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파 - 2018년 제3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대상
박해울 지음 / 허블 / 201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괴물 신인의 괴물 데뷔작★

 

<기파>는 2018년 제3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부분에서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대상을 수상한 박해울 작가의 데뷔작입니다. ​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으로 한국 SF의 우아한 계보라는 호평을 받았던 김초엽 작가는 '관내분실'과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이 두편의 작품으로 2017년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중단편 부분의 대상과 가작을 동시에 수상하는 영예를 누리기도 했고, 결국 2019년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하기도 했었죠. 이쯤 되니 내년 한국과학문학상은 또 어떤 괴물 신인을 등장시킬지 궁금하며, 동아시아 허블은 또 어떤 작품으로 우리에게 SF를 꿈꾸게 할지 사뭇 기대됩니다.

 

<기파>는 저자가 밝혔듯이 신라 경덕왕 때의 고승 '충담사'가 지은 화랑 기파에 대한 찬가 '찬기파랑가'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SF 소설입니다. 저자는 이 찬가를 접하며 기파가 진짜 이런 찬양을 들을 만한 인물이었을까?에 대해 생각을 하며 이야기를 구성해갔다고 합니다.

 

우주 택배원인 '충담'은 사고로 아내를 잃고 하나뿐인 딸은 기계 심장에 의지해야 하는 어려운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고가의 택배물을 도난당해 그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난파된 우주 크루즈 '오르카호'를 발견하게 됩니다.

 

'완벽한 인간에 의한 서비스'를 슬로건으로 내세운 초호화 크루즈는 '기파재단'이 설립될 정도로 난파선에서 의료 활동을 펼쳤던 유명한 의사 '기파'가 탑승했던 우주선이었죠. 크루즈의 소유주인 골드서클사는 오르카호에서 기파를 구해오는 자에게 엄청난 현상금을 걸었던 터라, 딸 연아의 생체 심장이식을 위해 충담은 단독으로 오르카호에 오릅니다.

 

하지만 오르카호의 내부는 그가 생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고, 유일한 생존자인 아누타를 만나 선내를 수색하던 중 '기파'가 즐겨 부르던 노래를 듣게 됩니다. 완전한 인간 충담과 반인간 아누타, 그들이 마주치는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요?

 

<기파>는 먼저 누구에게라도 추천할 만한 SF 소설입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디스토피아나 사이버펑크를 주로 다루진 않지만, '딜레마'라는 면에선 아주 월등한 필력으로 써 내려간 이야기이기도 하고요. 자식을 위하는 아버지, 반인간 아누타, 그리고 기파 그들 모두가 서 있는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는 옳고 그름도, 인간의 정의도 허물어지게 만듭니다. 그런 도덕적 딜레마가 단지 우주를 배경으로 쓰였을 뿐, 지구에 발을 딛고 사는 우리에게 벌어지는 일과 그다지 다르진 않아 보입니다.

 

마냥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저자인 90년 생 작가는 어떤 삶을 살고, 어떤 경험을 했기에 이런 글을 쓸 수 있었을까요? 문득 박해울이라는 작가를 품고 있는 90년대 생이 부러워집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반인간선언 - 증오하는 인간, 개정판
주원규 지음 / 자음과모음 / 201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반인간선언-증오하는 인간>은 얼마 전 종영한 OCN 드라마 '모두의 거짓말(주연: 이민기/이유영)'의 모티브가 된 원작 소설입니다. 드라마에 관해 찾아보니 ​원작의 설정과는 조금 다른 부분들이 있더군요. 기회가 된다면 두 작품을 비교해서 보는 포스팅도 한 번 해볼까 합니다.

김서희는 해능시 3선 의원인 김승철의 무남독녀입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얼떨결에 등 떠밀려 보궐선거에 출마한 그녀는 아버지의 후광 덕분인지 압도적인 표차로 국회의원에 당선이 됩니다. 그 무렵 4건의 살인을 연쇄로 보고 있던 광역 수사대 강력계 형사 민서는 광화문 광장 한복판에서 서희의 전 남편인 정상훈의 손목을 발견하게 되죠.

그리고 5명의 희생자가 CS 그룹과 관련이 있음을 알고 수사해 가던 중 국가의 에너지 사업을 수주받은 CS 그룹이 우성 조선 파업 현장에서 벌어졌던 10명의 산재사망사건에 관련이 있음을 알아내는데...

