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이
닐 셔스터먼.재러드 셔스터먼 지음, 이민희 옮김 / 창비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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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은?

미국 남부 캘리포니아에 가뭄이 계속되면서 물 부족 현상이 일어나는데, 가까운 애리조나주 등에서 물 확보를 위해 수로를 차단하면서 점점 상황은 악화된다. 10대인 얼리사는 어느 순간 위험을 직감하고, 켈턴과 개릿 등 그 주변인들 역시 각자의 삶 속에서 위험을 마주한다. 이어지는 갈증과 그로 인해 변해가는 사람들로 도시는 더 이상 안전한 곳이 아닌 발을 내딛는 모든 곳이 위험한 곳이 되어 간다.



주요 포인트는?

단수로 인한 물 부족이라는 원인이 나오긴 하지만 지역적인 조건도 이 소설에서는 중요하게 보고 있다. 물 부족이 큰 문제라는 것은 동감하지만 배경이 동남아나 유럽쪽이라면 또 이야기가 달랐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러고보면 배경 자체를 ‘미국’으로 한정하다보니 차근차근 읽어 나가다가 '당연히 이렇겠지'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기시감이라고까지 얘기하긴 어렵지만, 다양한 영화에서 보아왔던 사건들, 예컨데 혼란들, 총기사고, 점점 격해지는 갈등들이 ‘미국’이니까-라고 생각될 여지는 있는 것 같다. 도대체 미국은 내 머릿속에 어떻게 그려지고 있는 건지 온갖 사건 사고의 온상이어도 된다는 영화적 상상의 한가운데 있는 듯 하다.


이 와중에도 정말 다양한 사람들에 대한 얘기가 나오는데, 전혀 이런 상황을 예상치 못했다가 난처함을 넘어서 위험에 노출되는 주인공과 그 주변인들, 그리고 힘을 이용한 약탈자들, 누구보다 먼저 살아나기 위해 주변인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이기주의자들, 지위를 이용한 약싹빠른 미운털들, 그 와중에 이익을 챙기는 독종들까지 정말 다양하게 나온다. 게다가 그들에게도 이름이 있으니 중간중간 맘껏 비난하고 욕할 수가 있다. 그들에 대해서는 ‘누가 이랬다고 한다 누가 이런 사람을 만났다’같은 간접적 서술이 아닌, 카메라가 잠시 머물러 그런 사람들을 하나하나 비추듯이 행동을 그대로 보여주는 묘사가 좋았다. 

그녀는 잠시 고민하던 뒤 덧붙였다.

“커버해줄 거 아니면 자르세요.”

좋아. 이미 저질렀어. 앞으로 어떤 상황이 벌어지든 일단 물이 있는 곳으러 가자. 산정 호수의 수위가 평균보다 낮아졌을지 몰라도 호수는 어디까지나 호수니까. 라일라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베트콩의 빗발치는 공격을 피해 가까스로 헬기에 올라타 세상의 절반을 돌아왔을 때 선배기자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느껴보면서.

P. 65


책 읽는 동안 과연 지금 내게 이 일이 벌어진다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특히 가을에 접어들기는 하지만 아직은 더운 계절의 끝. 500ml 생수를 옆에 두고 편하게 마시는 그 시간을 이 책을 읽는 동안이 아닌 이상 최근 특별하게 생각해본 적은 없었던게 나로서도 놀랍긴 하다. 하지만 숨쉬는 산소의 고마움, 전기의 고마움을 따로 생각하지 못하듯이 물의 고마움도 같을거라 생각한다. 이런 상황에서라면 어찌되었든 누구보다 먼저 선점하고, 누구보다 빨리 유리한 지점을 찾고, 누구보다 강해져야 한다는 생각을 안할 수가 없었다. 그게 준비가 잘 되어야 하는지, 아니면 모든 걸 예상하고 있어야 하는지와는 별개이지만.

마지막으로 우리 같은 부류다. 매크래건 일가. 난세의 목자들. 그렇다 겉으로는 늑대형으로 보일지 모른다. 커다란 송곳니, 날카로운 발톱, 필요하다면 폭력을 불사할 의지까지. 하지만 우리가 나머지 부류와 다른 점은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있다는 점이다. 양 떼를 인도하가다도 상황에 따라 보호할 수도 있다. 아빠는 우리가 선택권을 쥔 소수이기에 진자 위험히 닥쳤을 때 살아남는 쪽이라고 했다. 357매그넘 한 자루, 글록G19 세 자루, 모스버그 펌프액션 산탄총 한자루를 갖추었기 때문만은 아니다.우리는 언젠가 사회가 돌이킬 수 없이 붕괴하리라고 보고, 오래전부터 수단과 방법을을 가리지 않고 만반의 준비를 해 왔다.

P. 43


500페이지 가까운 책 속에서 지구의 멸망도 아닌 어느 지역의 물과 관련된 이야기로써 다양한 사람들과 그보다 많은 사건들, 그런 것들을 지나치지 않고 세세하게 표현하면서 짧은 시간동안 벌어질 ‘물로 인해 벌어질 수 있는 문제’는 다 보여주는 것 같다. 넘겨짚자면 기존의 재난 영화들에서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상황들을 <물>에 대입한거라 예상할 수는 있을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는 예상 가능한 부분도 있지만, 그럼에도 충분히 다음 페이지에 나올 이야기를 기대하게 한다.


