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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자 생리학 인간 생리학
루이 후아르트 지음, 류재화 옮김 / 페이퍼로드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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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인간이 다른 동물보다 우위에 있다면

그 이유는 산책할 줄 알기 때문이다.(29)



잠시 나의 산책 모습을 떠올려보자. 일단 멍뭉이의 간식과 물을 준비하고, 하네스와 목줄, 용변봉투가 들어있는 배낭을 매면 준비 완료! 그날의 산책 코스를 정하는 것은 내 발밑에서 혀를 길게 늘어뜨리고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는 하얀 솜뭉치다. 그 녀석이 길 건너 언덕으로 가자 하면 가고, 오르막길이 싫어 국립공원 입구 주차장 쪽으로 가자 하면 오늘은 거기냐 하면서 길을 나선다. 저자인 루이 후아르트가 반려견과 함께 산책하는 사람을 보고 '혹독하게 개 훈련'을 시킨다고 투덜대는데, 나는 그 반대인 것 같은 이 느낌은 뭐지?


페이퍼로드에서 출간되는, 이름도 과학적(?)'인간생리학 시리즈''풍자(諷刺)시리즈'라 불러도 좋을 것 같다. 발자크 생리학 시리즈(공무원, 기자)를 통해 '인간생리학'이라는 정체불명의 괴상한 장르에 매료되었다. 아니, 발자크의 은근한 '돌려까기'에 홀딱 반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다. 루이 후아르트의 <산책자 생리학> 역시, 부제인 '좀스럽지만 친근한'이라는 표현에서 대충 어떤 느낌이 드는지 알 것 같아 피식 웃음이 새나왔다. 이런 이런, 우리 19세기의 낭만적인 신사분들 같으니라고.



산책할 줄 모르는 자는 산책하지 마라.

(197)



<산책자 생리학>1840~50년대 파리지엥 중 '도시를 활보하는 인간 부류'를 산책자로 지정하며, 그들을 관찰하고, 염탐하며, 범주화해서 분류를 해놓은 제법 과학적(?)인 도서다. 지금이야 산책이란 게 그냥 맘 편하게 슬슬 걷는 정도를 말한다면, 산책을 하기 위해 우선 '산책자'가 되어야 하는 루이 후아르트의 산책법은 꽤나 까다롭다.


먼저 '우수한 신체'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잘 돌아다니기 위한 튼튼한 다리, 주변의 여론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열린 귀, 주변을 잘 살펴보기 위해 밝은 눈도 필요하다. 또한 '정신적·도덕적' 자질도 지녀야 하며, 빚을 갚아야 하거나 산책을 하던 도중 채권자를 만날 위험을 피하기 위해 빚을 제때 갚을 '경제적 능력'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어디 그뿐이랴. 파리의 파사주에 즐비하게 늘어선 맛집, 훌륭한 장인이 만드는 모자집, 카페 등을 손바닥처럼 꿰고 있어야 하며, 광고 벽보도 꼼꼼히 살펴 그 내용을 외우고 있어야 한다. 적어도 읽기 정도는 가능한 외국어 능력도 필요하고, 하나의 소식이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정치적 헛소리나 은어 등 비속어에도 능통해야만 한다. , 이쯤 되면 이건 산책을 하자는 건지 대놓고 '너 까짓 게 무슨 산책?'이라며 깽판 놓는 건지 헷갈릴 지경이다.


산책자의 조건 외에도 조심해야 할 산책자 유형, 주의사항, 산책의 소소한 장단점 등 제대로 된 산책을 즐기기 위한 산책자의 조건은 까다롭기 그지없다. 그렇다면 세계 최초의 풍자 전문 일간지의 편집장이었던 루이 후아르트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관찰기를 내놓게 되었던 걸까? 이는 아마도 19세기라는 프랑스의 상황과 맞물려 있을 것이다. 산업혁명 이후 더 커져만 가는 빈부의 격차, 경제적 위기 속에서 자신들만의 세계에 갇혀 '산책하느라 바쁜' 우리네 신사분들에게, 혹은 그들을 따라가기 위한 '뱁새 같은 분들'에 대한 비판을 표현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산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적어도 바보는 아니며, 교양인 등이라 하는 표현에서 그들이 누구인지는 짐작할 수 있겠다.


