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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미터O
이준영 지음 / 황금가지 / 2020년 12월
평점 :
주요 포인트는?
이 SF는 배경에 대한 것만 ‘전 지구적’일 뿐 이야기는 굉장히 단조롭다. 등장인물에 비해 전반부의 너무 많은 정보가 ‘조슈’를 통해서만 이루어지고 소비된다는 건 극적인 변화가 없어 단조롭게 느껴질 수 있는게 단점일 수도 있고, 전체적인 이야기를 속도감있게 읽어나가는 데는 장점일 수 있다.
우선 엔지니어라는 직업을 고려하더라도 시설 안에서 들리는 안내 목소리가 엄마 목소리라는 것과, 외부에서 일어나는 일 전체가 '조슈'(물론 엘라도 함께 하긴 하지만 그냥 관찰자다)를 통해서만 이루어지기 때문에 다른 상상이 대입되기가 어렵기는 하다. 또 다른 단점의 시각으로 보자면 그리고 갈등관계에 있어서 시설에 문제-특히 외부적인-가 발생하는게 생존의 다툼이고, 원래 그 시설의 존재 목적이 다음 세대를 위한 씨앗 저장소-인간 수정을 포함한다-였다는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봤을 때 현재 거기에서 삶을 유지하는 인간들이 먼저인가, 아니면 다음 생을 위한 씨앗 저장소가 먼저인가 윤리적으로 따져봐야 하는 걸 너무 빨리 지나쳐 버리고 눈 앞의 문제를 해결하는게 '조슈'의 몫이라는 게 단조롭다는 것이다. 다만 장점의 시각으로 보자면, 후반부를 위한 중요한 발견이 있기까지 다른 이야기에 머리를 쓸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줄곧 ‘조슈’의 시선으로 인물들과 배경을 보기 때문에 사건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복잡한 상황을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오로지 초반부의 배경 설명에 집중하고, 이브가 나타나는 순간부터 조금씩 어떤 숨겨진 이야기가 드러날지만 생각하면 되는데, 외부와 단절된 소사회小社會라는 유사 배경임에 비추어 ‘스티븐 킹’의 <언더 더 돔>(Under the dome, 2011)이라는 소설을 읽을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이름을 외우고 관계를 기억하며 읽어야 하는지 처음 읽으며 느낀 피로감을 생각해보면 이 소설의 장점이 쉽게 와닿는다.
‘이브’라는 새로운 기계종이 처음 본 ‘조슈’를 보고 ‘창조주’라고 말하고 따르는 것에서 의아했는데, ‘창조주’라는 개념이 이미 이식되어 있으면서 왜 다른 정보는 제대로 입력되지 않아 사소한 단어의 의미까지 다시 설명해줘야 하는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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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일’이라는 것은 어째서 해야 하는 거죠?”
이브를 돌아보았다. 작은 기계종이 나를 똑바로 올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턱을 괴고 있던 손을 펼쳐 보이며 말했다.
“….우리 인간이 너흴 만든 이유가 그거니까.”
“제가 만들어진 이유사 일을 하기 위해서라구요?”
“그래. 모든 도구는 그 목적이 있어. 나무는 음식과 산소를 만들고, 태양전지는 전기를 생산하지. 네 경우엔, 인간을 위해 일하는 거야. 넌 기계종이니까.”
(중략)
“반대로 만약 ‘목적’이 반드시 달성해야 하는 무언가라면, 우연히 창조주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이룰 방법이 전혀 없었던 행위가 목적의 범주에 포함될 ㅁ수 있을까요?”
“무슨 소리 하는거야? 우리가 널 만들어 줬으니까, 우리 말을 들어야지.”
“그 두 명제는 서로 연결되지 않습니다. 저는 그 논리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P. 107 ~ 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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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는 ‘창조주’라는 개념을 정확히 이해했지만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 전제되었어야 할 몇가지, 즉, 탄생의 목적이나 존재의 이유, 그 존재 이유와 ‘일’이라는 단어의 연관성도 전혀 유추하지 못하는 건 매우 뛰어난 AI와 이진컴퓨터의 사이 어디라서가 아니라, 누군가가 ‘입력장치를 통해 모든 행동에 대한 정의를 글자로 입력시켜야 한다’는 걸 위한 설정에 따른 것이라서 조금 아쉽다.
'이브'는 왜 만들어졌고, 그들은 어디에서 온 건지에 대해서는 후반부에 물 흐르듯이 잘 성명된다. '이브'는 단일종이 아니며, 이것이 후반부의 중요한 스토리가 되기도 한다. 감정이 있는 건 아니지만 경험에 따른 감정과 유사한 반응도 갖고 있고, 노예라는 개념을 이해하는 순간 다른 기계종을 노예처럼 부리기도 하며, 심지어 파라미터에 의미를 이해하고 그걸 사명으로 여긴다든지, 그런 사명을 위한 자의적인 행동까지 하는 걸 보면 이는 단순히 노동력을 대신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인간이 하던 어떤 부분을 대체하기 위한 것인지가 불분명해지면서 꺼름칙해지기도 한다.
