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버트 허시먼 - 반동에 저항하되 혁명을 의심한 경제사상가
제러미 애덜먼 지음, 김승진 옮김 / 부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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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포인트는?

관심있게 읽었던 몇 편의 평전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로라 대소 윌스 著, 2020), <스티브 잡스>(월터 아이작슨 著, 2011),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카이 버드, 마틴 셔윈 著, 2010), <괴벨스, 대중 선동의 심리학>(랄프 게오르크 로이트 著, 2006) 등의 분량도 최소 800page가 넘고 최대 1,100 page가 넘었기 떄문에 이번에 읽은 책 역시 분량만큼 기대가 되고 반갑기까지 했다. 그와 함께 어떤 인물에 대한 평전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정말 이 인물이 이랬을까?’ 또는 ‘이건 좀 과장한거 아닐까?’라는 생각을 더 많이 하게된다. 물론 저자 역시 인물애 대해 객관적이려고 노력은 하겠지만 평전이라는 게 결국은 ‘일생에 대하여 평론을 곁들여 기록한’ 것이므로 읽는 순간까지도 의문과 평가는 독자가 주관적으로 더 해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경제학자의 평론이라 어려울거라는 선입견은 없어야 하겠다.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인생에 대해 쓴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를 읽기 위해 핵물리학을 이해하고 있을 필요는 없는 것과 같은 이유다.


이 책은 연도에 맞춰 순차적인 순서를 충실히 따른다. 다만 ‘앨버트 허시먼’의 삶 속에 큰 부분이 주변에 따른 것이므로 그 부분도 아주 상세하게 다루기 때문에 분량이 많아진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지 어린 시절의 달콤한 가족 이야기보다는 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의 상황, 새로운 국가의 흐름, 사회주의자들의 분위기 반전을 위한 배타적인 분위기가 주를 이룬다. 거기에 ‘1933년 베를린대학 분서사건’이나 파시스트들의 탄압, 결정적인 ‘히틀러’의 등장까지 ‘앨버트 허시먼’의 삶 주변 상황 모두를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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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르슈만의 미랴는 히틀러의 ‘좌파’ 탄압에만 관련된 것이 아니었다. 그전까지 유대교나 그 밖의 유대적 전통과 딱히 관련이 없던 히르슈만은 히틀러의 칙령으로 갑자기 ‘유대인’이 되었고, 그 떄문에 베를린 대학으로는 돌아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었다. 60년 뒤 이른바 ‘경제성 정치identity politics’가 유행했을 때 허시먼은 자비네 오페에게 이렇게 농담했다. “내가 젊었을 때는 정체성 identity[신분]은 문제가 아니었어. 신분증 identity paper이 문제였지.”

P. 172 ~ 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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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인지 독일에서의 행적보다는 다른 유럽의 나라들의 국경을 넘나들며 스페인에서 저항운동을 했다든지,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유대인 구출활동을 해 나간 건 젊었을 적 무용담을 보는 듯 하다. 그 후 미국으로 넘어오기까지와 미국 입국시 이름을 바꾸려고 하면서 철자 두세개를 편의상 변경하면서 ‘알베르트 히르슈만’이 ‘앨버트 O 허시먼’이 된 건 어느 여행자의 수기 같기까지 하다. 

남아메리카의 여러 나라에서 ‘앨버트 허시먼’은 지식보다는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것에 더 삶의 활력을 느끼는 현실가이기도 했다. 이는 학계에 종사하는 사람이 전부 지식인은 아니라는 것에 기인한 건데, 계급화와 계층화가 심한 나라들에서 농민들이 토지를 점거, 슬럼 거주자들이 건물을 점거하거나 반정부 활동들이 끊이지 않는 있는 것을 더욱 가까이서 바꾸고자 관여하는 건 꽤나 적극적인 인물이었던 것 같은데, 앞서 스페인이나 다른 유럽의 나라에서 민족주의 반대파를 돕고 유대인들을 자유롭게 해준 이야기 역시 학자의 이미지와는 좀 다르긴 하다. 무엇보다 유럽의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겪은 경험으로 남아메리카에서도 직접 경험을 통해 연구를 이어나갔다는 건데, 사실 유럽과 남아메리카는 시기적으로나 배경적으로도 매우 다른데 그게 가능한가 싶기는 하다. 거기에 일부러 자원해서 군대를 갔고 보병부터 정보과 업무까지 잘 해낸 이야기는 ‘총을 잡은 행동하는 지식인’이라는 걸 너무 드러내려 한 듯 해서 너무 광범위한 능력자로 그려졌다는 생각도 했지만 군에서 군화끈 매는 법을 계속 잊어버리는 바람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건 약간의 의심속에 웃음을 주는 포인트다.



인상깊은 부분은?

책의 중반부부터 그려진 ‘앨버트 허시먼’의 모습을 정리해보면 ‘행동파’와 ‘비주류’라고 볼 수 있겠다. 물론 변화를 가로막는 긴장감을 제거하는 걸 목표로 하고, 변화를 강제하고 추동해내는 긴장감을 만들어 그걸 동력으로 삼는다는 것에는 일간 공감하지만, 그것으로 주류로 변화하기는 어려웠을 거라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그보다는 프로젝트가 있을 때 이득이 쉽게 수량화되지 않으면 생산적으로 바뀌어도 그 이득이 정확히 파악되지 안되므로 거기서 만들어질 수 있는 변수를 정확히 찾아내는 것이 있었다면 더 주류에 가까워지지 않았을까 한다. 


미국에서 자리를 잡기까지 다양한 선택지가 있었지만 남아메리카의 나라들을 오고가면서 현지에서도 인정받은만큼 충실하게 할 일을 다 한 것 같다. 다만 개인으로써 연구도 연구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그저 나이 많은 타국인이었을 수도 있을텐데 원로의 역할과 제도적인 차이를 인지하게 해주는 역할과 함께 남아메리카에 불었던 마르크스주의와 급진적인 민족주의를 어떻게든 더 확대되지 않도록 하는 걸 목표로 했음에도 열정적이었던만큼 결과가 폭발적이지는 않았던 것 같아 아쉽다. 