누구나 유유자적한 산책자가 되길 원한다. 하지만 자신의 책무를 다하지 않고, 정작 시선을 보내야 할 곳은 외면하며, 쓸데없이 광고판의 문구나 줄줄 외우고 다니는 산책자는 그저 한량에 불과하다. 깃털 없는 두 발 달린 짐승인 인간이 통닭구이 장수한테 깃털을 뽑힌 수탉(28)이 되는 건 순식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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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계절 1 - 어느 교수의 전쟁 잊혀진 계절 1
김도형 지음 / 에이에스(도서출판)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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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正道)에서 벗어난 비주류에 대한 호기심은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한때 신학을 공부하고, 나름의 경력으로 인해 사이비나 이단은 조금 껄끄럽지만 비주류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학기 중에는 정통 교리와 더불어 국내외 이단에 관한 교육도 받게 되는데, 나는 불경스럽게도(?) 그들의 교리와 광적인 본질에 상당한 관심을 기울였었다.


여기서 한 가지 집고 가야 할 점은 '이단(異端)''사이비(似而非)'는 그 본질에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종교는 교파가 달라도 큰 틀의 교리는 공유하기 마련인데, 기존 종교의 교리 해석 문제로 혼란을 일으킨다면 그것을 '이단(전통이나 권위에 반항하는 주장이나 이론)'이라 한다. 이는 교단 내에서만 문제시될 뿐 사회적으로는 그다지 별다른 반향을 주지는 않는다. 반면 '사이비(似而非)'는 존재의 목적 자체가 범죄와 연루된다. 신앙의 이름으로 사회에 악영향을 끼치며 인간 교주를 신성시하거나 추악한 행위를 정당화시키는 조직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던 사이비에 관해 내가 처음으로 접한 사건은 19878월에 있었던 '오대양 집단자살 사건'이었다. 당시 오대양이라는 사이비 단체(구원파) 신도들의 집단 자살 사건이었는데 교주 박순자를 포함, 30여 명의 신도들이 식당 천장에서 기괴한 모양의 시신으로 발견된 희대의 사건이었다. 그 후 사이비는 사회의 표면에 드러나며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었다.


그로부터 20여 년 후, 대한민국은 다시 한번 사이비 파동으로 발칵 뒤집히게 된다. 바로 정명석이 교주로 있던 JMS, '기독교복음선교회' 사건이었다. 교주 정명석을 재림 예수라 칭하며 그의 모든 행위는 '섭리'에 있다고 하는 일종의 무오(無誤)설을 주장한 단체로, 30개론, 삼분설, 비유론 등을 통해 주로 대학가 중심의 포교 활동으로 세를 확장해 나갔다. 당시 각 대학마다 JMS 관련 동아리 한 둘쯤은 있던 시대였으니 그들의 세가 어느 정도였는지 충분히 짐작 가고도 남는다.


저자 김도현의 <잊혀진 계절(2)>2008년 정명석의 정체를 밝히고 죗값을 받는데 절대적인 수고를 마다하지 않은 카이스트 재학생이자 한때 JMS 신도였던 당사자의 르포르타주다. 그의 글을 통해 알게 된 JMS의 실체는 생각보다 더 어마어마하다. 한국을 넘어 중국, 홍콩, 일본에까지 이른 정명석의 악행은 웬만한 범죄자는 명함도 못 내밀 정도니 말이다. 강간, 살인, 납치, 보복 테러, 사기, 폭행 등 아마 우리나라 형법에 등장한 강력 범죄는 모두 이 책에 등장하는 것 같다.


