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장강명 외 지음 / 북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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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지원도서


일곱 작가가 길어 올린 ‘한강’의 무지개 빛


주말의 돗자리, 치킨과 라면의 낭만, 러닝의 트랙, 퇴근길 창밖의 검푸른 물로만 보았던 한강을 매일 같아 보여도 결코 같은 물줄기일 수 없는 강으로, 일곱 작가가 서로 다른 장르의 옷을 입혀서 보여준다. 그중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장강명의 〈한강의 인어와 청어들〉은 한강을 도시의 현실에서 미끄러뜨려, 반인반수의 세계로 데려간다. 인어와 청어의 전쟁이라는 설정은 화려하지만, 더 무서운 건 터전과 생존을 둘러싼 논리다. 누가 이 강을 가질 자격이 있는지, 누가 밀려나야 하는지, 그 질문이 판타지의 비늘 아래에서 현실처럼 반짝인다.

정해연의 〈한강이 보이는 집〉은 한강을 욕망의 프리미엄으로 만든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뷰(종묘 뉴스가 생각나는 건 나뿐일까), 그림 같은 집, 그리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살인. 특히 '한강에는 CCTV가 없다'는 문장이 던지는 공포가 좋다. 도시가 자랑하는 공간이, 동시에 죄가 숨을 구멍이 될 수 있다는 사실. 미스터리는 사건을 추적하지만, 정해연은 그 집을 욕망의 구조로 해부한다.

차무진의 〈귀신은 사람들을 카페로 보낸다〉는 한강 변 ‘유리 카페’라는 근사한 공간을, 기묘한 군중심리와 괴담의 무대로 뒤집는다. 손님이 없던 카페가 한순간에 북적이는 이유, 젖은 머리의 여자, 그리고 어딘지 석연치 않은 흐름. 차무진 특유의 리듬은 '이상한데, 다음 문장을 안 볼 수 없게' 만든다.

박산호의 〈달려라, 강태풍!〉은 이 책에서 가장 예상 밖의 온도를 준다. 주인에게 버림받은 과거를 가진 시바견 ‘태풍’이 엄마(새 가족)를 찾아 달리는 이야기. 한강이 늘 인간의 서사만 품는 게 아니라는걸, 이 작품이 보여준다. 떠나간 존재를 찾는 마음은 종을 가리지 않고, 그 마음의 속도가 때로 가장 잔혹한 현실을 이긴다.

『한강』의 기획이 돋보이는 점은 일곱 편이 서로를 잡아먹지 않는다는 것이다. 각자의 장르가 선명한데, 한강이라는 하나의 물줄기가 느슨하게 연결하고 있다.

이제 한강을 지나칠 때 나는 예전처럼 보지 못할 것 같다. 강물의 검은 윤곽 뒤로 인어의 비늘, 유리창의 반사, 달리는 발의 리듬, 젖은 머리의 환영, 개의 숨소리, 폭염의 어지럼, AI의 안내 멘트가 겹쳐 보일 것 같다. 이 앤솔러지에 나는 감염되었다.(콜록)


#한강 #장강명 #정해연 #임지형 #차무진 #박산호 #조영주 #정명섭 #북다 #일파만파독서모임 #앤솔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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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관찰자의 기후 노트 - NASA 과학자 이은지의 기후 특강
이은지 지음 / 한길사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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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지원도서


기후 뉴스가 하루도 조용히 지나가지 않는 시대에, 나는 다음 세대에게 어떤 지구를 건네줄 수 있을까?

아이를 키우다 보면, 이 질문은 더 이상 거창한 담론이 아니라 일상 깊숙이 스며드는 죄책감의 그림자처럼 따라온다. 그래서 『지구 관찰자의 기후 노트』를 펼쳤을 때, 마음이 먼저 조용해졌다. 막연함을 조금이라도 이해로 바꾸고 싶었던 내 마음을 책이 먼저 알아봐 주는 듯했다.

