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한국사
김재완 지음 / 믹스커피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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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지원도서


기묘한 이야기 속에서 되살아나는 전통의 맥


『기묘한 한국사』는 ‘전통’이라는 낱말이 잊히고 마모되는 시대, 그것을 새롭게 되새기게 하는 기묘한 문(門)이다. 역사를 단지 교과서 속 연표나 영웅담으로만 소비해온 이들에게, “그날, 한국사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묻고 있다. 우리는 그저 흘러간 과거가 아닌, 여전히 우리 안에 ‘살아 있는 전통’을 마주하게 된다.


한때는 교과서의 답안을 외우기 바빴던 나에게 이 책은 단순히 흥미로운 미스터리의 나열을 넘어, 오래된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힘이 있다. 역사란 단지 사실이 아닌, 기억이고 해석이며, 그것을 둘러싼 사람들의 삶이기 때문이다.


책은 다섯 장으로 나뉘어 한국사의 기묘한 장면들을 풀어낸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가 10번이나 주인을 바꾸며 오늘날 박물관에 도달한 여정은 단순한 소유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지켜낸다는 것'의 의미, 예술과 정신을 후손에게 남기려 했던 전통의 의미를 되묻게 한다. 그 여정 하나하나에 고개를 숙이게 된다. 그저 그림이 아니라, 시대와 사람의 숨결이기 때문이다.


또한, 『정감록』을 둘러싼 금서 이야기나, 산송으로 벌어진 400년의 묘소 다툼은 단순히 땅과 조상, 명당을 둘러싼 집착은 농경민족이자 제례 문화를 중시해온 우리의 정체성 그 자체다. 요즘은 봉분 하나 없이 납골묘로 간소화되기도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조상의 묏자리를 통해 자손의 안위를 기원한다. 조선 시대의 묘지 소송이 내게는 조부모님의 제사 문제로 충돌하던 지난날의 기억과 맞닿는다.


세 번째 장에서 다룬 우범선과 우장춘 부자의 이야기에는 시대의 상흔이 녹아 있다. 친일파의 아버지와, 식량 문제 해결을 위해 평생을 바친 아들의 삶은, 분열된 시대를 살아낸 이들의 고통스러운 발자취 속에서 가족이라는 작고 사적인 역사가, 거대한 민족사의 윤곽 속에서 얼마나 치열하게 흔들릴 수 있는지를 보았다. 역사는 결국 개인의 이야기이기도 하니까.


또한 조선의 내시와 궁녀, 화공과 역관의 삶을 들여다본 마지막 장은, 지금껏 ‘주인공’이 아니었던 이들의 목소리를 되살린다. 내시가 단지 거세된 하인이 아니라, 왕권의 신뢰를 받고 국정을 이끌던 고위 관료였다는 사실은 우리가 얼마나 많은 ‘편견의 역사’를 배워왔는지를 반성하게 만든다. 전통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해석되고 재발견되는 것이다.


“그날, 무슨 일이 있었을까?” 하는 물음은 결국 “오늘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잊고 있는가?”라는 자문으로 이어진다. 『기묘한 한국사』는 역사를 사랑하는 모든 이에게 작은 횃불이 되어 줄 것이다.


#기묘한한국사 #김재완 #믹스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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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몰 프레임
조성환 지음 / 미메시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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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지원도서


누구나 한 번쯤 깊이 들여다보게 되는 인생의 주제들


탄생과 죽음, 공존과 고립, 선함과 폭력성에 대해 아주 독창적이고도 시적인 언어로 말을 걸어온다. 이 책을 덮고 나니, 어쩌면 나 역시 거인의 일부였고, 언젠가는 사신의 그림자 아래 놓일 운명을 지닌 존재임을 새삼 실감하게 되었다.


1부 「제네시스」는 익숙한 창세 신화를 낯선 언어로 새롭게 조명한다. 거인은 우리 안에 있는 원초적 본성처럼 보인다. 파괴와 고립의 상징인 남성형 거인과, 소통과 절제를 상징하는 여성형 거인의 관계는 단순한 젠더 구도가 아니라 인간 내면의 양가성 그 자체다.


내가 젊었을 땐 이 이야기를 단순한 판타지로 읽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제는 안다. 서로 다른 성향이 충돌하면서도 결국 다시 만나고 분리되는 이 과정은 인간이 타인과 관계를 맺고, 그 안에서 끊임없이 자기를 재구성하는 순환의 구조임을.