비록 목숨을 건 한 사람의 노력으로 그들의 실체가 만천하에 공개되었다고는 하나 사이비를 우리 사회에서 발본색원(拔本塞源) 하는 일은 아직 요원하며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교주의 실형이라는 큰 타격을 입은 JMS는 아직도 건재하며, 그와 맞먹는 (아니 오히려 더 강대한) 단체 또한 수두룩하니 말이다. 종교는 인간의 약함을 보완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다. 하지만 인간의 악의는 그런 약함을 파고들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며 오늘도 당신의 주변을 맴돈다. 유신론자이든 무신론자이든 타인의 종교관에 간여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부디 당신이 사이비에 빠져 허우적대는 꼴은 보고 싶지 않다. 아직도 모르겠는가? 그렇다면 이미 실체가 드러난 JMS를 바로 아는 것부터 시작하자. 당신 곁의 종교단체 친구, 오빠, 언니, 동생이 당신의 삶을 지옥의 구렁텅이로 빠뜨리는 자들이 아니길 진심으로 바란다.


*출판사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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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 한 마리는 기쁨 - 두 아버지와 나, 그리고 새
찰리 길모어 지음, 고정아 옮김 / 에포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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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나를 에워싸고 있는 공기 같은 몇몇 존재들 중 '음악'이 있었다. 그 이유는 단연코 아빠의 영향이었는데 아빠는 유난히 영화와 음악을 좋아했고 나는 (엄마의 표현에 의하면) '지 애비를 닮아서' 영화와 음악을 좋아했다. 백일 무렵부터 그렇게 악을 쓰며 울어대다가도 주말의 명화 시그널이 나오면 울음을 뚝 그치고 뭔 소리인지도 모를 외국 배우들이 나오는 화면을 넋을 잃고 쳐다보다 잠들었다고 한다. 


초등학생쯤 되었을 때인가... 우연히 TV에서 마이클 잭슨의 Beat It 뮤직비디오를 보게 되었는데 그 뮤직비디오 한편은 나의 초딩 인생을 뒤흔들 정도로 충격적이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팝이라는 신세계를 접한 나의 폭주는 멈출 줄 몰랐다. 그 후 팝을 거쳐 자연스레 락(Rock)을 접하게 되었고, 수많은 장르로 갈라지는 락의 매력에 빠져 한동안 헤어 나오질 못했다.


하드락, LA메탈, 프로그래시브, 뉴웨이브, 하드코어, 모던락, 펑크, 얼터너티브... 온갖 장르의 락을 미친 듯이 빨아들이던 시절, 나는 다시 한번 충격적인 뮤직비디오를 접하게 되는데, 바로 핑크 플로이드의 'Another Brick in the Wall'이었다. 당시 획일화된 교육정책을 비난하며 나온 노래로, 특히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무표정한 얼굴로 낙하를 하고 잠시 후 갈린 고기가 화면 한가득 나오는 장면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이름을 지어주는 것은 놓아주는 것과 반대 방향의 행동이다. 이름을 짓는 것은 소유권을 설정하는 일이다. 하지만 벤젠이라는 이름은 휘발성을 암시하기 때문에 달아난다는 개념을 담은 것 같다. 벤젠, 자연물인 동시에 인공물. 반짝반짝 아른거리며 공중으로 휘발하는 물질. 새는 제 이름을 찾았다. (p.75)


<까치 한 마리는 기쁨>은 치기 어린 나의 청춘과 함께 했던 핑크 플로이드 데이비드 길모어의 의붓아들인 찰리 길모어가 쓴 논픽션으로, 생부인 히스코트 윌리암스(1960년대 유명한 작가이자 반문화계의 선두주자)를 이해하고, 자신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담담하게 써 내려간 아름다운 글이다.


어머니의 임신 소식을 듣고 낭송회장에서 말도 없이 그대로 떠나버린 아버지, 생후 6개월 되던 때 '당신은 나한테 과분해.'라며 갑자기 증발해 버린 아버지, 찰리가 20세가 되었을 때 면전에서 그를 거부한 아버지... 저자인 찰리 길모어는 아버지가 떠난 이유가 '나 때문에, 내가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내가 태어났기 때문에'라는 죄책감을 떨쳐버리지 못한 채 어른이 된다.


