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잔혹한 어머니의 날 1 ㅣ 타우누스 시리즈 9
넬레 노이하우스 지음, 김진아 옮김 / 북로드 / 2019년 10월
평점 :
내용은?
어느 한적한 동네, 예전 수도원이었던 터에 지어진 주택에서 살고 있던 80대의 노인인 '테오 라이펜라트'가 시체로 발견되는데, 그는 나이에 비해 비교적 건강했고 사이가 썩 좋진 않았지만 이웃집 아이도 왕래할 만큼 평범한 사람이었다. 하지만만 그가 죽은 후 그가 키우던 개가 사용하지 않던 견사에서 발견되고, 그 개가 땅을 파헤치면서 그 밑에 묻어 둔 사람의 시체가 발견되면서 그가 범인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면서, 삶도 평범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된다. 그리고 그가 예전에 그 집에서 여러 아이들을 입양해 키웠다는 점과 함께 그 자식들도 조사를 받게 되면서 감춰져있던 놀라운 사실들이 드러난다.
주요 포인트는?
미스테리의 시작으로써 주인공 또는 그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인물의 숨겨진 과거, 그리고 전혀 관련이 없을 것 같은 몇 가지 이야기의 교집합과 어느 순간 교차점은 굉장히 스릴감있고 한 순간 큰 놀라움을 주는 좋은 장치이다. 전에 언젠가 다른 소설의 서평에서 언급한 적 있는데 난 소설의 프롤로그가 주는 느낌을 아주 크게 생각하는 편인데, 역시나 넬레 노이하우스는 이전 작품과 같이 긴장감있는 프롤로그를 짧고 강하게 준비하고 있었다. 아마도 이런 프롤로그가 다음에 어떤 부분과 이어지면서 다시 한번 돌아가보게 하는데, 역시 이번에도 틀리지 않았다.
심장이 터져나갈 듯 거칠게 뛰었다. 숨이 가빠오도록 달리고 또 달렸다. 커다란 집에 다다를 때까지 마주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개구리연못에서 아이가 죽었다는 소식이 오후 늦게 전해졌을 때 사람들의 머릿속에 떠오른 건 그가 아니라 젖은 옷으로 집에 돌아온 또 다른 소년이었다. 존재감이 없다는 건 때론 큰 장점이었다.
그날 밤 잠자리에 누웠을 때 그는 삶이 죽음으로 변하는 순간이 얼마나 특별하고 사람을 흥분시키는 것인지 깨달았다. 그날 맛본 전능의 힘을 다시는 잊지 못할 것이었다. 그는 매트리스와 침대 틀 사이의 비밀공간에서 조심스럽게 머리카락 한 줌을 끄집어냈다. 노라와 몸싸움을 하는 와중에 뜯어낸 머리카락이었다. 머리카락에 코를 대고 냄새를 들이마신 뒤 자신의 뺨에 갖다댔다. 그는 이제 더 이상 희생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오늘부터 그는 사냥꾼이었다.
P. 14 ~ 15(1권)
더 이상 겁쟁이 피해자가 아니라는 것이 너무 확연한 차이로 드러나는 장면인데 여기서 한번쯤 다시 봐야 할 부분은 '젖은 옷으로 집에 돌아온'이겠다. 책을 읽다보면 저절로 '아하!'하게 될 것이다.
처음엔 순차적으로 아무 생각 없이 읽다가 어느 순간 과거와 현재의 시차가 눈에 띄면서 사건과 사건 사이의 간극이 무엇인가 너무 깊게 생각하면서 보게 되었다. 하지만 각 chapter별로 날짜와 장소가 표기되고 읽어 나가다 보면 장면별로 분명한 차이가 있으니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중간중간 시체로 발견된 피해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서 그에 대한 '범인 시점'으로도 이야기가 진행되기도 한다. 살인자의 독백? 아니면 살인자의 자기고백 같은 느낌. 물론 이 고백들이 뒤에서 발견되는 시체들과 겹쳐지면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중요한 부분이기도 한데, 그 외에도 처음엔 좀 낯설었지만 헷갈리거나 이해하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어서 그 부분들에서는 여러가지 상상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예를 들면, 이 범인이 앞서 나온 등장인물 중 누구일 것 같다-라든지, 범인은 여자일까 남자일까-같은 사소한 생각들도 했던 것 같다.
나는 백미러를 통해 아무도 본 사람이 없음을 확인하고 차를 출발시킨다.
"강간하거나 그러진 않을거죠?" 그녀가 불분명한 소리로 중얼거린다.
