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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트라 펠리니 지음, 전은경 옮김 / 북파머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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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책을 읽기 전에 먼저 읽은 사람들의 후기를 살펴보곤 한다. 독서 취향은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후기만으로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한 편의 눈부신 영화 같은 소설. 올해 한 권만 읽어야 한다면 바로 이 책이다! "라고 확언하는 문장에는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책 <월요일 수요일 토요일>의 출간 서사를 살펴보니, 단 22페이지의 원고로 오스트리아 지역 문학상을 수상하고, 독일 13개 출판사가 판권을 따내기 위해 치열하게 경합을 벌인 화제작이라는 엄청난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 독자들이 뜨거운 찬사를 보낸 소설을 호기심 가득한 마음으로 읽어 내려갔다.

작가 페트라 펠리나는 간호사로 수년간 일하며 쌓은 경험을 바탕을 이 소설을 집필했다고 한다. 작가는 병원에서 일하면서, 사람들이 자신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 또 어떤 능력으로 삶을 살아가는지, 그리고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지를 자주 묻곤 했다고 한다. 약한 존재를 보호하고 싶다는 작가 내면의 욕망이 담겨 있으면서 삶에 대한 존중과 인간의 존엄에 대한 예의를 이야기하는 소설, 섬세하고 다정하지만 묵직한 담론을 품고 있는 이 소설을 읽는 내내 저절로 마음이 겸허해지는 감각을 경험했다.

죽는 것이 소원인 15세 린다, 가까운 곳에 사는 린다의 친구 케빈, 호숫가 야외 수영장에서 42년 동안 안전요원으로 일했었고 현재 치매를 앓고 있는 86세 노인 후베르트, 폴란드 출신의 섬세한 간병인 에바, 후베르트의 딸 나방 등 서로의 곁을 내어주는 사람들과의 연결과 연대와 이해가 소설 안에 그윽하게 깔려 있다.

린다는 후베르트의 24시간 간병인 에바가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도록 일주일에 세 번(월, 수, 토) 후베르트를 찾아가 돌본다. 치매 노인을 돌본다는 것은 인내심과 한계와 슬픔을 통과하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열다섯 살의 린다가 후베르트를 대하는 태도는 '자연스러움'이었다. 또한 에바는 진심을 다하는 간병인이었다. 린다와 에바는 치매 노인을 돌보는 과정에서 자칫 무너질 수 있는 일상을 지탱해 주는 관계였고, 서로에게 손 내밀어 보듬어주는 사람들이었다.

가까이에서 치매를 앓고 있는 사람을 만난 적이 없어서, 돌봄의 무게를 가늠할 수는 없다. 그러나 환자가 표현하는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 과거를 끌어와 현실에서 인정받으려 하는 모습으로 인해 주변 사람들이 고통받을 수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가족의 변화를 받아들이기 힘들어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기도 한다. 그게 아니라고 우기기도 한다. 그러나 린다는 "할아버지 말이 그냥 맞다고 하면 돼요"라고 말한다. 누군가를 가르치려 들거나 바꾸려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열다섯 살 소녀의 마음을 보며 놀라운 통찰을 배웠다.

할아버지 말이 그냥 맞다고 하면 돼요. 할아버지에게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아요. (261쪽)

에바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에바의 일을 대신했던 간병인 마니니와 비교해 보니, 누군가를 돌본다는 것은 기술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마음의 채도가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평생을 수영장 안전요원으로 일했고, 40년 넘는 동안 익사한 어린이가 한 명도 없었다는 것을 자부심으로 느꼈던 후베르트를 위해 호수 옆 수영장에서 노는 아이들의 목소리와 바람 소리를 녹음해 와 들려주는 린다의 모습에서 깊은 감동을 느꼈다.

후베르트와 에바와 린다가 서로를 향해 보여준 마음이 쌓이고, 겹쳐지고, 섞이면서 비로소 각자의 삶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후베르트가 마지막 숨을 내쉬는 순간, 후베르트에게 꽉 잡힌 손을 보면서 목구멍에 머리보다 더 큰 덩어리가 걸린 것 같다고 느낀 린다의 마음을 짐작하면서 가슴이 뜨거워졌다.

