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악센트
마쓰우라 야타로 지음, 서라미 옮김 / 흐름출판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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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은?

사소하지만 가볍지 않은, 평범하지만 기억에 남을지도 모를, 반복되고 있지만 또 다른 무언가를 기대하게 하는 어느 날들. 아무 생각 없이 걷다 만난 인연, 오래된 물건을 보고 떠오른 단상까지 

이보다 더 단조로운 삶에서는 어떤 새로운 것이 있을까 싶은 쉼표 같은 일상에 대한 기록이다.



주요 포인트는?

이 책은 수필, 아니 우리가 일기라고 부르는 '기록'의 정형성에 너무나도 잘 맞는 글이다. 단 여기서 빠진 것이 '시간'일 뿐이고 장소, 인물, 물건에 대한 단상이 그 때 그때의 감정을 담아 쓴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읽다 보면 아무 이유 없이 상황을 시간에 맞게 그려보고 싶어지는데 그럴 수가 없다. 장소 역시 해외의 경험에서 온 것이어서 그런지 정확한 지점을 찾기 어려우니 굳이 무언가 장소와 시간에 얽매이며 읽을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중반쯤 이후 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모든 이야기가 독립적으로만 따로따로 노는 것은 아니다. 읽다 보면 의외로 앞에 나온 이야기와 흐름을 잇는 부분도 있어 반갑기까지 하다.

기타는 정말 어려웠다. 그렇지만 매일 연습해도 자꾸만 틀리던 부분이 어느 날 갑자기 당황스러울 만큼 술술 풀릴 때가 있었다. 띄엄띄엄 하는 연습은 덧셈밖에 안되지만 조금이라도 꾸준히 하는 연습은 곱셈이 된다는 말을 믿었다.

P. 144


우연한 계기로 1년 만에 기타를 들었다. 가장 자신 있었던 곡을 연주해보니 분명히 외웠던 코드와 연주 방법인데 까맣게 잊어 기억이 나지 않았다

(중략)

나는 1년 만에 기타 연습을 다시 시작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잊은 줄 알았던 코드와 연주방법을 한 달 만에 거의 예전만큼 기억하게 됐다는 것이다.

P. 158

저자가 일본에서 잡지의 편집장이자 독립서점을 운영 중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전문 수필 느낌보다는 생활의 진솔한 느낌이 더 좋았다. 아무래도 많은 시간 해외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과정에서의 이야기들도 많은데 거기서도 자신과 같은 작가를 만나는 부분에서 하는 얘기는 독자에게 선언하는 일로 느끼는 부담감과 자기 고백이 아닐까 한다. 


안타까운 사실은, 취미가 아닌 직업으로서의 글쓰기는 생각보다 힘들고 어렵다는 점이다. 거창하게 들릴지는 모르지만, 글을 쓴다는 것은 내가 아직 말하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는 것이다. 

P. 38

위 이야기는 '나의 적은 나 자신'이라는 부분에서 언급하는 부분과도 일간 이어질 수도 있겠다. 물론 작가로서의 관찰 같은 것 외에 처음 만난 사람과의 인사와 헤어짐, 사소한 즐거움, 부적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생활 속 글의 소재가 될 거라고 생각하지 못한 것들을 이렇게 담담하게 써 내려감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것도 일상에서 작은 부분을 잘 찾아내는 작가의 세심한 능력인 듯 하다.


인상깊은 부분은?

이 책을 천천히 읽어 나가다 보면 제목에 있는 '악센트'가 어디 있는 건가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순간이 우리를 기다리는 건 아니므로, 일상 속 어떤 곳이 눈의 확 띌만한 부분인지 고민하기 전에 이미 글을 써내려가고 그 중에서 나중에 다시 한번 떠올려 볼만한 이야기를 모아놓은 것 같다. 혹시 일기와 수필의 차이를 그걸 쓴 사람이 누구냐의 차이로 구분해야 한다면 최소한 이 책에서는 단조롭지만 꼭 기억에 남기고 싶은, 누군가에게 나누고픈 이야기들을 구성했다는 생각이 든다. 


앞서 글의 내용에 있는 장소와 시간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지만 읽으면서 연결점이 보이는 글들이 있었다. 꼭 맞는다기 보다는 아마도 그러지 않을까하는 상상일 뿐이나, 오히려 그렇게 생각하니 더 관심이 가긴 했는데, <등을 곧게 펴고> (P. 62)편에서 미국에서 만났던 여인과의 짧은 인연과 헤어짐, 그래서 <만날 수 있으면 만나고 싶다>(P. 92)에서 상대방의 배려와 더 보고 싶어하는 마음에 대한 애틋함. 그 글에 있는 누군가가 그녀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리고 그 정점은 아래의 내용에서 더욱 크게 느껴졌다.

잊으려 해도 잊지 못하는 것이 누구에게나 있다. 어째서 잊지 못하는 것일까. 그 일이 내게 무척 소중해서 그것을 잊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나를 부정하는 일이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면 소중한 것이란 무엇일까. 분명 내가 아끼는 추억이라는 뜻일 것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어쩔 수 없다고. 나는 그 일을 사랑하고, 사랑하는 일을 a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무리이며, 잊는 일 따위 불가능하다고.

P. 67

물론 위 감상은 유럽 여행에서 기차 안의 어떤 중년 여성을 보고 생각했던 것이지만 아마도 다른 누군가에 대한 잊혀짐에 대한 것이었을 것이다.


책에 어떤 이야기들이 있는지 궁금해서 별 생각 없이 펼쳤는데 처음 나온 이야기가 너무 기억에 남을 만한 이야기여서 계속 읽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 분명 지어낸 거라고 생각할 만큼 드라마틱하지도 않지만, 사실이 아니라면 실망스러워질 만큼, 짧지만 여운이 남는 이야기였다.

(전략)

"당신을 잊어버릴까 봐 올 여름에는 당신에게 줄 구두를 만들었어요. 구두를 만들었더니 당신을 떠올릴 수가 있었어요. 이제 나이가 들어서 구두 만드는 일은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선물이에요."

편지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다. 

나는 새 구두를 신고 곧바로 샌프란시스코로 날아갔다. 

소중한 친구를 만나기 위해.

P. 16~ 17

구두를 보낸 사람은 누구이고, 도대체 저 이야기가 무슨 내용인 건지 궁금하다면 기꺼이 책을 한번 펼쳐보기를 권한다.


덧붙인다면?


1. 책 크기도 작아 여성들의 작은 가방에도 잘 들어갈 것 같고, 종이 질 때문에 가벼워서 갖고 다니면서 읽기에도 편할 것 같다.


2. 다만 책에서 다루는 이야기들이 단편적이어서 이야기들이 좀 더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 툭 끊기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아쉬울 때가 있다.


3. 단조로운 일상에 관한 에세이지만 읽으면서 좀 여유로움을 공유하고자 한다면 추천, 살면서 느끼는 고민을 한 방에 해결하는 인생의 네비게이터 같은 에세이를 필요로 한다면 비추.


* 이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개인 블로그에 올린 서평 내용 일부를 편집한 것입니다 

* 이 서평은 출판사 '흐름출판'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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