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걷는 즐거움 - <걷기예찬> 그 후 10년
다비드 르 브르통 지음, 문신원 옮김 / 북라이프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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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인생은 돌아올 수 없는 길이다. 우리 모두 늘 그 끝모를 길 위에 서 있다. 단지 누구는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거나, 차창 밖으로 스쳐지나가는 풍경을 보듯 마주 치는 순간들을 그저 흘려 보낸다. 또 누구는 온 마음과 몸으로 길을 껴안으며 뚜벅뚜벅 느리지만 깊은 걸음을 걷는다.

 

 걸음을 시작할 때 우리는 발만으로 걷는 것은 아니다. 머리로 걷고 가슴으로 걷고 발로 걷는다. 목적지를 정하고 방향을 정하고 속도를 정하는 머리가 있고, 가고 싶다는 기분과 욕망과 가야만 한다는 강박이 가슴에 숨어있다. 그것들이 다리를 움직인다. 비 오는 날은 비 오는 날대로 눈 오는 날은 눈 오는 날대로 맑은 날과 흐린 날은 그런대로  걷는 맛이 생겨난다. 다리를 규칙적으로 움직이며 보폭을 만들어 가는 일, 땅의 굴곡을 온 몸으로 느끼며 지그시 밟는 일. 부드러운 공기가 뺨위를 스치는 느낌. 귀에 다가오는 숱한 소리들, 미로처럼 이어지는 갈아타야 할 길들.

 

 예전에는 걷기란 나로부터 출발하여 외부영역으로 자신을 확장시켜 나가는 행위라고 생각했다. 나만의 울타리를 넘어서 세상과 만나는 일. 복잡한 도시 풍경이든 한적한 전원 풍경이든 직접 그 속으로 화살처럼 강하고 씩씩하게 날아가 하나가 되는 것. 하지만 갈수록 걷기란 나로부터 출발하여 나의 내면 속으로 깊숙히 파고 들어가는 행위임을 깨닫는다. 걸어면서 마주치는 무수한 풍경과 꼬리를 무는 생각과 들려오는 소리와 만들어지는 추억들이 결국은 나의 오감을 열고 내 속으로 들어가 내밀한 속살로 여물어 간다는 것.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말했듯이 '내 다리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내 생각도 흐르기 시작한다.'

 

 이런 걷기에 대한 인식의 전환에 부합하는 책 한 권을 만났다. 국내에서 2002년 출간 된 걷기의 바이블 <걷기예찬>의 저자 다비드 르 브르통이 그 후 10년 간의 걷기를 통해 얻은 체험과 깨달음을 다시 <느리게 걷는 즐거움>이란 책으로 펴냈다.

 

 "걷기는 가장 우아하게 시간을 잃는 법이다." 시간은 끊임 없이 흘러간다. 아니 우리는 주어진 시간을 쉼 없이 잃어 간다. 이때 가장 우아하게 시간을 잃어 가는 방법이 걷기라니 이 얼마나 매혹적이고 함축적인 표현인가. 저자는 길을 걸으며 겪은 경험과 감동을 풀어 놓고,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는 여정을 차분히 서술함으로서 우리를 진정한 자유와 달콤한 고독과 깊은 사색의 시간속으로 데려간다.

 

 걷기를 찬양한 글일 정도로만 예상하고 읽었는데, 걸을 때 함께 읽으면 좋은 작가들의 글이나 철학자들의 사유를 소개하여 육체의 건강뿐만 아니라 정신의 고양까지 아우르고 있다. 빅토르 위고, 헨리 데이비드 소로, 헤르만 헤세, 밀란 쿤데라, 프리드리히 니체등 걷기를 사랑했고 걷기로부터 작품의 모티프를 가져 왔던 수많은 작가들의 작품을 실어 즐거운 정신의 산책을 유도하고 있다.

 

 루소는 "걷기에는 생각과 활력에 생기를 불어넣는 무언가가 있다. 그래서 나는 제자리에 가만히 있으면 거의 생각을 할 수가 없다. 정신을 움직이려면 몸을 부단히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다. 저자가 여기에 충실하게 따르며, 걷는 동안 무수히 만나게 된 길 위의 상황들과 떠오르는 생각마다 ,적절한 작가나 철학자의 글들을 연관지어 밀고 나가는 필력과 사유의 깊이에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이왕 가야 할 길이라면 느리게 걷는 즐거움을 느끼며 가자. 내면 속으로 뻗어 있는 자신만의 길을 고요히 걸어 들어가는 자의 묵직한 발걸음은 아름답다.

