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 피아노 소설Q
천희란 지음 / 창비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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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 피아노>​는 도서출판 창비에서 '내일을 향한 질문, 젊은 문학의 새로운 발견'이라는 슬로건으로 나온 '소설Q' 시리즈의 세 번째 소설이다. 저자인 천희란은 2017년 단편 '다섯 개의 프렐류드, 그리고 푸가'로 젊은 작가상 수상한 이력이 있다.

 

★죽음, 죽음, 죽음... 살려달라는 고통스런 외침... 그 압박을 견딜 수 있다면★

 

난감하다. <자동 피아노>를 펼친 순간 떠오른 문장이고, 책을 읽는 내내 문득문득 떠나지 않는 문장이다. '죽음'을 이야기한다. 책의 들메끈을 잡기 위해 화자話者를 찾기로 한다. 하지만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이 책의 주인공이 사람인지 피아노인지조차 모르겠다. 아니면 '죽음' 자체가 내뱉는 생각의 파편들일까? 그저 제목인 <자동 피아노>처럼, 자동으로 음악이 계속 플레이되듯, 끝없이 죽음을 쏟아낸다.

 

나는 언제 여기에 왔는지 기억하지 못하고, 여기가 어디인지 알지 못한다. 나는 질문하지 않는다. 다만 기다린다. 하지만 기다리는 대상이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다.(10쪽)

 

어느 부분은 마치 죽음이 내뱉는 말 같다. 하지만 어느 문장에 이르면 자살을 생각하는 누군가의 의식의 흐름처럼 보인다. 마치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연쇄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을 그저 끄적거리는 것처럼.

 

단언하겠다. 내가 누군가를 죽이겠다고 다짐하면, 죽이는 일을 망설이고 있다는 뜻일 테니까. 나는 나를 죽이고 싶다. 나는 나를 죽이고 싶지 않다. 나는 죽고 싶다. 나는 죽고 싶지 않다. 나는 나를 죽이겠다. 나는 나를 죽이지 않겠다. 나는 죽겠다. 나는 죽지 않겠다. 나는 두렵다. 나는 두렵지 않다. 나는 안다. 나는 모른다. 몰라서 지은 죄도 죄라고 부른다.(28쪽)

 

난 이 책의 읽기를 멈추기로 한다. 학창시절 이상의 시詩를 읽으며 느꼈던 소용돌이가 느껴진다. 작가 후기를 읽어보니 자살에 얽매인 삶을 살았다고 고백한다. 그런 격렬함을 경험한 적이 없으니, <자동 피아노>가 읽힐리 없다는 자위를 해본다. 하지만 1/3 가량만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혼란스럽다. 죽음을 내뱉으면서도 내겐 '살려달라' 끝없이 소리치는 것 같다. 그 외침이 너무 고통스럽다. 그 압박감을 견디기 힘들다. 난 이 책을 끝까지 읽어낼 용기가 없었음을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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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고 차가운 오늘의 젊은 작가 2
오현종 지음 / 민음사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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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고 차가운>은 문학평론가 권희철의 평론처럼 '선善'이 존재하지 않는 소설이다. 책은 시종일관 어둡고 음습하며 비밀을 가진 축축한 지하실이 연상된다. 재수생 '지용'은 공무원인 아빠, 영어학원을 운영하는 엄마, 의대 다니는 형, 유학 중인 누나를 가진 삼 남매의 막내아들이다. 엄마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유명 대학에 붙었을 때도 '격이 떨어진다'라며 재수를 했다. 

 

재수학원에 다닐 때도 엄마가 만들어 놓은 인생의 레일 위에 있었다. 그러다 '신혜'를 만난다. 신혜는 하류 계급의 엄마에게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도무지 탈출구가 없는 삶을 살고 있었다. 불행이라는 차가운 공통분모로 만나 달콤한 위안이 되어주던 그녀를 지용은 사랑했다. 그리고 신혜는 그녀의 어두운 삶을 고백했다. 신혜를 사랑한 그는 오로지 신혜를 위해 유학 가기 얼마 전 철저한 계획을 세워 그녀의 엄마를 살해한다.

