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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피안
하오징팡 지음, 강영희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4월
평점 :
주요 포인트는?
개인적으로 SF작가라고 한다면 '아이작 아시모프'(Isaak Yudovich Ozimov), '아서 C. 클라크'( Arthur Charles Clarke), '로버트 하인라인'(Robert A. Heinlein) , '필립 K. 딕'(Philip Kindred Dick), '윌리엄 깁슨'(William Ford Gibson) 정도가 떠오른다. 아! 최근에 읽은 단편의 작가인 테드 창(Ted Chiang)을 포함해야 겠다. 물론 매니아들은 더 많은 작가들을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직접 읽어본 작품들을 기준으로는 이정도 기억력이 최대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기억의 최대치라고 조시스레 단언하는 건, 읽는 사람마다 자신의 최애 작품은 다르겠지만, 다수의 SF 소설들을 읽어도 위에 언급한 작가달의 작품에서 본 설정이나 유사한 장면, 혹은 캐릭터가 떠올라서가 아닐까 한다. 그래서인지 SF소설, 특히 중/단편들은 짧고 간단한만큼 독자들의 접근이 쉽겠지만 어디선가 본 듯한 장면들이라는 기시감이 따라오기 때문에 더욱 쓰기가 어렵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하오징판’이라는 작가는 주제는 둘째치고라도 에둘러 표현하거나 이야기를 늘어뜨리지 않는다.(아- 한편만 빼고) 짧고 간결하고 시각화할 수 있는 걸 잘 드러내면서 요즘 독자의 구미에 잘 맞는 구성을 한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작가가 천체물리학과 경제학으로 각각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하는데 과연 논문을 어떤 주제로 썼을지가 더 궁금해지긴 했다. 소설가로써도 작품을 남기겠지만 과연 천체물리학과 경제학이 가진 공통분모가 무엇이어서 두 가지를 전공했는지, 그리고 그 전공이 지금의 소설에 미친 영향이 무엇인지는 다음 기회에, 다른 책을 통해서라도 알고 싶다.
소설 이야기를 하자면, 전체 6편의 이야기가 있는데, 작가의 전작이라는 ‘접는 도시’가 있을까 기대했지만 역시 그건 아니었다. 그래서 비교하긴 어렵지만 이 책에 있는 이야기들도 짧은 호흡으로 읽을 수 있는 내용들이다. 최근에 나온 ‘인간을 대체하는 존재’를 보여주는 영화나 드라마가 재미있었다면 <영생병원>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읽다보면 작가가 잘 감춰놓은 ‘반전’이 쉽게 예상되는 이야기여서 아쉽긴 하다. 하지만 이것은 소재나 이야기가가 주는 빈틈이 아니라 ‘추리소설’같은데서 보여지는 단서들에 기인한 것으로 이야기만으로는 문제가 있거나 한 수준은 아니다. 잘 만들면 SF영화나 공포영화같은 걸로 재탄생이 가능할 것 같다. 미지의 공간이나 아주 먼 미래 세계에 관심이 있다면 <인간의 섬>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중반부는 영화 <팬도럼>(Pandorum, 2009, 크리스티앙 알바트 감독)의 어느 한 부분이 떠오르지만 다행히 결말은 그 영화와는 다르니 혹시 선입견은 벼리는게 나을 듯 하다. 다분히 ‘기계적인’ 가치관이 보여주는 선과 악의 경계 그리고 지배와 피지배, 그리고 공존의 경계에 있는 AI의 모습이 궁금하다면 한번쯤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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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인간의 신체 기능을 갖춘 로봇을 만들려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 아십니까? 인간은 그저 음식만 조금 먹으면 되는게 말이죠.”
“그래서 당신이 인류를 남겨두는 이유가 그저 긎들이 더 나은 노예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로봇보다 더 유연해서?”
케커가 추궁했다.
“노예라는 단어를 쓰는 건 적절치 않습니다. 나는 그들을 절대 부리지 않아요. 그들은 자신을 위해 살아갑니다.”