 

 걸음 위에서 시를 생각하고

 걸음 위에서 외로운 어머니를 생각하고

 걸음 위에서 다가올 여름을 생각하고

 걸음 위에서 이제는 멀리 사라진 추억속의 사람을 생각한다면

 걸음은 거대한 기억과 상상의 마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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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없이 작은, 한없이 위대한 - 보이지 않는 지구의 지배자 미생물의 과학
존 L. 잉그럼 지음, 김지원 옮김 / 이케이북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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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보이는 것이 다는 아니다. 흔히 이 말은 우리 눈에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것. 형체는 없지만 실체는 있는 정신적인 영역이나 초월적인 신의 존재 등을 이야기 할 때 쓰는 비유이다. 이제 여기다 미생물의 존재를 하나 더 추가한다.

 

 학창시절 생물시간에 잠깐 귀동냥 해 본 이후로 실생활에서 미생물의 존재를 처음으로 실감 해 본 것은 요구르트를 만드는 유산균이었다. 지인에게서 분양받은 종균덩어리에 우유를 부어두면 신기하게도 우유는 요구르트가 되고 종균덩어리는 점점 몸체를 불려갔다. 그러나 관리가 힘들어서인지 금세 흥미를 잃어버렸다. 그러다 우리의 김치나 전통적인 장 종류가 발효식품으로 각광을 받기 시작했고, 근래들어 효소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면서 그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미생물의 존재에 호기심을 느껴 이 책을 읽어보게 되었다.

 

 지은이 존 L 잉그럼은 세계적인 미생물 연구자이자 작가, 자연주의자로 박테리아의 학명에 그의 이름을 넣을 정도로 저명하다. 그런 그가 우리를 신비로운 미생물의 세계로 안내하는 가이드가 되어 미생물의 정체와 경이로움으로 우리를 매혹시킨다.

 

 한 번도 생각해보진 않았지만 어찌보면 너무 당연한 사실. 미생물의 역사는 인류역사보다 훨씬 오래됐다는 것이다. 그들은 35억 년 전부터 수십억 년 동안 지구상에 존재한 인간의 창조주이자 수호주이다. 1km와 1cm의 차이, 그것이 미생물과 인류역사의 실감나는 대비이다.

 

 즉 미생물이 있기에 인간의 삶과 지구의 존재가 가능하며, 그들은 인류의 진화사와 함께한 인류의 동반자이며, 지구의 자연현상 또한 미생물의 활동이 있어 가능하다는 것이다. 해질 무렵 아름답게 빛나는 구름도 미생물의 활동에 의한 것이라니 너무나 경이롭기까지 했다.

 

 생물학적 지식이 부족한 사람도 익히 들어본 박테리아와 바이러스로 1장을 시작하여, 일단 거부감 없이 편하게 읽기 시작할 수 있었다. 생활 속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미생물의 활동들, 생선의 비린내인 트리메틸아민은 박테리아가 대사 과정을 통해 바다 생선에 풍부한 트리메틸아민 옥사이드로부터 만들어낸다는 것. 조용한 연못에서 쏟는 기포는 바닥의 진흙속에 살고있는 고세균이 메탄가스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라는 것.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듯이 요구르트, 치즈, 샴페인, 와인 등의 음식도 미생물의 기여가 없다면 절대 탄생될 수 없었다는 것. 여기까지는 재미있고 즐거운 마음으로 미생물의 영역을 탐험하였다.

 

 그러나 '인간이란 우리 자신의 세포와 미생물 세포가 함께 살아가는 혼합체이다. 어떤 부분에서는 미생물이 꽤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우리 몸 위에 그리고 몸 안에 있는 미생물의 총 수는 우리 자신의 세포보다 열 배나 많다. 우리 장에만 10조에서 100조의 미생물이 살고 있다. 그리고 우리 미생물 손님들의 유전자에 기록된 대사 정보의 양은 우리 자신의 유전자에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다. 미생물의 잠재적 대사활동이 우리 자신의 것보다 훨씬 뛰어난 것이다.'(P133)란 부분에 이르자 미묘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21세기의 첨단 과학문명을 창조한 인간의 몸 속에 우리의 세포 수보다 많은 미생물이 살고있다니 그리고 그 미생물의 활동에 의해 우리의 삶이 유지되고 있다니-.

