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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달새 언덕의 마법사
오키타 엔 지음, 김수지 옮김 / 비채 / 2025년 5월
평점 :

☆비채서포터즈3기 출판사지원도서입니다.
다시 일어서는 마음을 위한 작은 마법
살다 보면 정말 모든 걸 놓아버리고 싶어질 때가 있다. 내게는 그 시간이 유난히 길었다. 일은 뜻대로 풀리지 않고, 가족과의 관계도 점점 서먹해졌다. 문득, 아무도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실패한 인생”이라는 이름표 하나를 달고 살아가는 기분이었다.
“마음속 가장 간절한 소원, 이루어드립니다.” 처음엔 단순한 판타지일 거라 생각했다.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 기분을 달래주는 가벼운 이야기쯤으로 여겼다. 그런데 책장을 넘길수록, 이상하게 마음이 위로받고 있었다.
봄의 흉터, 여름의 이별, 가을의 자책, 겨울의 상실. 이야기 하나하나가 내 마음 깊숙이 박혀 있던 고통과 닿아 있었다. 고등학생 소녀 메이는 어릴 적 사고로 생긴 흉터를 없애고 싶어 한다. 그 상처는 흉터가 아니라, 나이 오십이 되도록 치유되지 않은 내 자책처럼 느껴졌다. 사랑을 잃고 웃는 법을 잊은 청년, 영감을 잃고 방황하는 작가, 고양이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싶어 하는 화가까지 — 그들의 사연이 곧 내 이야기처럼 다가왔다.
이 소설이 정말 특별한 이유는, 마녀 스이라는 인물 덕분이다. 그녀는 단번에 기적을 일으키지 않는다. 대신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 마음의 소리를 듣게 하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손을 내민다. 실패를 부끄러워하지 않도록, 상처를 숨기지 않도록, 그리고 ‘나는 지금 충분히 애쓰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알아차릴 수 있도록 도와준다.
나는 특히 미노루 화가의 이야기에 오래 머물렀다. 유일한 가족인 고양이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싶어 종달새 언덕을 찾아온 노인. 그의 조용하지만 용기 있는 바람과, 곁에서 묵묵히 머물러준 마녀의 말이 오랫동안 마음에 남았다.
“이별은 끝이 아니라, 기억을 남기는 일이다.” 그 한 문장이, 내가 잃어버렸다고만 생각했던 시간들을 다시금 소중하게 안게 해주었다.
이야기의 마지막에는 마법 상점의 유래와 마녀 스이의 과거가 밝혀진다. 그 장면을 읽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나도, 누군가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 실수도, 상처도, 후회도 모두 내 이야기의 일부이며,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작은 불빛이 될 수도 있다고. 내가 실패한 인생을 산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데 시간이 조금 더 걸렸을 뿐이라고.
혹시 지금 지쳐 있다면, 조용히 이 책을 건네고 싶다. 향긋한 허브 냄새가 감도는 마법 상점의 문을 조심스레 열어보기를. 어쩌면 그곳에서, 내일을 살아갈 용기의 한 조각을 건네받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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