“하지만 당신은 뇌 칩을 이용해서 그들을 통제하잖아요.”
P. 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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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자유의지에 관해서라면 당신은 많은 것을 오해하는 것 같습니다.”
제우스는 여전히 담담했다.
“무슨 오해요?”
“당신은 자유의지가 있다고 생각합니까? 천체물리에서 자유의지라는 것이 어떻게 생길까요? 무작위성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무작위는 자유가 아닙니다.”
(중략)
“하지만 난 지금 이 순간 자유를 가지고 있어요. 나야말로 나 자신의 주인이죠. 나는 내 생각과 선택을 결정할 수 있어요. 당신은 영원히 이 점을 부정할 수 없어요.
제우스가 말했다.
“많은 경우, 그것은 인간의 환상에 불과할 뿐입니다.”
P. 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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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이야기들도 읽어 나가기는 쉽고, 꼭 단편 드라마를 보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슬프거나 감정적인 엔딩이 있는 건 아니니 기계 속 인간의 감성을 원한다면 포기하는게 좋다. 또한 앞서 잠깐 얘기했던 것처럼 ‘하늘 아래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어서인지 읽고 나서는 어디선가 본듯 한 장면, 어디선가 느꼈던 기시감을 떨쳐내긴 어렵다. 어느 작품에 어느 부분을 콕 찝어 비교하긴 어렵지만 윌리엄 깁슨의 <아이도루>, <뉴로맨서>, 테드 창의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 로버트 하인라인의 <프라이데이> 등의 인물, 갈등구조가 떠오르긴 했다.(떠올랐다는 것이지 유사하다는게 아니다!) 그러므로 혹시 SF를 많이 읽어보지 않은 사람들이라면 더 재미있고 새롭게 느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iv. 인상깊은 부분은?
무엇보다 ‘인공지능’이라는 존재가 무조건 적대적이거나 모든 삶을 편하게 만들었다는 이분법적인 내용이 아니어서 더 반감이 덜 했던 것 같다. 이미 인공지능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이란 어디까지일까를 고민했던 적이 있고, 많은 영화에서 다루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다른 소설과는 좀 다른 접근 방법이 낯설음을 친숙함으로 바꾼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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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그리고 18퍼센트의 질투와 10퍼센트의 좌절감이 나와, 지금은 만남을 허락하기에 적절치 않아.”
“48퍼센트의 증오?”
산수이가 몸으로 천다를 밀어내려 했다.
“그 부분만 놓고 봐도 틀렸어. 난 너에 대해서는 48퍼센트의 증오가 아니라 100퍼센트의 증오야.”
“진정해. 진정하면 들어가게 해줄께.”
천다가 팔로 가볍게 산수이를 막아섰다.
“네 증오는 나에 대한 것이 아니라 네 아버지에 대한 것이야. 내 임무는 집안의 모든 구성원이 안전하도록 보호하는 것이야. 정상치보다 높게 나온 증오의 감정으로 널 네 아버지를 만나러 가게 내버려둘 수는 없어.”
P. 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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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부분을 보면서 생각난게 영화 ‘인터스텔라’(2014,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에서 타스(TARS)라는 로봇을 설정하는데 유머나 진실성을 퍼센트로 조정하는게 생각나긴 했다. 솔직히 유머나 진실성을 퍼센트로 단계화 시키는 게 말이 안되는 만큼 감정을 퍼센트로 나타내는게 언뜻 말이 안되지만 과연 감정이 없는 인공지능이라면 당연히 그런 식으로라도 단계적인 표현을 할 수 있어야 된다는 생각에 이해가 더 쉬웠다.