기후 위기를 공포나 도덕적 비난이 아닌, 정확한 관측을 바탕으로 차분하게 설명하고 있다. 지구 온도의 흐름, 탄소의 이동, 물의 순환처럼 우리 곁에서 늘 일어나고 있는 일이지만 제대로 알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하나의 서사처럼 이어진다. NASA가 하늘에서 바라본 지구의 기록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의 ‘의무기록지’와도 같다. 아픈 이유를 알아야 제대로 돌볼 수 있듯이 말이다.

책을 읽는 동안 가장 깊게 와닿았던 문장은, 결국 기후 위기의 해답은 특별한 누군가가 아니라 ‘우리 모두’라는 사실이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느리지만 꾸준한 변화가 결국 판을 바꾼다고 말해주는 그 목소리가 오래 남는다.

기후 공연을 기획하며 대중과 연결되려 했던 저자의 경험도 인상적이었다. 과학자가 느낀 마음의 빚을 예술로 풀어내려 한 그 고백은,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작은 실천을 시작해온 내 일상과도 닮아 있었다.

『지구 관찰자의 기후 노트』는 기후 위기를 ‘두려움의 언어’가 아니라 ‘이해와 희망의 언어’로 바꾼다.

읽고 나면 거대한 책임감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한 걸음부터 시작해도 괜찮다는 용기가 스며든다. 플라스틱을 덜 쓰는 습관처럼, 난방 온도를 조금 낮추는 선택처럼, 혹은 아이와 함께 나무 이름을 외우며 자연을 더 사랑하게 되는 작은 순간들처럼.

이 책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에 이제 나의 대답은 부끄러움에 머무르지 않고, 미안함을 행동으로 바꾸는 어른이 되고 싶다. 그림자 같은 죄책감을 걷어내게 해준 책, 내게는 그런 의미였다.


#지구관찰자의기후노트 #이은지 #한길사 #일파만파독서모임 #기후노트 #기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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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작가의 사유와 글쓰기
김보영 지음 / 디플롯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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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지원도서


김보영 작가의 책을 펼칠 때마다 느끼는 건, 차갑지 않은 상상력이다. 과학적 개념이 앞서기보다 인간과 비인간의 마음결을 끝까지 붙잡는, 특유의 따뜻한 단단함. 나는 그것을 오래 좋아해왔다. '책방소풍'에서 열렸던 북토크에서, 작가가 말하던 낮고 단단한 목소리를 한 번 듣고 난 후로는 더더욱. 그때 들었던 말들이 책 속 문장과 겹쳐 흐르는 느낌이 들어 더욱 친밀하게 읽었다.


『SF 작가의 사유와 글쓰기』는 소설이라는 세계를 살아 움직이게 하는 힘, 그리고 그 힘을 다루는 창작자의 태도를 정직하게 보여준다. SF를 규정하려 들지 않고, SF가 어떤 방식으로 세계를 확장하고 인간을 바라보게 만드는지, 작가가 직접 체화한 방법을 통해 보여준다.


“당신이 한껏 자유로워진다면 그 글은 어쩌면 SF에 가까워질지도 모른다.”

마음을 움직이는 것에서 출발하고, 그 관심을 자유롭게 따라가라는 것. SF는 ‘모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에서 태어난다고.


작가가 강조하는 ‘주설정’ 개념도 흥미롭다. 그의 소설에서 배경이 단순한 무대가 아니라 또 하나의 주인공처럼 작동했던 이유가 설명된다. 《저 이승의 선지자》의 세계관이나 《종의 기원담》의 감각은 바로 이 설정이 인물과 함께 서사를 이끌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삶이라는 설정 안에서 살아가는 존재이기도 하기에, 이 설명은 묘하게 현실과도 겹쳐진다.


가장 짜릿했던 부분은 ‘뻔뻔하게 틀리라’는 조언이었다. 핵심은 과감하게 틀리되, 나머지는 철저히 엄밀하라는 것. SF의 쾌감이 바로 이 대비에서 온다는 설명은 작가의 작품을 떠올릴수록 고개가 끄덕여졌다.


