 추천, 최신 Hot한 디자인 트렌드에 대한 detail한 분석을 원하거나 바로 고객에게 써먹을 수 있는 빵빵 터지는 Creative한 디자인을 원한다면 비추.



* 이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개인 블로그에 올린 서평 내용 일부를 편집한 것입니다.

* 이 서평은 출판사 '비엠케이’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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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 당신이 놓치는 12가지 질문
남충현.하승주 지음 / 스마트북스 / 2019년 8월
평점 :
절판


내용은?

4차 산업혁명이라는 큰 주제 아래 그에 대해 궁금할 수 있는 12가지 질문을 통해 그에 대한 정의와 이해에 필요할만한 지식들을 간단명료하게 설명하고 있다. 예컨데 요즘 화두인 인공지능이나 IoT, 블록체인같은 기술에 관련된 이야기부터 이런 변화들 경제성장률에 미치는 영향과 일자리 문제 등 한번쯤은 들어봤을만큼 화두가 될만한 이슈들에 대해 사례와 더불어 설명하고 있다.



주요 포인트는?

이 4차 산업혁명이라는 단어 자체가 이전의 1차, 2차, 3차 산업혁명이 있었다는 전제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그 1차, 2차, 3차 산업혁명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구분이 되어졌는지에 대해서 얘기하자면 또 다른 의견들이 나타날 것이 분명하겠다. 사실 '혁명'이라는 단어 자체가 가진 '변화', '다름'을 의미 하는만큼 뭔가 이전 시대와는 매우 다른 사회, 구조적 전환을 뜻하므로 그런 불확실한 것들을 '4차'로 정하기는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이 책은 그런 논쟁에 대한 찬반 보다는 우리가 이미 겪고 있고 이제 접하기 시작하는 수많은 기술들, 그리고 앞으로 일어날만한 일들을 통해 변화하는 우리의 생활과 산업 전반에 끼치될 다양한 모습들이 곧 4차 산업혁명이라 하고, 그 기반이 되는 것들에 대해 궁금한 것들을 이야기하는 만큼 뭔가 정확한 시점을 정하고 유의미/무의미를 따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다만, 어느정도 그동안의 경험적 연구에 기반한 4차 산업혁명의 정의는 등장하니 그건 참고해도 좋을 듯 하다.


4차 산업혁명의 가장 큰 특징은 일상생활의 모든 곳에서 신기술이 스며드는 것이 아닐가 합니다. 모든 산업이 IT산업이 되거, IT산업이 따로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이 4차 산업혁명이라고도 합니다. 따라서 “이것이 바로 4차 산업혁명의 혁신이다”락 딱 집어내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P. 5

위에서 말하는 것처럼 단어가 가진 의미를 파헤치기 보다는 그에 필요한 여러가지 사회 전반의 내용들에 관한 얘기이므로 아주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다만 이 책을 읽고 ‘4차 산업 혁명’에 대해서 더욱 이야기하고 싶어 진다면 그게 지지하는 쪽이든 반대하는 쪽이든 더 많은 정보들을 나눌 수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게 되는 것 같다.


만약 산업혁명이 자주 일어났다면 지금쯤 그 숫자가 어마어마했겠지만 그렇지 못한것은 그 자체로써도 쉽지 않은 환경 때문일 것이다. 영향을 미치는 것이 어떤 산업인지 명확한 기준이 있을 것이고, 왜 그것이 변화를 가져왔는지 배경도 있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이루어지는 구체적인 방법도 필요하고, 이루어지는 과정, 그것을 이끌어가는 주체도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1차 산업혁명이 갖는 의의는 거대하고 큰 의미를 지니고 있게 된 것이고 그 뒤에 따라오는 2차, 3차 산업혁명도 그런 의미에서 붙은 명칭일 것이다. 

결국 4차 산업혁명이란 명칭은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등 현재 진행되고 있는 기술 트렌드를 하나로 묶어서 범주화 하기 위한 도구로써 나온 것이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명칭 차체에 집착하기 보다는 그것이 가리키는 구체적 대상들에세 더 집중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4차면 어떻고 3차면 어떻고 5차면 또 어떻습니까?

