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얼굴
아베 코보 지음, 이정희 옮김 / 문예출판사 / 2018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연구소에서 일하던 주인공이 액체질소 폭발로 얼굴에 심한 화상을 입게된다.

주인공은 얼굴에 붕대를 하지 않으면 밖에 나갈수 없을지경에 이른다.

화상으로 인해 손상된 얼굴을 되찾고 다시 인간관계 를 회복하기 위해 타인의 얼굴을한 인간의 피부와 똑같은 가면을 만들게 된다. 그리고 완성된 가면을 쓰고 타인의 얼굴로 자신의 아내를 유혹하기에 이른다. 


주인공은 아내가 계속해서 거부하면 어떻게 해야되나 온갖 여러가지 계획들을 상상하다가 아내를 만나고 너무 쉽게 몸을 허용하자 주인공은 부인이 이렇게 타인에게 쉬운 여자였나? 라고 생각하며 굉장히 큰 실망을 한다. 주인공은 노트 세 권을 자신의 아지트인 아파트에 남겨 놓고 아내를 그곳으로 가도록 연락을 한다. 그러나 아내는 처음부터 자기를 유혹한 남자가 남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남편의 행동에 실망한 부인은 행방을 감추고 만다. 


타인의 얼굴 구성은 노트 세 권과 아내의 편지 그리고 주인공이 아내에게

남긴 메모로 시작한다. 첫 번째 노트 ‘검은색노트’는 얼굴의 선택 과정을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얼굴이 없다고 생각하는 주인공은 자기

자신과 타인을 연결하는 통로가 차단되었다고 말한다. 그는 타인과의

관계를 회복하고자 얼굴을 만들기로 결심한다.


두 번째 노트 ‘흰색노트’는 가면을 완성하고 착용해 까지의 과정과 심경 변화에

대한 기록이다. 가면을 완성하자마자 붕대를 벗어던지고 가면을 쓰게된다.

얼굴이 생긴 주인공은 조금씩 자신감을 점점 회복하게 된다. 얼굴에 붕대를 

두르고 외출하면 사람들은 가까이 다가가기 어렵고 무서운 사람으로 인식할

것이라는 편견으로 스스로를 고립시켰다. 그러나 이는 주인공이 타인의 붕대두른 얼굴을 보았을때 그렇게 느끼기 때문에 자신또한 남들에게 그렇게 비춰질것이라 생각한것이다.


세 번째 노트 ‘회색노트’는 가면과 얼굴과의 분리와 갈등을 이야기 한다.

가면과 붕대를 한 복면 그리고 맨얼굴이 삼각관계를 이루고 있다고 말한다.

가면과 복면은 형제관계를 유지하고 가면과 맨얼굴이 계획을 세워 ‘아내’를

유혹하자 타인에게 아내를 빼앗기는 듯한 느낌을 받고 질투하게 된다.


P13. 정말이지 이 세상의 모든 인간이 한순간에 눈을 잃는다든가 해서 빛의

존재를 잊어버린다면, 이 얼마나 멋진 일일까. 순식간에 모든 ‘형태’에 화해

가 성립된다. 어설픈 빛 때문에 아이는 삼각 빵을 빵이 아니라 삼각형으로

잘못 인식해버린다. 빛이라는 것은 그 자체가 투명하다 하더라도 비추는

대상을 모조리 불투명하게 바꿔버리는 것 같다.


저자는 무언가에 기준을 빛으로 묘사한듯 하다. 빛의 존재를 잊어버리면 

기준이 없어지기 때문에 정상인과 비정상인의 경계가 없어진다. 그럼 저자

의 말대로 모든 형태에 화해가 성립된다. 기준이 아무리 투명하다 하더라도

비추는 대상외에 비정상인은 모조리 불투명하게 바꿔버린다.

일본내에서는 평범한 사람의 기준이 일본인이기 때문에 한국인이

차별받는다는 내용이 뒤에 나온다.


P35. 표정이라는 것은 .....타인과의 관계를 나타내는 방정식 같은 것이죠.

자기 자신과 타인을 연결해주는 통로 말입니다. 그 통로가 무너지거나

막혀버린다면 모처럼 그 곁을 지나가던 사람도 아무도 살지 않는 폐가

라고 생각하고는 지나쳐버릴지도 모릅니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타인의

눈을 통해서만 자신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합니다.


