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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키가하라전투 5 - 시대의 패자, 역사의 승자
시바 료타로 지음, 서은혜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2년 7월
평점 :
절판
시바 료타로 司馬遼太郞 :
1923년 오사카 태생. 본명은 후쿠다 사다이치 福田定一
오사카 외국어학교 몽골어부를 나왔고, 2차 대전 때는 학병으로 나가 탱크 부대 장교로 복무. ( 이른바 황군 출신입니다. 뭐 작가 스스로는 군대를 싫어하는 것 같습니다만... ) 종전 뒤 산케이 신문 기자가 되었다. 1960년에 장편소설 ' 올빼미의 성 ' 이 나오키 상을 수상. 작가의 길을 걷게 된다. ' 불타는 검 ', ' 료마가 간다 ', ' 언덕 위의 구름 ' 등으로 일본의 중요한 문학상을 휩쓸었고, 논객으로서도 영향력이 컸다. 시바 료타로 전집 50권 ( 文藝春秋社 ) 을 발간했으며, ' 街道를 가다 ' 시리즈 41권이 있다. 1996년 2월, 73세로 죽다.
제가 ' 시바 료타로 ' 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은 고교 시절, 인문출판사에서 펴낸 2권 짜리 德川家康 이라는 책을 읽게 되면서부터였습니다. 이 책의 저자가 시바 료타료라는 사람인데 위에 있는 저자 소개에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그의 본명은 후쿠다 사다이치 福田定一 입니다. 그런데 역사소설을 쓰는 그로서는 사마천을 존경하는 뜻에서였는지, 사마천과 같이 되는 것은 멀고도 먼 일이다라는 의미를 나타내기 위해 멀 遼 를 써서 司馬遼太郞 로 창씨개명 ( ? ) 하게 됩니다. 그의 다른 책에서 콧대높은 퉁구스 인종 어쩌구하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중국식 이름을 갖게 된 사실을 이상하게 여기던 그가 중국식 이름으로 창씨개명한 것은 꽤나 의아스러운 일입니다만, 그만큼 사마천을 굉장히 높이 평가한다는 뜻이 담겨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 이하 원숭이로 약칭 ) 사후, 원숭이가 가장 신뢰하던 마에다 도시이에마저 죽고 도쿠가와 이에야스 ( 이하 너구리로 약칭 ) 가 일본 최대의 실력자로 떠오르자 원숭이의 오른팔이었던 이시다 미츠나리 ( 이하 여우로 약칭 ) 는 우에스기 가게카츠, 나오에 가네츠구 등과 함께 너구리를 쓰러뜨릴 계획을 세웁니다. 그러나 너구리는 오히려 이를 역이용하여 여우의 꾀에 넘어가는 척 해주며, 반란자 우에스기를 친다는 명분으로 끌어온 제장들을 단번에 오야마 군사회의에서 여우 토벌 작전에 참가시킵니다. 이로써 공적인 입장에서 소집한 군대를 사병화하는데 성공한 너구리는 회군하여, 여우를 세키가하라로 끌어내어 결전을 했다는 것이 대략의 줄거리입니다.
모두 다섯 권으로 1 ~ 4 권에서는 주로 세키가하라 전투에 이르기까지의 파벌 공작을 묘사했습니다. 5권에서는 결전 직전의 모습과 실제 전투 양상을 그려내었습니다. 이 책은 5권의 소제목인 ' 시대의 패자, 역사의 승자 ' 라는 글에서 극명하게 나타낸 것처럼 전쟁에서 이긴 너구리 대신, 패배자인 여우를 중심으로 기술하였습니다. 여우가 시대의 패자이긴 했지만, 사실은 역사의 승자이다라는 얘기입니다. 5권 302페이지의 글을 옮겨봅니다.