P. 41


그런 의미에서 4차 산업혁명을 ‘네 번째’로 부르는 것이 맞느냐에 대한 저자의 자문은 짧지만 의미가 있는 것 같다. (P. 36 ~ 39) 내용도 많고 다른 독자들을 위해 여기 옮길 수는 없지만 이를 자율주행 자동차에 비유하여 1차-2차-3차에 이르는 연속성, 그리고 기술들이 이어지는 연계성으로 설명하는 건 최소한 뒤에 나오는 내용들과 함께 읽어볼만한 의견이라고 생각된다. 다만 이에 대한 반대급부도 있을 것이므로 전적으로 이 의견이 맞다고는 할 수 없지만, 최소한 관심있게 이를 지켜본 사람들이라면 어떤 부분이 일치하는지, 어떤 부분이 왜 다른지에 대해 생각할 여지를 주는 것 같아 좋았다.



인상깊은 부분은?

책 진행이 문답형식인데 편집이 잘 된 것 같다. 내용은 안좋은데 편집만 좋다는 뜻이 아니다. 궁금할 수 있는 것을 누군가 물어봐주고 그것을 답하는 형태인데 아마도 최근 책들의 트렌드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제목이 뜻하는 12가지 질문이 결국 12가지 agenda로 나위어져 있어 궁금한 것을 빨리 찾아볼 수 있는 것도 좋다. 난 개인적으로 아래 4개의 chapter가 궁금해서 이 부분들부터 먼저 볼 생각이었다.

1장 4차 산업혁명_경제성장률을 높일 것인가?

5장 블록체인_가상화폐 이외에 무엇에 쓸 수 있는가?

8장 스마트 제조&물류_스마트해지는 목적은 무엇인가?

10장 일자리_4차 산업혁명은 일자리를 파괴할까?


하지만 책이 두껍지 않아 굳이 필요한 부분부터 보지 않고 처음부터 천천히 읽어도 무방할 듯 싶다. 궁금했던 부분이어서 그런지 <8장 스마트 제조&물류_스마트해지는 목적은 무엇인가?>과 <10장 일자리_4차 산업혁명은 일자리를 파괴할까?> 부분은 쉽게 읽을 수 있었다. 

아디다스 스마트 팩토리가 로봇을 대량으로 도입한 이유가 인건비 절감 때문이라고만은 볼 수 없습니다. 수량적인 생산효율면에서는 컨베이어 벨트로 대표되는 단선적인 생산라인에서 인간과 기계가 함께 규격과된 신발을 생산하는 기존 생산방식이 오히려 나을 수 있습니다. (중략)

비싼 비용도 문제가 되며, 로봇을 통제하고 유지보수 할 인력도 추가로 필요합니다.

P. 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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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택시운전처럼 기존에 자동화되지 않던 서비스업 분야가 자동화되면, 그 분야의 서비스 가격이 크게 떨어집니다. 이 경우 수요가 그대로일까요? 자율주행 택시가 나와서 요금이 절반 이하로 떨어지면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이 타게 될 것이고, 그러면 택시와 연관된 일하는 사람들 – 정비사, 관리자, 택시 보험 설계가 등 – 의 일자리가 늘어나게 될 것입니다.

P. 190


주제를 선정하고 어떤 이야기들을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잘 정리된 것 같았는데 다만 좀 더 많은 사례나 연구 등 풍부한 내용이 있었으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은 든다. 앞에 있는 chapter들에 비해 뒤로 갈수록 내용이 짧아지는 게 허락된 지면의 문제인지 내용의 한계인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뒷 부분에 있는 chapter들이 상대적으로 짧다.


단, <5장 블록체인_가상화폐 이외에 무엇에 쓸 수 있는가?>은 내가 알고 있는 부분과 조금은 다른 부분, 그리고 생각이 다른 부분이 있어 이에 대해서는 대안이나 정확한 개념을 정리할 수 있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Hot한 기술이진 하지만 어느 부분에서든 논란의 여지능 있을 수 있는 것이니.

그리고 드론을 그냥 취미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에겐 <3장 자율주행_앞으로 인간이 운전할 필요가 없어질까?> 부분이 와닿지 않았을까 한다. 여기서는 차량 뿐 아니라 드론의 자율주행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는데 이런 건 평소 관심분야는 아니었어서 그런지 새로웠다.