카프카의 변신에 주인공 그레고르도 벌레로 바뀌었을 때 가족중 아무도

그를 가족으로 인정해주지 않고 방안에 가두고 그 죽기를 바랬다. 이처럼

자신은 모든것을 기억하고 내 스스로 그레고르인 것을 알아도 타인이 나를

인정해주지 않는다면 나의 존재또한 무의미 해진다.


P201. 목적은 연구성과에 있는 게 아니라 여누과정 그 자체가 목적이다”


인생에서 목표는 달성하는데 있는 게 아니라 꿈을 이루려고 노력하는 과정

그 자체가 목적이다. 라는 말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P300.당신은 내가 거부한 듯이 썼지만 그것은 거짓입니다. 당신은 당신을

스스로 거부하고 있던 것은 아닌가요? 당신이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여자의

화장인들 결코 화장임을 숨기려고 들지는 않습니다. 결국 가면이 나빴던것이

아니고 당신이 가면 다루는 법을 너무 모르고 있었던 것에 불과합니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 아내의 편지에서 아내가 한말이다. 지금 시대로 말하면

성형과 비슷할듯 하다. 성형을 하고도 당당한 사람이 있다. 반면에 자신이

성형한 사실을 숨기는 사람도 있다. 저자가 말하는 ‘가면 다루는 법’은 자신

의 아픈곳을 드러내고 당당하게 사람들 앞에서 말한다면 아무도 그것에

대해 사람들이 신경쓰지 않는다는 이야기일까? 왕좌의 게임 티리온에

대사중에 “자신의 단점을 드러내면 더이상 약점이 아닌게 돼”라는 말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덕경 (무삭제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25
노자 지음, 소준섭 옮김 / 현대지성 / 2019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요즘 서양에서 노자철학이 가장 주목받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는 노자철학에 관심이 생겼다. 나는 서양철학에 관련된 책들을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떠한 사상 때문에 서양에서도 관심받는 사상일까? 궁금해졌다. 마침내 도덕경 노자를 읽게되었다. 책두께는 두껍지 않다. 총 273Page로 구성되어 있고 한자가 많다보니 생각보다 빨리 읽는다. 도덕경은 상편 도경 하편 덕경으로 나누어져 있고 한 페이지에 한자와 한글이 쓰여있고 한자풀이와 더 깊이보기로 구성되어 있다.


P23. 명은 사물의 존재를 인식한 뒤, 그 사물의 성격에 대한 인식에 의하여 각기 '이름'을 명명하는 것을 뜻한다. 먼저 물질 존재가 있어 이것이 곧 '도'이며 그러한 연후에 사물에 대한 인식과 인식이 생겨나 '이름', '명'이 붙여지게 된다. '도'는 객관적 존재이고, '명'은 그 객관적 존재에 대한 인식이다. 무명즉항, 유명즉변 이름이 있으면 그로부터 다시 이름이 생기게 된다. 하나의 이름은 다른 이름을 낳고 그로부터 또 다른 명칭이 생긴다. 노자에 의하면, 세상에서 말하는 '이름', '명'은 대체로 세속의 명예와 관직, 지위를 가리키는 말로서 거짓된 허명이요 유위이며 인위이고 작위이다. 노자는 이름, 명이야말로 인간 사회에서 분쟁을 초래 하는 주요한 근원 중의 하나라고 파악한다.


이 페이지를 읽을때 서양철학의 비트겐슈타인이 생각났다.

비트겐슈타인의 말을 인용하면 "먼저 세계가 존재하고, 세계를 인식하는 사상이 있고, 그리고 이 사상을 표현하는 언어가 뒤따른다. 우리가 이름을 붙이고 문장을 만드는 순간 우리는 세계에 대한 그림을 그린다. 이름짓기와 문장 서술의 언어적 행위의 순간에 세계가 비로소 존재하고 동시에 사상이 생겨나는 것이다"


노자철학과 굉장히 비슷하다. 그러나 노자는 고대사람인 반면 비트겐슈타인은 근대사람이다. 아주 오래전에 저런 생각을 했다는것 자체가 놀랍고 신기했다. 물론 비트겐슈타인 처럼 논리학과 수학을 이용해서 증명한것은 아니지만 생각했다는것 자체만으로도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P24. 유무상통, 유무상생 무는 '유'를 낳고, '유'는 무에 돌아간다. 이는 만사만물이 시작되는 기점이자 마침표로서의 종점이며, 운동 변화의 최후 규율이다.