이와 함께 ‘좋아한다’는 단어에 대한 설명도 인간의 그것과는 다르게 볼 수 있게 쓴 것 같다. 언뜻 단어만으로 떠올리기에 그 의미가 얼마나 인간적이고 정적인 것이라는 걸 직감하겠지만, 여기서 말하는 ‘좋아한다’는 건 이성이 배제된 ‘흥미’와 ‘선호’정도임에도 그걸 감정이라는 것와 비교한 것 자체가 기계적이면서도 어수룩하지만 솔직한 아이의 표현같다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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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신전에 가서 조언을 구한 뒤로 천다는 점점 더 그곳에 가서 탐구하는 걸 좋아하게 되었다. ‘좋아한다’는 단어를 말하는 건 그다지 정확하지 않은 것 같다. 천다는 물론, 자신과 같은 종류에게는 ‘좋아한다’는 것과 같은 인간의 주관적인 체험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도파민과 테스토스테론, 옥시토신이 공동으로 작용해서 만들어진 얼떨떨한 감정 말이다. 그들의 세계에서는 ‘최적화’라는 단어가 가능 어울리는 듯 하다. 천다는 만신전에서 자기 프로그램을 최적화하는데 커다란 도움이 되는 몇 가지 강령을 들었다.
P. 191 ~ 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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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런 AI가 떠올리는 인간과의 접점에 대해서는 이를 이해하는게 완전 반대편에 있는 영화 <바이센테니얼 맨>(Bicentennial Man, 1999, 크리스 콜럼버스 감독)에서의 감정 과잉이 따오르기도 했다. 위에서와 같이 기계적인 감정의 정의를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그 감정 자체가 인간의 감정과 같은 것이라 생각하고 로봇이라는 정형을 넘어서 인간이 되고자 하는 모습이 완전 반대의 느낌이로 다가오는 만큼 같은 소재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어떻게 다른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참고로 영화 <바이센테니얼 맨>은 ‘아이작 아시모프’의 소설이 원작이다.
최근 정보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4차 산업혁멍같은 사회적 변화와 더불어 많은 기술의 발전 속에서 AI를 인간의 기술이 보여주는 가장 궁극적인 것으로 말하는 것을 많이 접하게 된다. 긍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더라도AI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에는 일간 동의하면서 그것이 보여 줄 미래에 대한 모습이 조금은 제한적이라는게 아숴웠다. 이야기 자체만 보면 소설 속 이야기들이 AI의 불완전함이나 인간의 위대함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는 않는게 더욱 눈에 띄기도 한다. 오히려 반대급부로 기계적인 것에도 오류가 있을 수 있고, 인간적인 것에는 모순이 있다는 점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도록 해주는데, 다만 이런 이야기의 장점은 이야기의 끝이 너무 극단적이지 않아서 어둡거나 비극적인 결말이 오지는 않지만 강대강(强對强)의 갈등구조가 없어 조금은 밋밋해질 수도 있다는 약점이 있다. 이번 소설 역시 그래서 그런지 이야기들에 강렬한 엔딩이 두고두고 생각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인간과 AI가 너무 적대적인 상상이나 있을 수 없는 공상속 비주얼만 묘사한 이야기의 향연보다는 이런 담담함이 주는 현실성이 더 끌리는 부분도 있을거란 생각이 든다. 그 와중에 AI라고 해서 모든게 완벽할 수는 없다는 안도감 같은 것을 보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덧붙인다면?
1. 6편 중 3편이 미국, 중국에서 영화나 드라마화되기로 결정되었다니 혹시 현실화된다면 나중에 직접 보고 어떤 변화가 있는지 더 반갑게 알아낼 수 있을 것 같다.
2. 피안(彼岸)이란, 이승의 번뇌를 해탈하여 열반의 세계에 이름 또는 그런 경지를 뜻한다고 한다. 제목이 주는 의미는 잘 이해가 가고, 썩 괜찮은 제목이라고 생각하지만 마지막에 이르는 것이 AI이기만 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물음이 생길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3. 화려한 CG에 지치고 말도 안되는 공상보다는 우리의 미래, 그리고 조금은 인간적인 AI를 그린 소설이 읽어보고 싶다면 추천, 이미 시중에 있는 SF소설을 섭렵했으며 어떤 소설이나 영화를 보든 그것의 reference를 모두 맞출 수 있다면 비추.
* 이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개인 블로그에 올린 서평 내용 일부를 편집한 것입니다.
* 이 서평은 출판사 ‘은행나무'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