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파리를 불태운다
브루노 야시엔스키 지음, 정보라 옮김 / 김영사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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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지원도서


“모두가 웃으며 손을 흔드는 세상, 정말 가능할까?”


《나는 파리를 불태운다》는 자본주의 도시의 중심인 파리를 한순간에 무너뜨리는 전염병을 통해, 우리가 익숙하게 여기는 ‘정상 사회’가 얼마나 위태로운지 보여준다.


주인공 피에르는 하루아침에 해고되고, 연인에게도 외면당한다. 불안정한 일자리, 주거 문제, 경쟁 속에서 인간이 도구처럼 쓰이다 버려지는 현실. 이는 소설 속 1920년대 파리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다. 언제든 해고 통보를 문자로 받을 수 있고, 인간관계마저 돈과 지위로 평가받는다.


피에르의 분노는 사회를 향하고, 그는 결국 흑사병을 퍼뜨려 도시 전체를 마비시킨다. 이 극단적인 행동은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그 이면에는 ‘왜 이렇게 끝까지 몰렸는가’에 대한 질문이 있다. 개인의 삶이 사회 구조에 의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전염병으로 도시가 봉쇄되자 파리는 여러 공동체로 쪼개진다. 인종, 계급, 이념에 따라 구역이 나뉘고, 각자 자신만의 ‘이상 사회’를 꿈꾸며 새로운 세상을 세우려 한다. 어떤 공동체는 평등을 외치지만 그 안에서 또 다른 폭력이 생기고, 어떤 지도자는 해방을 말하지만 결국 권력을 탐한다. 이것은 우리가 흔히 겪는 정치의 모순과도 닮아 있다.


흑사병을 퍼뜨리고 파리를 불태우는 단순한 절망으로 끝나지 않는다. 폐허가 된 도시 위에서 새로운 삶의 가능성이 피어난다. 농사를 짓고, 나눔이 있고, 웃음이 있는 공동체. 모두가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 비현실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그런 세상을 꿈꾸는 희망이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다.


《나는 파리를 불태운다》는 자본주의의 병폐를 뼈아프게 보여주되, 그 너머의 세계도 상상하게 한다. 우리가 너무 익숙해져서 문제라고 느끼지 못한 지금의 사회, 그 안에서 누군가는 매일 무너지고 있다는 걸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정보라 작가의 말처럼 “서로 도우며 함께 가는 길이 유토피아”일지 모른다. 우리 함께 그 길을 상상해보자.


#나는파리를불태운다 #브루노야시엔스키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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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 포 투
에이모 토울스 지음, 김승욱 옮김 / 현대문학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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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지원도서


다른 이야기들도 꼭 읽어보고 싶게 만드는, 기대감 가득한 첫 만남


짧은 단편 <밀조업자>를 다 읽고 난 후, 이 책이 왜 ‘크레센도의 거장’이 연주하는 변주곡 같다고 표현되었는지 곧장 이해할 수 있었다. 고요하게 시작된 이야기의 선율은 어느 순간 예기치 못한 음들을 만나고, 결국 내 안에서 감정이라는 오케스트라를 울렸다.


노신사의 행동은 과연 정당했을까? 토미는 잘못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선악이 명확하지 않은 상황 앞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의 윤리적 감각을 시험받는다. 그렇게 <밀조업자>는 단순한 이야기 너머의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그리고 그 질문은 책장을 덮은 뒤에도 한참을 머문다.


특히 메레디스가 토미에게 건네는 냉정한 대사는 오래도록 여운을 남긴다. "당신이 첼로 연주를 들을 때마다, 내가 당신에게 독선적이고 무신경한 개자식이라고 말한 일을 기억하면 좋겠어요." 그녀의 목소리는 연민과 분노, 슬픔과 단호함이 겹겹이 배인 인간 감정의 농도 그 자체였다.


<밀조업자> 한 편만으로도 이토록 깊은 사유의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면, 나머지 여섯 편과 중편은 또 어떤 결을 지닐까? 책장을 넘기기도 전에 마음이 먼저 설렌다.


잔잔하지만 날카로운 유머, 고요하지만 울림 있는 문장, 결이 살아 있는 인물들… <밀조업자>가 ‘생각하게 만드는 이야기’였다면,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들은 ‘나를 조금 더 알아가게 하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다른 단편이 절로 궁금해지는 이 첫 만남, 이미 훌륭한 시작이었다.


#테이블포투 #에이모투울스 #현대문학 #프리뷰북 #밀조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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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프 신화 - 부조리에 대한 시론 현대지성 클래식 66
알베르 카뮈 지음, 유기환 옮김 / 현대지성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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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지원도서


“왜 사는가?”를 묻는 당신에게 『시지프 신화』가 들려주는 이야기


중년의 삶은 말 그대로 ‘중간’이다. 젊지도 않고, 완전히 늙지도 않았으며, 어느 날 문득 거울 속 자신의 얼굴에서 낯선 주름을 발견하고는, 이제 더는 되돌릴 수 없음을 실감하게 되는 나이. 아이를 재우고 조용한 방에서 이 책, 『시지프 신화』를 펼쳤을 때 나는 묻고 싶었다. 정말로 삶은 살아갈 가치가 있는가? 알베르 카뮈는 이 근원적 질문에 단호하게 “그렇다”고, 아니, “그렇다고 말해야만 한다”고 말한다.


