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개발하기 위하여 서두른 나머지 수많은 영향력에 자신을 내맡기지 마라. 그것도 일종의 무절제이다. 겸손은 어둠이 그러하듯이 천상의 빛을 드러나게 한다. 가난과 옹색함의 그림자는 우리 주위에 드리워 있지만, "그런데 보라! 창조는 우리 시야에서 전개되어간다."
부자로 유명했던 크로이소스 왕의 재산을 우리가 물려받는다 하더라도 우리의 목적은 전과 다름없을 것이며 우리의 수단 역시 본질적으로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당신이 가난하기 때문에 활동 범위에 제한을 받더라도, 예를 들어 책이나 신문을 살 수 없는 형편이 되더라도 당신은 가장 의미 있고 중요한 경험만을 갖도록 제한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당신은 가장 많은 당분과 가장 많은 전분을 내는 재료만을 다루도록 강요를 받게 된 것이다. 뼈 가까이에 있는 살이 맛있듯이 뼈 가까이의 검소한 생활도 멋진 것이다. 당신은 인생을 빈둥거리며 보내지 않도록 보호받게 된 것이다. 어떤 사람도 높은 수준의 정신생활을 하는 것으로 인해 낮은 차원에서 손해를 보지는 않는다. 남아 돌아가는 부는 쓸모없는 것들밖에 살 수 없다. 영혼에게 필요한 단 한 가지의 필수품을 사는 데는 돈이 필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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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든 - 완결판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지음, 강승영 옮김 / 은행나무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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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성공하려고 그처럼 필사적으로 서두르며, 그처럼 무모하게 일을 추진하는 것일까? 어떤 사람이 자기의 또래들과 보조를 맞추지않는다면, 그것은 아마 그가 그들과는 다른 고수鼓手의 북소리를 듣고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 듣는 음악에 맞추어 걸어가도록 내버려두라. 그 북소리의 박자가 어떻든, 또 그 소리가 얼마나먼 곳에서 들리는 말이다. 그가 꼭 사과나무나 떡갈나무와 같은 속도로 성숙해야 한다는 법칙은 없다. 그가 남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자신의 봄을 여름으로 바꾸어야 한단 말인가? 우리의 천성에 맞는 여러 여건이 아직 갖추어지지 않았다면 대신 끌어다댈 수 있는 현실은 무엇인가? 우리는 헛된 현실이라는 암초에 우리의 배를 난파시켜서는 안 되겠다. 우리가 애를 써서 머리 위에 청색 유리로 된 하늘을 만들어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것이 완성된다 하더라도 우리는 분명 그런 것은 없다는 듯이 그 훨씬 너머로 정기에 가득 찬 진짜 하늘을 바라볼 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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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중에서...
우리의 경험과 인식.
경험이 우리 지성이 국한될 유일한 분야는 아니다. 경험은 그것이 반드시 그러해야만 하며 다르게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지 않는다.

경험은 의심할 여지없이, 우리 지성이 감성적 감각이라는 원재료를 가공해 서 산출해 낸 최초의 산물이다. 바로 그렇기에 경험은 최초의 일러줌이며 또 한 경험이 진전해 감에 따라 새로운 가르침은 끝이 없어서, 계속되는 미래의 세대로 이어지는 인간의 삶은 이 바탕 위에서 모아질 수 있는 새로운 지식에 아무런 결여도 갖지 않을 정도이다. 그럼에도 경험은 결코 그 안에 우리 지성이 국한될 유일한 분야는 아니다. 경험은 우리에게 무엇이 현존하며 그렇 지 않는가를 가르쳐 주기는 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그러해야만 하며 다르게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지는 않는다. 바로 그 때문에 경험은 또한 우리에게 아무런 참된 보편성도 제공하지 못하고, 따라서 그러한 인식을 그렇게도 열망하는 이성은 경험을 통해 만족을 얻기보다는 오히려 자극을 받는다. 동시에 내적 필연성을 성격으로 갖는 그런 보편적인 인식들은 이제, 경험으로부터 독립적으로, 독자적으로 자명하고 확실해야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러한 인식을 선험적 인식이라고 일컫는데 반대로 오로지 경험에서 얻은 것은, 통칭 그러하듯이, 오직 후험적으로 또는 경험적으로 인식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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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판 머리말 중에서...
인식은 우리 경험에 국한된다. 우리는 사물 자체를 바라볼 수 없다. 그러나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우리는 현상을 인식할 수 없어도 사고할 수 있는 것이다.