벌어지는 사건에 대해서는 늘어지지 않아 좋지만 그 ‘사건’을 위해 앞에 묘사가 좀 긴 편이다. 이 때문에 호흡이 길어지는 느낌이 종종 드는데 아무래도 사건 자체보다 그것에 이른 사람들에 더 집중하기 위함은 아니었을까 하고 동의를 구해본다. 그리고 스포일러가 될 거 같아 전개에 대해서도 자세히 말할 수는 없지만, 슬프거나 열린 결말로 끝나지는 않는다.



인상깊은 부분은?

원인과 결과를 보여주는 건 좋지만 앞에 물로 인한 엄청난 재난 이후 ‘불’때문에 겪는 사투는 ‘산 넘어 산’이라는 피곤함이 든다. 물론 물이 없는 안타까운 상황에서 충분히 닥쳐올 수 있는 어려움이지만 주인공을 더욱 힘들게 만드려는 말 그대로 '고난을 위한 고난'으로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개인적으로는 소설 중간쯤 불로 인한 엄청난 재난을 겪고 힘들게 내려왔을 때 더 아비규환이 된 도시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더 변해버린 사람들오 인한 위험이 더 극적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나는 노인의 손을 잡았다. 더는 물이 튀게 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다른 손으로 나를 밀쳐냈다. 그리고는 컵을 자기 입가로 가져갔다 노인에게 나은 물도 이 물이 마지막이었던 것이다.내가 이 물을 뺏으면 노인은 죽는다. 뺏지 않으면 내 동생이 죽는다. 

나는 끔찍한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뺨을 후려쳤다. 있는 힘껏. 노인은 중심을 잃자 나는 손에서 컵을 빼앗아 들었다. 물이 왈칵 넘쳤다. 이제 남은 물은 얼마 되지 않았다. 고작해야 두세모금. 누군가의 갈증을 풀진 못해도 내 동생을 살릴지 모른다.

P. 405

위 내용은 불이 난 숲속에서 벌어지는 사건 중 하나인데, 주인공도 결국 사람이다-라는 걸 보여주려는 부분인데, 아무리 이 부분이 필요하다고 해도 물을 찾아 이동하다가 큰 불을 만나게 된다는 건 너무 극적이긴 하다.


이 소설에서 좋았던 건 얼사를 비롯한 주요인물과 그 주변인, 그리고 외부에서 돌아가는 상황에 대해 중간중간 영화에서와 같이 장면 전환을 통해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런 부분은 친절하게 종이 색깔도 다르고, 폰트도 다르게 해서 확실히 차이나게 보여주기 때문에 눈길이 가기도 했는데, 특히 후반주 ‘헬리콥터’에서 조종사가 바라보는 부감씬은, 어쩌면 영화나 드라마 제작을 염두에 두고 썼다고 생각할만큼 바로 영상으로 만들어도 되는 콘티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번역의 힘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작가의 센스인지, 아무튼 원어로는 읽지 못해 판단하기 어렵지만 순간순간 와닿는 문장들이 있다. 


그 와중에 책임자가 중대한 실수를 저질렀다. 망가진 기계 앞에 있던 사람들에게 멀쩡한 기계 뒷줄로 가라고 지시한 것이다. 쌍욕이 핵무기였다면 이미 지구를 쓸어버리고도 남았을 것이다.

P. 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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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하염없이 구호물자를 기다리는 지금, 할리의 머릿속에는 케케묵은 인용구 하나가 떠올랐다. 

‘한 번도 가지지 못한 것을 원한다면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것에 도전하라’

언젠가 축구 코치가 했던 말이다 진부한 말인데 왠지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한 번도 가지지 못한 것이 아닌 가졌다가 잃은 것이라면? 그런데도 여전히 간절히 원하는 것이라면?

P. 208


기가 막힌 유머라고 하기도 어렵고, 저 문장들의 앞위를 생각하면 상황도 좋다고 할 수는 없다. 그래서 그냥 그냥 웃고 넘길만한 말들이 아니긴 하지만 책 읽고 나서도 떠올릴 수 있는 문장들인 것 같아 옮겨본다.


책을 읽으면서 조금 더 현실적이고 극적인 재미를 느끼려면 ‘헨리’가 나오는 부분부터는 그 인물의 행동들을 주시하면서 읽으면 ‘만약 나라면 저렇게까지 할까?’라는 생각이 절로 들 것이다. 그 인물에 심정을 대입할 거까진 없다. 후반부에 가면 절대 안그러고 싶을 가능성이 높다.



덧붙인다면?

1. 닐 셔스터먼(Neal Shusterman)은 이미 ‘분해되는 아이들’로 우리나라에도 소개된 작가이다. 난 아직 읽어보진 못했지만, 제목만큼 충격적인 내용이라고 하니 그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2. 공동 저자인 재러드 셔스터먼(Jarrod Shusterman)이 형제인줄 알았는데 닐 셔스터먼의 아들이라고 한다. 시나리오 작가이자 다큐 감독이라고 하니 언젠가 다른 작품에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리고 작가가 쓴 '감사의 말'을 보면 영화화가 확정되었다고 하는데 언제인지 모르지만 살짝 기대해봄직하다.


3. 물이 없는 세상이 어떨지 궁금하거나, 아직 겪어보지 않은 지구의 또 다른 위기를 간접적으로나마 느끼고 싶다면 추천, 살인과 잔인한 약육강식이 끝도 없이 이어지는 와중에 매드 맥스 같은 영웅이 등장하는 암울한 apocalypse를 기대한다면 비추.



* 이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개인 블로그에 올린 서평 내용 일부를 편집한 것입니다.

* 이 서평은 출판사 '창비'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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