후베르트와 에바와 나, 이 관계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우리가 제일 친한 친구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면 과장이 될 테지. 우리는 서로를 느낀다. 서로 파고들거나, 그게 아니라도 어쨌든 서로에게 다가가는 물결 또는 아이들이 손으로 하는 놀이와 비슷하다. 제일 위에 있는 손 위에 다른 손이 놓이고, 제일 아래에 있는 손이 빠져나와 다시 제일 위에 놓이고, 이런 식으로 계속된다. 감정과 분위기와 몸짓이 쌓인다. (120쪽)

소설의 말미에 예상치 못했던 케빈의 죽음은 매우 충격적이었지만, 기억은 지워져도 마음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같은 시간을 살아가는 우리는 서로에게 신비로운 의미를 지닌다는 것"(367쪽)을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모든 사람의 가슴속에 존재할지도 모르는, 하나의 이름으로 명명할 수 없는 유일하게 존재하는 특별한 감정을 들여다보게 하는 인간 중심의 따뜻한 소설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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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무죄 세계의 사랑법 - 범죄 너머에서 발견한 인간에 대한 낙관
정명원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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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원 검사의 첫 책 <친애하는 나의 민원인>을 읽고, 검사에 대해 가지고 있던 편견들이 많이 깨졌던 경험이 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았던 검사는 권력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고압적인 자세를 취하는 직업군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검사의 90% 정도는 민원인들과 좌충우돌하면서 울고 웃고 감동받으며 자신의 소임을 다하는 평범한 직장인과 다를 바 없다고 한다. 이야기꾼 정명원 검사가 알려준 진실이었다.

정명원 검사는 첫 책을 낸 후 4년 만에 <유무죄 세계의 사랑법>이라는 '범죄 너머에서 발견한 인간의 낙관이 담긴 책'을 들고 나타났다. 범죄라는 이름의 재난 속에서도 끝끝내 삶의 결을 헤아리는 눈부신 마음이 담긴 이 책을 펼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첫 책에서 쌓인 작가에 대한 신뢰는 다음 책을 무조건적으로 열게 만든다. ​

아, 진짜.... 시대와 세대를 넘어 다들 정말 이러긴가.(44쪽)

이 한 문장 안에 정명원 검사가 하고 싶은 말이 다 담겼다는 생각을 했다. "제발 이렇게 살지 맙시다!"라고 외치지 않아도 검사로서 세상을 바라보는 답답한 심정이 어떤지 알 수 있었고, 문장에 담긴 함의가 충분히 짐작되었다.

그리고 어떤 순간에도 '사람'을 먼저 보겠다는 검사의 신념이 내포되어 있다고 자의적으로 판단해 본다.

또한 “삶의 비극 앞에 유죄와 무죄를 가르는 일은 종종 무력하다. 아무리 유죄를 입증하고 형을 집행한다 하더라도 매번 낯선 얼굴로 찾아오는 슬픔을 다 가릴 수 없다. 그렇지만 애를 써보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작가이기에 유무죄를 둘러싼 그의 사랑법이 더 궁금했다. 무엇보다도 검찰 개혁이 시대의 화두가 된 시점에서 사람다운 검사의 이야기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은 독자들에게 큰 행운이라는 생각이 든다.

책의 1부에서는 저자가 경험했던 실제 공소 사건을 바탕으로 들여다본 사건 외곽의 풍경들, 2부에서는 검찰 내부 조직에서의 갈등 관계, 3부에서는 상주 지청장으로 지내면서 만났던 사람들과의 흥미롭고 따뜻한 에피소드를 만날 수 있다. 특히 3부에서 소개한 '심쿵 요정' 사무처장님의 이야기는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감동을 선사한다.

