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파람
최제순 지음 / 바른북스 / 2020년 12월
평점 :
절판


주요 포인트는?

책 내용 중 “고향을 떠나 있던 놈이 와서 두서없이 설레발 깠으니”라는 부분이 있는데, 정말 내용을 잘 표현한 부분이어서 기억이 난다. ‘신안 증도’라는 섬에 오랜만에 돌아온 인물이 친구들을 만나 하나하나 꺼내놓는 이야기를 생각나는대로 나누는 느낌이다. 육지에서 떨어져 있던 섬이 어느 날 다리가 놓여 육지화 되었다는 건 거길 처음 방문하는 사람에게도, 원래 주민들에게도 큰 변화였겠지만 다리가 놓였다고 완전한 육지가 되는 건 아니듯이 그들 역시 육지에 사는 여러모로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이 책에서 오고가는 이야기-로 대변되는 수많은 에피소드들-의 많은 부분이 그로 인해 있을 수 있는 것들이다.


​사실 처음에 읽으면서는 방식이 낯설어서 어떤 마음으로 읽어나가야 하는지 자리가 잡히지 않았던데다, 아무렇게나 던져지는 대화의 주제가 혼란스럽기도 했다. 그러다 동네 유지들의 이야기나 ‘수정다방’이야기쯤에서는 드디어 강력사건이 벌어지는건가 기대를 하기도 했지만, 그런 일은 소설 전체에 걸쳐 일어나지 않는다. 다만 아주 오래전부터 그 섬에 전해내려오던 전설부터, 일제시대-6.25 한국전쟁을 지나 현재에 이르기까지 정말 고향 어르신들이 술자리에서 나누는 ‘들어본 건 알고, 못들은건 모르는 이야기들’ 같다랄까.


지리적으로 전라도가조선 시대 형벌이던 유배나 귀양을 보내기에 적당했던게 지금까지 이어졌다든지, 서울만 가면 다 성공할 줄 알고 소도 팔고, 돼지도 팔아 옷보다리 하나 들고라도 서울로 갔다는 것부터, ‘꿈다방’이라는 데서 일했던 아가씨가 누구랑 바람이 나서 도망을 갔다든가, 기술이라는 친구가 동네 순자라는 여자아이를 만나려 하루종일 기다렸다는 첫사랑 얘기, 누구네 할머니가 이를 잡아주던 모습, 동네 잔치에 돼지를 잡는 자세한 묘사까지 요즘 말로 TMI같은 이야기가 툭툭 끊어지지만 계속 이어지는게 신기할 따름이다. 하지만 모든 이야기가 가벼운 추억팔이만은 아니다. 누군가는 사무치기도 할 것이고 누군가에겐 상처가 되었을 수도 있고, 또 어떤 때는 사실이었을 수도 있는 가슴 아픈 이야기도 빠지지 않는다. 특히 작은 섬에서 끝나는 게 아닌 ‘전라도’라는 지역적 선입견으로 받았을 설움과 정치인들이 그렇게 만들었다는 호소도 곳곳에 나타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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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마다 빨갱이도 있었고, 왜놈의 앞잡이도 있었다. 이제 시계를 거꾸로 돌려서 당신의 조상은 친일파였어! 너희 아버지는 빨갱이였고, 너희 집안은 양반, 아니 상놈 집안! 너는 고향이 전라도여! 너 학교 어디 나왔어! 초등학교는, 대학교는, 어디서 살았고! 어디서 태어났어!

전라도 새끼들은 다 그래! 그러는 경생도 새끼들은! 충정도는 어떻고, 강원도는 또 어떻고.

하여튼 우리 대한민국은 나누기 천국이야!

그런데 정치하는 놈들! 국민의 이 불편한 마음 잘 이용하지! 잘 사는 동네와 못 사는 동네로 나누고, 젊음과 늙음으로 나누고, 사상으로도 나누고, 학술로도 나누고, 나누기 잘하는 정치집단의 천국, 대한민국이지!

P. 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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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한탄과 불만도 있지만 그것이 ‘정치인’이라는 부류 때문만은 아니라는 건 당연하다. 이건 일부일 뿐, 결국 얄팍한 민족의 정통성, 배신을 밥먹듯이 한 민족성, 빨생이나 친일보다 우리 이웃을 먼저 선보려는 간사한 민족성 때문이었다는 것이고, 과연 왜 지역과 이념으로 치열하게 싸웠는지, 대한민국 내부에서가 아닌 북한, 일본 같은 나라에 대해서도 그만큼 힘을 빼가며 싸웠는지를 여러 입을 빌려 지적하고 있어 단지 고향 땅에서 일어나는 가벼운 농담으로만 느껴지진 않는다. 이런 무거운 이야기 와중에, 동네에 한마리 뿐이던 교미용 수퇘지 얘기에 그 교미하는 값을 암퇘지가 새끼를 낳아 젖을 먹여 키울 때까지 기다리다 쌀값으로 받았다는 이웃간의 믿음, 그런 수퇘지에게 사람도 먹기 힘든 상괭이고기 – 몰랐지만 고래고기를 이렇게 부른다고 한다 - 를 꼬박꼬박 먹였다는 건 낯설지만 어느 시절 농촌의 풍경같아 새롭고 웃으며 읽을 수 있었다. 


