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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풍경 - 김형경 심리여행 에세이, 개정판
김형경 지음 / 사람풍경 / 2012년 3월
평점 :
여행에서 얻은 내면의 심리분석 에세이
이 책은 작가 김형경이 쓴 여행기이자 첫 번째 심리 에세이이다.
마흔에 과감하게 집을 팔아 세계 곳곳을 여행하고 여행지에서의 만난 사람들과의 소소하고 다양한 체험을 씨줄로, 작가 자신의 심리상태와 내면성찰을 날줄로 함께 엮어서 인간의 감정과 그 감정을 다루는 방법에 대한 글들로 한필의 옷감을 자아냈다.
총 352쪽 4개의 챕터로 이루어져있고 각 챕터에 여섯 개에서 일곱 개의 소제목들이 달려있는데, 각각의 소제목을 느낄 수 있는 작가의 작품 사진이 어우러져 이 책의 분위기를 더한다.
첫 번째 챕터는 인간의 기본적인 감정을 이야기했는데 이탈리아에서 고대 로마의 지하묘지인 카타콤의 좁고 어둡고 스산함에서 인간의 내면에 있는 ‘무의식’을 느꼈고, 뉴질랜드의 어학원에 다니면서는 모든 심리적인 문제의 출발이 ‘사랑’임을 자각했다. 바티칸 베드로 성당 박물관에서 성당관리인의 오해에서 비롯된 행동에 ‘분노’를 느꼈고, 중국에서는 사스가 돌면서 사재기와 타 지역으로 떠나는 사람들을 보면서 ‘불안’이 생기는 원인을 알았다.
두 번째 챕터는 인간의 내면에 숨어있는 무의식적인 생존법에 대한 이야기이다. 암스테르담 중앙역에서 마비된듯한 모습에 수전증 환자처럼 떨면서도 담배를 구하던 소녀에게서 ‘중독’을, 로마 여행 때 당당히 손 내미는 거지와 환전소에서 서성이며 여행자들의 지갑을 노리던 청년들의 눈빛에서 ‘시기심’을 보았고, 독일 여행 중에 기차를 타고 가다가 맞은편에 앉아 있던 독일할머니의 노려보는 시선에서 느꼈던 ‘투사’의 하나인 인종차별에 대해 생각했으며, 절집의 방 한 칸, 낯선 여행지의 빈 숙소 등 혼자만의 공간에서 느꼈던 감정이 ‘회피’라는 것을 알았다.
세 번째 챕터는 긍정적 선택에 대한 내용으로 우리가 알고 있었던 부정적인 심리들을 개인의 성장 동력으로 변환시킬 수 있는 방법에 대한 내용이다.
파리 여행 중에 보았던 카미유 클로델 작품을 마음으로 느끼며 가졌던 모든 의문들이 작가의 삶에도 있었던 ‘콤플렉스’라는 사실을 확인했고, 로마숙소에서 카라바조의 도록에 나와 있는 <나르시스>를 보면서 ‘자기애’의 실체를 보았다. 암스테르담에서 묵을 숙소를 정할 때는 공공안내소에는 없었던 방이 사설안내소에 있었는데 명분보다는 실리를 추구하며 당당하고 ‘뻔뻔하게’ 수수료를 받는 사설안내소에선 없던 방도 생긴다는 걸 알게 되었다.
네 번째 챕터는 성장의 덕목이라는 제목이고 삶에서 성장하면서 성취해 나아가는 심리들에 대한 이야기다.
사전 준비 없이 했던 황량한 폼페이에서 관람포기의 갈등이 몰려올 때 만난 유적관리인의 유적안내와 설명에서 ‘친절’의 위력을 알게 되었고, 미켈란젤로의 네 점의 피에타(미켈란젤로는 생전 피아타를 4개 제작했다)에서 성모마리아의 달라진 모습을 보면서 마음에 ‘공감’이란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뉴질랜드 버스 여행 때는 고장 난 버스와 운전기사를 대하는 현지인 승객들의 행동과 버스회사의 처리를 보면서 그들의 삶에 대한 시각과 방식에 감동하고 자신의 삶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프랑스의 니스에서는 곳곳에 있는 작은 미술관들을 돌아보며 위대한 화가들의 작품의 비밀은 ‘자기실현’이라는 걸 확신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사람의 심리란 세분화 할 수 있고, 다양하다는걸 알게 되었다. 또한, 내가 그동안 모르고 지나갔던 마음에 대해 다시 돌아보고 분석하는 시간을 가져 보았다.
그러나, 프로이드나 융의 정신분석관련 이론은 서구사회의 행동과 가치관에 입각한 것이라서 읽으면서 우리와 다르다고 생각된다.
예를 들어 ‘분노’ 내용 중에서 심리학의 에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박사의 5단계를 보면 이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뒤에 남는 사람이 격는 감정상태를 말하는데 ‘분노·부정·타협·우울·수용’이라고 했다. 가장 먼저 느끼는 감정이 “네가 어떻게 내게 이럴 수 있느냐’의 분노, 다음은 떠난 사실을 인정 못한 채 환상 속에서 그를 잡고 있는 부정, 그다음은 상실감을 인정하고 현실과 타협, 그 다음은 자신의 슬픔을 애도하는 우울, 마지막으로 모든 사실을 수용하고 넘어서는 단계를 말한다. 하지만 이것과 다르게 2년 전 세상을 떠나신 아버지에 대한 어머니를 비롯한 주위의 배우자를 잃으신 분들의 감정은 분노와 부정, 타협을 과감하게 뛰어넘으셨다. 처음엔 생전 더 잘해드리지 못한 후회, 그다음에 후회, 그다음도 후회, 지금은 우울, 이후 수용에 이를 것 같다.
사람의 심리가 다 같은 마음에서 표출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천명의 사람이 천 가지의 심리가 있을 것이고 현대에서 사회가 발달할수록 정신관련 사업이 번창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듯 인간의 정신과 심리는 아직까지 미지의 영역이라 생각된다. 그래서 지금도 정신분석과 인지심리에 대한 연구가 활발한 것 같다.
그러나, 다시 시작되는 코로나로 여행이 어려운 시기이고 우울한 요즘 여행, 심리분석과 극복하기를 원하는 독자라면 읽어보기를 권한다.
내용은 심리분석이지만 정신·심리 전문가가 쓴 책이 아니기 때문에 딱딱하고 전문용어로 도배되지 않아 어렵지 않고 편하게 읽을 수 있다. 더해서 여행이라는 코드로 작가의 체험에서 얻은 이야기라 더욱 매력 있고 실감나는 내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