방황과 중독으로 얼룩진 20대를 지나 안정을 찾을 즈음 약혼녀 야나가 폐차장에서 한 마리 까치를 구해온다. 얼떨결에 까치 한 마리의 보호자가 된 찰리는 벤젠을 돌보며 많은 것을 배운다. 보이지 않던 것들을 들여다보게 되었고, 생명을 책임진다는 것의 무게와 시도 때도 없이 애정과 분노와 걱정을 오가는 그 시간들 속에서... 그는 자신을 본다. 그리고 아버지를 본다.


이복누이를 따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아버지를 마주할 때 느끼던 그 감정들, 처음을 내뱉은 '아버지를 사랑해요.'라는 말의 무게... 아버지가 사망한 후 드디어 발견한 그토록 알고 싶었던 '떠난 이유'. 이 모든 복잡한 감정들이 <까치 한 마리는 기쁨>이라는 책에 오롯이 실려있다.


그리고 그는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아버지에게서, 죄책감에서, 두려움에서. 그리고 그는 비로소 '놓아주기'를 배운다. 벤젠의 선택을 존중하고, 그를 속박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벤젠은 그에게 새롭게 보는 방법, 돌봄의 방법과 한계도 알게 해 주었다.


멀리 날아가는 까치 벤젠을 바라보며 찰리는 아내인 야나에게 묻는다. "어떻게 하지?" 야나가 답한다. "뭘 할 수 있는데?" 그 말이 맞다. 놓아주고 선택을 존중하는 것 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리고 우리의 삶은 정답이 없는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아직도 배워나가는 여정에 있다. 아름다운 나의 까치 한 마리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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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인간 - 인공지능이 인간을 낳는 시대, '인간다움'에 대한 19가지 질문
이미솔.신현주 지음, 이성환 감수 / 한빛비즈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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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4차산업혁명'이 아닌 이 시대를 살아가는 '4차인간'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인공지능AI;Artificial Intelligence은 더이상 우리에게 낯선 용어가 아니다. 1956년 존 매카시가 처음 사용해 이젠 누구나 아는 명사가 되어버린 인공지능은, 이젠 주변의 어디에나 존재하는 '일상의 일부'로 자리잡았다. <4차인간>은 4차혁명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에 주목해 쓴 책이다. EBS 다큐프라임으로 제작되기도 했던 터라 많은 사람에게 익숙한 단어이기도 하고, 문과출신 작가가 썼기에 이 분야에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너무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사이버펑크 세대를 지나며 우리는 종종 기술의 발달이 인류의 문명을 뒤흔들어 놓을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그 혼돈의 두려움을 리얼하게 표현한 오토모 가츠히로의 '아키라'에서 인간 테츠오와 기계가 기괴하게 결합하며 증식하는 모습을 보고 엄청난 두려움에 사로잡힌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우린 그 기술과 기계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다. 핸드폰 없이는 하루도 견딜 수 없고, 각종 SNS는 내가 누른 좋아요를 기반으로 내 취향을 분석해 엄청난 자료를 쏟아낸다. 거기다 SF 영화나 애니메이션에서나 봤을법한 온갖 상상속 물건들이 이젠 현실이 되어 내 눈앞에 있다. 말 그대로 자고 일어나면 세상이 바뀐, 그런 시대에 우린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은 이 기술의 홍수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며, 어떻게 인간다움을 유지하고, 어떻게 내가 인간임을 인지해야 할까?

 

<4차인간>은 그동안 우리가 상상만 했던 인간의 기술이 어디까지 와 있으며, 우리가 AI에 대해 막연하게 생각해왔던 19개의 질문을 통해 4차혁명의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다움'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 중 내가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는 인간의 정신을 프로그래밍하는, 소위 '전뇌電腦'라는 용어가 사용되는 전이轉移trancefer 분야다.

