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사라진 세상 - 인간과 종교의 한계와 가능성에 관한 철학적 질문들
로널드 드워킨 지음, 김성훈 옮김 / 블루엘리펀트 / 2014년 2월
평점 :
품절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새 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운동권 여부를 떠나 80년 대 대학시절을 보낸 이들이라면 누구나 기억하는 운동권 가요 '님을 위한 행진곡'. 이 노래가 뜨겁디 뜨겁게 젊은 가슴을 달굴 수 있었던 것은 그 속에서 뿜어나오는 신념의 힘 때문이었을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새 날이 올 때까지 한평생이 걸리더라도 흔들리지 않고 함께 그 길을 갈 수 있다는 뜨거운 맹세에 대한 굳은 신념.

 

 이루고자 하는 바 정체가 무엇이든 신념을 지니고 지키며 인생을 살아가는 것, 그것이 인간으로서 걸어갈 수 있는 가장 고매한 삶의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개인의 삶에서도 사회 분위기에서도 신념이란 그 빛이 바래고 흔적만이 남아, 먼지바람 속에 돌멩이만 뒹구는 버려진 유적지가 되어버렸다.

 

 실로 오랜만에 신념의 가치를 되새겨 보게 해준 책, 로널드 드워킨의 <신이 사라진 세상>. 만약 이 책이 여타의 종교서적처럼 신과 신앙에 대해서만 이야기한 책이었다면 종교에 회의적인 무신론자로서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 법철학계의 거목이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 초고를 남긴 유작인 데다가, 종교의 본질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간의 신념의 문제에 천착해서 쓴 책이라니 깊은 관심과 경건한 마음자세로 대할 수 있었다.

 

 인간의 역사는 종교의 역사와 동일시 해도 무방할 정도로, 종교는 인간 삶의 뿌리이고 중심 기둥이고 테두리이다. 그 속에서 서로 사랑하고 증오하는 가운데 문화를 창조하고 유지 발전시켜 왔다.

 

 그러나 모든 인간이 종교를 가진 것은 아니다. 종교는 어느새 그 종류를 막론하고 권력화, 대형화되고 이기적이고 편협하며 자기 중심적인 모습을 보임으로써, 세계 곳곳에서 분쟁와 갈등과 죽음의 도화선으로 작용하고 있다. 따라서 종교에 염증을 느낀 무신론자들과 유신론자들의 갈등이나 대립은 소통의 단절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우리들의 종교관념에 저자는 깊이 있는 사유를 통해 새롭고 신선한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

 

 종교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초자연적인 존재 '신'을 믿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저자는 신이라는 개념을 고착화 시키지 않고 한 차원 더 높게 한 걸음 더 넓게, 종교에 대해 인간에 대해 고뇌했고 종교는 '신념'이란 결론을 이끌어내었다.

 

 1장 종교적 무신론자는 무엇을 믿는가?

 2장 우주 만물에 대한 태도

 3장 종교의 자유

 4장 죽음과 불멸로 나누어 종교의 참의미에 대해 철학, 과학, 종교학, 법학을 넘나들며 심오하고 탁월한 담론을 펼쳤다.

 

 더할 수 없이 진지하고 어렵고 무거운 주제이나 논리적인 문장 특히 다양한 분야에서 예를 들어 이해를 이끌어내는 명료한 서술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머리와 가슴 속이 채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특히 무신론자인 아인슈타인을 인용한 부분은 잊고있던 신념의 가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을 가다듬게 해주었다.

"우주에 스며들어 있는 초월적이고 객관적인 가치, 이것이야말로 아인슈타인의 신념이었고, 아인슈타인은 '종교적'이라는 말이 자기 신념의 특성을 무엇보다도 잘 표현해준다고 생각했다."

다시 말해 종교란 절대적 존재인 신을 믿고 안 믿고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면 누구나 승인하지 않을 수 없는 객관적 가치"

즉 올바른 신념을 위해 모든 사람이 자신의 삶을 소중히 여기고,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종교의 의미라고 이야기 한다.

 

 신의 존재 여부를 두고 논쟁을 벌일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평생 지키고 가꾸어 나가야할 신념에 대해 이야기 한다면 무신론자와 유신론자 사이의 간극도 많이 좁혀질 수 있지 않을까.

 

 이번에 개봉한 영화 '노아'. 사악해질 대로 사악해진 죄많은 인간의 세상을 끝내는 것이 창조주의 뜻이라고 생각하여, 태어난 손녀들의 새 생명마저 죽이려하는 노아에게 며느리 일라는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해 이야기 한다. 악함과 선함 중에 어느 것을 선택할지는 창조주가 아니라 인간에게 달려있다고, 노아가 창조주의 선택을 받은 이유는 바로 자비와 사랑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그 순간 노아는 창조주의 진정한 뜻을 이해하고 칼을 거두었으며 인류의 역사는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되었다. 창조주의 존재유무를 떠나 무신론자인 내게 일라와 노아의 생각과 선택은 바로 신념으로 다가왔다.

 

 우리의 가슴 속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텅 빈 심연이 있다. 그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종교를 믿고 예술을 창조하고 사랑도 하는 것이 아닐까. 심연을 채우고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기 위해 가져야 하는 덕목

 

 그것을 종이 위에 '신념'이라 쓰고

 자신만의 색채를 부여한 목소리로 읽어보자

 

 무슨 색깔을 띠던 그 신념은 고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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