책에서 강조하는 ‘앨버트 허시먼’은 예측력 있는 이론가로써가 아니라 경제와 사회를 생각하는 방식을 전하는 지식인으로써의 역할에 대해 많이 할애한다. 그런 면에서 평전이 전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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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은 그 자신의 산물이기도 하지만 그가 속한 세계의 산물이기도 하다. 또한 지식인이 풀어내는 개념들도 마찬가지다. 그것들이 생겨난 맥락에 의해 제약을 받기도 하고 해방이 되기도 한다. 이런 이유에서, 실제 경험, 그리고 역사 속에서 자신이 발 딛고 있는 시간과 장소에 대해 이해는 허시먼에게 너무나 중요한 사고의 원천이었다.

(중략)

그에게 영감을 준 몽테뉴에게도 그랬듯이 말이다. 몽테뉴가 말했듯이, 삶은 “그 자체를 향한 목적”이다. 유럽의 파시즘에 대해 투쟁한 활동가로써, 미국의 군인으로써, 마셜 플랜에 깊이 관여한 인물로써, 콜롬비아에 대한 개발 투자의 자문위원으로서, 세계적인 재단과 개발은행의 컨설턴트로서, 실제 생활에서 허시먼이 했던 경험들은 곁길이 아니었다.

P.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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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반해, 책의 두께만큼 학문적으로도 많은 족적을 남겼지만, 의외로 ‘앨버트 허시먼’은 노밸상을 받지는 못했다. 개인적으로 이해하기엔, 세가지 정도가 그 이유인 듯 한데, 논문이 수학에 기반하지 않아 논쟁 가능성이 있는 이론이라는 점, 세분화하지 않아 경제학에 기여한 바가 불명확하고 학문적인 진전이라고 보기 어려우며, 마지막으로 개발 경제학의 관점으로 보더라도 연구 대상의 국가가 크게 발전하지 못했고 외부 충격없이 돌파구를 팢을 수 없는 현재 상황 등이 그 이유일 듯 해서인지 아쉬움이 남는다. 


​책의 무게감과 평전이라는 특성상 짧은 시간에 읽어나가기는 쉽지 않지만 다른 책 여러권보다 깊이있는 내용을 경험할 수 있으며 그동안 알지 못한 인물에 대해서도 한번 찾아보고 다시 생각해보는 기회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출판사에서 이런 책을 내기까지 번역과 편집, 그리고 제본까지 어려움이 있음에도 큰 결정에 의미를 두고 싶다. 



덧붙인다면?

1. ‘앨버트 허시먼’은 노벨상을 받지 못했지만, 미국 사회과학연구위원회(SOCIAL SCIENCE RESEARCH COUNCIL)에서는 그의 지적 전통을 유지하기 위해 <앨버트 O. 허시먼 상>(THE ALBERT O. HIRSCHMAN PRIZE)을 제정하여 매년 수여하고 있다.


2. ‘앨버트 허시먼’이 쓴 책이 우리나라에도 번역되어 출간되었다. 혹시 사상에 관심있다면 그런 책들과 함께 관점을 확장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3. 진중하게 읽어나갈만한 경영서 또는 한 인물의 평전을 읽어보고 싶다면 추천, 무엇보다 두꺼운 책은 잡기도 싫고 기승전결이 명확한 문학작품에 끌린다면 비추. 


​​

* 이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개인 블로그에 올린 서평 내용 일부를 편집한 것입니다.

* 이 서평은 출판사 ‘부키'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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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비 이블, 사악해진 빅테크 그 이후 - 거대 플랫폼은 어떻게 국가를 넘어섰는가
라나 포루하 지음, 김현정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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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주요 포인트는?

책 제목인 ‘돈 비 이블(Don’t be Evil, 사악해지지 말자)’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구글의 모토였다. 하지만 과연 지금도 그 모토를 지켜가고 있는가? 이것이 이 책의 저자가 가장 먼저 떠올린 생각일 것이다. 물론 구글만의 문제일 수는 없다. 미국의 기술 플랫폼 기업인FAANG(페이스북, 애플, 아마존, 넷플릭스, 구글 등) 5대 기업의 시가 총액이 프랑스의 전체 경제규모를 능가해질만큼 거대해졌다. 그만큼 그들은 거대해지고 강해졌으며, 안타깝게도 사악해졌다. 자본주의 사회는 거대 자본을 따르고 그걸 가진 집단은 어떤 형태로든 그것을 유지하고 더 확장하려 한다. 어쩌면 이런 거대 자본으로 지켜지는 기업은 그 자체로써 이념이고 사상으로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이 저자가 향하는 의지일거라는 생각도 든다. 


이 책은 그런 기술 플랫폼 기업 중에서도 페이스북과 구글, 그리고 아마존을 굉장히 많은 부분에서 다루고 있다. 우선 페이스북과 구글, 아마존은 규제와 관련해 면죄부를 누렸는데, 구글이 공짜로 검색 서비스를 제공하고, 페이스북도 따로 비용없이 공짜로 회원 가입이 가능하며, 아마존은 가격도 깎아주면서까지 공짜로 제품을 나눠주기도 하므로 점점 사용자가 늘어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할 수 있지만, 고객이 무비용 서비스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데이터와 인간 관계라는 비싼 대가를 치룬다는 것을 모른채 그런 데이터를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게되기까지 규제나 법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다는 것이 그것이다. 거기에 이런 온라인 서비스는 사용자의 접속이 필요하고, 한 미디어에서 다른 미디어로 쉽게 연결하고 그런 사용 습관까지 데이터로 수집된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SNS나 여러가지 모바일 서비스를 이용하는 입장에서 이런 경고는 알면서도 당하는 기업의 전략이라는데 공감이 간다. 그리고 이미 이런 보이지 않는 가치 외에 이미 금전적인 부분도 많이 지출되고 있다는 것은 개인에게도 영향이 될 수 밖에 없다. ​