 

 물론 장 속에 존재하는 미생물 즉 유산균의 존재와 활동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뚱뚱한 사람과 마른 사람을 좌우하고 심지어 질병에까지 관여하는 미생물의 존재와 활약은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인터넷을 사용하며 사랑을 나누는 우리 인간의 몸 속에 엄청난 미생물이 가득차 있다. 그리고 그들로 인하여 호흡하고 소화하고 배설하는 신진대사가 가능하고 생명이 유지될 수 있다니, 결국 우리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미생물들에게 삶을 빚지고 있는 것이다. 왜 한없이 작지만 한없이 위대한지 절감되는 부분이었다.

 

 그 외에도 극단적인 환경에서도 존재할 수 있는 극한의 미생물, 우리 몸에 적대적인 미생물, 인간과 친숙한 미생물 등 미생물의 영역은 너무나 다양하고 흥미롭고 신비롭기까지 했다. 특히 핵폭발이나 천재지변에 의해 지구멸망의 순간이 왔을 때, 우리 인류가 사라진 이후에도 살아남아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은 다름아닌 미생물일 것이라는 마무리는, 하찮은 인간의 존재를 뛰어넘는 작으나 위대한 미생물의 실존적 가치를 느끼게 해주어 뭉클함마저 느껴졌다.

 

 하지만 과학서적을 읽어본 적이 없는 데다가 관련지식도 부족하여 읽어나가는 과정이 만만치가 않았다. 뭐든 완벽하게 이해하려 애쓰고 앞뒤를 맞춰 점검해보고 그 내용을 다시 머릿속으로 그려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탓에 애를 먹을 수밖에 없었다. 눈과 입에서 모래알처럼 겉도는 낯선 용어들과 잘 이해되지 않는 미생물의 활동과정 등이 수시로 앞을 가로막았다.

 

 그러다가 스스로 길을 찾았으니 '이해할 수 있는 만큼만 읽고 즐겁게 읽자'였다. 용어를 모르면 어떻고 과학적 원리가 완전하게 이해 안 되면 어떠랴. 모름지기 미지의 세계에 대한 탐험은 짜릿하고 즐거워야 하는 법. 그동안 몰랐던 우리의 이웃, 미생물의 세계를 알게되고 그 중요성과 위대함을 깨닫게 된 것만으로도, 이 책의 효용가치는 충분하지 않을까라고 스스로 만족해 본다.

 

 비록 보이지않지만 내 생명을 유지시켜주는 미생물

 

 한없이 작지만 한없이 위대한 존재에게 경외감을 느낀다

 

 그들의 수고로움으로 살아가고 있는 자신의 삶 또한 한없이 소중하게 대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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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제주
서미정.이신아.한민경 지음 / 루비콘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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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 ' 소리내어 부르면 푸르른 파도소리가 들린다.

 ' 제주 ' 속으로 되뇌이면 돌하르방의 전설이 떠오른다.

 ' 제주 ' 눈으로 그리면 노오란 유채꽃 밭이 일렁거린다.

 ' 제주 ' 마음으로 그리면 들판을 건너가는 바람의 날개가 된다.

 

 제주도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대부분 가슴에 품고사는 최고의 안식처이며 이상향이다. 단순히 이국적인 정취의 관광지의 의미를 넘어서서, 그곳에 가면 일상을 벗어난 특별한 하루가 펼쳐질 것 같고 , 매일매일 상처가 덧나는 가슴도 치유될 것 같고, 돌담 모퉁이를 돌거나 바닷가를 혼자 거닐다 보면 나를 닮은 반쪽을 만날 것 같은 , 환상의 섬 제주.

 

 그래서 사람들은 휴가지로 제주를 선택하고 은퇴 후 제주에서의 삶을 꿈꾼다. 그러던 제주가 근래 들어 삶의 터전으로 관심이 집중되고, 비교적 젊은 층 사이에서도 제주에서의 삶을 꿈꾸고 실현시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 책은 그런 제주앓이 열풍에 맞춰 출간이 되었다. 봄이라는 계절에 너무나 잘 어울리는 유채꽃밭을 연상시키는 노란 빛깔의 표지는 한눈에 시선을 잡아 끈다. 앞 표지 가운데의 푸른 하늘을 나는 비행기 날개 사진을 보노라면 우리는 이미 제주도로 날아가고 있는 탑승객이 된다.

