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올빼미
사데크 헤다야트 지음, 공경희 옮김 / 연금술사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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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은 빛의 축복 속에서만 사물을 본다. 빛이 사라지고 어둠이 내리면 눈앞에 장막이 드리운다. 그러나 올빼미는 어둠 속에서도 사물을 볼 수 있는 두 눈을 지녔다. 그런데 그 어둠마저 볼 수 없게 눈이 먼다면 그 다음은 무엇으로 세상을 보아야 할까. 바로 마음의 눈, 심안만이 그 어떤 상황 속에서도 세상 저 너머까지를 꿰뚫어 볼 수 있으며 자신을 지켜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마음의 눈으로 바라 본 암울한 내면의 풍경을 초현실적인 환상의 힘을 빌어 적어내려간 글. 어느 누구도 나를 이해해 주지 못할 때, 타인과의 사이에 깊고 어두운 심연만이 존재한다고 느껴질 때, 할 수 있는 유일한 행위는 '침묵'이다. 타인과 이어진 모든 연결고리를 끊고 오로지 무겁게 침묵하는 것. 그러나 결국 그는 입을 연다. 고독한 영혼의 상처와 절망을 한 사람에게 만이라도 들려주고 싶어서이다. 그 독백을 들어주고 이해해 줄 유일한 사람이 바로 올빼미 모습을 한 자신의 그림자라는 아이러니로부터 소설은 시작된다.

 

 풀이 움트면서 내는 소리, 철새의 날갯짓 소리, 창백한 별들이 꺼져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예민한 자아를 가진 주인공 '나'.

 

 사방 벽이 막힌 방안에 앉아 고독하게 필통뚜껑을 장식하는 일을 하며 흐르는 시간을 무겁게 버텨내던 나는 운명의 순간 한 여인을 보게되고, 불가해한 마법 같은 치명적인 매력의 두 눈동자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된다. 그 여인이 나의 방에 찾아와 죽음을 맞이하자 시신을 매장하고 온 날, 나는 과거의 세계 속으로 돌아가 또 다른 삶을 살게 된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여전히 나는 고독하며 존재의 무덤, 마음의 무덤인 방에서 모든 것들과 단절된 생활을 한다.

 

 나는 늘 죽음에의 유혹에 빠져든다.

'나 자신을 망각의 잠에 내맡기고 싶은 욕망이 심장 밑바닥에서부터 밀려왔다. 단지 망각에 도달할 수만 있다면, 만일 그것이 영원히 지속될 수만 있다면, 감은 내 눈이 잠을 초월해 무로 화할 수 있다면, 그래서 앞으로 언제까지나 내 존재를 의식하지 않을 수 있다면. 만일 내 존재가 한 방울의 잉크 속에서, 한 소절의 음악 속에서, 한 줄기의 색깔있는 빛속에서 녹아 사라지는 일이 가능하다면, 그리하여 이 파도들과 형태들이 점점 커져 무한대의 크기가 되어서 마침내는 희미해져서 사라져 버린다면. 그렇게만 된다면 나의 바람도 이루어지리라.' (P64)

숨쉬는 순간순간이 너무 고통스러워 나의 존재가 소멸하여 무로 화하기를 바라는 그 처절함이 가슴을 파고들어 눈물이 흘렀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여기에 공감하여 자살을 했다고 한다.

 

 한 문장, 한 문장, 바람결에 흩날리는 꽃비처럼 아름답고 지난 밤 꿈처럼 불온하고 잠자리 날개처럼 얇고 섬세해서 내 마음도 따라 부서질까 두려워 조심조심 천천히 그 속으로 걸어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난해하고 형이상학적인 색채를 띈 작품을 이처럼 유려하고 자연스러운 문장으로 옮겨준 번역자의 노고와 필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문장이 아름다운 의미와 비유로 짜여진 한필의 비단처럼 격조있는 작품이다.

 

 사진 속 작가의 눈동자 속에서 불안과 절망과 죽음을 향한 광기를 느낄 수 있었다. 소설 속에 자주 등장하는 왼쪽 검지를 입술에 댄 포즈에서 이 소설이 자전적 소설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조국 이란의 정치적 격동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타국을 떠돌며 부박한 삶을 이어간 작가 사데크 헤다야트. 앞으로 나갈 수도 뒷걸음질 칠 수도 없는 현실의 덫에 걸려 아편과 술에 의지하며 좌절과 우울의 늪에서 허우적대던 그는 죽음만이 그를 구원해 주리라는 믿음 속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늘 불안하게 서성였던 자신의 어두운 심연을 자신의 그림자에게밖에 얘기할 수 없었던 외로운 사내. 그의 암울하고 슬픈 독백을 모두 이해하고 공감할 수는 없지만 페르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걸작이라는 평가에는 고개를 끄덕여 본다.

 

 참으로 매혹적이고 신비롭고 깊이있는 작품이며 문학적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다. 개성 넘치는 책의 외형과 그 속에 담긴 작품의 가치가 빛을 발하여 오래오래 아껴가며 두고두고 되풀이해 읽고 싶은 책이다.

 

 사방이 고요한 밤

 마음의 눈으로 내면을 들여다 본다

 모든 인간은 고독하며 어두운 심연을 지니고 있다

 

 그 속에 존재하는 눈먼 올빼미의 독백을

 자신의 그림자에게 들려주노라면

 그래도 어둠이 옅어지는 새벽이 온다

 

 삶의 궤양에도 새 살이 돋기를 바라는 굳은 의지

 그 마음의 힘이 간절해지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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