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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백년 전 악녀일기가 발견되다 ㅣ 내인생의책 푸른봄 문학 (돌멩이 문고) 6
돌프 페르로엔 지음, 이옥용 옮김 / 내인생의책 / 2009년 5월
평점 :
모든 색깔을 오염시킨 단 하나의 색깔, 모든 인종을 유색인종으로 만든, 색깔 없는 색깔인 흰색은 순수와 무지라는 탈을 쓴채 그들외에 다른 모든이들을 자신들 발밑으로 끌어내려 무릎 끓게 만든다.
2백년 전 네달란드의 한 부유한 농가, 농장주인 딸 마리아는 14번째 생일을 맞이하여 뚜껑이 달린 큰 쟁반을 선물 받게 된다. 쟁반 속에는 과연 무엇이 들었을까? 모두들 맛있는 음식이나 14살 아이에게 어울릴만한 예쁜 드레스를 생각하지 않을까? 하지만 지울수 없는 암흑의 시대기를 대변하듯 쟁반 안에는 몸을 잔뜩 쪼그린 채 앉아 있는 그것이 들어있었다. 그들의 말을 빌린 그것은 꼬꼬라는 흑인 노예이다. 바로 사람이자 인간인 한 인격체가 들어 있었던 것이다.
그들의 그런 생활은 지금 우리가 경악할 만큼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들은 아무런 죄책감 없이 그들의 노예들을 부리며, 채찍질 하고 사고 판다. 마치 청소와 빨래와 심부름을 도와주는 말 잘하는 로봇정도로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14살 소녀 마리아는 흰 피부를 가진 귀여운 백인 여자아이이며, 그들의 부모에겐 더 없이 순수한 딸이며, 여느 또래아이들과 다를 것 없이 사촌 루까스를 짝사랑하며 어린날의 풋사랑에 설레어 하는 누가봐도 사랑스런 여자아이이다. 하지만 그당시의 시대는 그 소녀를 포독스럽고 못된 악녀의 모습으로 가해자의 자리에 앉혀 놓는다.그리고 그녀는
그녀가 악녀가 되어있는지도 모르는채 너무나도 해맑게 일기를 통해 이를 이야기 한다.
꼬꼬의 눈 빛은 멍하다 세상에 있지도 않은 어떤 것을 쳐다보고 있는 듯하다. 그런 모습에 무지 화가났다. 널 뭘 보는 거니? 꼬꼬는 대답이 없었다. 난화가 치밀어 올랐다.하마터면 꼬꼬를 때릴 뻔했다.
아이 아줌마가 내게 말했다. 마리아, 훈련 잘 시켜라. 노예들한테 자유를 너무 많이 주면 나중에 후회한다.
아빠는 여자 노예를 새로 샀다. 노예는 광장히 젊고 아주 아름답고 무척이나 조용했다. 하지만 엄마는 조용히 있지않았다. 엄마는 무지 화난 얼굴로 아빠를 쏘아봤다. 엄마는 흐느꼈다. 난 귀를 막았다. 꼬꼬가 내게 다가왔다. 난 꼬꼬의 따귀를 한대 갈겼다. -악녀 일기중-
이때의 노예들은 단순히 그들의 수족만 되었던 것은 아니다. 노예들은 그들의 성적 노리개감이 되는 수치심 또한 견뎌야 했으며, 그로인한 보상으로 한단계 격상된 노예의 대우를 받곤 했다. 하지만 그러한 대우도 그 노예의 외모의 가치가 떨어짐과 함께 격하되어 또다시 노예시장의 상품이 되어야만 했다.
인생체험을 운운하며 노예시장 나들이에 동참하게된 마리아의 눈을 통해 본 노예시장은 더욱더 충격적이다. 현생활 속에서 볼수 있는 우시장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도망치지 못하게 쇠사슬로 꽁꽁 묶어 놓은 노예들은 그저 좋은 주인을 만나기 위해 본인의 상품가치를 높이려 애쓴다.
과연 2009년 현재 우리 삶속에는 이러한 것들이 모두 사라졌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나는 천만의 말씀이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백인주인과 흑인노예는 이미 사라졌을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 삶속에 주종관계는 그때의 노예의 모습이 아닌 새로운 형태로 노예의 모습으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우리는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써 생계를 위한 경제활동을 통해 생활하고 있다. 이러한 생활속에서 우리는 악덕 기업주 혹은 악덕 윗사람들과 마주하게 된다. 2009년 현재 최저임금 시급은 4000원 이다. 이를 어길 시에는 법률상 처벌을 받게 되어있다. 하지만 요즘 같은 불황시대에 최저임금을 주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알바자리를 놓칠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강원도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는 내 동생은 얼마전까지 시급 2500원을 받고 편의점 알바를 했었다. 나는 그까짓꺼 하지말고 공부나 열심히 하라고 다그쳤고, 동생은 그거라도 해야 용돈벌이 한다고 큰소리친적이 있다. 그럼 다른일을 해라 2500원을 주냐 그 사장 장난하냐는 말이 오갔지만, 산중에 위치한 학교주위에서 알바자리를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라는 것이다. 아마도 주인은 그렇기 때문에 저임금에도 일할 학생은 널려있다. 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또한 tv를 통해 종종 한국사장들에게 폭행과 폭언을 들으며 일을 하고도 한국인 근로자의 반도 안되는 급여를 지불받지 못한 외국인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접할 수 있다. 그 뿐일까? 연예인들의 노예계약 이야기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예인 지망생들은 한번의 빛을 보기위해 불합리한 계약또한 마다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고용주들은 모두 세상에 쳐죽일 사람들인 아주아주 나쁜놈일까??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이들또한 한 가정의 아버지 이며 어머니 이며, 사람의 대한 측은한 마음과 배려가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하지만 사회구조가 제공한 고용주라는 자리는 집단에 이익과 개인의 이익을 위해 그리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내가 고용주가 된다면 시급 3000원을 줘도 일할 학생이 널린 마당에 4000원을 줄 이유는 없으며, 계약금 300에 10년 계약을 한다해도 연예인을 하겠다고 나서는 아이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웃돈을 줄 수 있을까란 것이다.
악녀 마리아는 악녀가 되고 싶었을까? 아니 그녀 스스로가 악녀라고 생각이나 했을까? 2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이 사회의 구조는 나와 당신이 악녀 혹은 악남이 됨을 방관하고 있고, 어쩌면 부추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 시대 노예는 당연한 것이다. 그것은 비극적인 시대상일 뿐이다. 지금 우리사회는 어두운 경제논리에 의해 악덕 기업주를 만들수밖에 없다.그것은 개인과 조직의 이익을 위한 당연한 얌체짓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불평등한 사회적 구조속에서 한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인간의 존엄성과 우리의 양심이다. 성적유린으로 여성 노예에게 수치심을 안긴 마리아 아버지와, 외국인 노동자에게 폭행과 폭언을 일삼는 한국기업주들, 그들이야말로 기형적인 사회적 구조를 등에 업고 그들자신의 양심을 팔아버린 진정한 악녀의 모습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