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가, 나의 악마
조예 스테이지 지음, 이수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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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포인트는?

책을 읽기 전에 책 소개를 보면서는 스릴러나 오컬트, 또는 심령 미스터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막상 책을 다 읽고 난 느낌은 ‘가족의 수난기’라는 거였다. 이전에 보지 못한 고약하고, 우악스러운데다 과하게 조숙한 소녀의 엄마 밀어내기, 그걸 온 몸으로 받아내는 독하지 못한 엄마와 무덤덤하고 사려깊지 못한 아빠의 부적응기 정도가 맞는 듯 하다. 자신이 전생에, 그리고 지금도 ‘마리엔 뒤포세’라는 화형당한 마녀라고 생각하는 ‘해나’는 엄마를 입을 열면 유리 파편으로 만든 이를 드러내며 아빠를 잡아먹을거라고 생각하며 오히려 그런 엄마를 괴롭힌다. 그것도 아빠가 눈에 띄지 않도록 둘이 있을 때만. 그리고 말을 못한다고 하지만 엄마와 있을 땐 인터넷에서 본 불어를 흉내내기까지 하며 조잘조잘 잘 떠들기까지 하는데, 당장 그것만 보면 진짜 전생의 무엇인가가 몸속에 기생하는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역시 그건 ‘해나’의 생각일 뿐이다. 


엄마인 ‘수제트’는 그저 임시방편으로는 치료조차 되지 않고 그저 낫길 기다려야 하는 만성 질환인 크론병을 앓았고, 아픈 몸과 부모의 무관심 속에서 너무나 외롭게 자라나서 가정에 대한 기본적인 모습에 굉장히 연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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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노릇은 힘들었다. 하지만 수제트는 자신의 어머니는 해주지 못했던 방식으로 부모의 의무를 수행하려 애썼다. 건강한 음식, 멋진 옷가지, 그리고 해나의 복지를 위한 부단한 투자, 수제트는 자신이 어릴 때 원했던 모근 것을 해줄 결의에 가득 차서 부모 노릇을 시작했더랬다. 하지만 해나는 수제트가 해줄 수 있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어쩌면 학교에 보낼 수만 있다면, 그리고 이 새롭게 등장한 이 괴상한 마녀 문에를 심리학자와 함께 풀 수 있다면.

P.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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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런 마음가짐 때문인지 ‘해나’의 행동은 점점 더 심각해지는데, 이런 공격성은 본인의 이름은 ‘해나’가 아니라는 걸 ‘눈을 뒤집고’ 말하며, ‘프랑스 억양을 최대한 사용해’ 자신은 “마리엔 뒤포세”라고 하는 순간부터 점점 더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공감이 가지는 않지만 ‘수제트’의 어정쩡한 대응은 어쨌든 모성에서 나온거라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다. 그런 모성이 알렉스의 무관심과 딸에 대한 일차원적인 애정 때문에 이상한 엄마, 심지어 딸을 나쁜 아이로 만드는 엄마로 보이게까지 하기 때문이다. 물론 하루종일 밖에 있다 늦게 집에 와서 온갖 귀여움을 표현하려는 ‘말을 하지 못하는’ 딸은 안타까우면서 사랑스러울 수 밖에 없을테니 아내가 이야기하는 건 그저 히스테리라고 생각할 여지는 있다. 하지만 ‘수제트’가 말하는 딸의 모습에 대해 의심도 하지 않는데다 심지어 학교 환경 탓까지 하는 걸 보면 애정보단 무관심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아 더 답답해진다. 사람마다 다를 수는 있겠지만 ‘해나’가 언제 ‘수제트’에 더 해악을 미칠까가 무서운 것보다 어느 순간 ‘수제트’를 정신이상자로 몰아가는 게 아닐까 염려스러워 책장을 넘기는 사람도 있을거란 생각이 든다. 


사실 ‘해나’에게 괴롭힘 당하는 ‘수제트’의 피로함을 따라가다 잠깐 잊게 되는데, ‘해나’는 정말 최선을 다해 엄마 ‘수제트’를 괴롭힌다. 우선 다른 사람들 앞에서 수줍은 소녀인 척 하는 건 시작일 뿐, 배고픔으로 기절한 척한다든지, 같은 반 아이를 괴롭히는 건 예사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해나’를 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장애를 가진걸로 의심하고, 심지어 집에서는 어떤 생활을 하는지 의심하기까지 할 정도이다. 학교라는 제도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에 홈스쿨링이 더 도움되겠다고 말하는 아빠 ‘알렉스’는 과연 어떻게 보여야만 심각성을 알아차릴지 매 순간이 답답하다. 실제 행동에 옮길 줄 몰랐지만 ‘슈제트’가 잠들었을 때 몰래 가위로 머리를 자른 – 일부러 좌/우 균형을 맞지 않도록 – 건 이미 어린아이의 행동은 한참 벗어났는데도 ‘수제트’에게 어울린다는 말로 덮어버리는 건 무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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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안좋아?”