이 지점에서 염두하고 쓴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우주가 탄생하는 배경 '빅뱅'이 생각난다.


P52. 서른 개의 바퀴살이 모여 하나의 수레살통을 이룬다.

수레살통에 빈 공간이 있기 때문에 비로소 수레의 쓰임새가 있게 된다.

진흙을 빚어서 그릇이 만들어진다. 그릇에 빈 공간이 있기 때문에 비로소

그릇의 쓰임새가 있게 된다.


P54. '유'와 '무'가 상호 의존하며 상호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유'가 그 쓰임이 있는 것은 바로 '무가'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는

'유'부다 더 근본에 가깝다. 즉, 유와무의 변증법적 통일이 이뤄지는 것이다.


유와무의 변증법적 통일이란 말은 아마도 유와무 둘중에 좋은것은 취하고

나쁜것은 버린후 통일이 된다고 말하는것 같다. 이 지점은 서양철학자

헤겔의 변증법이 떠오른다. 헤겔은 이 세상 모든 것들은 그 안에 모순을 담고 있고, 그 모순은 진보와 개선의 방향으로 나아간다고 말한다. 헤겔의 변증법은 어떤 것이 모순을 지닌채 있는 것을 '정'이라 하고 정을 부정하여 모순을 털어 버린 상태를 '반'이라고 한다. 비록 '반'이 '정'의 모순을 털어 버려도 세상 안에 있다면 약점과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따라서 '반'의 상태에서 버릴 것은 버리고 취할 것은 취하면서 한 단계 높아진 결과인 '합'으로 나아간다.


P70. 가장좋은 통치자는 백성들이 그가 있는지도 모르고 있는 상태이다.


몇년전 스웨덴의 복지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본적이 있다. 그 나라 주민들은

정치인이 누군지도 모르고 살아간다는 인터뷰가 있었다. 시스템이 워낙 잘되어 있어서 정치인이 누구든 신경안써도 잘돌아간다는 내용이었다.


P119. 모든 승부 중에 가장 어려운 것은 바로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는 말도 승리를 하려면 상대방을 알아야 함과 동시에

반드시 나 자신을 정확히 알아야함을 강조하고 있다.


요즘 굉장히 많이 언급되는 단어 '메타인지'와 같은내용이다.

고대시대에 노자가 말한 사상은 지금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수있었다. 물론 그때는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았고 지금은 어느정도 검증이 되었다는 것이 다르지만 검증하지 않고 추론으로 그만큼 생각했다는 것에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뿐이 안들었다.


P200. 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간단한 요리를 하는 것과 같다.

생선을 요리할 때 자꾸 뒤집으면 모양이 엉망이 되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요리해야 한다고 풀이 되어 왔다.


동양철학은 정교한 논리는 없지만 굉장히 시적이다. 은유의 매력이 넘친다.

나라를 다스리는 것을 요리하는 것에 비유하여 굉장히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다.


P257. 지혜로운 자는 모든 것을 알지 못하고, 모든 것을 아는 자는 지혜롭지 못하다.


지혜로운 자는 아는 것이 많아 겸손해지고 모든 것을 아는자는 자신이 아는것이 다라고 생각해서 틀린 정보도 마구 발설한다는 뜻인것 같다.


P264. 공자가 하직 인사를 하고 나와 제자들에게 말했다. "새, 나는 그것이 날 수 있음을 안다. 물고기, 나는 그것이 헤엄을 칠 수 있음을 안다. 짐승, 나는 그것이 달릴 수 있음을 안다. 달릴 수 있는 것은 그물을 던져 잡을 수 있다. 헤엄을 칠 수 있는 것은 낚시로 잡을 수 있다. 날 수 있는 것은 화살로 잡을 수 있다. 


