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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키지
정해연 지음 / 황금가지 / 2020년 11월
평점 :
주요 포인트는?
스릴러라고 하기에는 벌어진 살인사건과 범인의 정체가 너무 빨리 밝혀진다. 그렇다면 독자는 그 시점부터 무엇을 해야 할까? 하나는 이 범인이 진짜 범인이 맞는가를 의심하기, 다른 하나는 이 사건에 숨겨진 이야기는 무엇일까를 상상하기, 이 둘 중 하나일 것이다. 그 점에 있어서는 이번 소설은 아주 정확하고 군더더기 없이 갈 길을 정확히 잡았다.
패키지 여행을 가는 관광버스 짐칸에서 발견된 아이(‘김도현’이라는 이름을 가졌다)의 토막 시체라니. 생각만 해도 끔찍하기도 하고 도대체 무슨 이유로 이런 사건으로까지 이어진건지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다른 인물이 끼어들 수 없는 정황, 그리고 그 버스를 타고 있는 여러 사람에 의해 강력한 범인으로 몰린 ‘김석일’은 버스에 타기 전까지 눈에 띄지도 세상에 있는지조차도 모를 법한 평범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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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이었습니다.”
무슨 뜻인지 얼른 이해가 가지 않아 박상하는 눈을 크게 껌벅였다.
“김석일, 본명이었습니다.”
이남석의 말대로 가명이었을거라고 생각했던 여행 예약자의 김석일이라는 이름은 본명을 사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혹시 몰라 김석일의 신원을 조사하여 그가 근무했었다는 ‘래인 공업’에서 인사관리 대장을 복사하여 당시 여행객들에게 보인 결과, 인사관리 대장에 붙어 있던 김석일의 사진은 여행 당일, 바람처럼 사라져 버린 김석일과 동일인물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 사람이 멍청한건지, 그냥 저희가 운이 좋은 건지 모르겠습니다.”
P. 57 ~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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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사건을 조사하면서 그는 평범한 사람도 아니고, 아들을 무지막지하게 학대한 사람인데다, 살인 사건으로 추적을 받으면서 또 다른 살인미수 사건을 일으칸 범죄자일 뿐이다. 앞서 얘기한, 독자가 책을 읽으며 찾아내야 하는 ‘사건에 숨겨진 이야기’가 이렇게 풀어내는 것이다.
솔직히 ‘김석일’이 시체로 발견된 아들을 사랑했는지는 크게 의미가 없다. 그에 대해서는 변명이나 구구절절한 설명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적대감이 더 크기 때문이다. 이것은 ‘김석일’의 또 다른 살인미수 사건과도 연결이 될 수 있을텐데, 이건 이야기 뒷 부분을 예상하게 하므로 생략하겠지만, 이야기가 진행될 수록 ‘아이는 왜 낳은 것인가?’와 ‘이런 가정 속에서 아이는 행복했을까?’라는 생각이 계속 떠오른다. 이런 불안정한 가정과 대비되는 주요 인물도 딱히 이면에 있지는 않다. 난데없다고 받아들일 수도 있겠지만 ‘김석일’을 추적하는 형사 ‘박상하’는 아내가 자신의 부재중에 아내가 폭행으로 정신적 장애를 안고 병원에 입원한 아들(은우)이 있다. 결국 형사 역시 자신의 삶-정확히는 자신의 아들-을 계속 떠올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어쩌면 대척점에 있어야 할 인물이 이런 배경에 있다 보니 형사가 사건을 추적하는데에 계속 감정이 섞여있다고 여겨질 수 밖에 없다.
사연없는 사람이 없다지만 토막 살인 사건을 일으킨 범인을 단서를 찾아가며 추적하는 스릴러이기 보다 왜 그랬는지를 깊이 파고 들어야 하는데도 뒷 부분은 좀 답답하게 느껴진다. 굳이 앞부분으로 되돌아가서 읽지 않아도 될만큼 이야기가 잘 풀려나가기도 하지만, ‘김석일’의 아내 ‘정지원’의 등장부터는 그녀의 이야기를 잘 읽어나가다보면 어느정도 뒷 부분이 예상이 가능할 수도 있다. 경찰인데 저걸 바로 잡아내지 못한다고?라는 궁금증이 들만큼 조금은 둔감하기까지 한 인물들의 대화는 긴박감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인상깊은 부분은?