많은 지면을 쓰진 않았지만 저자의 이야기 중 조금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건, 여러가지 형태의 불평등이었다. 우선은 이런 산업 또는 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안에서도 직종에 따라 나뉘는 사람들, 거기에 그 범위에 포함되지 않은 사람들의 불평등을 먼저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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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사실은 빅테크가 만들어낸 세상에서 노동자 계층의 본질이 바뀌고 있음을 알려준다. 시간당 소득만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수많은 화이트칼라 프리랜서들은 노동자 계층에 포함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좌익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점차 확산하는 추세를 따라 고용 안정과 복리 후생까지 고려한다면 화이트칼라 프리랜서들 역시 연금 및 의료보험 부족, 나날이 커지는 취약성, 경제 먹이사슬 상위로 이동하는 일자리 대체 기술의 저가 공세 등 비슷한 문제와 걱정거리를 갖고 있다.

P. 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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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 여러가지 빅테이터를 이용해 범죄를 사전에 예측하고 대중을 감시할 수 있어지지만 그런 모니터링이 속하지 못하는 지역이나 구성원에 대한 정보 부족, 또 본질적인 목적이 변하면서 필요 이상으로 감시받을 수도 있다는 지나친 간섭, 게다가 이런 불평등이 재생산-확대되고 그에 따라 이런 감시기능 자체를 사람들이 멀리하게 되면서 고립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게 미국만의 일이 아니라는 건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저자는 이런 위험성에 대한 경고와 더불어 ‘인터넷은 이 시대의 철도이며 전 세계 상업과 의사소통 중 상장부분이 이뤄지는 공공 인프라의 필수 요소’라는 것을 잊지 않는다. 그래서 ‘찰스 프랜시스 아담스’가 쓴 책을 인용하여 “사건이 변해감에 따라, 공인된 거래법이 통로를 이용하는 독점자를 규제함이 틀림없어도 불완전한 방식의 규제가 이뤄질 뿐이다."라는 철도 문제에 관한 타이틀을 인터넷으로 바꿔도 전혀 이상할게 없다며(P. 214) 문제의 심각성을 강조하는만큼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 기술 플랫폼 기업은 생활 속 깊숙히 들어와 있다는 것에 더 조심스러워질 뿐이다.


인상깊은 부분은?

저자가 기술 플랫폼 기업을 무조건 악(Evil)이라고만 여기는 건 아니다. 정보에 대한 제약에 대해서도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건 누가, 어떻게 데이터를 보관할 것인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은 많은 사람들 역시 구글의 처음 시작이나 페이스북의 첫 서비스를 얼마나 기억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의 규모가 너무 커져버리는 바람에 내부에서 변화하는 것을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한 것도 무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일반인들과는 다른 감시 역할을 할 수 있는 이들은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광고를 노출하거나 협업을 통해 그들과 같이 성장하고자 했던 것이 사실이라고 보면 무관심과 의도적인 외면 속에 상상보다 더 큰 부와 권력, 오만함을 갖기에 충분했던 것 같다.


저자는 이런 변화의 한 이유를 기업 공개(IPO)에서 찾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언급되는 구글, 애플, 페이스북 모두 혁신기업이라 하고 그만큼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를 선보였지만 기업 공개 이후 혁신은 모두 잊어버리는 것 같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조금 더 많은 이윤과 더 높은 주가를 위해 적은 비용으로 지적 재산과 데이터에 접근하려고 하고, 기술보다 경영에 더욱 힘을 쏟게 되면서 변화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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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턴 행정부도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클린턴 행정부는 소득공제 가능한 CEO의 연봉을 100만 달러로 제한했지만 100만 달러가 넘는 성과 기반 급여에 대해서 예외를 인정해 스톡옵션의 형태로 좀 더 많은 보너스를 지급할 수 있도록 했다.

(중략)

기업들은 자사주 매입을 통해 주가를 조작하려는 욕구를 강하게 느낀다. 스티클리츠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스톡옵션 붐은 온갖 종류의 부당한 행위를 저지르도록 갖은 동기를 부여했고, 각 기업을 실제보다 그럴듯하게 포장하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제가 ‘분식회계creative accounting’라고 부르는 관행은 경제에 매우 파괴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런 관행이 생겨나게 된 직접적인 책임이 스톡옵션 붐에 있습니다.”

P. 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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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일반인들은 기술 플랫폼 기업들이 진짜 악한지 판단이 어려울 수도 있다. 비단 그들의 서비스를 악독하다라고 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구글이 옐프(Yelp)의 지역 검색 서비스와 협업하려다 그런 유사한 서비스를 내놨고 이후 옐프를 인수하려다 실패했는데 원래 옐프는 일부 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더 다양한 서비스를 먼저 내놨었다든지, 아마존이 미국 내 물류사업 점유가 높아지면서 UPS같은 유통업체에 큰 폭으로 할인을 요구할 수 있게 되고 이 유통업체는 이익 보전을 위해 다른 작은 고객들의 배송 비용을 인상하게 할 수 있다는 건 저자가 이야기하는 ‘생계와 삶까지 위태롭게 하는’ 일련의 방법일지도 모른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건 앞서 말한 기술 플랫폼 기업들에 대한 감시와 통제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기업에 대해서는 잘 알아야 하지만, 조금은 이런 서비스와 거리를 둘 필요가 있다는 단순함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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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테크의 엄청난 크기와 규모, 속도 때문에 빅테크를 추적하고 통제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우리가 가진 반짝반짝하고 빛이 나는 그 모든 것들을 얻기 위해 정확히 무엇을 포기했는지 이해하기 시작했다. 