"그러나 용으로 말하자면, 나는 알지 못한다. 그것은 풍운을 타고 하늘로 솟아오른다.  나는 오늘 노자를 만났는데, 그는 한 마리 용과 같구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트렌드 인사이트 2030 - 60개의 키워드로 미래를 읽다
로렌스 새뮤얼 지음, 서유라 옮김 / 미래의창 / 2018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60개의 키워드와 6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문화, 경제, 정치, 사회, 과학, 기술 순서로 시작한다. 한가지 키워드를 다루고 나서 시사점으로 정리되어 있고, 활용법으로 어떻게 활용할지 도움을 주는 문장들이 있다.

문화 챕터에서 다루는 주제는 개인주의도 포함되어 있지만, 개인주의 키워드는 대부분 아는 키워드라 뭐 새로울 것은 없었다. 요즘 휴게소 가면 혼밥존도 있고, 식당에 가도 혼자서 밥 먹기 좋은 인테리어 식당도 많아졌고, 1인 가구 먹기 편한 식자재 배달업체 도 생겼고, 매일 아침마다 샐러드나 도시락 배달해주는 업체까지 생겼으니 말이다.


세속화는 타 종교를 의미하는데, 이것도 진작부터 시작되었고, 점점 탈 종교는 말하지 않아도 많이들 느끼고 있는 부분이라서 언급할게 별로 없다. '가속'은 세상이 돌아가는 속도가 점점 빨라진다는 의미인데, 고객의 시간을 절약해주면 그들의 만족도가 높아질 것이라는 부분이 있다. 이 부분에서 내가 실제로 사회생활하면서 느낀 것은 대한민국에서 다 적용되는 부분은 아니었다. 고객의 시간을 절약해주려고 호의를 베풀자 그것을 권리로 아는 부도덕한 고객도 꽤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고마워하지 않았다. 모든 고객에게 적용은 어렵고 상대를 봐가면서 해야 한다. 아니면 고객의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시스 템을 개발하여 판매하는 것은 괜찮은듯하다. 이 책에서 시간 절약하는 시스템을 말한 것 일수도 있다.


단순화는 복잡한 것을 단순화 시키라는 것이다. 요즘 책 제목도 '심플하게 생각하기' '미니멀리즘' 등 단순화 시키는 주제로 많이 출간된다. 심리학자 배리 슈워츠는 2004년 발간한 저서 <선택의 심리학>에서 대안이 많을수록 만족도가 줄어든다는 가설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여 마케터의 역할은 선택의 폭을 최대한 줄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만약 이탈리아 레스토랑에 갔는데 파스타의 종류가 50가지라고 한다면 고르기가 어려워 그냥 자신이 늘 먹던 파스타를 고를 확률이 높다. 그러나 5~10가지 이내일 때는 새로운 메뉴를 먹어보고 싶은 유혹도 생긴다. 선택의 폭이 너무 넓어지면 오히려 선택을 못하는 역설에 빠진다.


체험화 키워드에서 소유와 경험이 나온다. 소유는 고급 주택, 고급 자동차, 신발, 의류 등 사치품을 말하며, 체험은 고급 레스토랑, 여행, 스포츠, 문화생활 ( 영화, 공연, 뮤지컬 등)을 말한다. 우리 부부도 신혼 때 주로 사치품에 관심이 많았다. 주로 백화점을 돌며 쇼핑하는 것을 즐겼다. 남자인데도 백화점에 아내와 함께 가서 쇼핑하는 것을 좋아했던 나를 회사 직원들이 신기해하면서도 부러워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백화점이라면 질색한다.


책과 친해지면서 서점과 문구점에 쇼핑 가는 것이 가장 행복한 쇼핑이다.
책은 소유물이면서 경험이다. 책을 책장에 꽂아두면 뿌듯하고, 기분이 좋다.
책장에 나란히 꽂힌 책을 보면서 당장 읽지 않아도 왔다 갔다 할 때 한 번씩 쳐다보면 그것만으로도 만족감이 생긴다. 그런데 그 책을 읽고 서평까지 쓰고 나면 그 만족도는 배가된다. 내 기준에서 체험 중에서도 가성비가 가장 좋은 것은 '책'이다. 여행도 굉장히 좋아한다. 여행하면서 그때그때 느낀 감정들을 짧게 메모하고 사진 찍고 동영상도 찍는다. 집에 돌아오면 여행에서 느낀 감정들을 떠올리며 다시 블로그에 옮겨 적고, 찍어둔 동영상을 편집해서 소장하면 볼 때마다 그때 감정이 떠오른다. 영화, 뮤지컬 다 말하 것도 없지만 우선순위를 정하자면 책 그리고 여행이다.