공간과 시간은 단지 감성적 직관의 형식이고, 그러므로 단지 현상으로서 사물들의 실존 조건일 뿐 이라는 것, 더 나아가 우리는 순수 지성개념에 대응하는 직관이 주어질 수 있는 경우 이외에는 어떠한 지성개념도, 그러니까 사물 인식을 위한 전혀 아무 런 요소도 갖지 않는다는 것, 따라서 우리는 사물 그 자체로서의 대상에 대해 서가 아니라, 오직 그것이 감성적 직관의 객관인 한에서만, 다시 말하면 현상으로서의 대상에 대해서만 인식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비판의 분석적 부분 에서 증명된다. 이로부터 사실 오로지 가능한 이성의 사변 인식을 순전히 경험의 대상에만 국한시키는 결과가 나온다. 그럼에도 충분히 주목해야 할 것은, 우리가 바로 이 대상들을 사물들 자체로서 비록 인식할 수는 없어도 적어도 사고할 수는 있어야 함이 여전히 유보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로부터, 현상하고 있는 어떤 것 없이 현상이 있다는 불합리한 명제가 결과할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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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환 2019-01-02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2판까지 읽었단말이야?

dyk7929 2019-01-02 10:44   좋아요 0 | URL
아니 서문이 두개임 ㅋㅋ

최기환 2019-01-02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제2판 머리말 중에서...
사고의 혁명.

단 한 번에 성취된 혁명에 의해 현재와 같은 것이 된 수학과 자연과학의 실례는, 생각하건대 그것들을 그토록 유리하게 만든 사고방식의 변혁의 본질적인 요소를 성찰하기 위해, 그리고 이성 인식으로서 그것들의 형이상학과의 유비가 허용되는 한에서, 여기에서 최소한 그것들을 모방하기 위해서라도, 충분히 주목할 만하다. 이제까지 사람들은 모든 우리의 인식은 대상들을 따라야 한다고 가정하였다. 그러나 대상들에 관하여 그것을 통해 우리의 인식이 확장될 무엇인가를 개념들에 의거해 선험적으로 이루려는 모든 시도는 이 전제 아래에서 무너지고 말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한 번, 대상들이 우리의 인식을 따라야 한다고 가정함으로써 우리가 형이상학의 과제에 더 잘 진입할 수 있겠는가를 시도해 봄직하다. 이런 일은 그것만으로도 이미 대상들이 우리에게 주어지기 전에 대상들에 관해 무엇인가를 확정해야 하는, 요구되는바 대상들에 대한 선험적 인식의 가능성에 더 잘 부합한다. 이것은 코페르니쿠스의 최초의 사상이 처해 있던 상황과 똑같다. 전체 별무리가 관찰자를 중심으로 회전한다는 가정에서는 천체 운동에 대한 설명이 잘 진척되지 못하게된 후에, 코페르니쿠스는 관찰자를 회전하게 하고 반대로 별들을 정지시킨다면, 그 설명이 더 잘 되지 않을까를 시도했다. 이제 형이상학에서 우리는 대상들의 직관과 관련하여 비슷한 방식의 시도를 해볼 수 있다. 직관이 대상들의 성질을 따라야만 하는 것이라면, 나는 사람들이 어떻게 그것에 관하여 무엇인가를 선험적으로 알 수 있는가를 통찰하지 못한다. 그러나 대상이 (감관의

객관으로서) 우리 직관 능력의 성질을 따른다면, 나는 이 가능성을 아주 잘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직관들이 인식이어야 한다면, 나는 이 직관에 머무를수만은 없고, 표상인 그것을 대상인 무엇인가와 관계 맺고 저 표상을 통해 이대상을 규정해야 하므로, 다음 두 가지 중 하나를 가정할 수 있다. 하나는 그 것을 통해 내가 이 규정을 실현하는 그 개념들이 대상들을 따른다고 가정할 수 있고, 그때 다시금 내가 이에 관해 무엇인가를 어떻게 선험적으로 알 수 있는가의 방식 문제 때문에 똑같은 곤경에 빠지는 경우이다. 또 하나는, 그러니 까 같은 말이 되겠지만, 나는 오로지 거기에서만 대상들이 (주어진 대상들로서) 인식되는 경험이 이 개념들을 따른다고 가정하고, 경험이란 그 자체가 일종 의 인식방식으로서 내가 그것의 규칙을 대상들이 나에게 주어지기 전에 내 안에서, 그러니까 선험적으로 전제할 수밖에 없는 지성을 요구하는 것이고, 그러므로 이 규칙은 경험의 모든 대상들이 반드시 그것들에 따라야 하고 그것들과 합치해야만 하는 선험적 개념들에서 표출되는 것이므로, 이내 좀 더 쉽게 빠져나갈 길을 발견하는 경우이다. 순전히 이성에 의해 그것도 필연적으로 생각되지만, (적어도 이성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는) 결코 경험에 주어질수 없는 그런 대상들에 관해 말할 것 같으면, 그런 대상들을 생각하려는 모든시도들은 ㅡ 어쨌든 이런 대상들을 생각할 수는 있으므로 ㅡ 나중에, 우리는곧 사물로부터 우리 자신이 그것들 안에 집어 넣은 것만을 선험적으로 인식한다는 사고방식의 변화된 방법이라고 우리가 받아들이는 것의 빛나는 시금석을 제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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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춘 2021-11-06 1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섬세한 정성 감사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