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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나무 숲 ㅣ ANGST
김인숙 지음 / 북다 / 2025년 12월
평점 :

☆출판사지원도서
버리지 못한 여자들의 시간과 비밀을 파헤치는 이야기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계속 망설이게 되었다. 추리소설인 줄 알고 집었다가 사회, 가족, 여성의 시간을 통째로 읽는 느낌이었다. 이 이야기를 무섭다고 말해야 할지, 슬프다고 말해야 할지.
『자작나무 숲』에는 쓰레기가 가득한 집이 나온다. 그 쓰레기 더미에 깔려 숨을 거둔 할머니가 유튜버의 카메라에 찍히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집에 쌓여 있는 쓰레기를 치우기 전에 그 안에서 뼈와 살아있는 사람이 발견된다.
버리지 못하는 사람 곁에서, 우리는 보통 너무 서두른다. 저장 강박에 대해 이야기할 때 사람들은 종종 이렇게 말한다. “왜 저걸 못 버려?”, “도와주면 되잖아.” 그런데 『자작나무 숲』을 읽다 보니 그 말들이 얼마나 성급한 것인지 알게 된다.
이 소설 속 할머니에게 쓰레기는 물건이 아니라 시간이고, 기억이고, 말하지 못한 이야기들이다. 그래서 누군가 대신 치워버리면 집이 깨끗해지는 대신 그 사람의 삶이 통째로 부정되는 느낌이 든다.
소설 속 손녀 모유리는 할머니를 완전히 이해하지도, 완전히 도와주지도 못한다. 그 모습은 답답하고 무력해 보이지만 오히려 그래서 현실에 가깝다. 누군가를 돕는 일은 항상 뚜렷한 해결로 이어지지 않으니까.
이 소설에서 쓰레기를 치우자 비밀이 드러난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들었다. 치우기 전에, 들어줄 수는 없었을까. 저장 강박을 겪는 사람에게 정리는 시작이 아니라 아주 마지막에 오는 일일지도 모른다.
『자작나무 숲』은 버리지 못한 게 문제가 아니라, 너무 오래 혼자였다는 게 문제였다고 이야기하는 듯하다. 그래서 더 조용히 아프다.
#자작나무숲 #김인숙 #북다 #일파만파독서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