 

<달고 차가운>은 일단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백야행'을 떠오르게 한다. 그 책에서처럼, 결말에 이르는 주인공의 관계는 좀 다르지만, 사랑하는 그녀를 위해 살인하는 평범한 청년이 주인공이란 설정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요즘 한국소설을 자주 읽게 되는데 어째 '희망'이란 단어가 사라진 느낌이다. 나 또한 밝고 희망을 담은 책보다는 우울한 책을 선호하게 되니 뭐라 딱히 할 말은 없지만, 언제 우리가 이렇게 회색 인간이 되었나 하는 생각마저 든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 '달게' 보이는 삶도 막상 나에겐 '차가운' 현실이며 지긋지긋할 뿐이다. 막장 애정극인 <달고 차가운> 또한 달콤하다고 생각한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차가운 고통을, 아니 그것도 모자라 지옥으로 끌어내리는 당사자라는 설정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묘하게 쾌감이 느껴진다. 결국 둘 다 지옥으로 떨어져 버린 삶이 그렇게 느껴지다니... 삐뚤어진 내 마음 한구석이 알 수 없는 만족감으로 차오른다. 살인까지 감수하게 만들었던 신혜는 어떤 여자였을까? 자신의 사랑을 위해 또 다른 사랑을 희생시킨 그녀는 두려워했던 것 같다. 자신의 더러움이 오직 혼자만 그렇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그 지독한 외로움에 벗어나기 위해 자신과 함께 지옥에 머물 '친구'가 필요했던 건 아닐까? 또 그것이 지용이 신혜를 죽이지 못한 이유가 된 것은 아닐까?

 

악을 없앨 방법은 악밖에 없을까?(7쪽)

그렇다.

하지만 악을 살게 하는 것도 악밖에 없지 않을까?

신혜와 지용은 서로가 '살아있음'으로 살아갈 이유가 될지도 모르겠다.

그곳이 지옥이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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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이번이 마지막 다음입니다
하상인 지음 / 지식과감성#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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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이 마지막 다음입니다>는 마지막을 향해 가는 평범한 남자 기석을 통해 그의 마지막 다음에 남을 사람들을 볼 수 있는 중편 소설이다.

 

주인공 기석은 대기업에 입사 1년 차 직원이며, 평범한 외모를 가진 30세의 직장인이다. 하기 싫어도 상사의 일을 대신하며 야근을 밥먹듯이 했고, 자신보다 잘 나가는 입사 동기에게 남모를 열등감을 느끼기도 했고, 짝사랑하던 예나에게 한 마디 말도 건네지 못했던 모태 솔로. 즉, 그는 소위 '호구'였다. 그러던 어느 날, 복부에 통증을 느끼고 찾아간 병원에서 대장암 말기 진단을 받고 2개월의 시한부 삶을 선언 받는다.

 

기석의 인생은 '자의自意'가 없었다. 배우지 못해 농사를 짓는 아버지의 권유로 명문 고등학교에 진학했고, 진학 후엔 아버지의 뜻대로 명문대에 진학하기 위해 공부했고, 대학에 입학했더니 좋은 곳에 취직하기 위해 공부해야 한다는 아버지의 말에 그렇게 했고, 그렇게 되었다. 어쨌거나 몸이 힘들지 않으려면 열심히 해아 한다라는 말을 들으며 기석은 그렇게 살았다. 

 

하지만 정작 시한부 삶을 눈앞에 둔 기석은 의문이 들었다. 내가 뭐 때문에 이 회사를 그토록 열심히 다녔고, 대체 왜 지금까지 이런 모습으로 살았는지 생각해보게 됐다. 하고 싶은 일도 아니었고, 행복하지도 않았으며, 매일 같이 상사에게 시달리고 동기들 사이에서 존재감도 전혀 없던 삶(62쪽). 시한부 판정을 받고 기석은 그가 그토록 믿어왔던, 믿고 싶었던 '진실'에서 자유로워 진다.

