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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역사 - 언젠가 어디선가 당신과 마주친 사랑
남미영 지음 / 김영사 / 2014년 3월
평점 :
사랑의 변주곡. 사랑만큼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인간의 숫자만큼 다양한 변주가 가능한 주제도 없다. 나이와 인종과 국경을 초월하며 인간은 자신이 가진 모든 감성과 본능과 이성을 총 동원하여 자신만의 사랑의 연주를 한다. 그러나 사랑은 혼자서 할 수 없는 법. 물론 첫 소절부터 마지막 소절까지 애닯은 짝사랑으로 마무리되는 경우를 제외하고, 사랑은 두 사람이 만나 호흡을 맞추어야만 하는 이중주이다.
사랑의 모든 행복과 불행이 여기서 비롯된다. 두 마음이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낼 땐 천상의 행복에 도달하지만 음이 삐걱이고 박자가 엇나가기 시작하면 고통스런 지옥의 나락으로 추락한다. 때로 그 고통은 당사자를 죽음에 다다르게 할 정도로 치명적인 독이 된다.
하지만 사랑은 인간이 가진 본성 중 가장 자연스레 찾아오는 것, 저절로 알게 되고 할 수 있게 되는 직관적인 부분으로 생각하기에 사랑을 배우고 익힌다는 행위는 여전히 낯설다.
요즘 이성에게 어필하고 관계를 진도를 나가는 방법들에 대한 책들을 읽고, 심지어 연애 멘토들의 코치를 받고 강의까지 듣는 세태를 지켜보며 '사랑이란 결코 저렇게 인위적인 노력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사랑이야 말로 영혼의 맑은 눈으로 상대를 알아보며 온 몸과 가슴에 스며드는 감성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며, 즐거움도 슬픔도 아픔도 맛보는 숭고하고 자연스러운 그 무엇이다.'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 책을 읽은 이유가 남들과는 좀 다르다. 아름답게 사랑하는 법을 알려주려고 썼다는 이 책을 선택한 것은 사랑을 탐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34편의 문학작품 속에서 연주되는 사랑의 변주곡을 작가가 어떻게 이해하고 자신의 문체로 형상화 했는지에 대한 문학적 관심 때문이다.
문학이라는 창조적인 예술분야가 탄생한 이래 사랑만큼 수없이 반복해서 다루어진 주제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늘 그 사랑은 새로웠으며 달랐다. 작가는 엄선한 숫자 34편의 작품을 사랑이 가지는 여섯 가지 얼굴에 따라 나누었다.
Part1은 여리디 여린 새순 같은 마음으로 가슴 설레던 첫사랑을 다룬 작품들이다. 우리 모두의 첫사랑의 교본이며 세계 청소년들에게 첫사랑의 상징이 되고 있다는 황순원의 <소나기>. 작가는 아름다운 한 폭의 수채화 같은 이 작품 속에서 사랑은 둘만이 간직한 비밀이라는 정의를 내린다. 소녀가 남긴 유언의 비밀을 이해하는 사람은 오직 한 사람 소년뿐. 첫사랑은 이처럼 둘만의 비밀을 남겨두고 스러지기에 슬프고도 아름답다.
Part2는 자신의 온 몸과 마음을 다바쳐 전부를 내던지려는 뜨거운 열정을 다룬 작품들이다. 일편단심 정절의 상징인 <춘향전>에서 저자는 춘향의 강인한 인간성을 이끌어낸다. 당당한 기개와 용기로 장애를 뛰어넘어 스스로 사랑을 쟁취하는 춘향에게서 진심과 용기를 배워라고 오늘 날의 잔머리 춘향들에게 조언한다.
Part3는 상대로 인해 서로 더 아름다워지는 성장에 대한 작품들이다. 열다섯 살 소녀와 서른두 살 남자의 사랑을 다루었던 화제작,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연인>에서 작가는 소녀와 남자 둘 다 서로를 통해 사랑을 알고 비로소 어른으로 성장했음을, 사랑이 비록 이루어지지 않고 고통스럽게 끝났어도 성장이라는 소중한 선물을 남긴다는 것을 조곤조곤 들려준다.
Part4는 사랑하는 이들을 비극의 주인공으로 만드는 고통의 극점, 이별을 다룬 작품들이다. 하지만 진정한 사랑은 꼭 이별이 마지막을 의미하는 비극적인 것만은 아님을 저자는 로버트 제임스 월러의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에서 읽어낸다. 성숙한 사랑과 이별, 단 나흘 동안 서로 사랑하고 죽을 때까지 한 번도 만나지 않았지만, 광활한 우주를 떠돌다 서로에게 빛을 던진 두 개의 별 같은 존재임을 끝내 믿어 의심치 않던 거대한 사랑의 의미가 가슴을 파고들었다.
Part5는 세상의 상식과 도덕적 잣대로 인정받지 못한 불운하고 아픈 사랑에 대한 작품들이다. 시대를 뛰어넘어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리나>. 이미 결혼한 안나가 젊고 매력적인 장교 브론스키와의 사랑에 빠져 외국으로 도피하지만 결국 두 사람의 사랑은 현실의 벽 앞에서 부서져 내리고 만다. 완전한 사랑을 갈구하던 안나는 자살로써 자신의 사랑을 인정하지 않았던 세상에 복수를 한다. 저자는 여기에서 안나가 자살하지 않고 자기만의 방을 만들고 홀로서기를 통하여 자기 인생을 현명하게 경영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이 오히려 진정한 복수가 아니었을까.
Part6는 사랑의 결정체이며 완벽한 종착역인 결혼을 다룬 작품들이다. 세기의 지성 사르트르와 계약결혼을 선택하여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사랑과 결혼의 모습을 보여 준 시몬 드 보부아르의 <위기의 여자>는 로멘틱한 결혼은 환상에 지나지 않을 뿐 행복이 깨지면서 홀로서기를 시도하는 마흔네 살 여인의 이야기이다. 저자는 결혼이 사랑과 행복이 가득한 집이 아니라 둘 사이의 거리에 새로운 다리를 놓고 소통하여 최적의 거리를 조절하는 성실한 노력이 필요한 과정임을 강조한다.
작가의 프리즘을 통해 34편의 문학작품 속에서 변주된 사랑의 연주를 다 듣고나니, 제대로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는 작가의 생각과 사랑은 자신의 감정과 직관에 충실하며 물 흐르듯 자연스레 이어가는 것이라는 나의 생각이 궁극엔 같은 것임을 깨닫는다.
작가도 나도 사랑은 달콤한 행복만이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용기와 실천으로 쟁취해야 하며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책임감과 헌신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하나의 뿌리에 맞닿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 존재해온 문학작품 속의 사랑을 분석하여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일깨워주려고 하는 책. 비록 수록된 모든 작품을 읽어보진 못했으나 인류의 역사가 지속되는 한 사랑의 역사도 함께 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나의 사랑의 변주곡은 어떤 빛깔일지 되새겨 본다
한 번의 인생을 살면서 운명적 사랑으로 내게 와 준 사람
남아있는 시간도 지금처럼 자신보다 서로를 더 아껴주고 위해주며
비바람 속에서도 한 우산을 쓰고 마지막까지 함께 걸어가고 싶노라
사랑의 고백을 처음인 듯 하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