(중략)

인간은 새로운 기계를 만들어내는 조물주다 인공지능을 둘러싼 디스토피아적인 불안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인공지능의 주인은 인간이다. 이런 힘이 있는만큼 우리에게는 우리 자신을 위해, 그리고 자녀들을 위해 빅테크의 미래를 직접 설계하고 만들어나갈 능력이 있다. 그래야 할 책임도 있다.

P. 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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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도 그래왔던 것처럼, 당장 그걸 해내기 어렵다면 앞으로는 더욱 더 힘들어질 것이기 떄문이다. 


덧붙인다면?

1. 대부분의 지적과 비평이 구글과 페이스북에 대한 거라서 조금 아쉽다. 아마존과 애플에 대한 내용도 이렇게 비판적인 시각으로 한번 보고 싶다. 


2. 최근 빅데이터나 SNS에 관한 책들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던 당시 상황 또는 기업의 입장을 문제삼는 내용들이 많다. 도대체 무슨 일들을 벌였던건지. 


​3. 미국의 기술 플랫폼 기업 FAANG(페이스북, 애플, 아마존, 넷플릭스, 구글 등)이 어떻게 지금의 권력을 갖고 시장을 장악할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면 추천, 인터넷 비즈니스와 웹 쇼핑, SNS는 그저 이용하는 것일 뿐 그 외의 내용에 관심이 없다면 비추. 


* 이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개인 블로그에 올린 서평 내용 일부를 편집한 것입니다.

* 이 서평은 출판사 ‘세종'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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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D현경 시리즈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검은숲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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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주요 포인트는?

제목인 <64>는 ‘쇼와 64년에 일어난 <아야미야 쇼코 유괴사건>’을 대표적으로 부르는 말로, ‘쇼와’는 일본에서 쓰는 연호의 하나로, 쇼와 천황이 즉위한 해, 즉 1926년~1989년을 말한다. ‘쇼와 64년에 일어난 사건’은 어린 아이의 유괴 사건인데, 이 책을 관통하는 과거부터 지금까지의 주요 사건이다. 하지만 여기서 그보다 더 강조하고 싶은 건, 이 책이 다루고 있는게 그 사건의 해결만을 다루고 있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정확히는 이 소설은 사건의 치밀한 해결보다 그 사건과 관련된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하는게 맞겠다. 돈을 오린 아이의 유괴 사건이었지만 안타깝게도 아이는 살해되고, 그걸 담당했던 형사는 자신의 실수로 아이가 그렇게 되었다는 상심으로 은둔하며 살고 있다. 보통의 범죄소설이라면 이쯤에서 새로운 사건이 생겨나고 그 사건을 쫓으면서 예전 범인을 추척하는 익숙한 이야기를 기대할 수 있지만 작가는 그리 쉽게 이야기를 풀어주지 않는다. 


소설은 조금은 익숙한 사건의 해결을 만들기 전 그 사건을 추적하는 ‘경찰’에 대해 깊이, 너무 깊이 묘사한다. 어쩌면 그런 묘사가 ‘사사키 조’의 <경관의 피>(2015)에서 주는 각박함과 유사한 결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조금은 인간적이고 정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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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의고, 확고한 신념도 없이 그저 경찰의 권위를 떨어뜨리기 위해 실챗을 떠들어대는 요즈음 언론의 형태를 묵과할 수는 없습니다. 오야오야해줬더니 기어오르는거죠. 경감님처럼 무뚝뚝하고 기자들이 무서워할 강한 인상의 홍보담당이 필요합니다.”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이야기였다. 원래부터가 경찰은 ‘남성 사회’를 표방하는 가장 용맹스러운 집단이다. 강한 인상이라면 형사부 안팎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형사소송법밖에 모르는 한창 물 오른 경감을 데려다 경찰 본연의 직무와는 차원이 다른 조직 수호의 문지기로 앉혀놓는 것에 어떤 인사상의 이익이 있다는 말인가. 

P.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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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완벽하지도, 잘 다듬어지지도 않은 경찰이라는 조직에 대한 이야기는 어떤 사건을 해결하는데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걸 잘 보여주기 위한 설명이라고 밖에 생각이 들지 않는다. 과연 이 경찰에 관한 이야기는 나중에 어떤 결말과 연결이 될 수 있을까.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인물 중 한명인 ‘미카미’는 이런 경찰을 대표하는 홍보실에 속해 있는데, 사건 해결에 직접 가담하는 건 아니지만 이야기를 연결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사실 ‘미카미’의 딸이 아빠를 닮은 외모에 비관을 하고 가출을 했다는 부분은 웃기기까지 하다. 하지만 딸의 가출이 진짜 가출인가를 생각하는 순간, 그리고 전화를 받으면 좀 있다끊어버리는 의문의 전화가 집으로 걸려오고부터는 단순 가출이 아닌 납치 쪽으로 시선이 모아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 부분부터 과거의 <64>사건과 어떻게 이어질 수 있는지가 큰 궁금증으로 바뀌는 지점이 되는 것이다. 


아마 이런 부분을 염두에 두지 않고 사건 해결 또는 범인 색출에만 신경을 쓴다면 소설이 다소 무겁게 느껴질 수 있다. 분위기가 무겁다기 보다는 배경이 경찰이니만큼 오고가는 소소한 이야기들을 다 신경쓴다면 더 긴 앞 부분이 될 수도 있는데, 거기에 ‘미카미’의 심리, 경찰-기자와의 갈등, 경직된 조직 이야기가 주된 이야기이다. 게다가 소설은 친절하게 시간 순으로 진행되지는 않는다. 마무리를 위한 장치이기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시간순으로 배열되었어도 나쁘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호흡이 빨라지는 중간 부분까지 가려면 시간 순서는 따로 생각하지 않는게 나을 것도 같다. 



인상깊은 부분은?

