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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낙원
김상균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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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기억의 낙원>은 인간이 결코 뛰어넘을 수 없는 생과 사, 의식과 인지능력의 한계를 기술로 사고팔 수 있는 세계를 그리고 있다. 현실과 가상현실을 넘나드는 과학 서스펜스 소설이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발할라'라는 인공지능 시스템을 통해 누군가의 삶의 마지막을 조작해, 바라고 원하는기억으로 만들어주는 것. 어쩌면 멀지 않은 미래에 실현가능한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주로 '조작몽 안락사'를 설계하는 일을 하는 '더 컴퍼니'에 장교수의 제안으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발을 들여놓게 된 하람은,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의뢰인들의 바람과 이야기를 듣게 된다. 서비스가 잘 마무리되어 가족 중 한 명이 행복하고 평온하게 떠날 수 된다면 다행스럽게 생각해야 하는가. 완벽이나 최적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최악을 피하고자 하는 의뢰인들의 요구를 인간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면 그 행위가 불법적인 것이더라도 용인해야 하는지 두서없는 질문 속에서 방황한다. 하람은 남겨진 삶이 고통으로만 가득찬 이에게 조작몽 안락사가 마지막 선물이 될 수도 있을거라고 말하는 장교수의 신념이 설득력이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불법과 비윤리적 행위를 자행해도 된다는 뜻은 아닐 것이라고 의문을 갖는다.

한편 풍요와 쾌락이 넘치는 메타버스 세상인 '아르카디아'가 죽음 이후의 삶을 보장하는 공간으로 등장한다. 육신은 생체리듬을 멈추지만 사람의 뇌와 컴퓨터를 인터페이스에 연결(BCI)하여 '아르카디아'에 접속하게 하고 그 안에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간다는 설정이다. 그러나 그 안에 감옥으로 설정된 '안티고니아' 지역도 존재한다. 하람이 대학시절 상상했던 공간이 실제로 만들어진 것이다. 설립자인 장교수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삐뚤어지고 불안정한 세상을 바로잡을 수 있다는 신념으로 타인의 기억을 조작하는 일에 매달려 '아르카디아'라는 가상의 공간, 기억의 낙원을 만들었지만 결국 세상은 더욱더 뒤틀려 버렸다. 결국 아르카디아를 만든 발할라 시스템을 해체하면서 인간은 깨닫게 된다. '인간의 능력은 무한하다. 그러나 인간의 오만은 그 무한도 넘어선다'는 것을.

시한부 아내의 괴로웠던 삶을 행복한 꿈으로 마무리하려는 남편, 꿈이 없는 아이를 의사로 만들려는 부모, 자신의 가족을 파괴한 사람에게 복수하려는 여자, 가난한 이의 외국어 능력을 자식에게 이식하려는 부자 아빠. 죽은 아내를 메타버스 사후 세계에서 만나려는 남자. 이렇게 다양한 인간의 욕망을 들춰내 거래의 대상으로 삼는 '더 컴퍼니'라는 조직의 실체를 밝혀내려고 뒤를 쫓는 신문기자 소이와 '가이라'라는 비밀 단체의 추격전이 숨막히는 속도로 전개되면서 독자들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흥미로운 소설이다.

메티버스와 AI는 우리 삶에 밀접하게 접근해있다. 점차 발전하는 기술과 제도권 안에서 인간의 욕망과 욕심을 어떻게 조화롭게 디자인하고 직조해 나갈지 고민하는 것이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큰 과제인 것 같다. 윤리적 딜레마들과 부딪히고 파헤치고 깨달으면서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어떻게 설계해야할지 어떤 것들을 선택해야 할지 사유하는 시간을 가져보면 좋겠다.


나는 기억과 현실의 경계에 서 있다. 그 경계는 희미하고 떄론 사라진다. 진실이라 믿는 것들이 허상일 수 있음을, 그리고 외면하는 것들이 진실일 수 있음을, 이 소설은 말한다.

(3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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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법소년 네오픽션 ON시리즈 29
김선미 외 지음 / 네오픽션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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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경찰학 사전에 의하면 촉법소년은 형벌 법령에 저촉되는 행위를 한 10세 이상 14세 미만의 자로서 형사책임이 없는 자를 말한다고 정의되어 있다. 이처럼 촉법소년은 형사 책임 능력이 없기 때문에 범죄 행위를 하였어도 처벌을 받지 않으며 보호 처분의 대상이 된다. 범죄 기록 또한 남지 않는다. 최근 촉법소년들이 이 제도를 악용하는 사례가 알려지면서 형사미성년자 제도에 대한 국민적 여론이 부정적으로 바뀌고 있고, 촉법소년 연령 하향 추진에 대한 논의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소설 <촉법소년>은 '촉법소년 범죄'를 소재로 다섯명의 작가가 모여 엮어낸 책이다. 다섯명의 작가가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다른 각도로 소설은 전개된다. 사건의 피해자가 이야기를 전개하는 경우도 있고, 피해자의 부모나 교사 등 주위 사람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펼쳐지기도 한다. 소설을 읽는 내내 섬뜩한 느낌이 들었던 부분은, 아무리 범죄를 저질러도 법이 그들을 보호해준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신고할 생각 마. 어차피 우리는 촉법소년이거든? 금방 학교로 돌아온다고. 무슨 뜻인지 알지? 법이 우리를 봐준다고."라고 말하는 소년의 말에서, 무거운 돌덩이가 가슴을 지순르는 듯한 답답함을 느꼈다. 촉법소년이라는 이유로 처벌하지 못한 범죄에 대한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걸까? 촉법소년이라는 이유로 피해자에게 사죄조차 하지 않는 사라진 양심에 대해 사회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걸까? 독자들은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어디에서 찾아야할지 알 수 없어 절망적인 마음을 품게 된다.

