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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ㅣ D현경 시리즈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검은숲 / 2013년 5월
평점 :
품절
주요 포인트는?
제목인 <64>는 ‘쇼와 64년에 일어난 <아야미야 쇼코 유괴사건>’을 대표적으로 부르는 말로, ‘쇼와’는 일본에서 쓰는 연호의 하나로, 쇼와 천황이 즉위한 해, 즉 1926년~1989년을 말한다. ‘쇼와 64년에 일어난 사건’은 어린 아이의 유괴 사건인데, 이 책을 관통하는 과거부터 지금까지의 주요 사건이다. 하지만 여기서 그보다 더 강조하고 싶은 건, 이 책이 다루고 있는게 그 사건의 해결만을 다루고 있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정확히는 이 소설은 사건의 치밀한 해결보다 그 사건과 관련된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하는게 맞겠다. 돈을 오린 아이의 유괴 사건이었지만 안타깝게도 아이는 살해되고, 그걸 담당했던 형사는 자신의 실수로 아이가 그렇게 되었다는 상심으로 은둔하며 살고 있다. 보통의 범죄소설이라면 이쯤에서 새로운 사건이 생겨나고 그 사건을 쫓으면서 예전 범인을 추척하는 익숙한 이야기를 기대할 수 있지만 작가는 그리 쉽게 이야기를 풀어주지 않는다.
소설은 조금은 익숙한 사건의 해결을 만들기 전 그 사건을 추적하는 ‘경찰’에 대해 깊이, 너무 깊이 묘사한다. 어쩌면 그런 묘사가 ‘사사키 조’의 <경관의 피>(2015)에서 주는 각박함과 유사한 결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조금은 인간적이고 정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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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의고, 확고한 신념도 없이 그저 경찰의 권위를 떨어뜨리기 위해 실챗을 떠들어대는 요즈음 언론의 형태를 묵과할 수는 없습니다. 오야오야해줬더니 기어오르는거죠. 경감님처럼 무뚝뚝하고 기자들이 무서워할 강한 인상의 홍보담당이 필요합니다.”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이야기였다. 원래부터가 경찰은 ‘남성 사회’를 표방하는 가장 용맹스러운 집단이다. 강한 인상이라면 형사부 안팎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형사소송법밖에 모르는 한창 물 오른 경감을 데려다 경찰 본연의 직무와는 차원이 다른 조직 수호의 문지기로 앉혀놓는 것에 어떤 인사상의 이익이 있다는 말인가.
P.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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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완벽하지도, 잘 다듬어지지도 않은 경찰이라는 조직에 대한 이야기는 어떤 사건을 해결하는데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걸 잘 보여주기 위한 설명이라고 밖에 생각이 들지 않는다. 과연 이 경찰에 관한 이야기는 나중에 어떤 결말과 연결이 될 수 있을까.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인물 중 한명인 ‘미카미’는 이런 경찰을 대표하는 홍보실에 속해 있는데, 사건 해결에 직접 가담하는 건 아니지만 이야기를 연결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사실 ‘미카미’의 딸이 아빠를 닮은 외모에 비관을 하고 가출을 했다는 부분은 웃기기까지 하다. 하지만 딸의 가출이 진짜 가출인가를 생각하는 순간, 그리고 전화를 받으면 좀 있다끊어버리는 의문의 전화가 집으로 걸려오고부터는 단순 가출이 아닌 납치 쪽으로 시선이 모아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 부분부터 과거의 <64>사건과 어떻게 이어질 수 있는지가 큰 궁금증으로 바뀌는 지점이 되는 것이다.
아마 이런 부분을 염두에 두지 않고 사건 해결 또는 범인 색출에만 신경을 쓴다면 소설이 다소 무겁게 느껴질 수 있다. 분위기가 무겁다기 보다는 배경이 경찰이니만큼 오고가는 소소한 이야기들을 다 신경쓴다면 더 긴 앞 부분이 될 수도 있는데, 거기에 ‘미카미’의 심리, 경찰-기자와의 갈등, 경직된 조직 이야기가 주된 이야기이다. 게다가 소설은 친절하게 시간 순으로 진행되지는 않는다. 마무리를 위한 장치이기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시간순으로 배열되었어도 나쁘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호흡이 빨라지는 중간 부분까지 가려면 시간 순서는 따로 생각하지 않는게 나을 것도 같다.
인상깊은 부분은?