사법에 관한 불신이 가득한 시대, 특히 검찰에 대한 신뢰가 바닥으로 추락한 시점에서 책을 내기로 결정하기까지 정명원 검사가 얼마나 많이 고민하고 갈등했을지 짐작이 된다. 그러나 "인간이라는 연약한 종족에 대해 낙관을 잃지 않는 것이 법을 다루는 이들이 가져야 할 본분이다"라고 말하는 인간미 넘치는 검사이니 삐딱한 시선을 잠시 거두고 열린 마음으로 책을 펼쳐 보면 어떨까 싶다. 검사로서 마주했던 그 어떤 삶도 결코 가볍게 대하지 않으려 했던 묵직하고 단단한 애씀이 느껴질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상주의 마법 같은 것이 아닐까? 땅이 너르고 하늘이 순한 상주 들판에는 예로부터 '심쿵 요정'들이 살고 있어서 외지에서 온 '무뚝뚝이'들을 놀라게 하는 건 일도 아니라는 듯 심쿵 하게 꽃을 내미는 건지도 모르겠다. (236쪽)

검사와 변호인의 관계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검사와 변호인은 하나의 사건을 두고 싸워서 이기기 위해 혈투를 벌이는 투사들로 비친다. 그러나 무죄로 밝혀진다고 해서 그것이 곧 공판 검사의 패배는 아니고, 검사와 변호인이 싸우는 대상은 피고인이 아니라는 정명원 검사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한 마디로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는 삶은 없으니까 유죄인가 무죄인가 명확히 답을 내야 하는 상황일지라도 그 이면에 담긴 거대한 생을 타인이 다 헤아릴 수는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모든 구속영장은 해피엔드를 향해 있어야 한다. 좋은 뜻을 위해서...
행복의 땅에 얼마나 많은 이가 생존해 닿을 수 있을지 모른다 하더라도,
그 방향성만은 그쪽으로 기울어 있어야 한다.
조금 더 햇볕이 드는 쪽으로, 그와 우리의 업이 함께 말라 갈 수 있는 쪽으로.(270쪽)

유무죄의 선고를 내리는 순간에도, 방향성이 조금 더 햇볕이 드는 쪽으로 기울어지기를 바라는 검사들이 많아진다면 법정의 권위와 신뢰는 더 높아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검사들은 정의감이나 의협심이 아닌 두려움을 원동력으로 나아가는 사람들(136쪽)이라고 하니 두려움을 외면하지 않고 기억하는 검사들이 흔들림 없이 법정에 서 있기를 바란다.

장화를 신는 사람들

<유무죄 세계의 사랑법>안에 담긴 다양한 에피소드들 중 장화 이야기는 잊히지 않는다.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경향이 있다. 그 자리에 늘 있던 화병, 누군가가 신고 다니는 해진 신발,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던 깨진 유리창조차도 관심이 없으면 보이지 않는다. 정명원 검사는 장화를 사려고 마음먹고 나서 생각보다 많은 곳에 장화를 신고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형형색색의 장화가 보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장화를 신는다는 것은, 물과 흙과 온갖 불순물로부터 발을 보호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자칫하면 위험에 노출될 수도 있는 불안감이 도사리는, 결코 녹록지 않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장화 속에 감춰진 발들이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타인의 삶에 대해 아는 체했다는 사실을 반성하는 정명원 검사의 태도는 나 역시 겸손해지게 만들었다.

장화가 없을 때는 몰랐는데 내 장화를 가지고 보니 생각보다 많은 곳에서 장화를 신고 일하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논밭뿐만 아니라 시장 국밥집에서도 편의점에서도 거리에서도 장화를 신고 있는 사람들과 마주쳤다. 그러고 보니 우리 검찰청 구내식당 여사님도 고운 색깔의 체크무늬 장화를 신고 계셨다. '세상엔 장화를 신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나만 없었어 장화?" 그런 줄도 모르고 변변한 장화 한 켤레 없이 온갖 세상사에 아는 체하고 살아온 날들이 무모하게 느껴졌다.(275쪽)

얼마 전 모 정치인이 한 말이 떠오른다. "우리는 여름의 한복판에서 동일하게 숨을 쉬고 동일한 햇볕으로 더위를 느끼고 있지만, '에어컨이 있는 곳과 에어컨이 없는 곳'으로 갈라지는 현실에 관심을 가지려고 노력해야 한다. 사회적 약자들을 단 한 명도 남겨놓지 않고 구하겠다는 마음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정명원 검사도 같은 마음이지 않았을까 싶다. 타인의 장화, 타인의 손수건, 타인의 옷소매를 바라보는 시선에 나 자신을 한번 비춰보려는 노력이 필요한 시대인 것 같다.