또 하나 중요한 비책은 이중 스토리라인이다. 과학적 서사와 감정의 서사를 동시에 흐르게 하여 독자를 끝까지 붙잡는 방식. 〈인터스텔라〉의 부성애가 블랙홀의 과학만큼 강렬했던 이유처럼, 김보영의 작품도 언제나 감정의 줄기를 잃지 않는다.


삶도 소설과 닮아 있다. 정답을 말하려 하기보다, 하루하루의 디테일이 결국 세계를 만든다. 작가의 이 조언은 단순한 창작론을 넘어, 세계와 다시 연결되는 방식에 대해 속삭이는 듯했다.


오랫동안 김보영 작가를 사랑해온 독자로서, 이 책은 ‘어떻게 쓸 것인가’를 가르치는 책이 아니라, ‘어떻게 다시 살아볼 것인가’를 조용히 묻는 책이었다.



#SF작가의사유와글쓰기 #김보영 #디플롯 #일파만파독서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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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러드문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13
요 네스뵈 지음, 남명성 옮김 / 비채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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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채서포터즈3기 출판사지원도서입니다.


노르딕 누아르를 처음 읽었을 때 나를 강하게 끌어당긴 것은 차갑게 식은 공기, 눈이 내리는 거리의 고요, 그리고 그 속에 스며드는 사람들의 상처였다. 그 시작이 《스노우맨》이었다면, 《블러드문》은 그 세계를 다시 처음부터 새롭게 보게 만드는 작품이다.


삼 년 만에 돌아온 해리 홀레는 더 깊고 더 아픈 모습으로 오슬로의 밤을 다시 뒤흔든다. 예전보다 고뇌는 덜해 보이지만, 망가졌으면서도 이상하게 멋스러운 분위기를 풍긴다. 번역이 달라서인지, 아니면 작가가 해리를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고 있어서인지 모르겠지만, 낯설면서도 확실히 매력적이다.


모든 것을 잃은 사람처럼 보이던 해리는 루실이라는 여성을 도와준 작은 계기로, 오래 숨겨두었던 ‘본능’을 다시 깨운다. 그 본능은 그를 다시 오슬로로 불러들이고, 또 한 번 어두운 사건의 중심으로 이끈다.

이번 사건은 요 네스뵈 특유의 기괴한 분위기가 가장 강하게 드러난다.


기생충, 성범죄, 근친상간 같은 보기 힘든 내용들이 이야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연결되며, 노르웨이의 차가운 공기와 ‘붉은 달’의 이미지가 겹쳐 읽는 내내 몸이 서늘해진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여자를 사랑하던 해리가 아니라 ‘아들을 사랑하는 해리’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라켈을 잃고 완전히 무너졌던 그에게, 다시 지켜야 할 사람이 생긴 것이다.


그동안 경찰 조직 안에서 활약하던 해리는 이번 책에서 경찰 밖에서 홀로 싸운다. 부패한 경찰, 죽음을 앞둔 심리학자, 택시 기사 같은 결점 많은 사람들이 해리와 함께 움직이는데, 이 팀은 어쩐지 해리 자신을 닮아 있다. 이들과 함께하면서 시리즈의 분위기도 자연스럽게 달라진다. 이 변화가 해리를 어디로 데려갈지 알 수 없기에 더 궁금해진다.


노르웨이의 거친 공기와 해리 홀레의 상처가 겹쳐지자, 다시 북유럽의 차가운 풍경 속으로 돌아가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스노우맨》으로 처음 떠올렸던 노르웨이의 이미지가 《블러드문》에서 다시 또렷하게 살아난다. 언젠가 오슬로의 골목을 걸으며 해리가 지나갔을지도 모를 회색 풍경을 직접 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요 네스뵈는 이번에도 또 다른 연쇄살인범의 그림자를 남겨놓았다.

그것만으로도 이 길고 긴 시리즈의 다음 이야기를 기다릴 이유는 충분하다.


#블러드문 #요네스뵈 #비채 #해리홀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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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누구든
올리비아 개트우드 지음, 한정아 옮김 / 비채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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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채서포터즈3기 출판사지원도서입니다.