​인상깊은 부분은?

처음에 잠깐 등장할 줄 알았던 정치나 나랏일 하는 사람(공무원) 이야기가 간간히 등장한다. 동네 유지들을 꿰고 있었다는 산림감시원은 왜 단속할 걸 안하고 세금 받아낼 궁리나 하면서 정기적으로 마을을 방문했는지, 제도같은 걸 들먹이면서 위정자들은 국가와 민족을 위한다고 하면서 고통을 주고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는지 그들의 얼굴은 두껍고 양심에 털이 났다는 건 아마도 어린 시절 부모님의 부모님부터 전해지던 이야기들의 반영이 아닐까 한다. 또 보이지 않게 만들어진 우리 사회 계급은 노예제와 봉건적 사고를 거쳐 자본주의 사회의 근간이 되었지만 자유와 책임을 구분하지 못하고 지배하고 지배당하는 모습이 된 건 결국 권력이고 배고픈 민족의 습성이 만들어냈다는 되새김은 어느 학자의 표현처럼 ‘학습된 복종’에 다름 아니라고 생각이 되면서, 가벼운 마음으로 지나칠 수는 없긴 하지만, 이런 것까지 모두 공감하기는 쉽지 않을 뿐더러 너무 자주 언급되는 건 고향의 고즈넉한 느낌과는 결이 너무 달라 좀 당황스럽긴 하다. ​아무튼 이런 공통으로 느껴지는 적을 적나라하게 얘기한만큼 같이 사는 사람들의 공동체 의식은 아주 굳건하고 유구하다. 아주 오래전이겠지만 한 때였던 그 시절의 사람들, 지금은 그와는 달라진게 사실이지만 그래도 섬 사람들끼리는 행복했고 믿어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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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마을의 아름다운 전설까지도 사라져 가고 있어! 구설이라도 이어가며 명맥을 유지하며 좋으련만 안타깝게도 사람이 줄어들고 있지! 아이가 없고 젊은, 사람도 없고, 분명 얼마가지 않아 동네 경로당도 필요 없을거야!

마을마다 살아 이어져 내려오는 구설도 사실 말싸움 정도에 그치지. 마치 지나가는 소낙비처럼 말이다. 그러니 일하다 힘들어서 하는 푸념과 양념이지 양념!

또 누구도 대대로 살아온 이웃에게 상처가 될 말은 가능하면 하지 않았으며, 만약 자신도 모르게 그런 말을 했다면 바로 사과하는 그런 자세도 가지고 있었어!

P. 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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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파람의 사전적 의미는 <남쪽 또는 앞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지만, 저자는 그 섬에서의 기억, 즐거움, 아쉬움, 슬픔 모두를 기억하게 하는 하나의 상징이다. 동네 풍경을 이야기하다, 다방 얘기도 하다, 정치인 얘기도 잠시 거들고, 돼지 얘기와, 선대묘가 있는 산에서 뛰어노는 아이들 얘기를 거쳐 삼국시대 행정구역 개편으로 지금의 행정구역이 되었다는 이야기까지 펼쳐지면 사실 어느 에피소드에 더 집중할지 헷갈리기도 한다. 소설로 분류되어 있기도 하지만 읽고 나면 지극히 에세이같은 느낌이 든다. 다만 에세이라고 하기엔 전부 본인이 겪은 것도 아니고, 전부 사실일 수도 없으며, 역사서에 정확히 기재된 것이 아닌 역사 들까지 있다보니 굳이 소설이라는 틀에서 나눌 수 밖에 없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든다.외진 섬과 전라도라는 지역적인 특성이 주는 자조섞인 불만까지도 결국은 섬에서 느꼈던 감정의 하나였을 것이다. 쉬운 책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스토리의 줄기를 찾기보다 ‘그 섬에선 그 때 그렇게 살았대’라는 생각으로 읽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덧붙인다면?

1. 대사임이 분명하지만 대부분을 따옴표나 다른 특수기호로 구분하지 않는다. ‘박범신’작가의 <외등>(2001)이 그랬던 것 같은데, 이런 구성이 처음 읽을 땐 굉장히 어렵게 느껴질 수 밖에 없겠다.


2. 전체적으로 이야기를 이끄는 중심 스토리가 없는 건 아쉽다.


​3. 고향의 이야기, 한 때 일상을 같이 한 사람들이 경험과 주워들은 이야기를 어떻게 이어지는지 궁금하다면 추천, 자극이 있는 스토리의 부재와 고향의 투박한 무용담 전개가 별로라면 비추. 



* 이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개인 블로그에 올린 서평 내용 일부를 편집한 것입니다.

* 이 서평은 출판사 ‘바른북스'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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