경제 챕터에서는 지금 논의되는 키워드들이 많다. 규제완화, 양극화, 개인화, 전자화폐, 중산층 증가, 마이크로 브랜딩 등이 있다. 정치 챕터는 불안전성, 포퓰리즘, 정치연합, 단절, 불량 주의, 전자정부, 풀뿌리, 분열, 녹색이 있다. 단절이라는 키워드는 말 그대로 사회와 단절되는 것을 의미한다.
단절의 주원인으로 평균 소득의 증가와 고령화, 기후변화, 인터넷 세계의 확장, 인공지능, 자동화, 점점 복잡해지는 지정학적 환경 등이 있다. 


전자정부는 대한민국도 꽤 앞서 있지만, 최고의 전자정부는 '에스토니아'라는 나라다. 에스토니아인들은 인터넷으로 투표에 참여할 수 있으며, 세금 신고 또한 온라인으로 진행하고 며칠 안에 신속히 환급받을 수 있다. 내가 정치 키워드에서 가장 심각하게 생각한 키워드는 분열이다. 요즘 전 세계적으로 점점 더 분열화돼가는 추세다. 미국을 보면 '트럼프'가 당선되고 장벽을 세워 멕시코 밑으로 남미에 사는 사람들이 더 이상 미국 땅을 밟을 수 없게 되었고, 프랑스에서도노란 조끼 시위가 한창이다. 영국은 브렉시트로 골 머리를 앓고 있다. 홍콩도 몇 년 전 노란 우산 혁명 으로 시끄러웠던 때가 있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어떨까?


대한민국은 분열의 요소가 너무 많다. 세대갈등, 좌파우파 갈등, 남녀갈등, 요즘에는 같은 민주당 지지자들끼리도 편을 갈라서 싸우고있다. 뉴스를 보면 댓글은 맨날 욕밖에 없고, 가짜뉴스도 너무 많아서 뉴스 보고싶지 않은 세상이다. 그러나 뉴스를 안보면 세상돌아가는 것을 모르고 살기 때문에 안볼수도 없는 실정이다. 갈등이 아예 없을수는 없겠으나, 갈등이 있더라도 서로 헐뜯기 바쁜 갈등보다 앞으로 나아갈수 있는 토론이 필요해보인다. 


과학 챕터와 기술 챕터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았다. 유전체학 키워드에서는 알쓸신잡 3에서도 언급되었던 '유전자 가위' 정교한 게놈 추출 및 편집 도구 크리스퍼의 개발 이야기가 있었고, 기술 분야에서는 인공지능, 자동화, 트랜스 휴머니즘 등이 있다. 전체적으로 많이 들어보고 어렴풋이 알고 있는 키워드들이었지만 이 책을 보면서 다시 개념이 정리되었다. 이 책은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는 수준의 정보만 다루고 있기 때문에 더 깊게 알고 싶으면 그 분야의 책을 더 읽어봐야 한다. 그러나 내가 어떤 것에 관심이 있는지, 아니면 여기 책의 키워드가 낯설다면 이 책을 읽고 나의 관심분야를 찾기 위한 내비게이션으로 활용할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홉 소리나무가 물었다
조선희 지음 / 네오픽션 / 2018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줄거리 요약