<반인간선언>에서 가장 중요한 등장인물은 남편인 정상훈과 길승호라는 두 명의 인물입니다. 김서희와 민서는 사건을 흘러가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인물이고요. 분명 흥미로운 소재와 자극적인 설정을 많이 가지고 있는데 어째 딱히 기억에 남는 건 없는 이야기입니다. 정경유착·재벌 탈선·소수인권 등 온갖 이야기들을 담으려다 보니 겉핥기 식이 되어버렸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특히 인물들 간의 관계는 읽으면서도 도무지 와닿질 않았고, 밑도 끝도 없이 죽어나가는 사람들에 대해선 '왜?'를 말하지 않습니다. 인간이 되기 위해 '반인간'을 자처한다는 발상도, 빅 브라더에 대한 의구심을 잔뜩 부풀려 둔 채 그냥 '끝'해버리면 '읭? 어쩌지?'라는 느낌이 들 밖에요. 중간중간 볼드체로 쓰여있는 인터뷰 내용이 진짜 맘에 들었는데 조금 아쉬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빅 피쉬
대니얼 월리스 지음, 장영희 옮김 / 동아시아 / 2019년 11월
평점 :
절판


★아버지를 위한 세레나데

 

<빅 피쉬>는 ​죽음을 앞둔 아버지 에드워드 블룸을 향한 아들 윌리엄의 세레나데이며, 결국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이별의 과정이기도 한 소설입니다. 팀 버튼 감독/이완 맥그리거 주연의 판타지 영화로 더 유명할 텐데요, 이번엔 국내에서 뮤지컬로 공연된다고 하니 원 소스 멀티 유즈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하겠습니다. 

 

주변인, 특히 부모의 죽음은 참 묘합니다. 우리 부모님도 사람인 이상 언젠가 죽음을 맞이하는 게 순리인데, 그 죽음이란 게 말이죠, 이상하게도 우리 부모님은 피해 갈 것 같은 그런... 음, 아예 죽음의 개념이 없는, 그런 감정이 느껴진단 말이죠. 그냥 우리 부모님과 죽음은 전혀 별개인 것 같은 그런 기분 말입니다.

 

피할 수 없기에 부재를 다스리기 위해, 또는 부재를 받아들이기 위해 우린 각자의 방법으로 그 상황을 맞이하게 되죠. <빅 피쉬>의 에드워드는 전국을 돌아다니는 세일즈맨입니다. 하지만 가정으로 돌아오면 늘 자기의 자리를 찾지 못해 안절부절하고, 가족을 사랑하지만 표현은 모자란 그런 평범한 남자였죠.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부재에 익숙한 윌리엄은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가 이야기해주던, 방방곡곡 돌아다니며 있었던 에피소드를 되돌아보며 비로소 '아버지'라는 존재를 이해하게 됩니다.

 

어린 시절 우리에게 아버지는 그 어떤 존재보다 영웅적 면모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뭐든지 다 해 줄 것만 같은 존재였으니까요. 위험에서 우리를 보호하고, 갖고 싶다는 말 한마디에 마법처럼 내 앞에 그것을 갖다 주던 아버지. 하지만 그 때의 아버지 나이쯤이 되어 보는 그분은, 어린 시절이 있었고, 꿈꾸는 청년 시절도 있었지만 그저 아버지로 살아야 했던 세월이 우리의 시간과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빅 피쉬>에서도 아버지가 해줬던 그 많은 이야기 속에 아버지의 꿈이 숨어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윌리엄은 아버지가 이야기해 준 판타지 속에서 아버지가 이루지 못한 꿈, 욕망, 희망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에드워드에게서 윌리엄에게로, 윌리엄에게서 그의 자녀에게로 계속 될 것입니다.

 

<빅 피쉬>는 판타지가 아닙니다. 윌리엄이 반복해서 말하듯 '이것은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우리가 아버지를 기억하는 한, 우리가 '한 사람의 이야기를 잊지 않는 한' 그는 우리의 추억 안에서, 기억 안에서 영원히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인생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세레나데, <빅 피쉬>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클린 코드
설혜원 지음 / 지금이책 / 201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7개의 이상한 나라 이야기-단편 소설의 미덕, 짧고 강하다★​ 

 

<클린 코드>는 7편의 단편이 실려있는 설혜원 작가의 단편 소설집입니다. 

 

 

★클린 코드★

호화 크루즈 여행 중 2012고합2037 사건에 연관된 ​4명(판사 강도현·산부인과 황정주 박사·남희중 목사·변호사 추지혜)은 강제로 클린 코드의 재판장에 서게 되는데... 