이 책 수록된 정해연 작가의 소설 <징벌>에서는, 2045년 촉법소년에 대한 징벌을 강화하기 위한 제11호 처분, '정신 징벌'이 제정되었다는 가상의 설정을 한다. 정신 징벌 대상자는 징벌 포켓에 들어가 자신이 벌인 일을 똑같이 당하고, 미래까지 엉망이 되는 경험을 한다(65쪽)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 가해자의 인권 따위를 우위에 두지 않기로 했어요."라고 말하는 연구진의 단호함에서 촉법소년에 대한 범죄를 더이상 좌시해서는 안된다는 심각성을 깨닫게 된다.

소향 작가의 <OK 목장의 혈투>에서는, 청소년을 보호해 줘야할 어른들이 그들의 범죄를 오히려 부추겨 온 것은 아닌지 부끄러운 마음이 들게 했다. 청소년의 약점을 이용해, 결핍을 이용해 범죄에 노출시키는 나쁜 어른들이 판치는 세상에서 그들이 바른 어른으로 자라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벗어나고 싶다고, 구해달라고 무수히 신호를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무시하거나 모른척 했던 어른들이 새로운 법을 제정하고 방법을 모색한들, 청소년들이 바라보는 세상이 달라질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 씁쓸하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책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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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 재능
피터 스완슨 지음, 신솔잎 옮김 / 푸른숲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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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는 A Talent for Murder, 출간 전 가제본 서평단에 당첨되어 받은 책이다. 정식 출간 전이라 표지는 하얀 백지다. 어떤 표지로 출간이 될지 매우 궁금하다. 살인이 재능이라는 표현을 쓰려면 얼마나 많은 살인을 저질러야 하는건가? 단, 살인이 발각되지 않았다고 가정해야 하는거겠지? 섬뜩하면서도 호기심 어린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소설의 스토리는 다음과 같다. 마사와 앨런은 충실한 연인관계를 유지하다 자연스럽게 앨런의 청혼으로 결혼을 하게 된다. 마사는 앨런을 뜨껍게 사랑하지는 않았지만 이정도면 괜찮은 남편감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의 결혼생활은 외판원인 남편 앨런이 출장이 잦았다는 것 말고는 특별한 점이 없었다. 어느날 마사는 출장에서 돌아온 남편이 집에 들어오기 직전, 배우처럼 표정을 바꾸는 모습을 목격한다. 이상한 느낌을 받게된 마사는 남편의 셔츠에서 묻어 있는 핏자국을 보고 뭔가 의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남편이 갔던 출장지에서 항상 미해결 살인사건, 폭력 사건들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경찰에 신고해야하나 고민하던 마사는 20대 시절, 가학적이고 폭력적인 성향의 남자친구로부터 자신을 구해줬던 친구 릴리에게 남편에 대한 의심을 이야기하고 도움을 요청한다. 릴리와 마사는 남편에 대한 뒷조사를 시작한다. 앨런의 출장지에 찾아가 그를 미행하던 릴리는 그곳에서 앨런을 미행하고 있는 또다른 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는 놀랍게도 마사의 옛 남자친구였던 이선이었다. 이 사실을 마사에게 알린 직후, 마사는 살해당한다. 릴리는 이 모든 살인이 이선이 저지른 일이고, 마사에 대한 복수심으로 그의 남편 앨런에게 뒤집어 씌우려 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자신의 과거에 관심이 없는 돈 많은 여자와 결혼을 하고, 이름을 여러개 사용하면서 과거의 흔적을 지우며 살아갔던 이선은 그야말로 악마였다. 결국 릴리마저 납치를 하지만, 그녀는 기지와 용기있는 행동으로 살아남는다.

생각지 못했던 반전이 있다. 그렇다면 앨런은 이선의 덫에 걸린 무결한 인간이었을까? 그건 아니었다.

자살로 결론난 사건, 발코니에서 떨어진 여성 조지를 죽인 살인범은 앨런이었다. 결국 또 한명의 악마, 사이코패스가 존재했던 것이다.

속도감 있는 전개로 읽기를 멈출 수 없게 만드는 소설이다. 추리소설 애호가들에게 충분히 사랑받을 만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의 중반부에 가면 범인이 누구인지 이미 밝혀지지만, 범인을 알고 읽더라도 재미가 반감되지는 않는다는 점이 피터 스완슨이라는 작가가 가진 필력이자 힘이지 않을까?