 

기석은 자신의 삶을 복기하며 그제서야 깨닫는 자신을 발견한다. 하지만 그에 남은 시간은 너무 짧았고, 결국 그는 마지막에 이르지만, 그의 '마지막 다음'에 남은 자들은 또 다른 시작을 이어간다.

 

죽음을 앞둔 남자의 생각과 어쨌든 살아야 하는 나 사이엔 어쩔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한다. 한 때 '유서쓰기'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자신의 죽음을 미리 경험해 보는 희안한 이벤트도 있었고. 책을 가득 메우고 있는 기석의 생각은 식상하다. 기존에 흔하게 보던 작품들과 차이점도 없다.

 

<이것이 마지막 다음입니다>는 솔직히 소설적 재미도 없는 작품이다. 평범한 한 남자가 시한부 판정을 받고, 나에게 왜 이런 일이... 라며 방황하다 결국 가족을 찾아가고, 나를 돌아보는... 상상의 여지가 없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가 살아 온 삶의 복기가 작가의 색깔로 표현된 것도 아니다. 내가 죽은 후 남겨진 사람들에 대한 결말도 너무 도식적이다. 한마디로 <이것이 마지막 다음입니다>는 너무 뻔하다. 21세기에 이런 식의 이야기가 먹힐 거라고 생각한 작가분에게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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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영 ZERO 零 소설, 향
김사과 지음 / 작가정신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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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향』 : 소설 향香을 담다 : 소설 반향響을 일으키다 : 소설, 향向하다.

 

작가정신의 『소설, 향』은 '소설의 향기, 소설의 본향'이라는 슬로건으로 첫 선을 보인 1988년 '소설향'의 리뉴얼 시리즈로 김사과 작가의 <0 영 ZERO 零(영영제로영)>은 새롭게 선보이는 『소설, 향』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이다.

 

*​零 조용히 내리는 비 '령(영)'

 

★0, 영, zero가 스며들다零★ 

 

<0 영 ZERO 零(영영제로영)>의 주인공 '나'는 30대 중반의 대학 강사다. 그녀와 '성연우'의 이별 장면으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철저히 화자話者 '나'의 시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나'의 이름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녀의 주변 인물들과의 대화를 통해 '나'에 대해 이야기하며, '나'의 정체성을 완성해 간다.

 

'나'는 사이코패스처럼 보인다. 상냥하고 우아한 외관外觀으로 사람들은 '나'를 능력 있는 멘토로 여기지만, '나'의 속은 '잡아먹지 않으면 잡아먹힌다'라는 삐뚤어진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녀가 다른 사람을 철저히 망가뜨려도 그녀에겐 죄가 없다. 그건 그녀를 믿었던 다른 사람의 선택이었으며, 그녀는 그들에게 '선택'을 강요한 적도 없으니까. 오롯이 망가진 '그들'이 잘못한 거다.

 

그녀에게 선택된 모든 인물들은 철저히 망가진다. 그것은 '나'의 잘못이 아니다. 내가 원해서 그렇게 태어난 게 아니니까. 그냥 '그렇게 태어났으니까.' 친어머니마저 '나'를 '악마 새끼'라고 불렀다. 난 잘못한 게 없는데.

 

<0 영 ZERO 零(영영제로영)>을 처음 읽었을 땐 허세 가득한 표현과 꾸밈 문장이 너무 많아 거부감이 들었다. '무기력한, 지긋지긋하도록 무력한, 한국 남자라는 존재의 본질이 스타벅스의 쌉쌀한 다크로스팅 커피향을 배경으로 그로테스크하게 전시되고 있었다. 내 주위를 둘러싼 모든 사람들의 눈에 나 또한 그 끔찍한 인스톨먼트의 일부로 느껴지겠지.(41)'라는 문장이나 '차가운 카푸치노 거품 속으로 사라지고 싶은 심정이었다.... 다시 말해 한계 없는 나약함을 나체쇼하듯이 나에게 전시하는 것을 끝까지 지켜보았다.(42쪽)'라는 표현 등은 상당히 거슬렸다.