경찰에 관한 이야기가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고 해서 극적인 범죄나 사건이 넘쳐난다고 생각하면 좀 아쉬울 수도 있다. 소설 속에는 사건 현장을 뛰어다니며 사소한 증거들을 채집하고 그걸 분석해 범인을 특정하는 모습이 아닌, 경찰이라는 한 ‘직업’군에서 다루는 그저 '일'인 듯한 사건을 주로 이야기한다. 어찌보면 범죄소설이라기 보다는 경찰의 조직이 어떻게 구성되고 어떻게 굴러가는지를 보여주는 게 맞겠다.
그런 의미에서 ‘미카미’를 홍보실에 속한 사람으로 만든 건 두 가지 측면으로 생각해볼 수 잇다. 한가지는 우리가 바라보는 경찰을, 타고난 경찰이 아닌 자신의 생업이 ‘경찰’인 사람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을 원했기 때문일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작가 자신의 기자이력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였던 것 같다. 조금은 외부의 시선을 갖고 한 발짝 물러서서 보기를 원한 거겠지만, 반대로 이야기하면 ‘미카미’는 경찰 내부에도 외부에도 속하기가 어려운 사람이라는 건 아이러니이면서, 동시에 가까이 있지만 전체를 다 알지는 못하는 불완전한 존재라는 점이 뒤에 이어지는 사건의 단면을 알려주기도 하는 듯 하다.
앞서 나왔던 <아야미야 쇼코 유괴사건>에 대해서는 안타깝기도 하고 슬픈 사연, 그리고 반전을 갖고 있다. 다행히 잔인한 장면이 단 한 순간도 나오지 않고, 심지어 피에 관한 이야기도 나오지 않으니 괜히 겁먹을 필요는 없겠다. 하지만 그 시간이 가져온 남은 가족의 이야기. 그리고 아버지의 긴 시간. 그 자체가 주는 울림은 매우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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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우에오카키쿠케코사시스세소타치쓰테토나니누네노하히후헤호마미무메….
어떻게….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을까.
58만 세대, 182만명.
혼자였다. 혼자 힘으로 계속해서 전화를 걸었던 것이다. ‘아’행부터 시작해 최근에야 ‘마’행에 들어섰다.
대체 언제부터? 3년 전? 5년 전? 아니면 그 전부터? 오늘도 내일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 손가락으로 두꺼운 전화번호부를 넘기며 버튼을 눌렀던 것이다. 손톱도 피부도 모두 갈라져 굳은살이 생긴 거무튀튀한 그 손가락으로 계속해서 버튼을 눌렀다.
P. 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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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위 내용을 발견할 때 쯤은 아마 많은 생각이 들게 될 것이다. 범인을 어떻게, 누가 잡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소설이 쓰여진 시점, 그 이후 흐른 시간. 지금에 비추어 본다면 가장 현실적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실제 일어날 수 있는지를 묻는다면 아마 그럴수 없을거라고 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유괴 사건으로 딸을 잃은 아버지라면 혹시 가능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물음은 어쩌면 누군가를 찾아낼 것이라는 기대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두꺼운 책 두께와 더불어 앞 부분의 담담한 이야기가 시간을 끄는 것 같을 수 있지만, 2/3가 지나는 지점부터는 너무나 빠르게 책장이 넘어간다. 범인의 윤곽이 나타나는 시점부터는 실시간으로 방송되는 느낌이 들기까지 한다. 정적인 부분에서 눌러왔던 인물의 감정이 주변과 함께 쏟아내려는 것처럼 대사와 주변 상황으로 잘 보여주는데, 작가가 밝힌 10년이라는 집필 기간이 주는 무게감이자 자신감인 것 같다. 다만 극적인 범죄 추적과정이나 숨겨진 범인을 추리하는 재미를 느끼기 위해서라면 좀 아쉬울 수는 있겠다.
v. 덧붙인다면?
1. 같은 제목으로 일본에서 2015년에 드라마로 방영된 적이 있다.
2. 오랜만에 다시 읽은 책이라 그런지 역시 등장인물 이름을 잘 외우는게 그 시작이다.
3. 진중한 범죄소설, 경찰이라는 조직이 어떻게 사건을 풀어내는 과정이 궁금하다면 추전, 잔인하고 피가 낭자한 살인사건을 다뤘거나 추리로 모든 사건을 해결하는 스릴러를 원한다면 비추.
* 이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개인 블로그에 올린 서평 내용 일부를 편집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