 

우리가 익히 많은 영화에서 봐왔던 인류영생프로젝트의 하나로 인간의 신경세포를 컴퓨터에 업로딩하는 기술인데, 지금 가장 생각나는 것은 조니 뎁이 주연했던 '트렌센던스'라는 영화다. 이 영화는 트렌센던스라는 슈퍼컴퓨터의 완성을 눈앞에 두고 테러리스트에게 살해당한 천재 과학자의 뇌를 컴퓨터에 업로드 시키는 내용으로, 상상을 초월하는 네트워트의 힘을 가지게 된 과학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영화였다.

 

허무맹랑하게 들리는가? 하지만 실제로 이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일정 부분 인간의 의식을 영상화하는 기술이나, 전신마비 환자가 악기를 연주하는 등의 기술은 이미 구현되어 있다고 한다.

 

'테세우스의 배'라는 말이 있다.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영웅 테세우스가 고향으로 돌아올 때 타고 온 배를 귀히 여겨 시민들이 보존했는데, 시간이 흘러 목재가 낡고 망가지자 시민들은 그 배를 수리하기 시작한다. 판자가 하나하나 새 것으로 교체되고, 결국 뼈대를 제외한 모든 목재가 새 것으로 교체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배를 테세우스가 타고 돌아온 '그 배'라고 할 수 있는가?라는 실존에 관한 질문에 사용된다. 컴퓨터에 업로드 되는 뇌는 무엇일까? 그것 자체를 '인간'이라 할 수 있는 걸까?

 

4차 혁명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많은 질문을 가진다. 우리는 어떤 장르의 미래를 원하는가? AI시대에 인간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원하는 미래를 위해 인간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로봇이 사람과 점점 같아진다면 로봇에게도 권리가 필요한가? 인간은 왜 기계에 반응하고 공감하는가? 인간은 기술과 어떠한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

 

물론 <4차인간>이 우리에게 이 많은 질문의 답을 명확히 제시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기술문명의 시대를 '살아내야만' 하는 인간이 어떻게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역할은 충실히 해낸다.

 

거기다 정말 '재미있다'는 미덕도 함께 갖추고 있다. 독서는 개인의 취향이 듬뿍 반영된 행위라 나는 웬만해선 책을 추천한다는 취지의 글은 남기지 않는다. 하지만 <4차인간>은 정말 재미있고, 흥미롭다. SKETIC이라는 계간지를 통해서 겉핥기 식으로만 접했던 4차 혁명에 관해 이토록 흥미를 유발하는 책이 있다니...

 

SF영화에 조금이라도 흥미가 있는 사람은 이 책을 꼭 읽었으면 한다. 인간이란 존재가 얼마나 놀라운지 직접 경험하게 될테니 말이다. 이젠 영화가 아니라 눈앞에 닥친 현실로 인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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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불평을 그만두기로 했다 - 내 삶이 즐거워지는 21일 프로젝트
크리스틴 르위키 지음, 조민영 옮김 / 한빛비즈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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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평을 하는 사람들 때문에 신경이 거슬린다면 나부터 불평을 그만두어야 한다."

세상은 훈계한다고 해서 바뀌지 않는다. 먼저 행동에 나설 때 바뀐다.

다른 사람들이 바뀌기를 바랄 수는 없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나는 바뀔 수 있다.

 

 

<나는 불평을 그만두기로 했다>는 결국은 나를 갉아먹는, 하등 쓸모없는 보이지 않는 밧줄 '불평'을 내 삶에서 깨끗이 쓸어버리자는 취지의 글이다. 그렇다면 어느덧 습관이 되어버린 불평을 그만두는 것이 어떻게 '행복'과 연결이 되는 걸까?

먼저 우리가 불평을 하는 '이유'를 알아보자. 본문 63쪽에 나오는 테스트를 통해서도 알 수 있지만, 내가 불평을 하는 이유는 그것이 입에 밴 습관 때문이기도 하고(피곤해 죽겠네. 짜증 나 죽겠네 등), 누군가 또는 어떤 상황이 내가 원하는 대로 가지 않을 때 '그냥' 나오는 말이다. 그리고 또 누군가나 어떤 상황에 대해 나는 불만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대화하고 있는 상대의 기분 맞춰주기 용으로 같이하는 경우도 있다.