(중략)
그녀에 대한 증오심이 내 안에서 폭발한다. 그러나 평정을 유지한다. 사실 나는 이 여자를 전혀 미워하지 않는다. 그녀는 그저 껍데기일 뿐이다.
(중략)
"무슨 그런 소릴!" 나는 미소를 짓는다. 그녀도 웃는다. 술취한 사람의 흐리멍덩한 미소, 그녀는 내게 관심이 없다. 왜? 난 미군이 아니니까. 그녀는 내가 누군지 모른다. 하지만 몇 시간 후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될 것이다.
P. 109 (1권)
이번에 읽은 건 출간 전 가제본 편으로 2권으로 나눠져 있는데 합치면 약 700페이지에 가까운 분량이다. 본 출간버전이 1권으로 나올지 지금과 같이 2권으로 분권될지는 모르겠는데 읽은 책으로 얘기하자면, 1권은 역시 사건과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그래서 등장인물(엑스트라도 여럿이다)도 관련자들의 각자의 이야기가 다각도로 서술되면서 처음엔 좀 헷갈릴수도 있다. 하지만 어느정도 읽어나가면 스토리가 갖춰지면서 하나하나 정리해가는 느낌이 들어 2권부터는 쉽게 읽을 수 있다. 그리고 2권은 사건 그 자체에서 있었던 단서와 감춰진 이야기들이 하나하나 드러나면서 속도도 빨라지므로 범인이 누구인지를 상상하면서 보면 더욱 빨리 읽을 수 있다. 다만 처음 1권은 가능하면 나른한 오후보다는 휴일 오전이나 잠이 오지 않는 긴 밤에 읽기를 권하고 싶다.
인상깊은 부분은?
앞서 제목에 대해서도 얘기했는데 피해자들이 대부분 '어머니의 날' 전후에 실종되고 그 후에 살해되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렇다면 이 '어머니의 날'이 주요한 날이 된 이유가 있을텐데 이에 대해서는 밝힐 수는 없지만 아가사 크리스티의 단편소설인 '쥐덫'이 떠오르긴 했다.(* 쥐덫 : 아가사 크리스티는 왕대비의 주문으로 1주일만에 쓴 라디오 드라마용 작품 <세 마리의 눈먼 생쥐>(Three Blind Mice)를 1950년 단편소설로 고쳐 썼고 이듬해에 다시 희곡으로 수정했다. 희곡은 1952년 10월 6일 노팅엄 로열 극장에서 초연되어 같은 해 11월 25일부터 런던 앰배서더 극장에서 60년째 공연 중이다. 출처 : 위키백과) 내용이 '어머니의 날'과 유사하다고 얘기하긴 어렵지만 배경이라 말 할 수 있는 과거 사건이 비슷해서 그런지 그 작품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주변 사람들이 알지 못한 '학대'에서 살아남은 아이들. 피해자이자 약한 존재인 그들이 종국에는 가해자이자 극한으로 치닫는 반사회 인물이 되는 게 안타깝고 슬픈 일인데 그 부분에 대해 냉정하고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게 강점인 것 같다. 이 소설에서 그런 아픈 부분을 돌려서 말하거나 묻어두는 건 전혀 없는 것 같다.
그리고 크게 두 가지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앞서 얘기한 '테오 라이펜라트'의 살인사건과 예전에 입양했던 자식들의 이야기, 그리고 또 다른 이야기는 아빠를 찾고자 하는 '피오나 피셔'의 이야기이다. 인물간 겹치는 부분도 없고 연관성도 없어 보이는 두 이야기가 접점이 되는 순간 앞서 이야기한 내용들이 다시 한번 떠오르게 한다. '피오나'의 이야기도 시작부터 뭔가 평범하지는 않겠다라는 생각이 들긴 했는데 그저 엄마가 죽은 후 아빠의 얼굴이라도 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하지만 보다 충격적인 사실을 마주하게 되면서 더욱 그 일에 깊이 들어가게 된다. 특히 2권에서 '지베르트'씨를 찾아 집에 방문하고, 그 이후 일어나는 일들은 앞서 나온 전개상에서는 예상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부분 때문에 영화로 만들기는 좀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등장인물도 많고 사건도 단순 살인사건만을 해결하고자 달려가는게 아니다보니 앞에서 펼쳐놓았던 이야기들을 뒷 부분에서 하나하나 모자이크 조각을 맞춰 하나의 큰 그림을 만들어내는 뒷 부분은 역시 넬레 노이하우스의 전개를 믿게 한다.
"그럴 가능성이 있어요." 헤닝이 이마의 주름을 잡으며 대답했다.
"냉동되기 전에 익사했을 수도 있어요. 몸에 별다른 외상의 흔적이 없어요.