그리고 언제고 흘러 닥칠 생의 비극들 사이에라도 기어이 징검다리를 놓고, 너무 돌아가지 않는 방식으로 다정한 이들을 만나러 가는 사람들(287쪽)과 생을 촘촘히 연결해 가면서 살아가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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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코워커
프리다 맥파든 지음, 최주원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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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프리다 맥파든의 직업은 뇌 손손상 전문의, 그리고 아마존 1위에도 오른 바 있는 베스트셀러 작가이다. 그의 작품은 읽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든 생각은 작가의 전작을 읽고 싶다는 것이었다 정해연 작가의 '홍학의 자리'를 읽고 그랬던 것처럼. 또 한명의 매력적인 작가를 알게 되었다는 사실에 환호했따.

이 책의 첫 문장은 "오늘 아침 사무실로 걸어 들어갈 때 돈이 자리에 없다면, 그것은 곧 세상이 망한다는 뜻이다"였다. 돈이라는 인물이 얼마나 강박적으로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인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돈과 내털리, 두 여자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미스테리한 살인 사건 이야기가 흥미롭게 펼쳐졌다.

돈과 내털리는 극과 극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다른' 사람이었다. 돈은 사람보다 거북이를 좋아하고, 식사는 한 가지 색으로 구성해서 먹고, 한마디로 말해 '좀 이상하다'라고 생각될 정도의 사람이었다. 반면에 내털리는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고, 얼굴도 예쁘고 매력이 넘치는 완벽한 커리어 우먼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아침, 돈이 출근을 하지 않았다.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돈의 자리로 걸려온 전화에서 "도와주세요"라는 돈의 목소리가 들린다. 돈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이 분명한다. 내털리는 언젠가 돈을 집까지 태워다 준 적이 있었기에 돈의 집으로 찾아간다. 그리고 바닥에 피가 흔건하게 고여 있는 것을 발견하고 너무 놀라 경찰에 신고를 한다. 그런데....상황이, 정황이, 증거가 내털리가 범인이라고 지목한다. 그리고 며칠 후 돈으로 추정되는 여자의 시신이 발견된다.

돈이 자신의 절친인 미아에게 지속적으로 보냈던 메일들을 찾아낸 경찰은, 내털리가 돈을 오랫동안 괴롭혀 왔고 회계담당자인 돈이 내털리의 공금횡령 사실을 알게 되자 살해한 것이라고 판단한다.

그러나..소설의 말미에 엄청난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스포가 될 수 있어 구체적인 스토리는 언급하지 않으려고 한다.)

소설을 읽기 시작하면서 뒷이야기가 너무 궁금해서 읽기를 멈출 수가 없었다. 심지어 교육을 받는 중에 몰래 몰래 읽을 정도였다. 최근에 읽은 소설 중 가장 재미있었다. 얽히고 설킨 인물들의 사연이 흥미로웠고, 무조건 선한 사람도 없고 서로를 어느정도 눈감아주고 모른척 해주면서 살아가는 사회의 이면을 솔직하게 표현해주고 있어서 그점도 좋았다. 서로를 용서하고 완벽하게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하지 않고, 뭔가 여지를 남겨둔 점이 신선했다.

당장 프리다 맥파든의 대표작인 <하우스 메이드>를 당장 빌리러 가야겠다. <사라진 여자들>의 메리 쿠비카와 쌍벽을 이루는 추리소설의 대가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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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지키는 여자
샐리 페이지 지음, 노진선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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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이야기를 지키는 여자>는 유명인들의 추천사 없이 오직 독자들의 입소문만으로 베스트셀러에 오른 소설이다. 영국에서 2023년 한 해 동안 50만 부 이상 판매된 책이다. 부커상 후부에 오른 클레어 키건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 같은 해 25만 부 판매되었다고 하니, 이 책의 인기가 짐작이 된다.