나의 경우 불평의 대부분은 '어휴 그렇지 뭐'라는 체념으로 연결되어 마지못해 일을 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그러면 스트레스를 받고, 또 습관처럼 불평을 입에 달고 있고... 네버엔딩 프로불평러가 되는 것이다.

생각해 보자. 불평러가 되어버리면 그것이 나 혼자만으로 끝날까? 아니다. 내가 불평하면 불평의 아우라가 펼쳐지고, 그것은 주변의 사람들과 가족들에게도 전염시킨다. 즉 불평은 내 기분을 다른 사람에게 전염시키는 전염병 같은 존재인 것이다. 하등 이익될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 왜 그걸 알면서도 우리는 불평을 그만두지 못 할까?

 

불평을 그만두는 것이 왜 그토록 중요할까?

"불평하는 동안에는 자신을 그 상황의 '피해자'로 만들기 때문이다."

나에게 이런 절망감을 안겨준 사람을 지목해 가해자로 몰고,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행복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한다. 우리는 나의 감정에 솔직히 반응하면서 화를 낼 수도, 한숨을 쉬고 체념할 수도, 투덜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행동들이 상황을 개선하거나 나의 행복지수를 높이거나 한 경우는 과연 몇 번이나 될까? 결국 내가 그 일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받거나, 질러놓고 후회하거나 하는 경우가 태반이지 않았을까?

 

저자인 크리스틴 르위키는 <나는 불평을 그만두기로 했다>를 통해 불평 없이 지내는 '21일의 도전'을 제안한다. 외부에서 해결책을 찾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현실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꾸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나에게 아주 사소한 보상을 해주고, 반사적인 불평을 줄이며 나의 행복 근육을 더 단단하게 만드는 법말이다.

 

불평을 통한 부정적 생각은 알게 모르게 우리의 삶과 정체성이 되어버리고, 결국 우린 그것만이 진실이라고 믿어버린다. 내 스스로 보이지 않는 밧줄을 만들어 나 자신을 꽁꽁 묶어버리는 것이다. 우리는 모든 상황을 통제할 수도 없고, 무엇이 최선인지 항상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불평하기 전에 먼저 정확히 요구하고, 내 요구의 진행 상황을 확인하고, 내가 이 상황의 피해자가 아닌 해결사가 될 수 있음을 자각한다면 나의 하루가 조금은 자랑스러워 지지는 않을까?

 

21일의 도전,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피해자를 자처하며 행동하는 것과 앞으로 살아갈 날들을 스스로 책임지는 것."

이 둘은 완전히 다른 길이다.

 

 

<나는 불평을 그만두기로 했다>는 일반적인 자기 계발서가 아니라 21일간의 모든 시간을 안내하는 '가이드북'이다. 사소한 선물하기부터 나의 상태에 대한 메모를 하도록 구성되어 있으며, 우리가 왜 이 도전에 응해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되새기게 한다.

사람들은 하루 평균 15~30번 정도 불평한다고 한다. 21일 연속 불평 없이 지내기에 성공하려면 두 달에서 열 달 정도가 걸린다고 하니 그 도전이 결코 쉽지는 않아 보인다. 하지만 아침마다 '오늘 하루를 불평 없이 지내겠다'라고 새롭게 다짐하는 것만으로도 우린 충분하다. 오늘보다 내일, 내일 보다 그다음 날 한 시간, 두 시간... 불평 없이 지내는 시간이 조금씩 늘어나는 걸 깨닫는다면 우리는 조금 더 현명한 대처법을 배우게 될 것이고, 우린 조금 더 뿌듯함을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습관이란 창문으로 내던져 버리듯 없앨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한 번에 한 계단씩 내려오게 해야 하는 것이다. (마크 트웨인)

어떤 계단은 다른 계단보다 훨씬 많기도 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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