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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나
이상일 지음 / 스타북스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성직자로서, 로마에서 공부한 성서 신학자로서, 서강대 총장으로서 보낸 저자의 삶의 숨결이 묻어 있는 책을 읽으며,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이분은 왜 이리 빨리 은퇴하여 깊은 산골에 묻혀 사실까? 하지만 저자는 너무 '늦은 은퇴'라고 말한다. 적극적으로 자신만의 삶을 발견하겠다는 의지라고나 할까. 지금부터라도 새로운 삶을 발견하고, 그 기쁨에 탄성을 지르겠다는 말이다. 그래서 한 강아지에게 붙여진 이름이 '린나'이다.
저자는 린나와 대화를 나눈다. 사실 그는 혼자서 살아가고 있기에 이야기 나눌 대상도 없다. 그는 어쩌면 인간의 관계를 너무나 소중히 생각하고, 혼자서 살아가지만 인간들과의 대화를 나누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만큼 그에게는 사랑이 넘치고, 또 삶의 지혜가 넘친다. 자신이 가진 것을 혼자서 묵혀 둘 수만은 없는 법. 그래서 린나와 이야기를 나눈다. 하지만 사실 그는 세상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것이다. 말할 수 없었던 이야기, 못 다한 이야기, 하지만 그래서 더욱 아름다운 삶을 찾아낸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정말로 그럴까? 그 베이스에 깔린 슬픔의 빛이 저자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기쁨의 탄성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한다. 결국 그것이 그 자신이 감추었지만 그 속에 숨긴 것들을 찾아내게 한다.
저자의 삶은 성직자로서 화려했지만, 10년 전에 내놓은 책 [캐주얼하게 살고 싶다]라는 표제에서 알 수 있듯 모든 권위주의와 맞서 싸우려다가 서강대 총장직에서 물러난 상처를 지니고 있다. 이 책에서 자세한 것을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는 깊은 산골에서 개와 산책하며, 호수를 바라보며 결국은 자신의 내부를 들여다본다. 그것을 숙명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더라도, 그리하여 빠른 은퇴를 할 수밖에 없었더라도, 어찌 회한이 없으랴. 게다가 회고록 방식도 아닌, 자기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방식을 택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 사람의 외로움이 느껴진다. 거기에 성직자로서의 고요와 평화가 깃들어 있지만, 세상에 대한 아쉬움이 언뜻언뜻 드러난다.
결국 독자들은 혼자 사는 이의 호사에 동참하기보다는 책 속에 숨어 있는 이야기에 귀기울여야 한다. 그럴 때 린나는 시가 된다. 세상과의 다리 역할을 충실히 한다. 진실은 언제나 숨어 있고, 간접적으로 말해지는 법. 씌어지지 않은 것들을 찾아내는 자만이 하늘에, 하느님의 나라에 이를 수 있다. 더불어 삶을 사랑하고, 제대로 살아갈 수 있게 된다. 그리하여 저자는 독자들과 함께 그 지혜를 공유하고 아름다운 삶을 찾아내자고 말한다. 그것을 찾은 자만이 천국에 이를지니. 거기에 린나와 맬랙, 바름이, 사랑이가 있다. 그게 무슨 뜻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