경찰에 관한 이야기가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고 해서 극적인 범죄나 사건이 넘쳐난다고 생각하면 좀 아쉬울 수도 있다. 소설 속에는 사건 현장을 뛰어다니며 사소한 증거들을 채집하고 그걸 분석해 범인을 특정하는 모습이 아닌, 경찰이라는 한 ‘직업’군에서 다루는 그저 '일'인 듯한 사건을 주로 이야기한다. 어찌보면 범죄소설이라기 보다는 경찰의 조직이 어떻게 구성되고 어떻게 굴러가는지를 보여주는 게 맞겠다.


그런 의미에서 ‘미카미’를 홍보실에 속한 사람으로 만든 건 두 가지 측면으로 생각해볼 수 잇다. 한가지는 우리가 바라보는 경찰을, 타고난 경찰이 아닌 자신의 생업이 ‘경찰’인 사람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을 원했기 때문일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작가 자신의 기자이력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였던 것 같다. 조금은 외부의 시선을 갖고 한 발짝 물러서서 보기를 원한 거겠지만, 반대로 이야기하면 ‘미카미’는 경찰 내부에도 외부에도 속하기가 어려운 사람이라는 건 아이러니이면서, 동시에 가까이 있지만 전체를 다 알지는 못하는 불완전한 존재라는 점이 뒤에 이어지는 사건의 단면을 알려주기도 하는 듯 하다. 


앞서 나왔던 <아야미야 쇼코 유괴사건>에 대해서는 안타깝기도 하고 슬픈 사연, 그리고 반전을 갖고 있다. 다행히 잔인한 장면이 단 한 순간도 나오지 않고, 심지어 피에 관한 이야기도 나오지 않으니 괜히 겁먹을 필요는 없겠다. 하지만 그 시간이 가져온 남은 가족의 이야기. 그리고 아버지의 긴 시간. 그 자체가 주는 울림은 매우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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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우에오카키쿠케코사시스세소타치쓰테토나니누네노하히후헤호마미무메….

어떻게….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을까.

58만 세대, 182만명.

혼자였다. 혼자 힘으로 계속해서 전화를 걸었던 것이다. ‘아’행부터 시작해 최근에야 ‘마’행에 들어섰다.

대체 언제부터? 3년 전? 5년 전? 아니면 그 전부터? 오늘도 내일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 손가락으로 두꺼운 전화번호부를 넘기며 버튼을 눌렀던 것이다. 손톱도 피부도 모두 갈라져 굳은살이 생긴 거무튀튀한 그 손가락으로 계속해서 버튼을 눌렀다.

P. 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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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위 내용을 발견할 때 쯤은 아마 많은 생각이 들게 될 것이다. 범인을 어떻게, 누가 잡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소설이 쓰여진 시점, 그 이후 흐른 시간. 지금에 비추어 본다면 가장 현실적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실제 일어날 수 있는지를 묻는다면 아마 그럴수 없을거라고 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유괴 사건으로 딸을 잃은 아버지라면 혹시 가능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물음은 어쩌면 누군가를 찾아낼 것이라는 기대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두꺼운 책 두께와 더불어 앞 부분의 담담한 이야기가 시간을 끄는 것 같을 수 있지만, 2/3가 지나는 지점부터는 너무나 빠르게 책장이 넘어간다. 범인의 윤곽이 나타나는 시점부터는 실시간으로 방송되는 느낌이 들기까지 한다. 정적인 부분에서 눌러왔던 인물의 감정이 주변과 함께 쏟아내려는 것처럼 대사와 주변 상황으로 잘 보여주는데, 작가가 밝힌 10년이라는 집필 기간이 주는 무게감이자 자신감인 것 같다. 다만 극적인 범죄 추적과정이나 숨겨진 범인을 추리하는 재미를 느끼기 위해서라면 좀 아쉬울 수는 있겠다. 


v. 덧붙인다면?

1. 같은 제목으로 일본에서 2015년에 드라마로 방영된 적이 있다.


2. 오랜만에 다시 읽은 책이라 그런지 역시 등장인물 이름을 잘 외우는게 그 시작이다.


​3. 진중한 범죄소설, 경찰이라는 조직이 어떻게 사건을 풀어내는 과정이 궁금하다면 추전, 잔인하고 피가 낭자한 살인사건을 다뤘거나 추리로 모든 사건을 해결하는 스릴러를 원한다면 비추. 



* 이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개인 블로그에 올린 서평 내용 일부를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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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키지
정해연 지음 / 황금가지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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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포인트는?

스릴러라고 하기에는 벌어진 살인사건과 범인의 정체가 너무 빨리 밝혀진다. 그렇다면 독자는 그 시점부터 무엇을 해야 할까? 하나는 이 범인이 진짜 범인이 맞는가를 의심하기, 다른 하나는 이 사건에 숨겨진 이야기는 무엇일까를 상상하기, 이 둘 중 하나일 것이다. 그 점에 있어서는 이번 소설은 아주 정확하고 군더더기 없이 갈 길을 정확히 잡았다.


패키지 여행을 가는 관광버스 짐칸에서 발견된 아이(‘김도현’이라는 이름을 가졌다)의 토막 시체라니. 생각만 해도 끔찍하기도 하고 도대체 무슨 이유로 이런 사건으로까지 이어진건지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다른 인물이 끼어들 수 없는 정황, 그리고 그 버스를 타고 있는 여러 사람에 의해 강력한 범인으로 몰린 ‘김석일’은 버스에 타기 전까지 눈에 띄지도 세상에 있는지조차도 모를 법한 평범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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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이었습니다.”

무슨 뜻인지 얼른 이해가 가지 않아 박상하는 눈을 크게 껌벅였다.

“김석일, 본명이었습니다.”