전체적으로는 simple하고 최대한 이해가 쉽도록 쓴거라는 생각이 드는데, 일단 책이 얇다보니 어떤 부분의 지식을 원하는 바에 따라 '부족하다'거나 '트렌드만 나열하고 신문기사 식의 단순 자료 정리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 책의 내용은 전반적인 정보 set으로 생각하고 요즘 같은 정보의 홍수속에 필요한 건 더 깊이 알아볼 수 있는 자료는 어디선가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덧붙인다면?

1. 각 chapter들에 있는 topic들은 독자적인 트렌드들로서도 의미 있는 것이라 여기서 소개하는 수준보다 더 깊이있는 지식을 원한다면 그에 대한 책을 찾아보는 것도 좋은 독서방법일 것 같다. 모든 지식은 확장이다! 


2. 앞에서 잠깐 언급했지만 4차 산업혁명이라는 의미나 개념 자체에 의문을 품는 연구가들도 많다. 개인적으로는 내가 좋아하는 제레미 리프킨 Jeremy Rifkin도 "4차 산업혁명은 잘못된 표현"이라고 한 적이 있는데, 이런 학문적인 찬반을 떠나 수많은 기술들에 대한 요약으로서도 이 책은 읽을만 하다는 생각이 든다.


3.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개념이 궁금하거나 요즘 새로운 기술들에 대해 관심이 있으며 사람들과 그것에 대한 대화를 나눌 때 낯설지 않을 정도의 지식이 필요하다면 추천, 4차 산업혁명은 관심조차 없고 요즘 TV나 인터넷에서 보고 듣는 IT기술은 그냥 흘러가는대로 두고 잘 쓰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분들께는 비추.



* 이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개인 블로그에 올린 서평 내용 일부를 편집한 것입니다.

이 서평은 출판사 '스마트북스’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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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나누었던 순간들
장자자 지음, 정세경 옮김 / 도도(도서출판) / 2019년 7월
평점 :
절판


내용은?

외할머니와 작은 마을에 살고 있는 류스산. 어린 시절 전학을 왔던 ‘청샹’의 어여쁜 미모에 감탄하지만 소녀보다는 왈패에 가까운 그녀에게 낯선 감정을 느낀 것도 잠시, 짧고 아쉬운 추억만을 남긴 채 헤어지게 된다. 그 이후 대학 때문에 대도시에서 살게 된 류스산은 학교에서 ‘무단’과 만나 사랑을 하지만, 이마저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 안타까운 상황에서 어느 날 백팩으로 인한 오해 때문에 경찰서를 가서 놀라운 인연을 만나게 된다.



주요 포인트는?

위에 쓴 이번 소설 줄거리를 생각하면서 몇 차례 수정할 수 밖에 없었는데, 자세히 쓰다보니 너무 줄거리가 길어지고,그렇다고 인물을 빼다보면 쓸 수 있는게 한정적이어서 최종 결정한 것인데,등장인물이 주인공 포함 3~4명 같지만 훨-씬 많고 내용도 그리 간단하게만 볼 건 아니다. 세상 어느 곳에나 갈등이 있고, 내 편이 있고,각자 담고 있는 스토리가 있는 건 당연하니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건 맞으나 '류스산'의 고향,그리고 지금 살고 있는 대도시에서의 학교와 직장생활을 통해 스쳐가는 인물들이 많으니 그런 잔재미도 꼭 느껴보았으면 좋겠다.

크게는 어린 시절 -> 대학 시절 –> 직장인 시절 –> 강제 귀농(?) 시절 정도로 나눌 수 있는데, 그것을 관통하는 사람 이야기, 즉 처음부터 가까운 사람들, 내 삶에 필요했던 사람들, 또 나를 심정적으로나 인간관계에서 성장 – 말은 이렇지만 결국 villain들이다 - 시켜준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가 한 계단 한 계단씩 펼쳐진다. 등장인물 중 2~3명은 좀 설정이 과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어느 정도 현실적인 부분이 있으므로 읽으면서 부담스럽게 느끼지는 않을 것 같다.


인물들에 대해서는 재기 발랄하진 않지만 주인공 눈높이에 맞는 묘사들도 있고,직접적인 행동을 바로 보여주기보다 주변 환경으로 대신 보여주는 게 많은데 읽으면서 어렸을 때는 이야기 하는 부분은 나의 과거(그 나이 때쯤)를 떠올리게 했다.

류스산이 보기에 진을 통틀어 가장 예쁜 여자는 딱 세 명이었다. 