2부 「무명 사신」은 내게 더 날카롭게 다가왔다. 긴 삶을 살아갈수록 죽음은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고, 동시에 더 복잡한 의미로 다가온다. 사신조차 감정에 휘말려 인간의 삶 앞에서 망설이는 모습은, 마치 병원 중환자실에서 생명 연장의 결정 앞에 선 가족들의 마음을 떠오르게 했다. 그 누가 감히 생사의 경계를 명확히 나눌 수 있겠는가? 인간의 생명을 관리하는 사신들조차 ‘너무 인간적’인 존재였다.


인생의 어느 언덕을 지나 다시 한번 숨 고르기를 하는 나이에, 조성환의 이 작품은 단숨에 읽히지만 단숨에 이해되지는 않는다. 되려 그 여운은 오래 남아, 며칠이고 곱씹게 한다. 그것이 이 그래픽 노블의 진짜 힘이다.


조성환 작가는 감정의 극단을 보여주지 않으면서도, 섬세한 균형 속에 무게를 실어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태어났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며, 결국 어디로 가는가. 인간을 비추는 ‘산’의 눈과, 인간을 수거하는 ‘사신’의 손끝이 겹쳐지는 지점에서, 나는 인간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고통받고, 그래서 더욱 희망을 품게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스몰 프레임』은 찰나의 아름다움과 영원의 두려움을 함께 들여다보게 만든다. 삶과 죽음을 한 번에 들여다보고 싶은 이에게, 아니 그 경계에서 삶을 다시 묻고 싶은 이에게 꼭 권하고 싶은 책이다. 조용히 사유하고 싶은 여름밤, 이 책을 펴들어보시라. 그림은 말이 없지만, 생각은 끝이 없을 것이다.


#스몰프레임 #조성환 #미메시스 #박정민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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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그대로의 자연 - 우리에게는 왜 야생이 필요한가
엔리크 살라 지음, 양병찬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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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지원도서


우리는 자연을 되살릴 마지막 세대일지 모른다.


책장을 넘기며 몇 번이나 숨 고르기를 했다. 엔리크 살라가 쓴 『자연 그대로의 자연』은, 마치 지구 생명 전체에게 보내는 절절한 연애편지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 안엔 간절함, 절박함, 그리고 무엇보다 진실이 담겨 있다. 기후 위기 뉴스에 하루에도 몇 번씩 가슴이 답답해지는 사람에겐 이 책이 “지금 내가 왜 싸우는가”를 새삼 되짚게 해주는 강력한 도화선이었다.


살라는 환경단체가 흔히 말하는 “자연은 소중하니까 지켜야 해요”라는 식의 당위에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과학자이고 탐험가이며, 동시에 활동가로, 자연을 이상화하지도, 낭만적으로 포장하지도 않는다. 야생을 경외하지만, 그 야생이 인간 없는 곳에서 가장 잘 작동한다는 진실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다. 체르노빌, 옐로 스톤, 사막의 야생화들. 그들은 인간이 사라지자 되살아났다. 뼈아픈 진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건드렸고, 이제야 비로소 조금 물러나는 법을 배워야 할 때다. 자연은 우리에게 "기회"를 주고 있지만, 그 기회는 무한하지 않다. 늑대를 다시 들여보낸 옐로 스톤에서, 사슴의 수가 조절되고 강이 제 흐름을 찾았다는 이야기는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건 자연이 원래 그렇게 작동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오직 인간만이 그 시스템을 '설계 가능한 대상'으로 착각해왔던 것이다.


경제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이 책은 매우 설득력 있다. 해양 보호 구역을 만들자 물고기 수가 폭증했고, 어민들의 수익이 늘었다. 단일 작물보다 다양성이 높은 환경이 병해충에도 강하다는 건 이미 과학적으로 수십 번 입증되었다.


문제는 우리가 ‘듣지 않으려 한다’는 점이다. 자연을 살리는 방법은 인간이 더 많이 개입하는 것이 아니라, 더더더 적게 개입하는 것이다.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은 어쩌면 개발 논리보다도, 인간 중심주의라는 환상일지도 모른다. 창밖에 보이는 여름으로 향하는 도시의 공기, 빛, 그리고 매연 속에서도 들리는 참새 한 마리의 짹짹 소리. 그 작은 생명이 사라지지 않도록, 지금 우리가 이 책을 읽고, 조금은 멈춰야 할 때다.


이 책은 우리 모두가 읽어야 할 ‘생존 매뉴얼’이자, ‘윤리 교과서’로 “야생은 선택이 아니라, 미래다.”라고 외치고 싶어진다.


