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영 ZERO 零 소설, 향
김사과 지음 / 작가정신 / 201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소설, 향』 : 소설 향香을 담다 : 소설 반향響을 일으키다 : 소설, 향向하다.

 

작가정신의 『소설, 향』은 '소설의 향기, 소설의 본향'이라는 슬로건으로 첫 선을 보인 1988년 '소설향'의 리뉴얼 시리즈로 김사과 작가의 <0 영 ZERO 零(영영제로영)>은 새롭게 선보이는 『소설, 향』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이다.

 

*​零 조용히 내리는 비 '령(영)'

 

★0, 영, zero가 스며들다零★ 

 

<0 영 ZERO 零(영영제로영)>의 주인공 '나'는 30대 중반의 대학 강사다. 그녀와 '성연우'의 이별 장면으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철저히 화자話者 '나'의 시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나'의 이름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녀의 주변 인물들과의 대화를 통해 '나'에 대해 이야기하며, '나'의 정체성을 완성해 간다.

 

'나'는 사이코패스처럼 보인다. 상냥하고 우아한 외관外觀으로 사람들은 '나'를 능력 있는 멘토로 여기지만, '나'의 속은 '잡아먹지 않으면 잡아먹힌다'라는 삐뚤어진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녀가 다른 사람을 철저히 망가뜨려도 그녀에겐 죄가 없다. 그건 그녀를 믿었던 다른 사람의 선택이었으며, 그녀는 그들에게 '선택'을 강요한 적도 없으니까. 오롯이 망가진 '그들'이 잘못한 거다.

 

그녀에게 선택된 모든 인물들은 철저히 망가진다. 그것은 '나'의 잘못이 아니다. 내가 원해서 그렇게 태어난 게 아니니까. 그냥 '그렇게 태어났으니까.' 친어머니마저 '나'를 '악마 새끼'라고 불렀다. 난 잘못한 게 없는데.

 

<0 영 ZERO 零(영영제로영)>을 처음 읽었을 땐 허세 가득한 표현과 꾸밈 문장이 너무 많아 거부감이 들었다. '무기력한, 지긋지긋하도록 무력한, 한국 남자라는 존재의 본질이 스타벅스의 쌉쌀한 다크로스팅 커피향을 배경으로 그로테스크하게 전시되고 있었다. 내 주위를 둘러싼 모든 사람들의 눈에 나 또한 그 끔찍한 인스톨먼트의 일부로 느껴지겠지.(41)'라는 문장이나 '차가운 카푸치노 거품 속으로 사라지고 싶은 심정이었다.... 다시 말해 한계 없는 나약함을 나체쇼하듯이 나에게 전시하는 것을 끝까지 지켜보았다.(42쪽)'라는 표현 등은 상당히 거슬렸다.

 

그러다 책의 어디쯤에선가 그녀에게 동화되어버린 '나'를 발견했다. 그랬다. 그녀는 '나'와 다르지 않았다. ​내 주변(각별한 타인)의 불행을 커튼 삼아 나의 방에 짙게 드리워진 불행의 그림자를 가렸다. 위안을 받았다. '나'와 '그녀'는 다르지 않았으며 이것은 '나'의 이야기였던 것이다.

 

멍하다. 그저 멍해서 한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분명 '책'을 읽었는데 내 속이 갈갈이 찢긴 느낌이 든다. 들켰다. 하지만 사람들은 '나'를 모른다. 그리고 내 인생은 여전히 흘러갈 것이다. (+)(-)=0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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