택시기사는 며칠째 편두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막 도동 마을로 향하는 국도로 접어들때 아내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그는 도당마을에 무서운것이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 무서운것이 있는 고향마을로 친구를 보러간다니 아내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차창을 닫고 백미러를 흘끔 본 남자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뒷좌석에 자신과 똑같은 얼굴을 한 그것이 앉아 있었다. 이튿날 아침, 도동마을로 들러오는 국도변 갓길에서 문이 활짝 열린 빈택시가 발견 되었다.  결국 아내의 불길한 예감은 현실이 되었다. 또 다른 남자는 어디선가 날아온 BB탄에 맞았다. 그 BB탄 때문에 그는 회사에서 쫒겨났다. 그는 해외에서 15세이상 연령제한 장난감총을 12이세 이상으로 낮춰 판매하였다. 그러나 열두살 된 남자아이가 아홉살 동생에게 총을 발사해 한쪽 눈을 실명 시킨것이다. 전 제품 불매운동으로 확산될 조짐이 보이자 회사는 서둘러 희생양을 찾았다. 그 남자는 모든죄를 덮어쓰고 회사를 퇴사했다. 회사에서  쫒겨난 이는 소설의 주인공 '박태이'이다. 그리고 그와 가장 친한 친구 '종목'은 놀이가

다시 시작됐다고 말한다. '그것'이 택시운전사인 '국수'를 찾아냈다고...

주인공 박태이는 두번다시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을 작정이었지만 돌아가지 않을수 없었다.


그는 15년전의 일을 후회했다. 15년전 놀이가 시작되고 연서가 사라졌을때 도망치지 말았어야 했다고, 그는 당시에 열일곱살이었다. 그저 어른들이 어떻게 하겠지, 경찰이 알아서 수숩해줄거라고 빋었다. 그러나 미결사건으로 남았다. 주인공 박태이는 학교다닐때 친구 '종목'의 집에서 자주 밥을 먹었다. 친구 어머니는 많이 먹으라며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곤 했다. 혈연의 기운이라도 흘러나오는 것처럼 온몸에 온기가 돌았다. 가족이란 이런거지, 하는 막연한 감정이 울컥 올라왔다. 주인공 박태이가 다시 도동 마을로 돌아오면서 15년전

했던 놀이는 끝이 나지 않고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된다. 

주인공 박태이는 15년전 놀이에 가담했던 사람들을 차례차례 만나면서 그들과대화에서 놀이를 끝내는 방법 서로 찾아보기로 한다. 그러나 

빈 택시를 발견한 형사들은 사고의 흔적을 찾아 사건을 수사하기 시작하고 

점점 관계망을 좁혀간다. 주인공 박태이는 '그것'의 추격도 피해야하고, 

형사들의 수사망도 따돌리면서 '그것'에게 얼굴을 내 놓지 않기위해

놀이를 끝내는 방법도 찾아야 하는 상황에 놓이는데...




◆ 읽고 느낀점


공포소설로 분류되어 있지만 사회의 문제도 많이 다루고 있다.

회사의 잘못을 직원 한명이 책임지고 퇴사하는 장면에서 한국의 기업문화를

비판하고 있었고, 사회에서 고립된 이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잘 묘사 하고있다.


소설에서 형사 두명이 서로 대화하는 장면에서 '놀이'를 수수께끼같다고,

계속해서 강조하며 말한다. 아마도 그렇게 까지 강조하는 것은

작가가 독자들에게 이 '놀이'가 뭔지 맞혀봐?라고 수수께끼를 내는듯 했다.


'작가가 던진 수수께끼 놀이'는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 모여서 악플달고 험담하면서 노는 것을 비유한듯 하다.  사회에서 고립된 이들은 보여줄것이 없다.  소설에서는 얼굴이 없다고 표현한다. 그들은 함께 어울려 살지 못할 사회라면 차라리 부수길 원했을 것이다. '에리히 프롬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보면 사회적 고립에 처한 사람들은 처음에는 그들과 어울리고 싶어했다가 나중에는 그 감정이 분노로 바뀌고 파괴하고 싶은 감정으로 변한다고 말한다.

'놀이'는 '여왕'으로부터 시작된다. '머리 나무'가 먼저 소리를 내면 뒤따라서 다른 나무들도 소리를 낸다. 그리고 복수를 할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숨겨진 본성과 욕망이 보이는 부분이라고 표현한다.