22개월 아들에게 밥을 주지 않고, 아플 때도 병원을 데려가지 않아 사망에 이르게 한 친모가 있다. 그 친모가 친아들임에도 학대한 것도 모자라 시체까지 유기한 이유는 ‘별거 중인 남편을 닮아간다’는 것이었다. 소설의 이야기냐고? 올해 그러니까 2020년 10월에 벌어진 일이다. 이 소설을 읽은 직후 접한 이 기사는 다른 이야기임에도 너무나 겹쳐질 수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이 소설에서 볼 수 있는 건 이런 기사를 무심히 읽고 페이지를 넘기는 일반인들에 대한 작가의 냉소적인 시선이다. 사건의 시작은 아니어도 벌어진 사건까지 이르는 지점까지는 ‘아버지와 아들에 대한 무관심’이 한 몫 한다.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의 앞 부분을 차지하는 다양한 인물들, 여자친구에게 자신없는 초보 여행사 직원, 철이 없는 젊은 부부, 시한부 삶을 선고받고 홀로 여행 온 여성 등 패키지 여행을 가는 버스를 가득 채운 사람들은 서로에게 관심이 없다. 타인에 대한 관심을 ‘오지랖’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들 자신이 ‘이런 싸구려 여행을 온 뻔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서 일 것이다. 그래서 자신들의 버스 짐칸에 토막 시체가 있었고, 그 이전에 같은 버스에 타고 있었음에도 무관심으로 대한 건 아이가 죽음을 맞이하기 이전에도 ‘김석일’의 어머니, ‘김도현’의 담임선생, 김석일의 아내 ‘정지원’까지 실생활에서까지 ‘아버지와 아들에 대한 무관심’이 이어져 왔음을 간접적으로 표현하지 않는 것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게다가 ‘이런 싸구려 여행’이라고 폄하하면서도 사건이 벌어지고 난 후에는 어떻게 해서라ㄷ든 8만원이라는 여행비를 보상받으려 하는 모습들은 이중적이라기 보다는 안타깝다는 생각까지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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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매일 똑같은 것을 묻고, 정적을 조금 견뎌내다가 도저히 견딜 수 없을 때에는 황급히 이런 말을 뱉어내곤 했다.
“다음에 갈 때는 은우 좋아하는 야구공 사 가지고 갈게요. 혹시 못 가게 되면 택배로라도 보낼게요.”
- 형사님.
박상하의 야구공이 언제나 화제로 오를 떄마다, 늘 “네.”하고 대답하던 요양사가 오늘은 조심스럽게 그를 불렀다.
“네”
- 지금 은우 야구공만 한 30개는 되는 것 같아요.
“…..아.”
(중략)
지난번에 사서 보낸 것을 잊어버린게 아니고, 그것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면 뭔가를 해 주고 싶을 떄마다 좋아한다고 했던 것을 매번 사고야 마는 것이다.
- 은우도 좋아하는게 자꾸 바뀌어요. 다른 애들처럼
P. 263 ~ 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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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의 스릴러 분위기와 찝찝한 마무리를 지나 갑작스럽게 현실적으로 변하는 형사의 모습과 그런 형사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낯설기는 하지만, 사건의 끝에 도달한다면 아마 누구나 자신을 돌아볼거라는 생각이 들어 그런 끝맺음도 괜찮아지긴 했다. 스릴러 치고는 분량이 많지 않고, 문장이 길지 않아 읽어나가는데 어렵지 않다. 정교하진 않지만 묘사하는데 있어서 보여줄 수 있는 건 간단명료하다. 이미 앞서 여러차례 스릴러 소설을 발표한 작가로써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온만큼 기회가 된다면 다음 작품도 꼭 읽어보고 싶다.
덧붙인다면?
1. 올해 읽은 <어위크>(전건우 외, 2019)에도 정해연 작가 단편이 실려있다.
2. 표지 디자인이 스릴러라는게 무색할만큼 너무 깔끔하게 만들어진 것 같다.
3. 범인의 이유보다 살인이 일어나기까지의 과정 속에 부딪히는 인물들의 충돌이 궁금하다면 추천, 이중삼중으로 만들어진 트릭을 풀며 범인을 찾아가는 추리물을 원한다면 비추.
* 이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개인 블로그에 올린 서평 내용 일부를 편집한 것입니다.
* 이 서평은 출판사 ‘황금가지'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