책 속 시지프는 무의미한 형벌을 끝없이 반복하는 존재다. 산 위로 바위를 굴려 올리면, 다시 바위는 아래로 떨어지고, 시지프는 또다시 그것을 끌어올린다. 단순한 형벌처럼 보이는 이 반복 속에서 카뮈는 우리의 모습을 본다. 출근하고, 일하고, 돌아와 밥을 하고, 아이를 챙기고, 잠들고. 그렇게 하루가 반복된다. 나 역시도 시지프처럼 살아왔다. 아무런 변화 없이, 목적 없이, 단지 ‘해야 하니까’ 살아내는 것. 그것이 과연 의미 있는 삶인가?


그러나 카뮈는 우리에게 “반항하라”고 말한다. 희망도 아닌, 체념도 아닌, 오직 반항. 그는 신을 믿지 않고도 절망하지 않으며, 삶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무조건적인 긍정에 기대지 않는다. 삶은 본디 무의미하며, 우리는 그 무의미를 알고도 살아가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용기’라고 말이다.


이 철학은 마치,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아이의 눈동자처럼 정직하고 냉정하다. 아이가 “왜 살아야 해?”라고 묻는다면, 나는 이제 이렇게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삶에 주어진 의미는 없어. 하지만 네가 살아가는 순간마다 네가 그 의미를 만들 수 있어. 엄마도 그걸 배우고 있어.”


사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깊이 다가왔던 문장은 이거였다.


"행복한 시지프를 상상하지 않으면 안 된다.”


불행해 보여야 할 인물에게 행복이라는 말을 붙인 카뮈의 이 대담한 선언은, 중년의 내가 삶을 다시 마주하는 새로운 태도로 남았다. 바위는 떨어진다. 관계는 어긋나고, 몸은 지치고, 미래는 불투명하다. 하지만 나는 또 다시 바위를 밀어 올린다. 그 행위 자체가 나의 삶을 만든다.


카뮈는 우리가 종교나 절대적인 진리 대신 스스로의 인식을 통해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 믿음은 허무의 늪에서 빠져나오는 사다리가 된다. 고통을 부정하지 않고, 무의미를 껴안으며, 그래도 살아가겠다는 ‘반항’의 선언. 그것이야말로, 중년의 내가 이 삶을 살아가야 할 이유였다.


『시지프 신화』는 인생의 ‘중간’에 선 이들이, 포기하지 않기 위해 읽어야 할 삶의 연습장이다. 무의미를 안고서도, 끝까지 살아내는 시지프처럼. 그리고 나처럼. 그러니, 바위를 다시 밀자. 눈부신 태양이 아직 저 산 너머에 있으니.


#시지프신화 #알베르카뮈 #현대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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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과 양배추가 있는 풍경
강보라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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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지원도서


서로 다른 풍경을 살아내는 여자들의 이야기


여성으로 살아오며,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놓인 말 없는 긴장과 설명되지 않는 거리감에 익숙해졌다. 그런데 강보라의 첫 소설집 『뱀과 양배추가 있는 풍경』을 읽는 동안, 오랜만에 그 익숙함을 낯설게 바라보게 되었다.


이 소설집은 다정하지 않다. 대신 정직하고 섬세하며, 무엇보다 용기 있다. 강보라는 말없이 켜켜이 쌓인 감정과 관계의 결을 예리하게 짚어낸다. 그 안에는 젊은 날의 질투, 씁쓸한 동경, 이유 없는 거북함, 겉도는 유대감 같은 것들이 담겨 있다. 우리가 매일같이 마주하면서도, 나이가 들수록 쉽게 말하지 않게 되는 감정들이다.


표제작 「뱀과 양배추가 있는 풍경」은 마치 내 안의 내밀한 방 하나를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누구보다 ‘정제된 감각’으로 살아왔고, 그렇게 사는 것이 옳다고 믿었던 인물이 낯선 공간과 사람들 속에서 흔들리는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다름을 경계하면서도, 그 다름에 끌렸던 시간들이 있었다. 사람 사이의 거리 속에서 우리가 얼마나 외롭고도 아름답게 존재하는지를 정직하게 묻는 질문에 공감하게 된다.


