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 코드
설혜원 지음 / 지금이책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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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개의 이상한 나라 이야기-단편 소설의 미덕, 짧고 강하다★​ 

 

<클린 코드>는 7편의 단편이 실려있는 설혜원 작가의 단편 소설집입니다. 

 

 

★클린 코드★

호화 크루즈 여행 중 2012고합2037 사건에 연관된 ​4명(판사 강도현·산부인과 황정주 박사·남희중 목사·변호사 추지혜)은 강제로 클린 코드의 재판장에 서게 되는데... 

 

오늘날의 사회는 부조리극 자체가 되었고, 이 부조리 극에서 누군가 신의 역할을 하며 악인을 처벌해야만 오염된 세상이 조금은 깨끗해질 수 있겠죠. 그게 바로 법망을 피한 죄인들을 신을 대신해 심판하는 우리들, 클린 코드의 존재 이유입니다. 당신들같이 합법적인 범법자들을 벌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범법을 행하는 셈이죠.(52쪽)

 

 

★모퉁이★

'신데렐라악성증후군'과 '루시드 드림'의 삽화를 그려야 하는 일러스트레이터의 루시드 드림.

 

몰랐으면 좋았을걸, 기억해내지 않았으면 좋았을걸. 거세게 밀려드는 후회 때문에 몸이 저리고 떨려온다.(94쪽)

 

 

★독서실 이용자 준수사항

​아파트 단지 104동 미화원인 노순덕씨에 관한 기묘한 이야기. <클린 코드>에서 가장 흥미롭게 읽은 단편입니다. 이 책은 전체적으로 '기묘한 이야기'나 '어느 날 갑자기' 스타일의 이야기들이라서 때론 공포스럽기도, 때론 혼란스럽기도 한 내용이 담겨 있는데요, 그중에서도 104동 환경미화원인 노순덕 아줌마는 아주 카리스마가 넘치십니다. 단지 내 지하에 독서실이 있다는 설정도 신박하고요. 어떻게 104동만 유일하게 깨끗하고 공중도덕을 잘 지키게 되었을까요? 문득 우리 아파트 미화원 아줌마가 노순덕 아줌마가 아니라 다행입니다. 노순덕 아줌마의 104동 지하 독서실... 함께 가보시겠습니까?

 

내가 말했지? 104동 주민들은 다들 착하고 곱다고.(108쪽)

 

 

★셀프큐브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알게 된 이지영 실종사건에 연루된 서이원의 이야기.

 

나는 예술에 대한 예술을 만드니까요.(133쪽) 

 

 

★자동판매기 창고

어머니의 빈소에서 만나는 삼 남매의 이야기.

 

말 안 되는 일이 일어나는 것이 삶이고,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을 하는 주체가 인간이며, 결국은 인간의 형상을 한 괴물이라는 점이... (213쪽)

 

 

★메르피의 사계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화자話者는 누구일까?

 

같은 테이블에 앉아서 밥은 먹고 차는 마시면서 왜 같이 앉아 똥은 누지 않는 건지 저는 의아했습니다. 왜 그곳에서 자기를 꾸미고, 꾸민 모습만 서로에게 보여주는지도 알 수 없었습니다.(220쪽)

 

 

★월광

프로포폴 중독을 빌미로 성형외과 의사와 결혼한 여자의 이야기. 

 

중독을 벗어나기 위해선 다른 중독이 필요한 거야. 삶의 괴리를 잊기 위해선 감각을 사로잡는 새로운 마비가 필요하거든.(292쪽)

 

 

<클린 코드>는 전체적으로 기묘한 이야기(독서실 이용자 준수사항), 미스터리(클린 코드/자동판매기 창고), 심리 스릴러(모퉁이/셀프큐브/월광), 하다못해 SF적 상상(메르피의 사계)까지 담고 있으며 단편 소설이라는 한정에도 불구하고 각각의 이야기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기승전결을 가지고 있습니다. 빠른 호흡으로 진행되고 군더더기가 없는 것도 이 책의 속독을 가능하게 하고 있고요.

 

특히 작가 설혜원은 '문門​'이라는 장치를 즐겨 사용하고 있는데요, '클린 코드'에서는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단절된 재판장을, '모퉁이'에서는 자각몽을 꾸기 위해 이용하는 장치로, '독서실 이용자 준수사항'에서는 노순덕 아줌마의 영역으로 통하는 장치로, 셀프큐브에서는 알콜성 치매와 기면증이 있는 서이원의 의식으로 가는 장치, '자동판매기 창고'에서는 진실로 가는 장치, '메르피의 사계'에서는 인간과 비인간을 가르는 경계로, '월광'에서는 남편의 서재 문이자 진실에 이르는 판도라의 상자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클린 코드>에 실린 7개의 단편 중 '월광'이 저의 추천작이 될 텐데요, 불의하게 결혼 한 한 여자를 통해 또 다른 불의로 통하는 모습은 순간 사람을 멍하게 만드는 아우라를 내뿜고 있습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이상한 나라에 다녀온 기분이 듭니다. 책 표지라는 문을 열면 마주하게 되는 7개의 이상한 나라... 하지만 더더욱 깊이 그 속에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문을 열고 목격하는 7개의 '악惡', 이 세상엔 '정상 normal'이 없습니다. 그것이 너무도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설혜원의 <클린 코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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