#자연그대로의자연 #엔리크살라 #열린책들 #우리에게는왜야생이필요한가 #인간중심주의 #야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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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파리를 불태운다
브루노 야시엔스키 지음, 정보라 옮김 / 김영사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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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지원도서


“모두가 웃으며 손을 흔드는 세상, 정말 가능할까?”


《나는 파리를 불태운다》는 자본주의 도시의 중심인 파리를 한순간에 무너뜨리는 전염병을 통해, 우리가 익숙하게 여기는 ‘정상 사회’가 얼마나 위태로운지 보여준다.


주인공 피에르는 하루아침에 해고되고, 연인에게도 외면당한다. 불안정한 일자리, 주거 문제, 경쟁 속에서 인간이 도구처럼 쓰이다 버려지는 현실. 이는 소설 속 1920년대 파리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다. 언제든 해고 통보를 문자로 받을 수 있고, 인간관계마저 돈과 지위로 평가받는다.


피에르의 분노는 사회를 향하고, 그는 결국 흑사병을 퍼뜨려 도시 전체를 마비시킨다. 이 극단적인 행동은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그 이면에는 ‘왜 이렇게 끝까지 몰렸는가’에 대한 질문이 있다. 개인의 삶이 사회 구조에 의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전염병으로 도시가 봉쇄되자 파리는 여러 공동체로 쪼개진다. 인종, 계급, 이념에 따라 구역이 나뉘고, 각자 자신만의 ‘이상 사회’를 꿈꾸며 새로운 세상을 세우려 한다. 어떤 공동체는 평등을 외치지만 그 안에서 또 다른 폭력이 생기고, 어떤 지도자는 해방을 말하지만 결국 권력을 탐한다. 이것은 우리가 흔히 겪는 정치의 모순과도 닮아 있다.


흑사병을 퍼뜨리고 파리를 불태우는 단순한 절망으로 끝나지 않는다. 폐허가 된 도시 위에서 새로운 삶의 가능성이 피어난다. 농사를 짓고, 나눔이 있고, 웃음이 있는 공동체. 모두가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 비현실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그런 세상을 꿈꾸는 희망이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다.


《나는 파리를 불태운다》는 자본주의의 병폐를 뼈아프게 보여주되, 그 너머의 세계도 상상하게 한다. 우리가 너무 익숙해져서 문제라고 느끼지 못한 지금의 사회, 그 안에서 누군가는 매일 무너지고 있다는 걸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정보라 작가의 말처럼 “서로 도우며 함께 가는 길이 유토피아”일지 모른다. 우리 함께 그 길을 상상해보자.


#나는파리를불태운다 #브루노야시엔스키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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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 포 투
에이모 토울스 지음, 김승욱 옮김 / 현대문학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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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지원도서


다른 이야기들도 꼭 읽어보고 싶게 만드는, 기대감 가득한 첫 만남


짧은 단편 <밀조업자>를 다 읽고 난 후, 이 책이 왜 ‘크레센도의 거장’이 연주하는 변주곡 같다고 표현되었는지 곧장 이해할 수 있었다. 고요하게 시작된 이야기의 선율은 어느 순간 예기치 못한 음들을 만나고, 결국 내 안에서 감정이라는 오케스트라를 울렸다.


노신사의 행동은 과연 정당했을까? 토미는 잘못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선악이 명확하지 않은 상황 앞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의 윤리적 감각을 시험받는다. 그렇게 <밀조업자>는 단순한 이야기 너머의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그리고 그 질문은 책장을 덮은 뒤에도 한참을 머문다.


특히 메레디스가 토미에게 건네는 냉정한 대사는 오래도록 여운을 남긴다. "당신이 첼로 연주를 들을 때마다, 내가 당신에게 독선적이고 무신경한 개자식이라고 말한 일을 기억하면 좋겠어요." 그녀의 목소리는 연민과 분노, 슬픔과 단호함이 겹겹이 배인 인간 감정의 농도 그 자체였다.


<밀조업자> 한 편만으로도 이토록 깊은 사유의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면, 나머지 여섯 편과 중편은 또 어떤 결을 지닐까? 책장을 넘기기도 전에 마음이 먼저 설렌다.


잔잔하지만 날카로운 유머, 고요하지만 울림 있는 문장, 결이 살아 있는 인물들… <밀조업자>가 ‘생각하게 만드는 이야기’였다면,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들은 ‘나를 조금 더 알아가게 하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다른 단편이 절로 궁금해지는 이 첫 만남, 이미 훌륭한 시작이었다.


#테이블포투 #에이모투울스 #현대문학 #프리뷰북 #밀조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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