<이야기를 지키는 여자>는 작가의 소설 데뷔작이다. 자각 셀리 페이지의 이력이 굉장히 독특하다. 대학에서 역사를 공부하다 광고업계에서 일했으며, 플로리스트 과정을 공부하다 꽃집을 열기도 했다. 또한 만년필 애호가로서 급기야는 만년필 브랜드 플룸스(Plooms)를 설립해 원하는 펜을 직접 만들기도 했다. 작가에 대한 호기심과 함께 이 소설이 가진 어떤 매력이 이토록 독자들을 열광케 했는지 궁금한 마음으로 책을 펼쳤다.

소설 <이야기를 지키는 여자>는 고객의 마음까지 들여다보는 케임브리지의 독보적인 청소 도우미 재니스의 치유와 성장을 그린 소설이다. 책에 나오는 대부분의 이야기는 작가가 1년 동안 실제 삶에서 수집한 실화에 기반한다고 한다. 재니스가 청소도우미로 일하는 곳의 고용주들, 그리고 일상 속에서 만나는 이웃들의 이야기를 실감 나게 그리고 작가 특유의 따뜻한 시선으로 풀어내고 있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이야기가 없는 사람이라면?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재니스도 그런 사람인데, 그녀는 이야기 수집가가 되었다. (9쪽)"

소설은 이 질문과 의문과 아이러니 속에서 시작된다. 누구나 살면서 개인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각자의 역할을 부여받는다. 어떤 필요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삶도 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내 삶은 왜 이 모양이지?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맞는 걸까?' 회의에 빠지고 실의에 빠질 때가 있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이방인인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소설 속 주인공 재니스는 무능한 남편 대신 청소 도우미로 일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지만, 끊임없이 남편으로부터 무시와 경멸을 받는다. 맘 같아선 박차고 나가고 싶지만, 억울함과 답답함을 속으로 삼킨다. 청소도우미로서 능력을 인정받고는 있지만 재니스가 진짜 원하는 것은 청소 도우미로서의 전문성이 아닌 한 사람의 인격으로 인정받고 싶은 것이다.

재니스는 타인의 인생을 수집하면서, 자신의 이야기는 선택할 수 없고 하나의 이야기로 정해져 있다고 믿어 왔다. 그러나 차츰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신이 가지고 있던 믿음이 잘못되었고 인생에는 무수한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내 인생에 새로운 가능성이 있을까? 내 삶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 반문하던 재니스는 마침내 용기 내서 자기 주도적으로 살아가기로 결심한다. 자신의 삶을 원하는 형태와 모양으로 그려갈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품기 시작한다.

재니스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들의 경험을 교훈 삼아 삶을 바꿔가려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재니스는 바깥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었지, 절대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일을 하는 과정에서 만난 괴팍한 B부인, 쌍욕을 날릴 줄 아는 그래그래 부인, 지리 선생을 닮은 버스 운전기사 애덤과의 인연이 재니스를 변화시키기 시작한다. 그러나 결국, 진짜 변화는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놓는 순간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숨기고 싶었던 과거와 벗어나고 싶었던 현실과 당당히 마주하게 되는 순간, 그리고 내 이야기를 전하기 시작했을 때 말이다. 재니스는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과정에서 치유되고 회복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친구들과의 관계, 직장 동료와의 관계에서도 주로 듣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있다. 나 역시 어느 순간, '내가 누군가의 감정 쓰레기통인가?'라는 혼란과 자괴감에 빠졌던 경험이 있다.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모두 쏟아내면서 스트레스를 풀고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 있는 반면, 표현하는데 서툴러 내 안에 생각과 감정을 가두는 선택을 하는 사람도 있다. <이야기를 지키는 여자>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꽁꽁 숨겨 두었던 아픔과 고통에 대해 담담히 고백할 수 있는 용기를 주는 책이다. 단, 내 이야기에 공감해 주고 위로해 주고 대변해 주고 함께 소리쳐 주는 진짜 어른이 곁에 있어야 가능한 일일 것이다.

