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설 작가님과 만난 첫 번째 책은 <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이었다. 가족이라는 혈연공동체의 족쇄에 발이 묶인 한 여성의 숨 막히는 일상들을 정밀하면서 사실적으로 그려낸 작품이었다. 간결하면서 힘 있는 김이설 작가의 문체는 독자들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다. 작가의 다음 작품이 궁금했다. 김이설 작가와 다시 조우하게 해준 <우리가 안도하는 사이>를 펼치게 된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내 이야기 같아서'
이 책에 등장하는 미경, 정은, 난주는 75년생 동갑내기 친구이다. 세 친구 중 미경의 직업은 공공도서관 사서이며 싱글이다. 필자와 동시대를 살았던 여자 세명이 등장하고, (직업에 대한 세밀한 묘사는 없지만) 필자와 같은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서,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싱글 여성이라는 공통점을 가진 인물이 서사의 한 꼭지를 풀어간다는 점에서 특별한 끌림이 있었다.
과거 미경의 강릉, 정은의 강릉, 난주의 강릉이 가진 의미는 제각각 달랐다. 끝끝내 고백하지 못한 강릉도 있었고, 다 같이 기억이 사라진 강릉의 밤도 존재했으며, 세상을 다 잃은 것 같은 허무의 순간에 찾았던 혼자만의 강릉도 있었다. 그 모든 강릉이 25년 만에 그녀들로 하여금 다시 강릉을 찾게 한 이유였을 것이다.
예상했던 것처럼 20대를 함께 보낸 뒤 25년 만에 떠난 강릉 여행에서, 그녀들이 고백하고 사과하고 화해하며 보낸 시간들에 뜨겁게 공감했다. 물론 대학을 졸업한 이후 각자 다른 삶을 살아갔기에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하기에는 공백의 심연이 깊은 듯 보였다. 이루어질 수 없는 관계로 상처받은 미경, 일도 연애도 제대로 해내지 못함에 패배감을 느꼈던 정은, 육아에만 전념하느라 세상 돌아가는 일에서 배제된 채 아줌마로 전락했다고 느낀 난주. 그럼에도 불구하고, 20대의 추억과 현재의 고통을 필터 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그들의 찰나의 우정에 읽는 내내 안도했다. 50대 언저리에 강릉의 금은방에서 우정 반지를 나눠 끼고, 원 없이 술과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피웠던 새로운 강릉이 그녀들을 또다시 살게 할 거라는 기대를 갖게 했다.
세 친구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자연스럽게 자신의 과거 한 시절을 떠올리게 되었다. 찬란하게 아름다웠지만 이십 대인 것만으로도 힘들었던 그 시절로 잠시 돌아갔다 이내 복귀했다. 풋사랑에 세상이 무너질 것처럼 아파했던, 졸업을 앞두고 길이 보이지 않아 막막해했던, 아무런 준비 없이 사회에 내던져진 채 방황했던 한 시절이 소환되어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