《네가 누구든》 — 서로를 비추는 두 개의 유리창, 그리고 그 너머의 여성들


바닷가의 한적한 교외, 오래된 집 하나와 유리의 성 같은 새집 하나. 이 소설은 그 두 공간 사이에서 흔들리는 여성들의 마음을 아주 조용하지만 날카롭게 비춘다.


미티와 레나.

하나는 스스로 몸을 숨긴 여자,

하나는 누군가에게 숨겨진 여자.


나는 이 둘이 서로를 발견해가는 과정을 따라가며, 어느새 그들의 두려움과 의심을 내 삶의 모서리에 겹쳐 놓고 있었다. 회사에서의 시선들, 엄마로서의 역할들, 여성이라는 이름 아래 요구되는 매끄러움들. 내가 매일 눌러 삼키던 감정들이 작품 속 유리창에 비치는 듯했다.


새로 지어 올린 집의 투명한 벽 너머로, 레나는 완벽한 존재처럼 보이지만 어딘가 잠겨 있는 듯한 눈빛을 하고 있다. 어떤 자격이 있다고 믿는 확신이 아닌, ‘내가 이 삶의 주인인가?’를 의심하는 표정. 그런 그녀에게 오래된 집의 미티와 베델이 다가가고, 그 순간부터 소설은 여성들이 서로를 통해 자신을 재구성해가는 여정을 은은하게 보여준다.


미티는 레나를 동경도, 질투도 아닌 묘한 친밀함으로 바라본다. 그것은 여성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여성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갇혀 스스로의 역사를 의심해야 하는 삶을, 이미 어느 정도 지나온 사람만이 느끼는 감각. 그 감정의 실루엣은, 시인이 언어를 다루듯, 묵묵히 그러나 깊게 페이지에 스며든다.


레나가 말하는 순간들, “내 과거가 내 것이 아닐지도 몰라요.”

이 문장을 읽으며, 우리는 늘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살아가지만, 미티와의 연대는 레나에게 처음으로 ‘나’라는 감각을 준다. 서로의 상처가 조심스레 맞닿을 때, 아이를 키우며 종종 느꼈던 ‘나도 사라지고 누군가의 그릇으로만 사는 건 아닐까’ 하는 감정도 조용히 떠오른다.


그리고 베델.

세월이 남긴 그림자를 품고 있으면서도, 두 젊은 여자를 굳이 잡지도 밀어내지도 않는 존재. 그녀는 이 이야기에서 가장 단단한 리듬을 만들어낸다. 어쩌면 여성을 지키는 방식은 늘 이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크게 울지 않고, 크게 말하지 않고, 다만 곁에 있어주는 일.


소설은 스릴러의 문법을 따르지만, 나는 이것을 ‘여성의 자기 복원 서사’로 읽었다.

의심하고, 벗어나고, 서로를 통해 스스로를 다시 쌓아 올리는 일. 그런 각성의 순간들을 이렇게 조용한 문장으로, 그러나 이토록 날카롭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시인의 첫 장편은 놀랍도록 단단하다.

더욱이 영화화가 확정되었다니,,, 심장은 더 뛰었다.


유리창 사이에 선 레나의 실루엣, 밤마다 바닷가를 걷는 미티의 그림자, 그리고 그들을 낡은 집 안에서 바라보는 베델의 눈빛. 이미 여러 장면이 머릿속에서 영사되고 있다. 여성의 연대가 가진 떨림을 스크린에서도 다시 만나고 싶다. 시인의 문장이 움직이는 순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우리는 서로를 구경하는 존재가 아니라, 서로를 깨우는 존재라는 것.

그리고 여성의 삶은 타인의 시선이 아닌, 스스로 만든 빛 아래에서 비로소 살아난다는 것.

이 조용한 소설은 우리에게 그 진실을 우아하게, 그러나 단호하게 속삭인다.


#네가누구든 #올리비아개트우드 #비채 #비채서포터즈3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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