조스이는 ' 이미 도요토미 가는 세상을 지고 나갈만한 매력을 잃어버렸다. 히데요시 만년 이미 다이묘에서 서민에 이르기까지 이 정권이 끝나기만을 남몰래 바라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은 이를 더 끌고 나가려 했다. 모든 무리함이 거기에 있었다. ' 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침묵했다. 그 대신 이런 말을 했다. " 그 사람은 성공했어. " 오직 한 가지 일에 대해서였다. 이번 거사는 고 다이코에 대한 더없는 대접이 되었다. 도요토미 정권의 멸망에 즈음하여 미츠나리같은 총신마저 이에야스에게로 달려가 아양을 떤다면 세상은 망가지고 인간은 정절을 잃는다. 더구나 남겨두고 간 총신들에게 그렇게까지 배신을 당한다면 히데요시는 어찌해볼 도리 없이 비참해질 것이다. 그런 점에서 말한다면 그 사람은 충분히 성공한 것이라고 조스이는 말하고 있었다.
위 글은 작가의 여우에 대한 평가입니다. 원숭이의 손꼽히는 寵臣이었던 여우마저 너구리를 추종했다면, 원숭이는 정말 세상을 잘못 살았다는 스토리가 되는거구 비참의 단계를 넘어서 진짜 처참해지는겁니다. 그런 뜻에서 여우의 너구리에 대한 도전은 이루어지지 않을지라도 행해야만 했던 것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그러한 도전 끝에 지긴 했지만, 그를 역사의 승자로 볼 수 있다는 해석을 하고 있는 듯 합니다. 한편 5권 315페이지에 있는 다카사카 마사타카라는 이름의 교토대 교수의 해설 일부분을 옮겨봅니다.
그는 결벽증이 있었고 부정을 격렬히 미워했지만 그것은 편협함과 통했다. 그리고 사람들의 감정을 거슬리는 데가 있었기 때문에 오만방자한 녀석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위 글 역시 여우에 대한 평가로서 간단히 두 단어로 요약하면 ' 오만과 편협 ' 입니다. 웬지 ' 오만과 편견 ' 이라는 소설책이 생각나는군요 ㅎ ㅎ 그 밖에 작가가 틈만 나면 지적하는 것처럼 여우에게는 정치력 부재, 현실 인식 능력 결여 등의 약점이 많았습니다. 그러한 단점들 때문에 적은 갈수록 늘어만 갔고, 아군의 힘이 되어야 할 사람들 ( 대표적인 예로 시마즈 군 ) 에게까지 버림받아 막상 결전에 임해 오타니 요시츠구, 우키타 히데이에 정도만이 힘껏 싸워주지만 역부족으로 전투에 지고 맙니다.
서군의 우두머리로 추대된 모리 가 지도부의 소극성과 그에 기인하는 모리 일족의 불통일에서 서군의 패인을 찾는 견해도 있습니다만, 전쟁이라는 것은 결국 사람과 사람의 싸움이고 양군에 있어 주도적인 위치에 있던 너구리와 여우를 비교해 보았을 때 다카사카 교수의 말처럼 여우는 도대체 너구리를 이길 수 없는 인물이었습니다. 여우가 너구리를 상대로 거기까지 싸울 수 있었다고 하는 점이 오히려 주목할만한 일이라고는 하나, 그냥 선전했다라는 것이지 최종적인 승리는 역시 너구리의 것이 되었을거라는 결론을 내립니다.
글이 길어지는데 아무튼 이 책의 포인트는 전쟁의 승패가 아니라 인간군상입니다. 인간에 대한 탁월한 묘사랄까... 4권 책 뒷표지에 있는 시바 료타로의 글을 옮겨봅니다.
일본은 모든 사람들이 혈연으로 얽혀있기 때문에 적과 아군을 가르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 그래서 전투가 무르익었을 때 배반자가 나오는 경우가 많다. 세키가하라 전투 역시 배반에 의해 승패가 결정되는 단순한 구도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배반하기까지 무대 뒤에서 일어난 이야기, 즉 사전교섭이다.
중요한 사전교섭과 전투 진행 상황에서 나타나는 인간들의 모습을 정말 잘 그려내어 보여주고 있습니다. 너구리와 여우를 비롯하여, 수많은 캐릭터들을 멋들어지게 형상화하여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워낙 유명한 작품이라 아직 안보신 분들이 있을까 싶습니다만, 책은 처음 읽을 때와 두번 세번 읽을 때의 느낌이 다른 법... 시간이 되신다면 다시 한번 읽어보아도 좋을만한 역사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