정식 출간이 된 이후 어떤 저돌적인 마케팅이 이루어질지는 모르겠지만, 입소문만으로도 충분히 작품성을 인정받으리라는 예상을 하게 했다.

p. 23 어쩌면 그것은, 소소하게 상대를 보살피는 마음은 갈망보다 더욱 중요한 것일지도 몰랐다. 갈망은 어찌 되었든 영원히 지속되지 못한다. 하지만 다정함은 그럴 수 있었다.

p. 31 어디선가 사람의 기억은 믿을 수 없다고, 우리는 사실 있던 일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을 마지막으로 떠올렸던 기억을 재생하는 것이라는 글을 읽은 적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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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도 동정탑 - 2024년 제170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구단 리에 지음, 김영주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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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도 동정탑』은 소외와 차별을 당하는 사람이 없는 이상적인 사회를 지향하며 범죄자를 동정받아야 할 존재로 정

의하고, 도심 한가운데에 최첨단 교도소를 건립해 수감자들에게 안락한 생활을 제공하고자 하는 근미래 도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사회는 동정받아야 할 범죄자를 ‘호모 미세라빌리스’, 죄를 짓지 않아도 되는 환경에서 살아온 비범죄자를 ‘호모 펠릭스’로 칭한다. (알라딘 책 소개글 인용)

굉장히 독특한 소설임에는 분명하다. 한번도 이런 플롯의 소설을 본 적이 없다. 매운 신선하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반면에 뭔가 어색하다는 느낌도 지울 수가 없었다. 작품의 일부는 생성형 AI가 만든 문장을 사용했다고 한다. AI가 답변하는 부분은 2%미만이라지만 그부분에서 턱턱 걸리는 느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소설은 타워의 설계를 맡게 된 건축가 마키나 사라, 그녀의 어린 연인 도조 다쿠토, 범죄자 동정론을 주도하는 사회학자 마사키 세토, 새 교도소를 취재하러 온 미국인 기자 맥스 클라인 각각의 시선을 통해 이 논쟁적 주제를 다각도로 그려낸다. 마키타 사라가 설계해서 세워질 교도소이 명칭이 ‘심퍼시 타워 도쿄’이고, 이를 직역해서 ‘도쿄도 동정탑’으로 불렸다.

이 책은 2024년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했는데 "많은 독자들이 재미있게 읽을만한, 최근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중에서 굉장히 독특한 작품"이란 평을 들었다. 그러나 굉장히 독특한 작품인 만큼 독자들의 반응은 제각각일 것 같다.

호불호가 매우 갈리는 소설이 되지 않을까 싶다. 신인작가답지 않은 자신감과 패기가 느껴져서 강한 인상을 남긴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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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사람들을 생각해
정지혜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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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가 너무 으스스해서 한여름의 더위를 싹 날려 보낼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여름엔 호러! 여름엔 스릴러지!

추천사를 쓴 전건우 소설가는 이 책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했다. "이 작품은 단순히 자극만을 추구하는 호러, 미스터리 소설과는 결을 달리한다. 삶과 죽음에 대해, 혹은 이별과 만남에 대해 이토록 서늘하면서도 아름답게 파고든 작품을 나는 이제껏 보지 못했다."라고. 서늘하면서 아름다운 소설에 대한 기대감으로 읽기 시작했다.

해안선 곳곳이 바위와 절벽으로 절경을 이루는 기이한 섬 '목야'를 배경으로 하는 세개의 이야기가 서로 연결된 듯 아닌 듯 묘하게 겹쳐지는 소설이다. 몸서리칠 정도의 공포를 기대한 독자라면, 조금 실망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감성적이고 서정적인 호러가 궁금한 독자들이라면 크게 환호할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없는 사람들을 생각해]는 [지은의 방] [강과 구슬] [이설의 목야] 세가지 이야기로 구성된 연작소설로, 스토리를 이끌어 가는 주요 키워드는 '강령술'이다. '강령술'은 영혼을 인간 세상에 내려오게 하는 방법이며, 귀신을 보는 사람이 있다는 뜻이다. 어릴적에 '분신사바'라는 주문을 외우는 아이들을 목격한 적이 있다. 어떤 연유인지는 몰라도 한때 크게 유행이었다. 실제로 귀신을 보는 사람이 있을까? 의문을 품었던 적도 있었다.

소설은, 누군가에게(특히 가족) 상처받은 아픔을 가진 아이들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버림받은 아픔, 외면당한 아픔, 방치당한 아픔, 죄책감으로 인한 아픔을 감당해 내는 아이들이 오히려 누군가의 상처를 품어주고 이해해주려 노력하는 과정이 감동으로 다가온다. 상처 위에 얹어진 위로와 사랑이 스며들어 이 소설은 무서운 이야기가 아니라 가슴 아픈 휴먼 드라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유기적으로 얽혀 있는 인물들이 서로에게 내미는 따스한 손길로 사람을 살리고, 구해내고, 다시 살게 하는 휴머니즘을 만나게 한 온기가 담긴 소설이었다. 세 편의 소설속 인물들의 관계도를 그린 후,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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