「신시어리 유어스」를 읽으며, 나는 한때 가까웠던 어떤 여자를 떠올렸다. 삶의 속도와 방향이 달랐다는 이유로 결국 마음을 닫게 되었던 사람. 작중 인물 단과 시내, 문태 언니 사이의 복잡하게 얽힌 관계는 여성들 사이의 미묘한 ‘엇갈림’과 ‘잊지 못함’을 정직하게 그려낸다. 어떤 관계는 끝내 완전히 이해되지 않지만, 이상하게도 마음 한편에 오래 남는다. 때로는 부러움으로, 때로는 원망으로. 하지만 결국에는 다정함으로 돌아가는 감정.


「바우어의 정원」에서는 아이를 잃은 여자가 서로의 상처에 조심스레 다가간다. 나이가 들수록 슬픔을 말하는 일이 서툴러진다. "그 말을 들으니 나는 ~한 기분이야." 그렇게 천천히, 조심스럽게, 우리는 서로에게 닿아야 하는지도 모른다. 이 단편은 지금껏 지나온 시간과 상처들을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는 이야기였다. 희망은 바로 그런 방식으로 피어나는 것임을, 이 소설이 조용히 말해준다.


작가는 말한다. 인간관계란 완벽한 이해나 통합이 아니라, 스치듯 일어나는 ‘농도의 변화’일지도 모른다고. 단순하지만, 그래서 더 진실하게 다가오는 말이다. 사람을 사랑하면서도 경계하고, 이해하려 하면서도 종종 포기하며 살아간다.


책을 덮은 후, 오히려 마음이 가벼워졌다. 완벽한 이해는 아니더라도, 진심이 담긴 말 한마디, 눈빛 하나가 서로를 조금씩 바꾸고, 살아가게 만든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이 책이 전하는 가장 따뜻한 위로가 아닐까. 삶의 중턱에서, 우리는 여전히 사람을 배우고 있다.


#뱀과양배추가있는풍경 #강보라 #문학동네 #티니안에서 #신시어리유어스 #바우어의 정원 #빙점을만지다 #직사각형의찬미 #아름다운것과아름답지않은것 #북클럽문학동네8기 #뭉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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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달새 언덕의 마법사
오키타 엔 지음, 김수지 옮김 / 비채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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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채서포터즈3기 출판사지원도서입니다.


다시 일어서는 마음을 위한 작은 마법


살다 보면 정말 모든 걸 놓아버리고 싶어질 때가 있다. 내게는 그 시간이 유난히 길었다. 일은 뜻대로 풀리지 않고, 가족과의 관계도 점점 서먹해졌다. 문득, 아무도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실패한 인생”이라는 이름표 하나를 달고 살아가는 기분이었다.


“마음속 가장 간절한 소원, 이루어드립니다.” 처음엔 단순한 판타지일 거라 생각했다.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 기분을 달래주는 가벼운 이야기쯤으로 여겼다. 그런데 책장을 넘길수록, 이상하게 마음이 위로받고 있었다.


봄의 흉터, 여름의 이별, 가을의 자책, 겨울의 상실. 이야기 하나하나가 내 마음 깊숙이 박혀 있던 고통과 닿아 있었다. 고등학생 소녀 메이는 어릴 적 사고로 생긴 흉터를 없애고 싶어 한다. 그 상처는 흉터가 아니라, 나이 오십이 되도록 치유되지 않은 내 자책처럼 느껴졌다. 사랑을 잃고 웃는 법을 잊은 청년, 영감을 잃고 방황하는 작가, 고양이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싶어 하는 화가까지 — 그들의 사연이 곧 내 이야기처럼 다가왔다.


이 소설이 정말 특별한 이유는, 마녀 스이라는 인물 덕분이다. 그녀는 단번에 기적을 일으키지 않는다. 대신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 마음의 소리를 듣게 하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손을 내민다. 실패를 부끄러워하지 않도록, 상처를 숨기지 않도록, 그리고 ‘나는 지금 충분히 애쓰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알아차릴 수 있도록 도와준다.


나는 특히 미노루 화가의 이야기에 오래 머물렀다. 유일한 가족인 고양이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싶어 종달새 언덕을 찾아온 노인. 그의 조용하지만 용기 있는 바람과, 곁에서 묵묵히 머물러준 마녀의 말이 오랫동안 마음에 남았다.


“이별은 끝이 아니라, 기억을 남기는 일이다.” 그 한 문장이, 내가 잃어버렸다고만 생각했던 시간들을 다시금 소중하게 안게 해주었다.


이야기의 마지막에는 마법 상점의 유래와 마녀 스이의 과거가 밝혀진다. 그 장면을 읽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나도, 누군가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 실수도, 상처도, 후회도 모두 내 이야기의 일부이며,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작은 불빛이 될 수도 있다고. 내가 실패한 인생을 산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데 시간이 조금 더 걸렸을 뿐이라고.


혹시 지금 지쳐 있다면, 조용히 이 책을 건네고 싶다. 향긋한 허브 냄새가 감도는 마법 상점의 문을 조심스레 열어보기를. 어쩌면 그곳에서, 내일을 살아갈 용기의 한 조각을 건네받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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