 

 그 무엇보다도 책에 대한 흥미를 불러 일으킨 것은 집필자 세 사람의 각기 다른 제주에 대한 시선이었다. 세 사람 그것도 세 여자가 제주여행자, 제주생활자, 제주이민자의 시선으로 본 제주에세이라니 세 가지 각도에서 바라보는 제주의 깊은 속살을 볼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으로 책을 읽었다.

 

 서울에서 광고기획자로 숨가쁜 생활을 하고 살지만 도시생활을 사랑하는 여행자 여자. 그녀에게 제주는 주말을 보내는 완벽한 쉼터이다. 자전거도 타고 걷기도 하면서 제주의 풍경을 카메라와 가슴에 담는다.

 미래를 계획하기 위해 제주도 올레길을 걷다가 제주에 반해 제주살이를 결정하고 게스트하우스 스태프 생활을 하며 2년 째 제주에서 살고 있는 생활자 여자. 그녀에게 제주는 앞으로 살아가야 할 자리를 가늠해 보는 완충지대이다. 매일을 바쁘게 일하고 게스트하우스 청소일에 회의를 느끼기도 하지만 막상 제주를 떠나면 제주를 그리워하고 제주로 돌아온다.

 광고 외길을 걷다가 접은 후 제 2의 삶의 터전으로 제주를 선택해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이민자 여자. 그녀에게 제주는 로망이나 환상이 아니라 밥벌이를 위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현실의 공간이다. 아직도 완전한 제주 사람이 되지 못했지만 오히려 그 자유로운 이방인의 삶을 사랑한다.

 

 이 세 여자의 머리와 눈과 가슴에 담긴 제주를 다채로운 사진들과 함께 단상으로 엮어 놓았다. 읽고 있노라면 마음이 맑아지고 편안해진다. 마치 제주 성산포에서 봄이 오는 바다를 바라보며 바람내음을 맡는 기분이 든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기대했던 여행자, 생활자, 이민자의 위치에서 바라보고 체험한 심도 있는 이야기는 아니다. 무엇보다 세 사람의 글에서 분명한 입자의 차이를 느낄 수 없어 안타까웠다. 적당히 감성을 곁들인 제주스케치 같은 책이다.

 

 하지만 그래도 좋다.

 

 한라산에서 일어나 해안도로를 휘감고 도는 바람 한 줄기를 데려다

 찻잔 속에 풀어 놓고 가만히 마셔보자.

 

 어느덧 그리움이란 이름으로 목젖을 타고 흘러 가슴속에 진하게 스며든다.

 

 아름답디 아름다운 섬 제주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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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이 걸어간다 달걀이 걸어 간다 : 베델과 후세 1
이영현 지음 / 하우넥스트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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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찰나의 선택' 선로위에 떨어진 취객을 구하기 위해 달려 들어오는 전동차 앞으로 몸을 던질지 말지를 결정 짓는 선택의 순간.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을 내던지는 사람들은 이 부분을 관장하는 머릿속의 뇌세포 조직이 보통 사람들과 다르다는 이야기를 티비에서 접한 기억이 있다. 즉 타인을 위해 자신을 기꺼이 희생할 수 있는 정신이 이미 체화되고 내재되어 몸 속을 흐르며, 언제든지 실천이란 행위로 분출 될 수 있는 준비를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이야기의 진위여부나 신기함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한 알의 밀알, 한 자루의 촛불, 한 개의 달걀이 지닌 숭고함.

 

 한 알의 밀알이 수십 수백 개의 이삭을 피워내고, 한 자루의 촛불이 자신을 태워 어둠을 밝히고, 한 개의 달걀이 병아리를 품어 닭으로 성장시키는 아름다운 힘. 자기로 시작하였으나 그 속에 머물지 않고 자신을 희생시킴으로써 오히혀 주변부로 확장하며 나아가는 이 고귀한 생명의 에너지를 '인류애'라 부르기로 하자.

 

 인간으로 태어나 입신양명과 부귀영화의 길을 좇으며 자신과 가족의 안락함을 추구하는 건 인간의 역사가 시작 된 이래 인간의 혈관속을 타고 흐르는 본능일 것이다.더구나 타인에게 해를 가하면서 까지 피에 젖은 손으로 탐욕의 열매를 움켜 쥐려는 자들도 많다. 하지만 그 무서운 본능의 힘을 이겨내고 자신과 가족의 테두리를 떨치고 나아가, 타인의 삶을 위해 인류애를 실천 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로 인하여 우리는 좀 더 인간다워질 수 있었고, 인간임이 고맙고 자랑스러울 수 있었다.