여왕 = 언론,  소리 = 말(댓글), 머리나무 = 온라인 커뮤니티 선동가

언론(여왕)이 기사를 내면 선동가(머리나무)가 악의적인 댓글을 단다. 첫 댓글이 악플일때 두번째 세번째 댓글도 악플일 확률은 올라간다. 그러나 소설에서 8명만 모으면 된다고 한다. 일단 어느정도 양의 악플로 도배해놓으면 그 다음부터는 따로 악플을 달지 않아도 수 많은 악플이 달리고, 그 악플과 생각이 다른사람들이 비판적인 목소리로 논리적인 댓글을 달아도 놀이에 가담한 이들이 막무가내식 무논리 폄하하는 댓글로 응수해주면 어느새 뉴스기사의 댓글은 난장판이 되고 만다. 소설속 문장을 인용하면 '두 개의 발은 현실의 나' '세 개의 발은 비현실의 나라고 할까.' 소설속에서 세 개의 발은 '그것'으로 묘사된다.


'그것'에게 얼굴을 빼앗긴다는 것은 온라인에서 익명으로 활동하던 내가 세상 만천하에 드러나게 되면 나는 더이상 현실에 모습이 내가 아니게 된다. 타인들은 온라인속에 내 모습을 정말 내 모습으로 바라보게 된다. 결국 '그것'에게 얼굴을 내어준다는 것은 온라인속 내 모습을 타인들에게 들키는게 되는것이다. 그래서 놀이의 규칙은 아무에게도 절대 말하면 안되는 것이다.

이 작품이 2015년 대한민국 스토리 공모전 우수상을 수상한 배경을 감안하면, '놀이'는 '국정원 댓글 조작 사건' 과 '일간베스트'를 떠올리며 소설을 써 내려간게 아닐까 생각한다.



P119. 소리나무는 각자의 것으로 주어지지.

자신의 소리나무는 자신이 감당해야 하는 거야.

P172. 아홉이 여덟이 되고 여덟이 일곱이 되고

일곱이 하나가 되고 기어이 나만 남네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이 셋이 되고

셋이 아홉이 될 때까지 나 혼자 제자리를 맴도네


P.229 "이 세계에서 존재는 보이는 것이어야 해. 그런데 우린 얼굴이 없어.

보여줄게 없다고. 다른 부분은 보여줘봐야 구분도 못할뿐더러 부정해버려.

286. 그것과 얼굴을 마주하고 밤새 놀았다. 놀이가 벌어지는 동안 그것은

사람의 얼굴을 닮아갔다. 놀이가 끝나자 그것은 제가 흉내 낸 얼굴의 사람에게

물었다. 내가 누구야?


P287. 가담자가 자기 이름을 말하면 놀이에서 지게 되는거요.

다른 나를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지. 그건 달리 말하면 자신을 부정한 셈이니

더는 자기 자리를 지킬 수 없게 되오.


이 놀이는 두개의 발을 가진 무리와 세 개의 발을 가진 무리가 벌이는 일종의

승부요. 두 개의 발은 현실의 나, 세 개의 발은 비현실의 나라고 할까.

그것의 질문에 나라고 대답하면 그것이 자신을 나로 자각하고 현실의 전면에

나서는 것이고, 나무의 이름을 대면 나의 뒤로 물러나는 거요."

"무슨 정신병자들 놀음 같아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자유로부터의 도피
에리히 프롬 지음, 김석희 옮김 / 휴머니스트 / 201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에리히 프롬은 인간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고 했다. 삶은 잠재력을 키우고 확장시키고 표현하는 내재적 경향을 갖고 있다. 삶이 방해를 받거나 개인이 고립되어 회의나 고독감과 무력감에 짓눌리면, 그때 개인은 파괴성이나 권력욕이나 복종에 대한 갈망으로 내몰린다. 자유는 한편으로는 외적 권위로부터 벗어나 차츰 독립하는 것을 의미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점점 고립되어 결국 자신을 하찮고 무력한 존재로 느끼는 것을 의미한다.


중세에는 모든 사람이 사회 체제 안에서 자신의 역활에 묶여있었다. 사회적으로도 어떤 계급에서 다른 계급으로 이동할 가능성은 거의 없었고, 지리적으로도 어떤 도시나 나라 에서 다른 도시나 나라로 이동하기는 어려웠다.