B 부인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한 것만으로도 변화가 일어났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지만 또한 모든 것이 변했다. 좋은 쪽으로. (371쪽)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것은 살면서 좋았던 일을 공유할 뿐 아니라 화자의 나쁜 기억을 내보내는 기능, 바람에 먼지가 흩날리듯 나쁜 기억을 흩어지게 하는 기능도 있는 걸까?(391쪽)

세상에 이야기가 없는 사람은 없다. 책을 덮으며 '과연 내 이야기는 무엇일까?' '나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걸까?' 생각해 본다. 재니스의 여정을 따라가 보며 깨달은 것처럼, 새로운 인생의 기회는 아직 꺼내지 못한 내 이야기 속에 있을 테니까 말이다.

출판사에서 무상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북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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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는 해피엔딩
조현선 지음 / 북로망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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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스물한 살의 소미가 의문의 화재로 삼촌과 동생과 집을 모두 잃는 사건으로 시작한다. 집이 불타고 있던 시간 소미는 동료들과 술을 마시고 집으로 가던 중 동산 어딘가에 쓰러져 잠이 들었었다. 화재의 원인은 방화로 밝혀졌으나 범인은 잡히지 않았고, 소미는 알리바이가 확실치 않아 화재를 일으킨 범인의 용의선상에 올라와 있다. 소미는 유일한 가족을 잃었지만 이상하리만치 슬프지가 않았다. 그렇다고 그들을 죽이고 싶을만큼 미워하지도 않았다.

나의 분신처럼 내 어깨에 딱 붙어 있고 자유롭게 대화를 할 수 있는 말하는 인형이 내 곁에 있다면 어떤 느낌일까?

소미 곁에는 말하는 인형 곰이가 있다. 불타버린 집이 있는 동네를 떠나 과거를 다 잊고 새롭게 정착한 소도시에서도 외롭지 않았던 이유는 곰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비밀스러운 일들이 가득한 '우신 장난감 가게'의 우신과 민호를 만나면서 소미의 삶은 변하기 시작한다.

소설은 우리 주변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들, 우리 주변에 충분히 있음직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평범할 수 있는 이야기에 작가의 상상력과 다정함이 더해져 따뜻하면서 사랑스러운 소설이 탄생했다. 재미와 감동에 반전까지 고루 갖춘 웰메이드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서로를 애틋하게 보듬어 주었던 언니와 관계가 틀어진 지희, 학교 폭력을 당하는 철웅을 말없이 도와주었던 연우, 손을 다쳐서 더이상 기타를 칠 수 없게 된 기타리스트 현주, 어린 딸을 잃고 상처를 안고 살아가던 주인집 할머니, 아픈 과거를 안고 살아가던 소미를 쫓던 형사 권선형, 민호와 우신의 관계, 그리고 소설의 말미에 드러난 충격적인 소미의 과거까지 풀어낸 탄탄한 플롯과 개성있는 캐릭터의 조화는 완벽한 엔딩을 만들어내기에 충분한 모티브가 되었다. 독자들은 소설속 캐릭터들이 두 번째 삶에서는 모두 해피엔딩을 맞이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바람을 갖게 된다.

이 아이들은 애정에 반응해서 숨을 쉬기 시작해. 네가 어떤 존재에게 아낌없이 마음을 주면, 그리고 운 좋게 그 녀석들에게 힘이 있다면, 숨을 쉬면서 존재하기 시작하지.(229쪽)

어쩌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건 그저 온기가 담긴 한 웅큼의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그 마음 하나만 있으면 우리는 존재할 수 있을테니까 말이다. 이 소설을 읽으며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마음을 주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새삼스럽게 과거를 돌아보는 것은 의미가 없는 듯 느껴졌다. 발목에 엉겨붙었던 불행은 전부 떼어내고 소박한 현실을 맞이하는 것. 그것이 소미가 나아갈 길이었다. (315쪽)

살다보면 과거에 발목 잡혀, 혹은 지나간 일에 미련을 두다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발목에 엉겨 붙어 있는 불행과 미련과 아쉬움과 후회를 떨쳐 내는 것이 남은 삶을 해피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나 역시 뒤돌아보지 말고 한걸음씩 뚜벅 뚜벅 나아가 보려고 한다. 소미가 그랬던 것처럼.

출판사에서 무상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북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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