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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미녀들 1
스티븐 킹.오언 킹 지음, 이은선 외 옮김 / 황금가지 / 2020년 2월
평점 :
절판
주요포인트는?
이번 소설은 스티븐킹과 그의 아들 오언킹이 험께 쓴 소설이다. 오언킹은 이전에 중단편으로 이름을 막 알리고 있었기 때문에 과연 두 사람의 시너지가 어떻게 커질지, 어떤 색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낼지에 대한 궁금증이 더 크긴 했는데, 개인적으로는 스티븐킹의 지분이 훨씬 더 많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만큼 강하고, 독하며, 잊을 만하면 긴장감을 잡아끈다. 전체적인 흐름은 아닌 듯하고 인물들 몇에 대한 back ground를 오언킹이 써서 보완한 게 아닌가 한다. 처음엔 기현상에 대한 미스테리 소설이라고 생각되지만 조금 지나면 이 현상에 따라오는 사람들의 모습으로 공포스럽다가, 극단적인 행동을 하는 걸 보면서 세기말의 암울함을 다룬 apocalypse인가?라는 생각도 들기 시작한다.
여성에게만 일어나는 질병(으로표현된다), 그와 함께 집중되는 여성의 행동들. 그것뿐만이 아니고 여성교도소인 초반의 배경, 그리고 주요 인물들에 대한 설명, 일부 인물들의 과거에서 이미 성차별의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그 말에 클린트는 저넷 솔리를 떠올렸다. 저넷은 점점 심해지는 남편의 학대를 수년간 견디다 못해 남편을 드리아버로 찌른 뒤 피흘리며 죽어가는 모습을 바라본 죄로 교도소에 들어와 있었다. 저넷이 그러지 않았다면 그녀의 남편 대미언 솔리는 결국 저넷을 죽이고 말았을것이다. 그랬으리라 클린트는 확신했다. (중략) 하지만 이 자리에서 코츠 교도소장에게 그렇게 얘기를 해봐야 들으려고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 방면에서 소장은 상당히 구식이라 이대로 질의응답의 시간을 끝마치는 편이 나았다.
P. 94
그리고 ‘여성들이 없는 세상’으로까지 치닫지만 어디서든 여성에 대한 편협함이 나타나면서 선입견, 미지의 대상이 익숙한 대상을 잠식하는 것에 대한 공포를 차별로 극대화하여 보여주는 것 같다. 병의 이름부터 이런 구분, 또는 정확한 대상을 규정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여성’이라는 것에 초점이 맞춰진 이름이 붙여진 것이 그런 것을 보여주는 듯 하다. 어쩌면 남성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질병이 결국 '여성'이라는 한정에 갇히게 되면서 차별된다는 것이다.
그들 대부분이 처음에는 ‘오스트레일리아 수면병’으로 불리다가 ‘여성 수면독감’으로 명칭이 바뀌고 이제 ‘오로라병’으로 불리게 된 전염병에 관한 뉴스를 텔레비젼으로 보았다. 오로라병이라는 명칭은 ‘잠자는 숲속의 미녀’라는 동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월트디즈니의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오로아 공주의 이름을 딴 것이다.
P. 147
이런 의미들로 여성성이 침범받는 것을 다 묘사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되는 만큼 이런 직접적인 표현은 누구나 쉽게 인지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전혀이전에 보지 못한 물질에 대한 표현도 자극적이진 않지만 상상이 가기에 충분하다. 희고 거미줄같지만, 괴상하게 마끌거리고 따끔거리기까지 한 물질이 얼굴을 가득 덮고 있는데, 그게 눈과 코, 피부를 뚫고 나왔다는 걸 상상하면 병으로써가 아니라 그 자체만으로도 공포스럽기까지 하다고 생각되는 이유다. 게다가 처음 발생한 지역의 이름이 붙었다가 곧 성별로 그 주체가 옮겨진 것은 현재 '코로나 바이러스 COVID 19'라고 불리는 질병의 처음 이름이 중국 지명이 붙었다는 것과 연결되어 사실성 있게 느껴지게도 한다.
소설이 시작하고 120 page 넘게까지 병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진행상황을 보여주지 않지만 그 이후부터는 혼돈 그자체가 된다. 여성들은 잠을 자지 않으려, 그 옆의 남자들은 그것을 막아보려, 그리고 아직 잠들지 않은 사람들은 최소한 그것들이 자신과는 상관 없길 바라는 마음이 부딪히며 폭발적인 자연 재해가 닥친 상황과 다르지 않다. 이런 어수선한 분위기 와중에 자기 어머니의 머리에 레밍턴 산탄총을 갈겨버리는 나쁜 놈도 있는데, 이런 캐릭터의 경우 이미 일반적인 사람과는 다른 길을 걷는데다, 어설프게 살아남아 악행을 저지르는 경우가 많으니 2권에서도 지켜봐야 하겠다. 참고로 ‘공무원’이었던 놈이다.