 

오늘날의 사회는 부조리극 자체가 되었고, 이 부조리 극에서 누군가 신의 역할을 하며 악인을 처벌해야만 오염된 세상이 조금은 깨끗해질 수 있겠죠. 그게 바로 법망을 피한 죄인들을 신을 대신해 심판하는 우리들, 클린 코드의 존재 이유입니다. 당신들같이 합법적인 범법자들을 벌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범법을 행하는 셈이죠.(52쪽)

 

 

★모퉁이★

'신데렐라악성증후군'과 '루시드 드림'의 삽화를 그려야 하는 일러스트레이터의 루시드 드림.

 

몰랐으면 좋았을걸, 기억해내지 않았으면 좋았을걸. 거세게 밀려드는 후회 때문에 몸이 저리고 떨려온다.(94쪽)

 

 

★독서실 이용자 준수사항

​아파트 단지 104동 미화원인 노순덕씨에 관한 기묘한 이야기. <클린 코드>에서 가장 흥미롭게 읽은 단편입니다. 이 책은 전체적으로 '기묘한 이야기'나 '어느 날 갑자기' 스타일의 이야기들이라서 때론 공포스럽기도, 때론 혼란스럽기도 한 내용이 담겨 있는데요, 그중에서도 104동 환경미화원인 노순덕 아줌마는 아주 카리스마가 넘치십니다. 단지 내 지하에 독서실이 있다는 설정도 신박하고요. 어떻게 104동만 유일하게 깨끗하고 공중도덕을 잘 지키게 되었을까요? 문득 우리 아파트 미화원 아줌마가 노순덕 아줌마가 아니라 다행입니다. 노순덕 아줌마의 104동 지하 독서실... 함께 가보시겠습니까?

 

내가 말했지? 104동 주민들은 다들 착하고 곱다고.(108쪽)

 

 

★셀프큐브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알게 된 이지영 실종사건에 연루된 서이원의 이야기.

 

나는 예술에 대한 예술을 만드니까요.(133쪽) 

 

 

★자동판매기 창고

어머니의 빈소에서 만나는 삼 남매의 이야기.

 

말 안 되는 일이 일어나는 것이 삶이고,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을 하는 주체가 인간이며, 결국은 인간의 형상을 한 괴물이라는 점이... (213쪽)

 

 

★메르피의 사계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화자話者는 누구일까?

 

같은 테이블에 앉아서 밥은 먹고 차는 마시면서 왜 같이 앉아 똥은 누지 않는 건지 저는 의아했습니다. 왜 그곳에서 자기를 꾸미고, 꾸민 모습만 서로에게 보여주는지도 알 수 없었습니다.(220쪽)

 

 

★월광

프로포폴 중독을 빌미로 성형외과 의사와 결혼한 여자의 이야기. 

 

중독을 벗어나기 위해선 다른 중독이 필요한 거야. 삶의 괴리를 잊기 위해선 감각을 사로잡는 새로운 마비가 필요하거든.(292쪽)

 

 

<클린 코드>는 전체적으로 기묘한 이야기(독서실 이용자 준수사항), 미스터리(클린 코드/자동판매기 창고), 심리 스릴러(모퉁이/셀프큐브/월광), 하다못해 SF적 상상(메르피의 사계)까지 담고 있으며 단편 소설이라는 한정에도 불구하고 각각의 이야기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기승전결을 가지고 있습니다. 빠른 호흡으로 진행되고 군더더기가 없는 것도 이 책의 속독을 가능하게 하고 있고요.

 

특히 작가 설혜원은 '문門​'이라는 장치를 즐겨 사용하고 있는데요, '클린 코드'에서는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단절된 재판장을, '모퉁이'에서는 자각몽을 꾸기 위해 이용하는 장치로, '독서실 이용자 준수사항'에서는 노순덕 아줌마의 영역으로 통하는 장치로, 셀프큐브에서는 알콜성 치매와 기면증이 있는 서이원의 의식으로 가는 장치, '자동판매기 창고'에서는 진실로 가는 장치, '메르피의 사계'에서는 인간과 비인간을 가르는 경계로, '월광'에서는 남편의 서재 문이자 진실에 이르는 판도라의 상자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클린 코드>에 실린 7개의 단편 중 '월광'이 저의 추천작이 될 텐데요, 불의하게 결혼 한 한 여자를 통해 또 다른 불의로 통하는 모습은 순간 사람을 멍하게 만드는 아우라를 내뿜고 있습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이상한 나라에 다녀온 기분이 듭니다. 책 표지라는 문을 열면 마주하게 되는 7개의 이상한 나라... 하지만 더더욱 깊이 그 속에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문을 열고 목격하는 7개의 '악惡', 이 세상엔 '정상 normal'이 없습니다. 그것이 너무도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설혜원의 <클린 코드>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거울 보는 남자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3
김경욱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런 사랑, 저런 사랑, 개와 늑대의 시간★