인상깊은 부분은?
사실 파라미터(parameter)라는 단어의 뜻을 이해하면 소설의 흐름이 더 쉬울 수도 있다. 파라미터(parameter)의 의미는 “한도를 정하다”라는 뜻도 있지만 프로그래밍 분야에서는 “매개변수로써, 두 변수를 연결해주는 변수. 즉, 둘 사이에서 양편의 관계를 구할 수 있게 해주는 수"이다. 소설에서와 같이 누군가는 입력을 하고, 그래야 어떤 개체는 행동한다. 때로는 변경하기도 하며, 그것이 이전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그 때문에 그것이 시작되는 지점을 소설의 제목으로 한만큼 ‘조슈’가 ‘이브’에게 하는 행동은 중요하다. 그런데 등장인물 이름이 너무나 미국식이다. 인류의 멸망을 앞둔 세상, 인원이 많지는 않아도 아마 다양한 인종, 다양한 직업군들이 몰렸을텐데, '지호'라는 한국식 이름 외에는 전부 미국식 이름이다. 동양, 또는 제 3 세계의 사람들이 있고, 그들 역시 다양한 곳 출신이라면 문화나 음식, 그리고 언어 같은 차이에서 오는 더 많은 상상을 펼쳐낼 수 있었을 것이며, 거기에 인물 개개인의 이야기를 조금 더 교차될 수 있게 했다면 영화<설국열차>(Snowpiercer, 2013, 봉준호 감독)나 <캐리어스>(Carriers, 2009, 알렉스 패스터, 데이빗 패스터 감독)들처럼 좁은 공간에서 펼쳐지는 풍부하고 더 현실적인 이야기가 나왔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큰 고난을 지난 인류의 마지막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나 영화에서처럼 끔찍한 상황이 묘사되지는 않는다. 그런 면에서 <부림지구 벙커X>(강영숙, 2019)와는 결이 매우 다르다. 그럼에도 ‘조슈’가 엄마와 기억을 떠올리는 것으로 현재와는 많이 다름을 간접적으로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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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생각이 날 때마다 이곳에 오곤 해. 그리고 저 아름다운 노을을 보며 감탄하지. 그리곤 이런 생각도 한단다. 우린 이런 광경을 보기 위해 태어난 건 아닐까,하고.”
구름이 만드는 그림자가 노을을 스티고 지나가자, 작열하는 빛의 사선들이 뿜어져 나왔다. 마치 눈앞에서 보는 듯 생생했다.
엄마는 마음에 드는 장소에 북극성 산, 생각 바다, 아침이슬 벌판 등의 지명을 즉석에서 지어 붙이곤 했다.
(중략)
“생물이란 생물은 곰팡이부터 수염고래까지 한 종도 남김없이 다 죽었으니, 이 행성에서 우리는 마지막 관객이야. 하지만 우리가 사라진 이후에도 저 태양은 계속해서 저 산 너머로 지겠지. 그 떄는 누가 이 장관을 봐주려나.”
“….그러게요.”
P.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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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비극적인 인류의 삶 보다는 외부에서 들어 온 존재, 다른 기계종에 더 집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런 면에서 세기말의 어두움이 계속 느껴지지는 않으니 그런 걸 싫어하는 사람들도 쉽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의도적인건 아니지만 시설 안, 그 소수의 사람들 중에 범죄자가 있다든지, 감옥까지 존재한다는 이야기는 따로 적지 않았는데 이것 역시 오롯이 작가가 의도한대로 ‘조슈’와 ‘이브’의 이야기로 집중했으면 하는 마음이 있어서이다.
어떤 기록물에 남은 신화적인 상상보다는 인간이 어디선가 더 삶을 누린다는 걸 묘사한 소설로 보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래서 보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잠시 희망을 갖고 밝은 미래를 꿈꾸다 서서히 저물어가는 안타까움’ 또는 ‘어딘가에는 기록되었을 것 같은 인류 최후의 순간에 떠올린 잊지못할 기억’ 둘 중 하나가 아닐까 한가. 어떤 쪽일지는 읽는 사람 마음대로.
덧붙인다면?
1. 아무리 발전된 기계의 단계라도 유기체와 비슷한 logic으로 복제를 한다는 건 아직도 이해가 쉽게 가지는 않는다.
2. 처음 시작 부분이 영화의 한 장면 같다. 한 소녀가 전파수신기에서 들리는 소리를 듣고 천천히 외부로 나가서 어딘가로 몸을 던지는 과정이 굉장히 정적이다.
3. 단순한 인물구조와 어렵지 않은 스토리, 너무 복잡한 이론이 등장하지 않는 가벼운SF소설을 읽고 싶다면 추천, ‘아이작 아시모프’나 ‘로버트 A. 하인라인’의 무게감있는 대서사시를 원한다면 비추.
* 이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개인 블로그에 올린 서평 내용 일부를 편집한 것입니다.
* 이 서평은 출판사 ‘황금가지'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