첫 번째는 뤄 선생으로 이목구비가 아주 예쁘지는 않지만 성격이 좋은 편이었다. 대학물을 먹어서인지 시골 아가씨보다 확실히 나았다. 

(중략)

두 번째는 마오팅팅으로 진에서 공인된 미녀였다. 사람들은 종종 뒤에서 그녀의 이야기를 했다. 그녀의 아머지는 운수업을 했는데 밤에 트럭을 몰고 산길을 가다 차가 뒤집혀 목숨을 잃었다.

(중략)

제 번째는 청샹으로 하마터면 슈스산의 미학 시스템을 뒤흔들어 놓을 뻔했다. 웃기를 좋아하는 그녀가 코라도 한번 찡긋거리면 보는 사람들 모두 함께 따라 웃었다. 하지만 그녀는 성격이 흉악한데다 막무가내라 니우따텐은 그녀와 결혼하겠다는 생각을 일찌감치 접었다. 

P. 43 ~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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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뜬 눈으로 지새운 외할머니는 몸을 뒤척이면서도 외손자가 방문 앞에서 서 있는 걸 알고 있었다. 잠시 후 그녀의 귀에 살금살금 걸어가는 발소리와 드르륵 여행 가방 바퀴가 굴러가는 소리가 들여왔다. 곧이어 마당 문이 살그머니 닫히고, 이른 아침 일어난 새 몇 마리만 이따금 울어댔다. 

외할머니는 문을 열고 나가 복숭아나무 아래에 앉았다.

(중략)

류스산의 여행 가방 주머니에는 돈이 없어 기름을 못 산 외할머니가 어젯밤 몰래 넣어 놓은 5백 위안이 있었다.

P. 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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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학년의 여름방학의 어느 오후, 덥고 답답했던 공기는 갑자기 상쾌해졌고 여자아이는 나무 그림자 속에서 걸어 나와 포니 테일 머리를 흔들며 그의 곁에 앉아 싱긋 웃으며 말했다.

"난 청샹이라고 해."

여자 아이는 돌다리 위에서 기다란 빗자루를 이리저리 휘두르며 소리 질렀다.

"돈 내놔."

P. 98


대화보다는 상황을 하나하나 그려내면서 인물에 대한 설명을 하는 것인데 개인적으로 대화보다 큰 impact은 떨어지더라도 이런 간결한 묘사는 참 좋은 것 같다. 주어(인물)이 바뀌는 순간 바로 화면 전환이 되는 기분도 들고 문장도 길지 않아 읽으면서 내가 기억하는 어떤 이미지에 대입할 수 있는 여지를 주는 것 같아서 좋았다.


어린 시절과 대학교를 다니는 동안의 이야기는 단막극을 보는 것 같아 쉽게 이해도 가고 빨리 읽게 되는데, 반대로 단막극을 보아 왔기 때문에 그런 소재나 유사한 묘사들을 많이 봐와서 일종의 기시감 같은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시골은 어디나 비슷하지’라고 하기엔 난 중국을 가 본적도 없고, 중국의 학교라는 것을 떠올리기엔 너무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소설 자체가 이해하기 쉽게 쓰여졌다고 볼 수도 있지만 너무 쉽게 와닿는다면 다른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았던 장면들을 떠올려서 그럴 수도 있는거 아닐까? 그렇다고 이 소설속에서 표현하는 것들이 흔하다는 건 아니니 오해는 없었으면 좋겠다.


크게는 처음과 마지막을 볼 때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눈물을 펑펑 쏟을만큼 슬프지도, 그렇다고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만큼 신비스럽고 극적이지도 않아서 더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 오래 기억에 남았는지는 모르겠다. 이런 사랑에 관한 것도 중요한 부분이지만 시골에서 자라 온 한 소년의 성장기, 이를테면 돈을 많이 벌어서 외할머니를 호강시켜 주겠다는 것이나, 자신만의 공책(버킷리스트와 비슷한, 의지 노트 정도로 표현할 수 있겠다)을 갖고 그것을 이뤄나간다는 것, 한 때 사랑에 대한 미련, 직장생활에서 느낄 수 있는 강요된 노력과 피로함에 따른 강제 귀농(?) 같은 건 요즘 같은 디지털 시대에는 쉽게 접할 수 없는 성장소설의 모양새이기도 해서 눈길이 간다. 하지만 그런 주인공의 무기력한 단단함은 조금 답답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기도 하다.



iv. 인상깊은 부분은?