개인의 사생활과 경제생활 및 사회생활은 규칙과 의무를 지배 받았으며, 그런 지배를 받지 않는 활동 영역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다. 인간은 근대적인 의미에서 자유롭지는 않았지만, 혼자 고립되어 있지도 않았다. 태어났을 때부터 바꿀 수도 없고 의심할 여지도 없는 확실한 자리를 사회에 갖고 있으면, 인간은 구조화된 전체에 뿌리를 박았고, 따라서 삶은 의심할 여지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는 의미를 갖고 있었다. 사회 체제는 자연적 질서로 여겨졌고, 그 체제의 확실한 일부가 되는 것은 안전감과 소속감을 주었다.


근대인이 생각하고 말하는 것은 대부분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고 말하는 것과 똑같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고 있다.  어떤 사회에서나 문화 전반의 정신을 결정하는 것은 그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집단의 정신이다. 그 이유는, 부분적으로는 이런 집단이 교육제도와 학교, 교회, 언론, 극장을 지배하는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자신의 사상으로 인구 전체를 가득 채울수 있는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층계급은 그들의 가치관을 받아들이고 모방하면서 심리적으로 자신을 그들과 동일시하려고 한다.


사회에 잘 적응한다는 점에서 정상적인 사람이 인간적 가치라는 면에서는 신경증적인 사람보다 덜 건강한 경우가 많다. 사회에 잘 적응한다 하더라도 어떻게 해서든 남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자아를 포기하는 대가를 치르고 있다. 진정한 개성과 자연스러움은 모두 사라졌을 것이다. 반면에 신경증적인 사람은 자아를 지키기 위한 싸움에서 완전히 굴복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으로 그 특징을 묘사할 수 있다.


사회에 잘 적응한다는 것은 남들이 원하는 모습을 내가 잘 보여주면 되는 것이다. 본래의 내 모습을 포기하고 부모님이 나를 바라볼때 기대하는 모습 그리고 회사에서 또는 애인이나 친구가 나에게 원하는 모습을 잘 보여주면 사회에 적응을 잘한다는 말을 듣는다. 결국 자기 자아를 포기하는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다.


에리히 프롬이 말하는 '신경증적'은 인격의 성장 과정에서 심각한 손상을 입고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사회적 기능의 결핍을 말한다. 때문에 사회가 신경증적이라고 말하기보다는 행복과 자기실현에 불리한 사회라고 말하는 편이 낫다고 한다.


피학적 충동은 열등감과 무력감과 허무감이다. 의식적으로는 이런 감정을 불평하고 그것을 없애고 싶어 하지만, 무의식적으로는 그들의 내면에 있는 어떤 힘이 열등감이나 허무감을 느끼도록 그들을 몰아붙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학적인 사람은 지배할 대상이 필요하고, 자기가 강하다는 느낌은 누군가를 지배한다는 사실에 뿌리를 두기 때문에 지배할 대상을 필요로 한다. 가학적인 사람은 이 의존을 전혀 인식하지 못할 수도 있다.


예를들면 남편이 아내를 몹시 가학적으로 대하면서 언제든지 집을 나가도 좋다고, 당신이 집을 나가면 나는 무척 기쁠 거라고 말한후 아내가 정말 집을 나가게 되면 남편은 절망에 빠지고 비탄에 잠겨 제발 떠나지 말아 달라고 아내에게 애원할 것이고, 너 없이는 살수 없다고 사랑한다고 말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다시 아내는 결심을 바꾸고 남편 곁에 남게되면 문제는 남편은 전과 똑같은 행동을 다시 되풀이하게 된다.


피학적 충동과 가학적 충동은 둘 다 개인이 견딜 수 없는 고독감과 허무감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는 경향이 있다.


자유라는 문제의 해답이 될 수 있는 것중 하나는 자발적인 활동을 하면서 인간이 본래 모습을 희생 하지 않고 고독의 공포를 극복할 수 있다. 창조적 활동을 통해 대상과 진정한 관계를 맺어야만 그것은 사람이건 무생물이건 비로소 우리 것이 된다. 자발적으로 행동하지 못하거나, 진정으로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표현하지 못하면 타인과 자신에게 가짜 자아를 보여줄 수 밖에 없다. 그 결과 열등감과 무력감의 근원이 된다.


에리히 프롬의 또 다른 방법은 모두가 자유와 행복을 누릴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뿐만 아니라 그것은 인간관계가 지배와 복종의 관계가 아니라 연대의 관계라는 것을 의미한다. 평등의 개념은 모든 인간이 똑같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