이남석의 말대로 가명이었을거라고 생각했던 여행 예약자의 김석일이라는 이름은 본명을 사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혹시 몰라 김석일의 신원을 조사하여 그가 근무했었다는 ‘래인 공업’에서 인사관리 대장을 복사하여 당시 여행객들에게 보인 결과, 인사관리 대장에 붙어 있던 김석일의 사진은 여행 당일, 바람처럼 사라져 버린 김석일과 동일인물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 사람이 멍청한건지, 그냥 저희가 운이 좋은 건지 모르겠습니다.”

P. 57 ~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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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사건을 조사하면서 그는 평범한 사람도 아니고, 아들을 무지막지하게 학대한 사람인데다, 살인 사건으로 추적을 받으면서 또 다른 살인미수 사건을 일으칸 범죄자일 뿐이다. 앞서 얘기한, 독자가 책을 읽으며 찾아내야 하는 ‘사건에 숨겨진 이야기’가 이렇게 풀어내는 것이다. 


솔직히 ‘김석일’이 시체로 발견된 아들을 사랑했는지는 크게 의미가 없다. 그에 대해서는 변명이나 구구절절한 설명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적대감이 더 크기 때문이다. 이것은 ‘김석일’의 또 다른 살인미수 사건과도 연결이 될 수 있을텐데, 이건 이야기 뒷 부분을 예상하게 하므로 생략하겠지만, 이야기가 진행될 수록 ‘아이는 왜 낳은 것인가?’와 ‘이런 가정 속에서 아이는 행복했을까?’라는 생각이 계속 떠오른다. 이런 불안정한 가정과 대비되는 주요 인물도 딱히 이면에 있지는 않다. 난데없다고 받아들일 수도 있겠지만 ‘김석일’을 추적하는 형사 ‘박상하’는 아내가 자신의 부재중에 아내가 폭행으로 정신적 장애를 안고 병원에 입원한 아들(은우)이 있다. 결국 형사 역시 자신의 삶-정확히는 자신의 아들-을 계속 떠올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어쩌면 대척점에 있어야 할 인물이 이런 배경에 있다 보니 형사가 사건을 추적하는데에 계속 감정이 섞여있다고 여겨질 수 밖에 없다.


사연없는 사람이 없다지만 토막 살인 사건을 일으킨 범인을 단서를 찾아가며 추적하는 스릴러이기 보다 왜 그랬는지를 깊이 파고 들어야 하는데도 뒷 부분은 좀 답답하게 느껴진다. 굳이 앞부분으로 되돌아가서 읽지 않아도 될만큼 이야기가 잘 풀려나가기도 하지만, ‘김석일’의 아내 ‘정지원’의 등장부터는 그녀의 이야기를 잘 읽어나가다보면 어느정도 뒷 부분이 예상이 가능할 수도 있다. 경찰인데 저걸 바로 잡아내지 못한다고?라는 궁금증이 들만큼 조금은 둔감하기까지 한 인물들의 대화는 긴박감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인상깊은 부분은?

22개월 아들에게 밥을 주지 않고, 아플 때도 병원을 데려가지 않아 사망에 이르게 한 친모가 있다. 그 친모가 친아들임에도 학대한 것도 모자라 시체까지 유기한 이유는 ‘별거 중인 남편을 닮아간다’는 것이었다. 소설의 이야기냐고? 올해 그러니까 2020년 10월에 벌어진 일이다. 이 소설을 읽은 직후 접한 이 기사는 다른 이야기임에도 너무나 겹쳐질 수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이 소설에서 볼 수 있는 건 이런 기사를 무심히 읽고 페이지를 넘기는 일반인들에 대한 작가의 냉소적인 시선이다. 사건의 시작은 아니어도 벌어진 사건까지 이르는 지점까지는 ‘아버지와 아들에 대한 무관심’이 한 몫 한다.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의 앞 부분을 차지하는 다양한 인물들, 여자친구에게 자신없는 초보 여행사 직원, 철이 없는 젊은 부부, 시한부 삶을 선고받고 홀로 여행 온 여성 등 패키지 여행을 가는 버스를 가득 채운 사람들은 서로에게 관심이 없다. 타인에 대한 관심을 ‘오지랖’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들 자신이 ‘이런 싸구려 여행을 온 뻔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서 일 것이다. 그래서 자신들의 버스 짐칸에 토막 시체가 있었고, 그 이전에 같은 버스에 타고 있었음에도 무관심으로 대한 건 아이가 죽음을 맞이하기 이전에도 ‘김석일’의 어머니, ‘김도현’의 담임선생, 김석일의 아내 ‘정지원’까지 실생활에서까지 ‘아버지와 아들에 대한 무관심’이 이어져 왔음을 간접적으로 표현하지 않는 것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게다가 ‘이런 싸구려 여행’이라고 폄하하면서도 사건이 벌어지고 난 후에는 어떻게 해서라ㄷ든 8만원이라는 여행비를 보상받으려 하는 모습들은 이중적이라기 보다는 안타깝다는 생각까지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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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매일 똑같은 것을 묻고, 정적을 조금 견뎌내다가 도저히 견딜 수 없을 때에는 황급히 이런 말을 뱉어내곤 했다.

“다음에 갈 때는 은우 좋아하는 야구공 사 가지고 갈게요. 혹시 못 가게 되면 택배로라도 보낼게요.”

  - 형사님.

박상하의 야구공이 언제나 화제로 오를 떄마다, 늘 “네.”하고 대답하던 요양사가 오늘은 조심스럽게 그를 불렀다.

“네”

  - 지금 은우 야구공만 한 30개는 되는 것 같아요.

“…..아.”

(중략)

지난번에 사서 보낸 것을 잊어버린게 아니고, 그것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면 뭔가를 해 주고 싶을 떄마다 좋아한다고 했던 것을 매번 사고야 마는 것이다.