(중략)
강간, 고문, 학대의 흔적이 없고요, 타인의 유전자가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옷도 분석실로 보낼겁니다. 레머! 거긴 어떄요?"
잠시 후 레머 박사가 열린 문 사이로 나타났다.
"입에 똑같은 거품 흔적이 있습니다." 그가 말했다.
익사, 냉동, 랩으로 싸기.
보덴슈타인은 라모나 인데만이 한 말을 떠올렸다. 욕조에 처박고 아이스박스에 가두고. 우연을 믿기에 그는 너무 형사 생활을 오래 했다.
P. 197(1권)
단지 땅속에서 발견된 세구의 시체에서 시작된 수사가 그들의 과거 행적, 과거에 일어난 사건, 그리고 현재의 범인에 이르는 과정이 세밀하고 지능적이다. 물론 시체들의 발견과 모습들이 썩 유쾌하지 않지만 피가 사방에 튀고 팔다리가 굴러다니는 잔인함은 아니어서 더 생각할 지점이 많은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쉽게 범인을 상상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마지막을 위한 마지막 계단 오르는 기분으로 읽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CSI에서 간혹 보아 온 과학수사(검시를 포함) 장면이 좀 많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좀 더 치밀한 사건이라는 느낌을 주기 위한 장치라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는 2권에 접어들며 주인공 '피아'형사에 대한 이야기가 좀 더 많이 나온 것 같아 반갑긴 했다. 그 부분이 모두 아름답진 않지만 주인공이 더욱 범인을 잡아야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하고, 결국 그녀도 고민을 안고 사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드니 좀 더 인간적으로 느껴지긴 했지만, 사건과 연관되어 있다는 점은 극적상황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건 나도 모르죠" 니콜라 엥엘이 어깨를 으쓱했다. "킴은 이해하기 힘든 사람이예요. 자신의 삶에 불만이 많은데 바꾸려고 하진 않아요. 아무리 좋은 의도로 해주는 조언도 듣지 않고 그냥 발전이라는 걸 거부하는 것 같았아요. 그래서 나하고도 계속 다투게 됐던 거고.
(중략)
엥엘의 허심탄회한 태도에 피아는 놀랍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다. 짜능나는 상사이기도 하지만 결단력과 용기, 논리적 분석력만은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왔기에 이 솔직한 이야기를 자신을 진심으로 신임한다는 뜩으로 받아들여도 될 것 같았다.
(중략)
"전혀 몰랐어요" 피아가 말했다. "그런 말 한마디도 안했거든요."
"저한테도 안했어요." 엥엘이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나도 우연히 알게 돼서 물어봤는데 말도 못 꺼내게 하더라고. 킴은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 무시해버려요. 비밀이 아주 많은 사람이지. 아마 그 비밀 중 하나에 덜미를 잡힌게 아닌가 싶어요."
빗줄기는 점점 거세어졌다. 선선한 공기중에 쇳내가 났다. 니코틴 여파로, 예상치 못한 상사의 솔직함에 피아는 멍해진 기분이었다.
P. 176 ~ 177(2권)
그냥 '가족'끼리 있을 수 있는 다툼이나 갈등 정도로 그려졌으면 더 낫지 않았을까 한다. 그리고 예전에 비해 좀 더 나이를 먹어가는 느낌이 들기도 해서 좀 아쉽기도 했다. 물론 보덴슈타인 형사도 마찬가지.
덧붙인다면?
1. 여전히 넬레 노이하우스는 여성작가의 디테일함과 강한 필력을 자랑한다. 게다가 의외로 문장들이 길지 않기도 하다.(번역의 힘인가?) 그만큼 책은 두꺼워지지만 그걸 읽어내는 독자로써는 그런 전개와 반전이 반가울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다만 갖고 다니기 불편함은 인정.
2. 얼마 전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 용의자가 뉴스에 나오기도 했는데 DNA로 인한 수사의 쾌거로 회자된다. 이전 넬레 노이하우스 소설들보다 조금은 더 빠르게 인적사항을 찾고 그들의 행적을 추척해 나가는 방법이 변화해 가는 것과 궤를 같이 한다는 생각이 잠시 들기도 했다.
3. 넬레 노이하우스의 이전 작들을 읽어 본 적 있고, 끝까지 긴장감을 유지하는 섬세한 미스테리 소설을 원한다면 추천, 피가 터지는 잔인한 설정, 그리고 정신이상의 범죄자가 나오는 자극적인 범죄물을 원한다면 비추.
* 이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개인 블로그에 올린 서평 내용 일부를 편집한 것입니다.
* 이 서평은 출판사 '북로드'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