 

그러다 책의 어디쯤에선가 그녀에게 동화되어버린 '나'를 발견했다. 그랬다. 그녀는 '나'와 다르지 않았다. ​내 주변(각별한 타인)의 불행을 커튼 삼아 나의 방에 짙게 드리워진 불행의 그림자를 가렸다. 위안을 받았다. '나'와 '그녀'는 다르지 않았으며 이것은 '나'의 이야기였던 것이다.

 

멍하다. 그저 멍해서 한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분명 '책'을 읽었는데 내 속이 갈갈이 찢긴 느낌이 든다. 들켰다. 하지만 사람들은 '나'를 모른다. 그리고 내 인생은 여전히 흘러갈 것이다. (+)(-)=0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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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틈 호가스 셰익스피어 시리즈
지넷 윈터슨 지음, 허진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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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틈>은 현대 작가들이 셰익스피어를 재해석한 '호가스 셰익스피어' 시리즈의 첫 번째 이야기이며, 원작은 『겨울이야기』입니다.

★원작-겨울 이야기★

보헤미아의 왕 폴릭세네스에겐 죽마고우인 레온테스와 만삭인 아름다운 아내 헤르미오네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폴렉세네스는 친구와 아내의 불륜을 의심하고, 아이마저도 불륜의 결과라고 생각하게 되죠. 작은 불꽃이 큰 산을 태우듯 결국 왕은 아내가 낳은 딸을 사생아라는 명목으로 죽이라고 명령합니다. 하지만 명을 받은 파울리나의 남편 안티고누스는 그 아이를 죽이는 대신 운명의 손에 맡겼고, 그 결과 가난한 목동에게 발견되어 페르디타라는 이름으로 성장하게 되죠. 그 사이 폴렉세네스에게 일어난 일은 외아들인 마밀리우스가 죽었고 이에 충격을 받은 아내 헤르미오네마저 쇼크사를 하고 맙니다.

16년 후 페르디타와 레온테스의 아들 플로리젤이 사랑에 빠지고, 죽은 줄 알았던 헤르미오네는 신전의 조각상으로 변장한 채 살아 있었고, 폴릭세네스는 레온테스와 화해를 한다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개작-시간의 틈

현대적으로 개작한 이 작품에서 각 배역은 리오(폴릭세네스), 미미(헤르미오네), 지노(레온테스), 퍼디타(페르디타), 젤(플로리젤)입니다. 흐름 자체도 원작과 별다른 차이가 없기에 읽은 느낌만 적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리오는 미미와 지노의 관계를, 읽는 동안 머리칼을 쥐어 뜯을 정도로, 짜증을 극도로 유발시킬 정도로 질투와 의심의 눈길로 바라봅니다. 왜냐하면 미미는 그가 발견한 아름다움이었고, 학창시절 리오와 지노는 연인(?) 관계였기 때문이죠. 그러니 리오가 저속한 표현까지 해가며 그들을 질투하는 장면은 이해가 갑니다.

이해는 가지만, 그래도 그 표현이 너무... 막장입니다. 하긴 내용 자체도 아이를 갖다 버리고, 의처증에 걸린 리오의 방백을 집요하게 자극적인 표현으로 하고 있고, 죽고, 의심하니 막장이라고 해도 별 무리는 없을 것 같아요(순간 리오가 경계성인경장애가 아닌가 생각했다는). 저자인 지넷 윈터슨이 어린 시절 부모에게 버림받았고, 자신의 성정체성에 대해 커밍아웃을 했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그냥 '막' 가기로 한 느낌이 드는 책이었죠. 뭐랄까... 그냥 브레이크가 없어요. 의식의 흐름에도, 상황의 흐름에도 그냥 혼자 질주하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읽는 사람이 배제되는 기분이 드니 더 기분이 나빠질 수 밖에요.

그래도 이런 스타일의 책을 좋아하는 분들이 있으니 베스트셀러 작가에 이름을 올렸겠지만 전 도무지 이런 흐름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거기다 초반에 너무 진이 빠져 후반의 그 화해와 용서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기엔 감정적으로 힘이 들기도 했었고요. 여러모로 힘이 들었던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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