 

 전 세계적으로 알려진 슈바이처 박사나 테레사 수녀 이외에도 자신을 거름 삼아 타인의 생명과 삶에 환한 꽃망울을 터트려준 사람들을 의외로 많이 찾아볼 수 있다. 탐욕과 폭력이 난무하는 인류역사를 지탱시켜 준 힘이며 미래를 가능하게 하는 등불이다.

 

 저자는 인류애를 실천 한 네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희망의 씨앗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과거 역사 속의 두 인물 영국인 베델과 일본인 후세, 현대의 두 인물 이태석 신부와 이수현 씨. 네 사람은 각기 다른 시간과 공간 속에서 삶을 살았지만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인류애 정신이라는 같은 뿌리와 접점을 지닌다.

 

 처음에는 대한제국 말기에 우리나라에 와서 헌신했던 베델과 후세의 활동을 그린 역사소설인 줄 알았다 그러나 작품은 아프리카 수단에서 활동 중인 한국인 알프레드 리 신부와 영국에서 친구가 된 수단인 빌, 영국인 수전,한국인 영현의 성장과 학교생활을 전면에 내세운다. 이들을 통하여 가난과 전쟁으로 얼룩진 수단에서 일생을 바치며 봉사한 한국인 카톨릭 사제 이태석, 1900년 대  초반 무렵 영국인으로서 머나먼 타국 조선에 와 신문을 발행하며 조선인의 인권을 대변하고 일본에 저항했던 베델, 일본인이지만 오로지 인간적인 양심에 따라 일본의 잘못을 지적하며 일본때문에 희생되는 조선인과 타이완인을 위해 헌신하는 용기를 보여 준 후세, 그리고 약 10여 년 전 지하철역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어 일본대륙을 감동의 눈물속으로 빠트렸던 이수현, 이 네 사람의 고귀한 희생을 일깨우고자 했다.

 

 소설은 무릇 네 가지 종류가 있다고 생각한다. 재미도 의미도 있는 작품, 재미는 있으나 의미는 없는 작품, 재미는 없으나 의미는 있는 작품, 재미도 의미도 없는 작품. 이 소설은 세 번째에 해당되지 않나 싶다. 영국의 학교에서 만나 우정을 쌓아가는 빌, 수전, 영현이 모두 이태석, 베델, 후세, 이수현과 연관성을 가진 인물들이라는 설정은 너무 인위적이고 억지스러운 느낌을 주었으며 청소년들의 성장소설같은 느낌이 많이 들었다.

 

 하지만 지나간 과거속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빛이 바랜 역사 속의 두 인물과 오늘 날의 두 인물을 통해 보여준, 그들의 고귀한 인류애는 시공간을 넘어 우리에게 인간의 조건이 무엇인지를 몸소 가르쳐 주는 훌륭한 지표가 될 것이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는 말이 새삼 떠오르는 소설. 저자가 바란 대로 이 작품이 인류의 역사가 올바른 방향으로 진행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같이 바라본다. 

 

 지금 이 순간에도 밀알과 촛불과 달걀의 역할을 하고 있는 이들에게 진정으로 고마움과 존경의 마음을 가져 보는 것

 

 일상속에서 소소하게나마 타인을 위해 양보하고 배려하고 도와주려는 마음결을 가다듬어 보는 것

 

 이 책이 내게 준 두 가지 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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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사라진 세상 - 인간과 종교의 한계와 가능성에 관한 철학적 질문들
로널드 드워킨 지음, 김성훈 옮김 / 블루엘리펀트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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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새 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운동권 여부를 떠나 80년 대 대학시절을 보낸 이들이라면 누구나 기억하는 운동권 가요 '님을 위한 행진곡'. 이 노래가 뜨겁디 뜨겁게 젊은 가슴을 달굴 수 있었던 것은 그 속에서 뿜어나오는 신념의 힘 때문이었을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새 날이 올 때까지 한평생이 걸리더라도 흔들리지 않고 함께 그 길을 갈 수 있다는 뜨거운 맹세에 대한 굳은 신념.

 

 이루고자 하는 바 정체가 무엇이든 신념을 지니고 지키며 인생을 살아가는 것, 그것이 인간으로서 걸어갈 수 있는 가장 고매한 삶의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개인의 삶에서도 사회 분위기에서도 신념이란 그 빛이 바래고 흔적만이 남아, 먼지바람 속에 돌멩이만 뒹구는 버려진 유적지가 되어버렸다.

