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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없이 작은, 한없이 위대한 - 보이지 않는 지구의 지배자 미생물의 과학
존 L. 잉그럼 지음, 김지원 옮김 / 이케이북 / 201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보이는 것이 다는 아니다. 흔히 이 말은 우리 눈에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것. 형체는 없지만 실체는 있는 정신적인 영역이나 초월적인 신의 존재 등을 이야기 할 때 쓰는 비유이다. 이제 여기다 미생물의 존재를 하나 더 추가한다.
학창시절 생물시간에 잠깐 귀동냥 해 본 이후로 실생활에서 미생물의 존재를 처음으로 실감 해 본 것은 요구르트를 만드는 유산균이었다. 지인에게서 분양받은 종균덩어리에 우유를 부어두면 신기하게도 우유는 요구르트가 되고 종균덩어리는 점점 몸체를 불려갔다. 그러나 관리가 힘들어서인지 금세 흥미를 잃어버렸다. 그러다 우리의 김치나 전통적인 장 종류가 발효식품으로 각광을 받기 시작했고, 근래들어 효소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면서 그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미생물의 존재에 호기심을 느껴 이 책을 읽어보게 되었다.
지은이 존 L 잉그럼은 세계적인 미생물 연구자이자 작가, 자연주의자로 박테리아의 학명에 그의 이름을 넣을 정도로 저명하다. 그런 그가 우리를 신비로운 미생물의 세계로 안내하는 가이드가 되어 미생물의 정체와 경이로움으로 우리를 매혹시킨다.
한 번도 생각해보진 않았지만 어찌보면 너무 당연한 사실. 미생물의 역사는 인류역사보다 훨씬 오래됐다는 것이다. 그들은 35억 년 전부터 수십억 년 동안 지구상에 존재한 인간의 창조주이자 수호주이다. 1km와 1cm의 차이, 그것이 미생물과 인류역사의 실감나는 대비이다.
즉 미생물이 있기에 인간의 삶과 지구의 존재가 가능하며, 그들은 인류의 진화사와 함께한 인류의 동반자이며, 지구의 자연현상 또한 미생물의 활동이 있어 가능하다는 것이다. 해질 무렵 아름답게 빛나는 구름도 미생물의 활동에 의한 것이라니 너무나 경이롭기까지 했다.
생물학적 지식이 부족한 사람도 익히 들어본 박테리아와 바이러스로 1장을 시작하여, 일단 거부감 없이 편하게 읽기 시작할 수 있었다. 생활 속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미생물의 활동들, 생선의 비린내인 트리메틸아민은 박테리아가 대사 과정을 통해 바다 생선에 풍부한 트리메틸아민 옥사이드로부터 만들어낸다는 것. 조용한 연못에서 쏟는 기포는 바닥의 진흙속에 살고있는 고세균이 메탄가스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라는 것.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듯이 요구르트, 치즈, 샴페인, 와인 등의 음식도 미생물의 기여가 없다면 절대 탄생될 수 없었다는 것. 여기까지는 재미있고 즐거운 마음으로 미생물의 영역을 탐험하였다.
그러나 '인간이란 우리 자신의 세포와 미생물 세포가 함께 살아가는 혼합체이다. 어떤 부분에서는 미생물이 꽤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우리 몸 위에 그리고 몸 안에 있는 미생물의 총 수는 우리 자신의 세포보다 열 배나 많다. 우리 장에만 10조에서 100조의 미생물이 살고 있다. 그리고 우리 미생물 손님들의 유전자에 기록된 대사 정보의 양은 우리 자신의 유전자에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다. 미생물의 잠재적 대사활동이 우리 자신의 것보다 훨씬 뛰어난 것이다.'(P133)란 부분에 이르자 미묘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21세기의 첨단 과학문명을 창조한 인간의 몸 속에 우리의 세포 수보다 많은 미생물이 살고있다니 그리고 그 미생물의 활동에 의해 우리의 삶이 유지되고 있다니-.
물론 장 속에 존재하는 미생물 즉 유산균의 존재와 활동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뚱뚱한 사람과 마른 사람을 좌우하고 심지어 질병에까지 관여하는 미생물의 존재와 활약은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인터넷을 사용하며 사랑을 나누는 우리 인간의 몸 속에 엄청난 미생물이 가득차 있다. 그리고 그들로 인하여 호흡하고 소화하고 배설하는 신진대사가 가능하고 생명이 유지될 수 있다니, 결국 우리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미생물들에게 삶을 빚지고 있는 것이다. 왜 한없이 작지만 한없이 위대한지 절감되는 부분이었다.
그 외에도 극단적인 환경에서도 존재할 수 있는 극한의 미생물, 우리 몸에 적대적인 미생물, 인간과 친숙한 미생물 등 미생물의 영역은 너무나 다양하고 흥미롭고 신비롭기까지 했다. 특히 핵폭발이나 천재지변에 의해 지구멸망의 순간이 왔을 때, 우리 인류가 사라진 이후에도 살아남아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은 다름아닌 미생물일 것이라는 마무리는, 하찮은 인간의 존재를 뛰어넘는 작으나 위대한 미생물의 실존적 가치를 느끼게 해주어 뭉클함마저 느껴졌다.
하지만 과학서적을 읽어본 적이 없는 데다가 관련지식도 부족하여 읽어나가는 과정이 만만치가 않았다. 뭐든 완벽하게 이해하려 애쓰고 앞뒤를 맞춰 점검해보고 그 내용을 다시 머릿속으로 그려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탓에 애를 먹을 수밖에 없었다. 눈과 입에서 모래알처럼 겉도는 낯선 용어들과 잘 이해되지 않는 미생물의 활동과정 등이 수시로 앞을 가로막았다.
그러다가 스스로 길을 찾았으니 '이해할 수 있는 만큼만 읽고 즐겁게 읽자'였다. 용어를 모르면 어떻고 과학적 원리가 완전하게 이해 안 되면 어떠랴. 모름지기 미지의 세계에 대한 탐험은 짜릿하고 즐거워야 하는 법. 그동안 몰랐던 우리의 이웃, 미생물의 세계를 알게되고 그 중요성과 위대함을 깨닫게 된 것만으로도, 이 책의 효용가치는 충분하지 않을까라고 스스로 만족해 본다.
비록 보이지않지만 내 생명을 유지시켜주는 미생물
한없이 작지만 한없이 위대한 존재에게 경외감을 느낀다
그들의 수고로움으로 살아가고 있는 자신의 삶 또한 한없이 소중하게 대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