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부터의 도피
에리히 프롬 지음, 김석희 옮김 / 휴머니스트 / 201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에리히 프롬은 인간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고 했다. 삶은 잠재력을 키우고 확장시키고 표현하는 내재적 경향을 갖고 있다. 삶이 방해를 받거나 개인이 고립되어 회의나 고독감과 무력감에 짓눌리면, 그때 개인은 파괴성이나 권력욕이나 복종에 대한 갈망으로 내몰린다. 자유는 한편으로는 외적 권위로부터 벗어나 차츰 독립하는 것을 의미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점점 고립되어 결국 자신을 하찮고 무력한 존재로 느끼는 것을 의미한다.


중세에는 모든 사람이 사회 체제 안에서 자신의 역활에 묶여있었다. 사회적으로도 어떤 계급에서 다른 계급으로 이동할 가능성은 거의 없었고, 지리적으로도 어떤 도시나 나라 에서 다른 도시나 나라로 이동하기는 어려웠다.


개인의 사생활과 경제생활 및 사회생활은 규칙과 의무를 지배 받았으며, 그런 지배를 받지 않는 활동 영역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다. 인간은 근대적인 의미에서 자유롭지는 않았지만, 혼자 고립되어 있지도 않았다. 태어났을 때부터 바꿀 수도 없고 의심할 여지도 없는 확실한 자리를 사회에 갖고 있으면, 인간은 구조화된 전체에 뿌리를 박았고, 따라서 삶은 의심할 여지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는 의미를 갖고 있었다. 사회 체제는 자연적 질서로 여겨졌고, 그 체제의 확실한 일부가 되는 것은 안전감과 소속감을 주었다.


근대인이 생각하고 말하는 것은 대부분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고 말하는 것과 똑같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고 있다.  어떤 사회에서나 문화 전반의 정신을 결정하는 것은 그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집단의 정신이다. 그 이유는, 부분적으로는 이런 집단이 교육제도와 학교, 교회, 언론, 극장을 지배하는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자신의 사상으로 인구 전체를 가득 채울수 있는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층계급은 그들의 가치관을 받아들이고 모방하면서 심리적으로 자신을 그들과 동일시하려고 한다.


사회에 잘 적응한다는 점에서 정상적인 사람이 인간적 가치라는 면에서는 신경증적인 사람보다 덜 건강한 경우가 많다. 사회에 잘 적응한다 하더라도 어떻게 해서든 남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자아를 포기하는 대가를 치르고 있다. 진정한 개성과 자연스러움은 모두 사라졌을 것이다. 반면에 신경증적인 사람은 자아를 지키기 위한 싸움에서 완전히 굴복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으로 그 특징을 묘사할 수 있다.


사회에 잘 적응한다는 것은 남들이 원하는 모습을 내가 잘 보여주면 되는 것이다. 본래의 내 모습을 포기하고 부모님이 나를 바라볼때 기대하는 모습 그리고 회사에서 또는 애인이나 친구가 나에게 원하는 모습을 잘 보여주면 사회에 적응을 잘한다는 말을 듣는다. 결국 자기 자아를 포기하는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다.


에리히 프롬이 말하는 '신경증적'은 인격의 성장 과정에서 심각한 손상을 입고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사회적 기능의 결핍을 말한다. 때문에 사회가 신경증적이라고 말하기보다는 행복과 자기실현에 불리한 사회라고 말하는 편이 낫다고 한다.


피학적 충동은 열등감과 무력감과 허무감이다. 의식적으로는 이런 감정을 불평하고 그것을 없애고 싶어 하지만, 무의식적으로는 그들의 내면에 있는 어떤 힘이 열등감이나 허무감을 느끼도록 그들을 몰아붙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학적인 사람은 지배할 대상이 필요하고, 자기가 강하다는 느낌은 누군가를 지배한다는 사실에 뿌리를 두기 때문에 지배할 대상을 필요로 한다. 가학적인 사람은 이 의존을 전혀 인식하지 못할 수도 있다.


예를들면 남편이 아내를 몹시 가학적으로 대하면서 언제든지 집을 나가도 좋다고, 당신이 집을 나가면 나는 무척 기쁠 거라고 말한후 아내가 정말 집을 나가게 되면 남편은 절망에 빠지고 비탄에 잠겨 제발 떠나지 말아 달라고 아내에게 애원할 것이고, 너 없이는 살수 없다고 사랑한다고 말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다시 아내는 결심을 바꾸고 남편 곁에 남게되면 문제는 남편은 전과 똑같은 행동을 다시 되풀이하게 된다.


피학적 충동과 가학적 충동은 둘 다 개인이 견딜 수 없는 고독감과 허무감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는 경향이 있다.


자유라는 문제의 해답이 될 수 있는 것중 하나는 자발적인 활동을 하면서 인간이 본래 모습을 희생 하지 않고 고독의 공포를 극복할 수 있다. 창조적 활동을 통해 대상과 진정한 관계를 맺어야만 그것은 사람이건 무생물이건 비로소 우리 것이 된다. 자발적으로 행동하지 못하거나, 진정으로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표현하지 못하면 타인과 자신에게 가짜 자아를 보여줄 수 밖에 없다. 그 결과 열등감과 무력감의 근원이 된다.


에리히 프롬의 또 다른 방법은 모두가 자유와 행복을 누릴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뿐만 아니라 그것은 인간관계가 지배와 복종의 관계가 아니라 연대의 관계라는 것을 의미한다. 평등의 개념은 모든 인간이 똑같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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