책을 읽으면서, 아무렇지 않게 흐르는 시간, 그보다 더 무의미 한 것 같은 사람들과의 관계, 그 속에서 오고 가는 대화들이 어떻게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를 알게 되는 것 같다. 실제로 도시에서의 생활에 있어서는 상황에 대한 묘사보다 대화가 많은 편이다. 아마도 배경의 변화도 관련이 있겠지만 대화만으로 인물을 설명하기에 충분한, 때로는 더 이상 설명할 필요없는 인물이어서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동료들도 약속이나 한 것처럼 뒤도 안돌아보고 자리를 떠났다. 우씨 아줌마는 마지막으로 자리를 떠나며 가게 문 앞에서 머뭇거리다 말했다.

"우리 팀 단톡방이 있어."

"예." 류스산이 대답했다.

"거기 스산씨는 없어."

"예."

"허우 이사님이 돌아오셨나봐. 노래방 가자고 부르시네."

우씨 아줌마가 말했다.

"예."

"나 먼저 갈게."

P. 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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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렇죠. 한 달에 5건 정도는 가, 가능하니까요."

그 말에 허우 이사가 미간을 찌푸리자 우씨 아줌마는 깜짝 놀라며 바로 말을 바꿨다.

"하지만 류스산 씨라면....희망이 없죠. 전혀, 아주 희망이 없고 말고요. 하나도 없죠."

"좋습니다. 한달이라 제가 기다리죠. 그리고...."

허우 이사는 말을 하다 말고 류스산의 귓가에 얼굴을 들이밀며 말했다.

"우리 약혼했어."

이 말을 마친 뒤 허우 이사는 사람들 앞에서 양손을 깍지 끼고 겸손한 척하며 말했다.

P. 165

확실히 유년시절의 부분과는 다르다는 걸 이해할 것이다. 대화로만 전해지지 못하는 이야기가 안타깝지만, 책을 읽으며 위에 나오는 '허우 이사'와 '류스산'의 관계와 숨겨진 이야기를 알게 되면 저 부분들이 얼마나 화나고 억울하고 슬픈 부분인지 알게 될 것이다.


이 소설에서는 주인공이 드라마틱한 성공을 하지도 않고, 무언가 남들보다 뛰어나지도 않다. 심지어 싸움도 못하는데다 말솜씨도 썩 좋지 못하다. 보기에 불만족스럽지만 보통 젊은이의 대표성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소설의 주인공이어서가 아니라 멀리서 찾지 않아도 되는 학교 동기, 동네 친구, 고향 후배 같은 기분으로 볼 수 있을 것 같고, 그러다보니 '류스산'이 겪게 되는 이런 저런 일들이 더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때론 안타깝기도, 때론 답답하기도, 때론 도와주고 싶기도 한다.


그리고 잊을 수 없는 고향 사람들. 이름을 하나하나 열거하기도 어렵지만, 그러기엔 사연들도 여러가지가 있어서 직접 읽어봐야 더 와닿을 만한 사건들이긴 하다. 다만, 앞서 얘기한 동네('진'이라는 마을 단위를 쓴다)에서 가장 예쁜 미인 중 한 명의 사연, 그리고 '치우치우'에 대한 이야기는 한번쯤 앞으로 다시 돌아가서 내가 기억하고 있는게 맞는지 확인할 만큼 여운을 남긴다. 드라마였다면 따로 에피소드로 만들어도 아주 좋은 소재였을 듯 하다. 특히 가끔 학교에 찾아와 갖고 있는 쓰레기로 학비를 내겠다고 하는 정신 이상자에 대한 부분은 몇차례 안타까움을 느끼게 한다.

"왕용은 외지에서 우리 진에 내려와 가구점을 열었던 사람이야. 아내가 많이 아팠는데 전에 돈을 꿔간 사람이 도망가서 갚지 않았어. 결국 가게까지 팔았는데 돈을 다 쓰고도 병을 고치지 못했어. 아내는 한밤중에 강물에 뛰어들어 죽었고."