  - 은우도 좋아하는게 자꾸 바뀌어요. 다른 애들처럼

P. 263 ~ 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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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의 스릴러 분위기와 찝찝한 마무리를 지나 갑작스럽게 현실적으로 변하는 형사의 모습과 그런 형사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낯설기는 하지만, 사건의 끝에 도달한다면 아마 누구나 자신을 돌아볼거라는 생각이 들어 그런 끝맺음도 괜찮아지긴 했다. 스릴러 치고는 분량이 많지 않고, 문장이 길지 않아 읽어나가는데 어렵지 않다. 정교하진 않지만 묘사하는데 있어서 보여줄 수 있는 건 간단명료하다. 이미 앞서 여러차례 스릴러 소설을 발표한 작가로써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온만큼 기회가 된다면 다음 작품도 꼭 읽어보고 싶다.


덧붙인다면?

1. 올해 읽은 <어위크>(전건우 외, 2019)에도 정해연 작가 단편이 실려있다.


2. 표지 디자인이 스릴러라는게 무색할만큼 너무 깔끔하게 만들어진 것 같다.


3. 범인의 이유보다 살인이 일어나기까지의 과정 속에 부딪히는 인물들의 충돌이 궁금하다면 추천, 이중삼중으로 만들어진 트릭을 풀며 범인을 찾아가는 추리물을 원한다면 비추.



* 이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개인 블로그에 올린 서평 내용 일부를 편집한 것입니다.

* 이 서평은 출판사 ‘황금가지'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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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소리는 어떻게 세상을 정복했는가 - 진실보다 강한 탈진실의 힘
제임스 볼 지음, 김선영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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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포인트는?

저자가 수많은 지면을 들여 이야기하는 것은 요즘 화두가 되는 ‘가짜뉴스’에 관한 것이다. 요컨데 가짜뉴스는 사기꾼들이 장난처럼 쾌감이나 관심 혹은 자신이 싫어하는 집단의 어리석은 모습을 구경하거나 당파적 세력으로 자신이 만든 뉴스가 대의명분에 도움이 되거나 지지후보에 유익하다고 생각해 발생한다는 것인데, 요즘처럼 미디어도 많아지고 다양한 정치색이 다면화되면서 더 많아질거라는 게 저자와 많은 사람들의 생각일 텐데 그런면으로 이야기를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어 좋다. 


저자는 여러가지 매채에 대해 객관적인 시점으로 바라보는데, 의외로 페이스북에 대해서는는 더 날카롭게 바라보는 듯 하다. 특히 가짜뉴스 사이트와 정치색이 뚜렷한 사이트에 유입된 트래픽이 페이스북을 통해 유입된 트래픽보다 3배 많다는 거라든지, 알고리즘이 유행하는 트렌드를 많지 잡아내면서도 그 방법은 베일에 쌓여 있다는 것에 주목하기도 한다. 그 예로, 페이스북의 토픽 선별작업은 계약직으로 고용한 언론 전공자들이 진행했고, 그 와중에 보수 성향인 전직 뉴스 큐레이터가 ’우파 토픽을 고의든 실수든 블랙리스트 처리했다고 폭로’ 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개인적으로는 페이스북을 하지 않지만 검색엔진과는 또 다른 다양한 정보들이 넘쳐난다는 것은 알고 있기 때문에 이런 어떤 서비스 기업의 비밀스러운 면은 어떤 형태로든 사람들에게 편향된 모습이 될 수 있을거라는 염려가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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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의 생태계는 진실한 문화를 일구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페이스북 페이지는 회원이 많은 거대한 커뮤니티를 만들어야 이익이다. 그러다 보니 많은 페이지에서 무단 도용한 콘텐츠를 감성을 자극하거나 웃음을 유발하게끔 재가공해 올리다. 팔로어와 공a유 수를 늘리려고 장애아의 사진을 훔쳐다 올리는 경우도 있다. 훔친 콘텐츠로 감성을 자극하는 극소수의 악의적 이용자가 판치는 플랫폼에서 퍼블리셔는 좋은 싫든 사람들의 이목을 끌려고 늘 경쟁한다. 

P. 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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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페이스북 같은 콘텐츠 결정권을 가진 소셜 플랫폼이 가능한 사용자를 잡아두기 위한 뉴스의 재생산하고, 컨텐츠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에게 폐쇄형 구조라고 해도 링크를 타고 다른 사이트의 경유없이 다른 이의 페이스북에서 바로 읽을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물론 페이스북만 그렇다고 할 수는 없지만 아무래도 많은 사용자가 있는만큼 위험성도 높다는 걸 강조함이 아닐까 한다. 


저자가 기꺼이 ‘개소리’라고 하는 가짜뉴스에 대해서는 국내나 해외 가릴 것 없이더욱 경각심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 이런 가짜뉴스는 전부 거짓은 아니어서 더 나쁜 뉴스이기도 하다. 즉, 사실에는 가깝지만 어느 정도 과장되고, 거짓에 가깝지만 진실이 조금 섞인 이야기들이어서 더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도 하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경각심에 대해서 ‘노골적인 개소리에만 신경쓸 것이 아니라 어느 것이 허위인지를 가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요즘 미디어에서 볼 수 있는 기사에 신뢰가 많이 떨어지게 된 것은 싼 값에 질이 떨어지는 기사를 생산해내는 것에 문제가 있기도 하다. 저자는 이 부분에 대해 뉴미디어(기존 미디어와 다른 의미로)가 간접비가 아주 낮게 드는만큼 적당한 클릭과 관심도에도 이익을 많이 남길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즉, 단순하게 배너광고에 의지하는 단순한 방법으로 돈을 벌면 되는건데, 웹콘텐츠, 채팅 자료, 소셜 플랫폼에 쓸 자료 등을 모두 만들고 그걸 편집하는 것만으로 기사를 다양하게 찍어낸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미숙한 기자가 정치 논쟁 기사를 쓴다면, ‘취재’라는 과정을 거키는게 아니라 한 후보가 예기한 것을 그대로 기사로 낸 후 상대 후보의 반박을 보고 다음 기사를 써내려가는 식을 말한다. 이는 기자가 고민을 통해 얻어낸 것이 아닌 그냥 시간차 공격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인상깊은 부분은?

