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시아 파마

이춘희 글 / 윤정주 그림 / 임재해 감수 / 언어세상

 

 

 




엄마는 장에 가고 영남이 혼자 집을 보고 있어요.

영남이는 손거울로 이리저리 햇살을 비추며 장난을 쳤어요.

곧 싫증이 난 영남이는 거울을 빤히 들여다보았어요.

 

 




눈은 좁쌀 눈,

코는 돼지 코,

입은 하마 입,

두 볼엔 주근깨가 다닥다닥.

 

 




마침, 열린 방문 너머로 엄마의 분통이 보였어요.

영남이는 경대 앞에서 뽀얀 분가루를 조심조심 얼굴에 톡톡 두드리고

입술엔 빨간 루즈를 발랐어요.

 

'엄마처럼 파마하면 예쁠까?'

 

영남이는 불에 달군 젓가락으로 앞머리를 살살 말아 올렸어요.

치익, 치이익~

머리카락이 타며 누린내를 풍겼어요.

 

 




그때, 옆집 미희가 놀러 왔어요.

영남이의 뽀글거리는 앞머리를 본 미희가 '킥킥' 웃었어요.

 

"이리 와 봐. 내가 아카시아 파마해 줄게."

 

"아카시아 파마?"

 

 



 

"누나, 어디 가?"

 

삽사리와 놀고 있던 영수가 영남이를 따라붙었어요.

 

"따라오지 마."

 

"누나, 엄마 분 몰래 발랐지? 다 이를 거야."

 

영남이는 하는 수 없이 동생을 데려가기로 했어요.

 

 



 

 

 

 



 

미희가 영남이 머리카락을 아카시아 줄기로 말아 올리자

영남이는 머리를 자꾸만 만졌어요.

 

"손님, 가만 있어요. 자꾸 손대면 안 돼요."

 

"따가워요. 살살 해주세요. 근데 파마값은 얼마예요?"

 

"살구 익으면 한 바가지만 주세요."

 

영수도 덩달아 삽사리 털을 아카시아 줄기로 말았어요.

깨앵, 깨갱, 깽!

 

"가만 있어. 사자처럼 멋있게 만들어 줄게."

 

 




파마가 다 되기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영남이 마음은 온통 머리에 가 있었어요.

 

"딱 한 개만 미리 풀어 보면 안 돼요?"

 

"뽀글뽀글 예쁜 머리 만들어야죠. 조금만 더 기다려요."

 

영남이 가슴은 콩닥콩닥 뛰고, 손은 자꾸만 머리로 갔어요.

 

 



 
 
 
 



후둑, 후두둑!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어요.
 
"안 돼, 비 맞으면 안 돼!"
 
미희는 발을 동동 구르다가 얼른 영남이 손을 잡아끌며
토란밭으로 뛰어갔어요.
 
 
 



아이들은 커다란 토란 잎사귀로 비를 피했어요.
 
"앙~ 어떡해. 내 파마!"
 
"울지 마, 비 그치면 아카시아 파마 다시 해 줄게."
 
"몰라, 몰라."
 
영남이는 털썩 주저앉아 엉엉 울었어요.
 
 
 



어느덧 비는 그치고, 하늘은 말간 얼굴을 드러냈어요.
 
"누나, 저기 무지개 떴다!"
 
영수가 무지개 걸린 하늘을 가리켰어요.
 
"야호~ 아카시아 파마하러 가자."
 
미희의 말에 영남이가 울음을 그치고 벌떡 일어났어요.
 
아이들은 하얀 아카시아 숲을 향해 달려갔어요.
 
 
 
 
 
 
 
 떡, 꼴 따먹기, 싸개싸개 오줌싸개, 고무신 기차, 야광귀신, 쌈닭, 숯 달고 고추 달고,
논고랑 기어가기, 눈 다래끼 팔아요....
그리고 아카시아 파마.
모두가 점점 잃어버리고 있는 우리의 소중한 자투리 문화들이에요.
이책들은 [잃어버린 자투리 문화를 찾아서]라는 주제로 옛 아이들과 오늘의 아이들을 하나로
이어 주고 있어요.
아카시아 파마는 80년대에 영남이만했을 저에게도 생소한 놀이인데
쉽게 파마하고 염색할 수 있는 요즘 아이들에게는 정말 동떨어진 이야기일 거예요.
이런 면에서 이 시리즈들은 어른과 아이가 함께 보면서 옛날과 오늘날을 비춰 볼 수 있는
정말 좋은 책이라고 생각해요.
종이질도 고급스럽고 정겨운 그림과 파마값으로 살구 한 바가지만 달라는 소박한 마음들이
너무 예뻐서 그림책 구경하다가 얼른 집어들었어요.
 
실 영남이의 뽀글거리는 머리가 썩 예쁘지는 않아요.
어쩌면 촌스럽다고 핀잔을 받을 만한 머리지만
영남이는 사자처럼 부풀러진 머리 때문에 좁쌀 눈과 돼지 코, 하마입이 보이지 않고
평소와는 다른 곱슬거리는 머리가 신기하기만 한가 봐요.
세상에서 제일 예쁜 우리 엄마의 곱슬거리는 머리를 닮고 싶은 마음
영남이의 마음이 더 예쁘죠? ^^
 
 
런데 어렸을 땐 왜 그렇게 어른의 모양새를 닮고 싶었을까요?
여자 아이라면 한 번쯤은  꼭 해봤을 엄마 화장품 바르기.
머리카락을 종종이 땋아 놓았다가 풀어서 곱슬머리 만들기...
요즘은 문방구에만 가도 천 원짜리 립글로스, 매니큐어 등이 많던데
자신을 꾸밀 수 있는 거리들이 점점 많아진다는 건 좋은 일이기도 하지만
예뻐야 인정받는다는 게 아이들에게도 점점 당연시 되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기도 해요.
아이는 아이다운 게 가장 예쁘지 않나요?
적어도 제 눈엔 이국적으로 생긴 아이보다 동양적으로 생기고
머리에 브릿지를 넣고 꼬랑지 머리를 내린 아이보다
순수해보이는 모습들이 좋던데...
 
12월이면 제게도 아이가 생긴답니다.
그 아이가 자라면서 어떤 모습을 갖출지 태어나기 전부터도 궁금해요.
영남이처럼 호기심 많은 여자 아이가 태어났으면 좋겠지만
무엇보다 건강한 아이가 태어나는 게 가장 중요하겠죠.
얼른 태어나서 엄마와 함께 그림책을 읽게 되었으면 좋겠어요. ^^
 
 
※ 그림책 뒷쪽에는 아카시아 파마를 직접 해볼 수 있는 사진 설명이 있어요.
아카시아 나무 줄기만 있으면 쉽게 따라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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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숲 2007-10-21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어린적에 하고 놀았던 아카시아파마가 생각난다. 아카시아꽃 한 잎물고 언니가 해주던 아카시아파마. 파마를 하고 부풀린 머리를 자랑스럽게 하고 다닌 꼬맹이가 이제 불혹의 나이를 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