“병원에 갔다 왔잖아.”

알렉스는 수제트의 이마에 키스를 하고 두피를 지압해 주기 시작했다. “좀 생각해 봤어? 이야기할 사람을 찾는 거 말이야.”

“내가 미친게 아니야. 해나가 정말…”

“외상 후 장애잖아. 그렇게 말하는 거 싫어. 누가 도움을 줄 수도 있잖아. 오늘 약은 먹었어?”

수제트가 알렉스를 밀쳤다.

“안 먹었엇어! 약에 취해서 그런 게 아니야! 말하는 게 아니었는데.”

“통증이 있으면 약을 먹어야지.”

“알렉스, 내 말 제대로 듣고 있는거야?”

부부는 잠시 꼼짝않고 서 있었다. 사냥꾼처럼 신중하게 혹은 총을 맞기 직전의 짐승처럼 경계하며.

P.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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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결책을 찾아 내라는 것도 아니고 단지 있는 그래도 이야기를 받아들이기만 해도 부부간의 대화는 윗 부분보다는 나아졌을 것 같다. 이미 ‘해나’의 행동이 어떤 계산된 결과라는 걸 알아차린 ‘수제트’는 딸의 영악함과 천재성에 놀랄 정도인데, 그런 교활함으로 학교에서 일부러 퇴학을 맞은 딸에게 학교가 맞지 않았을 뿐이라고 하면서 후반부로 접어들며 분노가 수제트로 향하는 듯한 느낌은 앞서 보여준 무던함이 어떻게 변할지 긴장감이 들기도 한다.


‘해나’의 자신에 대한 공격적인 행동과 말들을 남편에게 무던히 알리려고 하고, 다행스럽게 가족이 아닌 주변 사람들이 ‘수제트’를 간접적으로 도우려 하는 건 그나마 이 소설을 답답하게 만들지 않는 요소인데, 그럼에도 남편 외의 사람(특히 알렉스의 어머니. 즉 시어머니다)에게 알리고 싶지 않아 도움을 거절하는 건 이해가 가지 않는다. 전문가와 상담하는 건 조심스러울 수 있지만, 가족에게만큼은 먼저 도움을 청할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본인의 불완전함 때문이라고 생각할 또 다른 가족의 시선이 싫어서인지는 몰라도 ‘수제트’ 자신을 더 힘들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이런 걸 보면 자신이 먼저 이야기하지 않아도 다른 누군가 먼저 알아채고 다가와 ‘당신 딸에게 문제가 있군요’라고 말할 때까지 기다려 그걸 위안삼는게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등골이 오싹한 서스펜스나 오르락내리락하는 미스터리가 있지는 않지만, 아이가 단지 아이가 아닌 지금, 우리가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을 어떻게 가져야 하는지는 생각해보게 하는 소설이다. 가족이라고 해서 모든 걸 참고 견뎌내기에 그 안에서 벌어질 수 있는 서로간의 불신은 언제든 위험으로 변할 수 있겠다는 것이다. 다만 요즘같은 여러 IT기기를 사용하는 시대에, 괴상한 딸의 말을 핸드폰으로 녹음한다든지, 이상항 행동을 몰래 CCTV로 녹화한다든지 하는 적극적인 방법을 쓸 생각조차 안하는 건 말에만 의지하며 결정적 장면을 만들어내지 못하며 이야기를 이끌어간다는 느낌이 들어 아쉽다.


덧붙인다면?

1. 처음엔 배경이 좀 과거이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 ‘인스타그램’이 등장하므로 여러모로 극적 장치들이 풍부하지 못한 건 안타깝다. 


2. 혹시 ‘해나’가 ‘반사회적 인격 장애’인가라는 생각을 해봤지만, 발현 시점이나 계획적인 것, 공격 대상이 지극히 부분적인 것을 보면 그건 아닌 듯 하다.


3. 상세한 심리 묘사, 질릴정도로 누군가를 괴롭히는 극한 상황을 느끼고 싶다면 추천, 정체를 알 수 없는 미지의 존재가 등장하는 스릴러나 전생 미스터리 같은 걸 원한다면 비추. 


* 이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개인 블로그에 올린 서평 내용 일부를 편집한 것입니다.

* 이 서평은 출판사 ‘알에이치코리아(RHK)'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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