서문에도 나오지만 이 책에는 한국사례가 나오지 않는다. 사실 저자도 학자가 아닌 언론인인만큼 범세계적인 사례를 다 다루는 걸 바라는 건 욕심이다. 정확히는 미국과 유럽(그 중 영국)에 대한 것이 사례의 전부라고 보면 되는데, 그래서 그런지 다양함보다는 저자의 지적이 어디를 향하는가 확실하게 알게 된다. 그 중에서도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에 대해서는 너무 많이 다루면서, 911테러 때 무슬림들이 그걸 보며 환호했다는 모습을 목격했다는 가짜뉴스를 유세 떄 활용해 무슬림에 대한 악감정에 불을 붙이고, <워싱턴 포스트> 기자가 그에 대한 반박 기사를 쓰자 그걸 받아들이기보다 해당 기자를 공격하는 것을 선택했다는 부분은 트럼프의 억지스러움에 대해 아주 상세하게 설명해주는만큼 트럼프에 대한 시선이 명확하다. 


특히 트럼프의 미디어 전략은 정치적 간극을 좁히는 것이 아니라 핵심 지지층을 자극하고 정치를 양극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는 주장이나, 예전 미국 대선에 대해서 진짜 기사 20개는 총 730만번 공유한 반면, 가짜 기사는 870만번 공유했다든지, 20개의 가짜 기사 중 17개가 명백한 친트럼프 기사거나 명백한 반힐러리 기사였으며 이것이 대선에 영향을 줬을 수도 있다는 건 편향적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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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는 풍자 뉴스 프로그램 <데일리쇼>에 출연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솔직히 선거를 앞두고 우려가 지나친 나머지 투표 조작 가능성까지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근거는 보지 못했고, 우리에게 그런 일을 막을 능력이 있다고 자신한다.”

여론조사가 현실을 조금이라도 반영한다고 본다면 좌파든 우파든 이제 음모론이 미국의 정치 견해에서 주류로 자리 잡았음을 알 수 있다. 이제 수백만 명의 유권자들은 모든 사안에서 상대 세력이 선거에서 이겨려고 불법행위를 저지른다고 믿는다. 이런 현실이 미국 정치제도에 유익할 리 없다.

P. 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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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 ‘트럼프 = 우파’라는 관점을 가진만큼 음모론, 가짜뉴스, 편향된 뉴스 증가는 우파에서 흔히 발견된다든가, 기존의 우파와는 다른 ‘대안우파’가 더 열성적이라는 부분은 공감이 가지만 자칫 진영이 다른 사람에게는 불편할 수도 있겠다.


영국의 존슨 총리는 외무장관일 때 유럽 여러 나라들의 인사들과 적대적으로까지 보일만큼 의견 대립이 있었지만 한 나라의 ‘총리’로써 불편하게 대면하게 되었는데, 존슨 총리 역시 ‘뉴스의 헤드라인에만 집중하고, 너무 강경한 이야기로 대치하다 논란이 되면 ‘웃자고 한 얘기’라는 가벼운 방식으로 대처했다는 게 그것이다. 자세히 얘기하긴 어렵지만 이런 부분도 꽤 비꼬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영국 얘기를 하며 하나 더 이야기 하자면, 영국인들은 이주자들이 많아 공공서비스가 질이 떨어지거나 범죄가 늘어나는 등 사회문제가 발생했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민감함이 여러 미디어의 기사 떄문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주자들의 규모를 2배 이상 크게 보고, 이슬람교도가 실제보다 더 많다고 생각들도록 하지만 사람들이 쉽게 판단할 수 있는 내용만 전달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영국의 브렉시트에 대해서도, 영국의 EU 탈퇴 이행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 또는 EU에 잔류하는게 더 낫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투표 결과에 불만을 제기한다”며 비난을 받는다는 건 가짜 뉴스의 유혹 또는 진짜 뉴스에 대한 정확한 정보 전달의 미흡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어떤 정보가 자신의 세계관과 일치하면 더 믿으려 하고 통계보다 일화에 더 설득된다’고 한다. 자신과 생각을 함꼐 하는 몇몇이 같이 있다면 이는 더 활발해지고 어느 집단에 포함되어 있다는 걸 드러내는데 적극적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그 집단에 속하지 않는 다른 사람들을 공격하는데 그것이 쓰이는 건 매우 위험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아무리 좋은 기사나 정보가 전해지더라도 개인적인 경험과 일치하지 않으면 안믿는 것이 사실인 것 같다. 어쩌면 저자가 말한 것처럼 그런 기사나 정보를 만들고 전달한 주체가 통계를 잘 이해 못하거나 상대방을 공격하기 위해 악의적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느낀 건 잘못된 정보의 문제보다 잘못된 믿음이 더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야기들이 어떤 상관관계를 가졌는지보다 어떤 인과관계를 갖고 있는지를 생각해본다면 조금은 편향적인 것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덧붙인다면?

1. 앞서 얘기했지만 우리나라에 대한 사례는 없고 심지어 다른 아시아 국가에 대한 이야기도 없다. 언어적 문제일까 싶기도 한다, 저자가 접한 사례가 좀 다양하지 못해 아쉽다.


2. 신문기사를 읽으면서 얼마나 객관적으로 기사를 접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는데, 그보다는 제목에 ‘개소리’라는 단어를 써도 되는지 이번에 알았다.


3. 가짜뉴스나 언론, SNS에서 쏟아내는 정보들에 관한 문제점이 무엇인지 관심이 있다면 추천, 오로지 유튜브에서 보는 정보만 전부 다 진실같고 다른 미디어에서 하는 얘기가 관심없다면 비추.



* 이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개인 블로그에 올린 서평 내용 일부를 편집한 것입니다.

* 이 서평은 출판사 ‘도도'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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