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춘단 대학 탐방기
박지리 지음 / 사계절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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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시포스의 바위가 가진 잔인한 부조리

온 힘을 다해 산꼭대기까지 바위를 밀어올린 바로 그 순간 바위는 산 아래로 굴러떨어지지만 다시 밀어올릴 수밖에 없는 반복성. 예전에는 그저 제우스의 무거운 벌로만 보였던 시시포스의 행위 속에서 이제 우리의 삶을 본다. 각자의 자리에서 죽을 힘을 다해 발버둥치지만 삶은 만만치 않으며, 도처에서 발목을 붙드는 부조리 속에서도 또 하루를 밀고 나가야 하는 것이 삶의 진정한 얼굴이다.

 

 이러한 무거운 삶의 속성 속에서 그래도 우리가 숨통을 틔우고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의 자유의지가 허용된 공간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근거하여 누구든 어떤 방식으로든 자기 나름의 삶에 대한 대응 방식을 가지고, 때로는 좌절하며 때로는 저항하며 뚜벅뚜벅 삶의 길을 걸어간다.

 

 여기 그런 우리들의 삶의 모습이 가감없이 수식없이 날것 그대로 고스란히 담겨있는 소설<양춘단 대학 탐방기>가 있다. 거칠고 소박하면서도 웅숭깊고 구수하고, 너무 아파서 오히려 눈물보다 웃음이 나는 이야기.

 

 남편의 병을 고치기 위해 정든 고향을 떠나 서울 아들네로 옮겨 온 65세 양춘단이 대학 청소부로 일하면서 겪는 일들이 굵은 나무둥치가 된다. 거기에 양춘단의 부모 이야기, 아들 며느리 손자 이야기, 하숙생 이야기, 남편이 키우는 장닭 이야기 등이 가지가 되고 잎사귀가 된다. 참으로 오랜만에 재미있고 매력적인 한국 소설을 만난 기분이다.

 

 환경 미화원들의 처우 문제부터 교수들과 대학의 비리, 어떤 사건이나 문제에도 통속적이고 순간적인 관심 이상의 것을 보여주지 못하는 학생들까지, 우리 대학의 겉모습에서부터 속에 숨겨진 어두운 단면까지 대학의 풍속도를 양춘단의 시선과 생각으로 낱낱이 파헤쳐 준다.

 

 현실을 직시하면서 그것을 해학적으로 풍자하고 비트는 필력이 블랙유머의 대가인 중국 소설가 위화를 떠올리게 한다. 삶의 파도에 휩쓸려가며, 꾸역꾸역 불행과 고통을 받아들이고 삼켜가며, 주저앉지만 기어이 다시 일어나 삶을 껴안는 보통 사람들의 위대함.

 

 밥을 나누며 마음을 나누었던 시간강사의 자살 후 그가 남긴 노트의 글들을 화장실 벽에 옮겨 적고 다니던 양춘단. 대학의 상징이던 거대한 코끼리 석상에 밤마다 쉼없이 망치질을 해 마침내 석상을 무너뜨리던 양춘단. 자신의 손으로 조각한 예수상을 역시 자신의 손으로 깨트렸던 양춘단의 아버지의 행위야 말로 시대와 종교와 사회에 매몰되어 버리는 개개인 인간들의 살아있는 저항의 몸짓이며 삶 그자체가 아닐까 싶다.

 

 비록 그 몸짓이 호수에 파문하나 제대로 일으키지 못하고 가라앉아 버리는 작은 돌멩이의 아우성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그들의 삶은 존엄하고 가치롭다.

 

 아름다운 은유나 비유가 가득한 문장들로 문학성 높은 소설들을 지향할 때, 삶의 민낯에 천착하여 이토록 재미있고 재기발랄하며 의미있는 소설을 써 준 작가 '박지리' 그녀가 멋지다. 앞으로 글의 행보가 기대되며 주목해 보고 싶어진다.

 

 그리고 또 한 사람 양춘단 그녀가 멋지다

 

 비록 배우지 못하고 낮은 자리에 있었으나 누구보다 올곧고 정깊은 인간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용기있게 자신만의 실천을 했던 그녀

 

 코끼리 등을 타고 망치질을 해대던 그녀의 작고 야윈 손 위에

 가만히 내 손도 얹고 싶어지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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