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걷는 즐거움 - <걷기예찬> 그 후 10년
다비드 르 브르통 지음, 문신원 옮김 / 북라이프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인생은 돌아올 수 없는 길이다. 우리 모두 늘 그 끝모를 길 위에 서 있다. 단지 누구는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거나, 차창 밖으로 스쳐지나가는 풍경을 보듯 마주 치는 순간들을 그저 흘려 보낸다. 또 누구는 온 마음과 몸으로 길을 껴안으며 뚜벅뚜벅 느리지만 깊은 걸음을 걷는다.

 

 걸음을 시작할 때 우리는 발만으로 걷는 것은 아니다. 머리로 걷고 가슴으로 걷고 발로 걷는다. 목적지를 정하고 방향을 정하고 속도를 정하는 머리가 있고, 가고 싶다는 기분과 욕망과 가야만 한다는 강박이 가슴에 숨어있다. 그것들이 다리를 움직인다. 비 오는 날은 비 오는 날대로 눈 오는 날은 눈 오는 날대로 맑은 날과 흐린 날은 그런대로  걷는 맛이 생겨난다. 다리를 규칙적으로 움직이며 보폭을 만들어 가는 일, 땅의 굴곡을 온 몸으로 느끼며 지그시 밟는 일. 부드러운 공기가 뺨위를 스치는 느낌. 귀에 다가오는 숱한 소리들, 미로처럼 이어지는 갈아타야 할 길들.

 

 예전에는 걷기란 나로부터 출발하여 외부영역으로 자신을 확장시켜 나가는 행위라고 생각했다. 나만의 울타리를 넘어서 세상과 만나는 일. 복잡한 도시 풍경이든 한적한 전원 풍경이든 직접 그 속으로 화살처럼 강하고 씩씩하게 날아가 하나가 되는 것. 하지만 갈수록 걷기란 나로부터 출발하여 나의 내면 속으로 깊숙히 파고 들어가는 행위임을 깨닫는다. 걸어면서 마주치는 무수한 풍경과 꼬리를 무는 생각과 들려오는 소리와 만들어지는 추억들이 결국은 나의 오감을 열고 내 속으로 들어가 내밀한 속살로 여물어 간다는 것.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말했듯이 '내 다리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내 생각도 흐르기 시작한다.'

 

 이런 걷기에 대한 인식의 전환에 부합하는 책 한 권을 만났다. 국내에서 2002년 출간 된 걷기의 바이블 <걷기예찬>의 저자 다비드 르 브르통이 그 후 10년 간의 걷기를 통해 얻은 체험과 깨달음을 다시 <느리게 걷는 즐거움>이란 책으로 펴냈다.

 

 "걷기는 가장 우아하게 시간을 잃는 법이다." 시간은 끊임 없이 흘러간다. 아니 우리는 주어진 시간을 쉼 없이 잃어 간다. 이때 가장 우아하게 시간을 잃어 가는 방법이 걷기라니 이 얼마나 매혹적이고 함축적인 표현인가. 저자는 길을 걸으며 겪은 경험과 감동을 풀어 놓고,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는 여정을 차분히 서술함으로서 우리를 진정한 자유와 달콤한 고독과 깊은 사색의 시간속으로 데려간다.

 

 걷기를 찬양한 글일 정도로만 예상하고 읽었는데, 걸을 때 함께 읽으면 좋은 작가들의 글이나 철학자들의 사유를 소개하여 육체의 건강뿐만 아니라 정신의 고양까지 아우르고 있다. 빅토르 위고, 헨리 데이비드 소로, 헤르만 헤세, 밀란 쿤데라, 프리드리히 니체등 걷기를 사랑했고 걷기로부터 작품의 모티프를 가져 왔던 수많은 작가들의 작품을 실어 즐거운 정신의 산책을 유도하고 있다.

 

 루소는 "걷기에는 생각과 활력에 생기를 불어넣는 무언가가 있다. 그래서 나는 제자리에 가만히 있으면 거의 생각을 할 수가 없다. 정신을 움직이려면 몸을 부단히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다. 저자가 여기에 충실하게 따르며, 걷는 동안 무수히 만나게 된 길 위의 상황들과 떠오르는 생각마다 ,적절한 작가나 철학자의 글들을 연관지어 밀고 나가는 필력과 사유의 깊이에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이왕 가야 할 길이라면 느리게 걷는 즐거움을 느끼며 가자. 내면 속으로 뻗어 있는 자신만의 길을 고요히 걸어 들어가는 자의 묵직한 발걸음은 아름답다.

 

 걸음 위에서 시를 생각하고

 걸음 위에서 외로운 어머니를 생각하고

 걸음 위에서 다가올 여름을 생각하고

 걸음 위에서 이제는 멀리 사라진 추억속의 사람을 생각한다면

 걸음은 거대한 기억과 상상의 마당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