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시대 ‘문명의 충돌‘을 극복하기 위한 전제는 인식적 지향과 인과적 지향 둘 다를 선험적으로 규정하는, 일반적으로 문화라 불리는 의미 체계에 대한 성찰이다. 그린은 모든 부족의 인간은 세계와 타자를 보는 나름의 카메라를 갖고 있다고 보았다.
그는 인간의 뇌를 자동 모드와 수동 모드를 함께 지닌 카메라에 비유했다. 일상생활에서 인간의 뇌는 자동 모드로 설정된 카메라 로 세상을 인식한다. 이 자동 모드는 실제로는 자기 부족의 문화에 내재된 의미 체계에 맞춰 설정된 것이다. 인과관계 구성과 가치판단도 이 자동 모드로 이뤄진다. 문제는 서로 다른 자동 모드를 가진 사람들이 만났을 때다. 이때 필요한 것이 수동 모드다. 각 각의 자동 모드에 입력된 선택 체계를 수동으로 바꾸려는 노력을 기울일 때 이해와 협력이 가능하다.
역사란 자동 모드 설정을 해제하고 수동 모드로 전환할 때 필요한 지식과 정보다. 역사에는 수많은 과거의 사례와 인물이 있다.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카메라 렌즈의 시야를 넓히는 모드로 조절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역사 이야기다. 이를 위해서는 역 사에서 정답을 찾는 인과적 구성이 아니라 해답을 찾아가는 이야 기로 현재와 과거의 대화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
카는 역사에는 하나의 정답이 있다고 믿고 역사적 인과관계를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한 근대주의자다. 하지만 탈근대라 불리는 우리 시대에는 그 정답을 해체하고 내가 가진 인식 지평과 의미 체계의 한계를 확장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과거와 대화를 해야 한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은 필연이 아니라 과거에 있었던 각기 다른 수많은 가능성들 가운데 하나가실현되어 나타난 것이다. 이런 식으로 인간 역사가 전개된다고 할때, 현재와 과거를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 자연과학처럼 인과법칙에 의거하기보다는 과거에 있었던 열린 가능성들을 재인식할 수있는 이야기들을 찾아내는 것이 역사를 연구하고 서술하는 목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