청샹은 가만히 듣고 있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괜찮았는데 왕용에겐 당시 세살 좀 안된 딸이 하나 있었어. 그 딸을 데리고 매일 돈 꿔간 사람을 찾으러 다녔는데 충격을 받았는지 점점 이상해졌어. 딸이 여섯살 때부터인가 가끔 학교에 오는데 벌써 2년째네. 나름 딸을 학교에 보내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는지...(후략)

P. 279 ~ 280


조금 아쉬운 건 내가 알고 있는 중국의 거대함을 떠올릴 때 아무리 배경을 ‘학교’, ‘도시’, ‘고향’에 국한하더라도 주인공을 둘러싼 우연이 몇 차례 겹치는 건 뒤에 나올 스토리를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여기서 꼭 얘기하고 싶은 건 그 뒤에 나오는 스토리와 연결되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놀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대표적으로 ‘치우치우’에 대한 이야기인데, 사실 처음 등장하는 순간과 뒤에 나오는 여러 가지 상황들은 ‘사족’이라고 느껴지기까지 했다. 어른스럽고 귀여운 말괄량이 꼬마가 도대체 왜 여기서 이 이야기들을 할까라고 생각되다가 뒷부분에서 나오는 어떤 사건과 이어지는 순간! 앞에서 오고가던 이야기들이 '훅'하고 다시 떠오른다. 이건 반전보다는 서프라이즈인걸로. 아무튼 그런 건 우연이 인연이 되는 순간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 않겠는가?


'류스산'의 사랑에 대해서는 많이 쓰지 않았는데 잊혀질 때 한번씩 이어지는 사랑을 말로 표현하다보면 너무 전형적으로 보일 것도 같고, 이미 다른 영화나 드라마에서 비슷한 상황을 본 적이 있어 그것과 비교될 수 있다는 생각에 피하고 싶었다.

그녀는 손을 뻗어 손짓을 하다 두 팔을 펼쳤다.

"너는 내 삶에서 이렇게 빛나고 빛나는 한줄기 빛이니까."

청샹은 류스산에게 맑고 빛나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P. 496

다만 두 사람의 결말에 느껴지는 감동을 더 크게 느낄 수 있는 대화여서 옮겨보았다. 직접 느껴보시길.


마지막으로,  첨밀밀(1996, 진가신 감독) 영화에서 등려군의 '월량대표아적심 亮代表我的心'이라는 노래를 들어봤을텐데, 이 소설에서도 잠시 등장한다. 역시 국민가요인가보다. 그러고보니 이 소설의 내용과도 잘 어울리는 노래이고 잘 선택했다고 생각하지만, 류스산이 여자친구를 바라 볼 때, 그리고 소설 뒷부분에 다시 한번 장국영의 노래가 배경으로 그려진다. 가사만 나와서 무슨 노래인지는 몰랐는데 찾아보니 '공동도과 共同渡過'라는 노래인 것 같다. 음원이 있거나 노래를 잘 아는 분들은 함께 들어보시길. 



덧붙인다면?

1. 오랜만에 중국의 소설을 읽는다고 생각했는데 며칠 전에 다른 소설을 읽었던 걸 잊고 있었다. 맘먹고 찾아보니 집에 의외로 중국 작가(문학 포함, 경제나 역사에 관한 것)의 책이 많은 것에 새삼 놀랐다.


2. 난 이 작가의 글을 처음 읽었는데,이런 소설 뿐 아니라 ‘너의 세계를 지나칠 때’라는 영화의 원작으로 쓰일 만큼 작가로도 유명한 사람이다. (어떤 블로그에 그 영화의 감독도 했다고 되어 있던데 그건 잘못된 정보인 듯 하다. 감독은 ‘장일백 张一白’이다). 아무튼 이 영화와 소설도 꽤 재미있다는 풍문이 있으니 찾아보는 재미도 있을 듯 하다.


3. 우선 시간적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지만 정말 가끔 과거의 이야기가 불쑥 튀어나오긴 한다. 하지만 거슬리거나 앞에서 나온 부분을 다시 봐야 할 정도는 아니므로 그런 부분이 나오더라도 그냥 편하게 읽어도 되겠다.


4. 잔잔한 첫사랑의 이야기로 소소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너무 트렌디한 소설들에 지쳤거나, 읽고 나서 잠시나마 따스한 느낌을 받고 싶다면 추천,자극적이고 선정적인 29금 소설을 좋아하거나 첫사랑 따위는 교과서에나 나오는 판타지라는 생각이 든다면 비추천.


* 이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개인 블로그에 올린 서평 내용 일부를 편집한 것입니다.

* 이 서평은 출판사 '도서출판 도도'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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