또 수많은 등장인물 중 ‘이비’에 대해 말을 안할 수가 없는데 등장은 그저 범죄자의 한명(당연히 초반 배경이 교도소이니 만큼 거기에 잘 어울리는 인물)이라고 생각했지만 후반부에 가면 무언가 특별함이 있다는 것에 놀라게 된다.
“도대체 무슨 소린지 모르겠어요.”
“알게 될 거예요. 결국에는. 어쩌면 내일 내가 당신을 만날 수도 있어요.그나저나 부인의 말이 맞았어요. 당신은 수영장을 두고 부인과 의논한 적이 없었어요. 사진을 몇 장 보여주기는 했지만 그거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나 봐요.”
“이비……”
“키스를 해서 다행이예요.정말 다행이예요.나는 당신 부인이 좋거든요.”
P. 605
대화만으로는 그냥 잠꼬대 같을 수도 있지만 이부분의 앞에 일어났던 정말 뜻하지 않은 부부싸움과 이 장면 이후 대화에 등장한 ‘부인’의 선택에 대해서 읽어본다면 이 대화 자체가 얼마나 큰 의미인지 그리고 이비가 얼마나 많은 것을 바라보고 있는지 놀라게 될 것이다. 이 부분만으로도 미스테리한 소설의 재미를 알게 될 수 있으니 꼭 그냥 넘기지말고 읽어보기를 권한다.
요즘 ‘코로나바이러스 COVID-19’ 때문에 누구나 전염, 확산에 무서움을 갖게 되는데 이 소설속 에서도 ‘오로라병’의 확산에 대한 공포가 인간의 이성을 잠식하고 그로 인한 더 광란의 장면이 펼쳐지게 된다. 아니 어쩌면 이미 본 것 이상의 장면들이 2권에서 펼쳐질 것 이라 예상하는데 말 몇 마디로 퍼져나가는 공포의 위력은 사소한 가짜뉴스에 사람들이 더 열광하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오로라의 경고 : 긴급진단!
필립 P. 버드러스키의학박사
생물학자와 역학자로 이루어진 카이지 퍼머넌트 의료센터 연구원에 따르면 오로라 수면병에 걸린 여성들을 둘러싸고 있는 고치가 질병 확산의 원인인 것으로 밝혀졌다. 고치를 관통한 환자들의 호흡을 매개로 감염이 된다. 이 매개체는 상당히 전염성이 높다.
오로라의 확산을 저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고치와 그 안에 잠들어 있는 여성들을 태우는 것이다! 지금 당장 실천하라!
P. 589
책에서도 “불가피한 상황을 두려워하는 것이, 불가피한 상황 그 자체보다 끔찍하기 때문에 포기하는게 더 쉽다”라는 표현으로 인간이 만들어내는 공포에 대해, 즉 오히려 의지와 상관없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런 무서운 상황에 처해지는 걸 선택하는 경우도 있을 수 밖에 없음을 약자의 눈으로 대신하기도 한다. 1권의 마지막 장면이 이런 생각에서 온 것이지 않을까 한다.
인상깊은 부분은?
우선 처음부터 쏟아지는 등장인물에 조금은 당황스럽다. 도대체 누가 주연이고 누가 조연인지 구분도 안가지만 스티븐킹의 기존 소설들처럼 조금 지나면 어렵거나 하진 않다. 그리고 그 인물들이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가 확인되면 서서히 흐름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이름이 많다고 시작하기 전부터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다만 번역자의 의도인지 모르겠는데 우리가 흔히 아는 영어이름 표기가 조금 달라- 자넷이 저넷, 엔젤이 에인절, 데미안이 대미언, 에비가 이비로 표기-서 처음엔 입에 붙지 않는다. 하지만 자주 나오는 이름들이어서 곧 적응이 된다.
그 중에서 이름에 관해서 가볍게 읽게 되는 부분도 있다.
“그들은 나방(moth) 관찰자를 ‘모서(mother)’라고 불렀어요. 어머니를 뜻하는 마더(mother)와 철자는 같지만 발음은 다르죠.”
(중략)
“모두가 나를 알아요. 내가 나름 매력있는 여자거든요.”
이비가 턱을 긁느라 어꺠를 올리자 수갑이 딸그락거렸다.