 

 실로 오랜만에 신념의 가치를 되새겨 보게 해준 책, 로널드 드워킨의 <신이 사라진 세상>. 만약 이 책이 여타의 종교서적처럼 신과 신앙에 대해서만 이야기한 책이었다면 종교에 회의적인 무신론자로서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 법철학계의 거목이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 초고를 남긴 유작인 데다가, 종교의 본질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간의 신념의 문제에 천착해서 쓴 책이라니 깊은 관심과 경건한 마음자세로 대할 수 있었다.

 

 인간의 역사는 종교의 역사와 동일시 해도 무방할 정도로, 종교는 인간 삶의 뿌리이고 중심 기둥이고 테두리이다. 그 속에서 서로 사랑하고 증오하는 가운데 문화를 창조하고 유지 발전시켜 왔다.

 

 그러나 모든 인간이 종교를 가진 것은 아니다. 종교는 어느새 그 종류를 막론하고 권력화, 대형화되고 이기적이고 편협하며 자기 중심적인 모습을 보임으로써, 세계 곳곳에서 분쟁와 갈등과 죽음의 도화선으로 작용하고 있다. 따라서 종교에 염증을 느낀 무신론자들과 유신론자들의 갈등이나 대립은 소통의 단절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우리들의 종교관념에 저자는 깊이 있는 사유를 통해 새롭고 신선한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

 

 종교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초자연적인 존재 '신'을 믿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저자는 신이라는 개념을 고착화 시키지 않고 한 차원 더 높게 한 걸음 더 넓게, 종교에 대해 인간에 대해 고뇌했고 종교는 '신념'이란 결론을 이끌어내었다.

 

 1장 종교적 무신론자는 무엇을 믿는가?

 2장 우주 만물에 대한 태도

 3장 종교의 자유

 4장 죽음과 불멸로 나누어 종교의 참의미에 대해 철학, 과학, 종교학, 법학을 넘나들며 심오하고 탁월한 담론을 펼쳤다.

 

 더할 수 없이 진지하고 어렵고 무거운 주제이나 논리적인 문장 특히 다양한 분야에서 예를 들어 이해를 이끌어내는 명료한 서술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머리와 가슴 속이 채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특히 무신론자인 아인슈타인을 인용한 부분은 잊고있던 신념의 가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을 가다듬게 해주었다.

"우주에 스며들어 있는 초월적이고 객관적인 가치, 이것이야말로 아인슈타인의 신념이었고, 아인슈타인은 '종교적'이라는 말이 자기 신념의 특성을 무엇보다도 잘 표현해준다고 생각했다."

다시 말해 종교란 절대적 존재인 신을 믿고 안 믿고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면 누구나 승인하지 않을 수 없는 객관적 가치"

즉 올바른 신념을 위해 모든 사람이 자신의 삶을 소중히 여기고,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종교의 의미라고 이야기 한다.

 

 신의 존재 여부를 두고 논쟁을 벌일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평생 지키고 가꾸어 나가야할 신념에 대해 이야기 한다면 무신론자와 유신론자 사이의 간극도 많이 좁혀질 수 있지 않을까.

 

 이번에 개봉한 영화 '노아'. 사악해질 대로 사악해진 죄많은 인간의 세상을 끝내는 것이 창조주의 뜻이라고 생각하여, 태어난 손녀들의 새 생명마저 죽이려하는 노아에게 며느리 일라는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해 이야기 한다. 악함과 선함 중에 어느 것을 선택할지는 창조주가 아니라 인간에게 달려있다고, 노아가 창조주의 선택을 받은 이유는 바로 자비와 사랑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그 순간 노아는 창조주의 진정한 뜻을 이해하고 칼을 거두었으며 인류의 역사는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되었다. 창조주의 존재유무를 떠나 무신론자인 내게 일라와 노아의 생각과 선택은 바로 신념으로 다가왔다.

 

 우리의 가슴 속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텅 빈 심연이 있다. 그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종교를 믿고 예술을 창조하고 사랑도 하는 것이 아닐까. 심연을 채우고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기 위해 가져야 하는 덕목

 

 그것을 종이 위에 '신념'이라 쓰고

 자신만의 색채를 부여한 목소리로 읽어보자

 

 무슨 색깔을 띠던 그 신념은 고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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