 

<거울 보는 남자>는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은지 1년 후, 남편과 닮은 남자 '영필'을 만난 '지우'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소설입니다. '안면이식'이라는 독특한 소재인데요, 헤드샷 자살 시도 후유증으로 안면 장애를 가진 영필이 지우 남편의 안면을 이식받은 것이었죠. 실제로 안면이식은 희귀 성형 케이스라서 아직까지 약 50건 정도 밖엔 이루어지지 않은 기술이라고 합니다.

 

이 책은 보는 사람에 따라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한 일종의 로맨스입니다. 남편의 사고 정황에 의심을 가진 보험 조사관의 한마디에 동석한 '누군가'에 대해 의구심을 갖게 되고, 우연히 남편의 사고 일자와 같은 날이 생일인, 남편의 안면을 이식받은 남자를 만나게 된다면 가장 먼저 뭐가 떠오르시겠어요?

 

작가인 김경욱의 전작 제목이기도 한 '개와 늑대의 시간'(물론 전 이준기/정경호 주연의 드라마가 제일 먼저 생각나지만요)은 하루에 두 번,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이른 새벽'과 해 질 무렵의 '늦은 오후'를 뜻하는 시간입니다. 이 무렵이 되면 주변의 사물이 명확히 보이질 않고, 실루엣만 간신히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개와 늑대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는 의미로 쓰인 거죠. 그래서 저 멀리 어슬렁거리며 다가오는 실루엣이 내가 '기르던 개'인지, 나를 '잡아먹을 늑대'인지 알 수 없는 그런 시간대를 의미합니다.

 

<거울 보는 남자>에서도 지우 앞에 두 명의 남자가 등장합니다. '남편'과 남편의 얼굴을 '이식' 받은 남자... 지우는 영필과 만남을 갖게 되면서 도무지 이 사람이 남편인지, 아닌지 구분할 수 없단 느낌을 받게 되고, 영필은 점점 지우의 남편에게 동화되어 가는 미묘한 상황이 전개됩니다.

 

어떤 주검 앞이든 살아남은 사람은 모두 살인자예요.(38쪽)

 

지우의 개와 늑대의 시간은 독자의 입장에선 참 견디기 힘든 시간입니다. 너무도 섬세하고 느린 템포로 진행되는 과정에서, 저자는 수없이 많은 의문을 제시하고, 또한 우리에게 동참하길 독려합니다. 그 독려에 힘입어 사건 속으로 뛰어들고, 지우의 시간을 동행하다 보면 저 또한 남편과 영필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그 시간 속에 있음을 깨닫게 되죠.

 

간신히 지우의 독백에서 벗어나 나름의 시간을 가져보려 해도 어느덧 내 앞에 고개 숙이며 서 있는 그녀를 발견해버리고 맙니다. 등장인물의 관계에 대해(비록 3명 뿐일지라도)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그들은 각자의 존재인 것 같기도 하고,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된 존재인 것도 같고, 또 어떤 땐 셋 같기도 하고, 둘 같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언제까지고 묶어둘 순 없어. 사자는 사자니까... 용기가 필요해. 사자를 풀어놓고 길들일 용기... 두려워하면 잡아먹히는 법이야.(82쪽)

 

<거울 보는 남자>는 딱 이렇다 할 결말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다만 죽은 남편이 가장 좋아했다는 그림 중 하나인 르네 마그리트의 '시크릿 플레이어'를 통해 '보이는 것이 다는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을 뿐이죠. 배트를 휘두르고 있는 남자와 공을 잡으려는 포즈를 취하고 있는 남자... 그럼 공을 '던지는' 사람은 어디에 있을까요? 그리고 이 그림을 창 문 안쪽에서 보고 있는 '나'는 누구일까요? 이 그림은 진짜 '지금'일까요?

 

<거울 보는 남자>도 생각하고 생각해 볼 수록 의문이 쌓여만 갑니다. 지금 내가 맞닥뜨린 이 시간은 지우의 '현실'일까요? 거울 속에서 나와 눈이 마주치고 남편과 닮은 남자는 '진짜 남편과 닮았을까요?' 아니면 지우의 '개와 늑대의 시간'이 보여주는 희미한 실루엣이었을까요?... 나의 거울은 '나'만 비추고 있을 뿐이니 그 답은 좀 더 숙고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