“나름. 매력있는여자. 나, 나 자신, 그리고 나, 아버지, 아들, 성스러운 이브. 외벽면에서 밖으로 돌출된 지붕을 뜻하는 이브(eave), 저녁을 뜻하는 이브닝(evening)의 줄임말 이브(eve), 우린 누구나 힘이들죠. 그렇죠? 모서? 어머니와 철자가 같은 모서.”
P. 101 ~ 102
책에서도 경찰이 듣는 헛소리나 주정 정도로 얘기하긴 하지만 책 뒷부분의 이비의 모습과 행동들에서 이런 말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다시 떠올려 보기도 한다. 게다가 처음엔 약에 취한거라고 여겼지만 동물들과 이야기를 하기까지 하는(?!) 미스테리한 상황을 보여주니 그냥 비슷한 발음이 아니라 어떤 중요한 의미를 가진 곳에 대한 단서나 복선을 주는게 아닐까 하는데, 혹시 2권에서 이런 것에 대해 나온다면 더욱 반가울 것 같긴 하다.
굳이 남성 vs 여성 대결로 작품을 몰아가고 싶진 않다. 하지만 작품 자체로만 본다면 잠들어 있는여성들을 깨우면 주위의 모든 것을 공격하는 야성(또는 영화 속 좀비같은 모습이 그려진다)에 피해를 입는 것이 대부분 남성이긴 하다. 하지만 결국 그런 사나운 여성을 제압하는 것도 대부분 ‘아직 깨어있는’ 또 다른 여성이다. 어쩌면 작가는 억압된 여성이 폭발하는 것이 가장 먼저 남성을 향할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자 했던 건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물론 모든 여성들이 다 옳고, 정확한 판단을 한다고는 볼 수 없다. 어찌되었든 주 배경이 되는 둘링(Dooling)이라는 마을의 여자교도소이고, 그 교도소의 소장 역시 여성이다.
마지막으로, 전에 스티븐킹의 책에 대해서 생각지 못한 순간의 훅 들어오는 유머 또는 단어나 사람 이름 가지고 말장난 같은 유머를 보여주는 건 최고라고 얘기한 적이 있는데, 이번 책에서는 다른 어떤 유머보다 짧고 강한 재미를 주기도 한다.
티파니는 종종 “저 새끼보다 더 못돼처먹은 새끼가 또 있을까?”라고 자문하곤 했다.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도널드 트럼프와 식인종들 말고는 비교대상이 없을 만큼 그는 대단한 개새끼였다.
P. 50
알만한 사람들은 알겠지만 작가인 스티븐 킹은 현직 미국 대통령을 매우 싫어해서 페북을 탈퇴하는 이유 중 하나로 그를 꼽기도 했다. 자유로움이 부럽고 이런 걸표현 할 수 있는 작가의 고집도 대단하다.
이 소설은 두 권으로 되어 있고 각 600 page가 넘을 만큼 짧지 않다. 하지만 많은 스티븐 킹의 작품이 그러했 듯이 갑작스러운 공포의 순간을 맞이하고 또 그걸 지켜보는 인간의 심리에 대해서는 그 어떤 작품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탁월하다. 그런 의미에서 요즘의 전염병이 위협적인 시점에 단지 병이어서가 아닌 차별과 공격성이 무서움을 가지고, 병과 상관없는 남자들의 잔인함, 병을 극복하려는 여자들의 안간힘이 대조를 이루는 만큼 현실보다 극적인 이야기로 기억에 오래 남을 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덧붙인다면?
1. 장소의 변경, 수많은 인물들의 등장, 멀진 않지만 시선의 이동에 따른 도시명 등장, 조금은 느린 호흡 때문에 시간적인 걸 놓칠 수 있는데 1권의 이야기는 하루동안 벌어진 이야기이다.
2. 중반과 후반에 등장하는 미케일라 코츠(또는 미키 코츠 또는 미케일라 모건)가 아직 잠들지 않았는데 2권에서 혹시 좀 더 강하고 역동적인 활약을 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앞에서 주인공이라고 생각했던 인물 한명이 허무하게 사라져 생존이 더 궁금하긴 하다.
3. ‘스티븐 킹’의 소설을 좋아한다면, 그리고 범인 찾기 추리물보다는 사회현상을 기반에 둔 미스테리 장르소설을 기대한다면 추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연쇄 살인사건이 나오는 범죄물을 원한다면 비추.
* 이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개인 블로그에 올린 서평 내용 일부를 편집한 것입니다
* 이 서평은 출판사 '황금가지'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