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의 역할은 무엇인가? 수백년 전과 지금이 다르지 않다는 사실은 매우 슬픈 일이다.

하나님,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세상에서 출세하고 성공해서 사람들로부터 존경받고 뜬구름 같은 저 거짓된 부를 누리기 위해서는 뛰어난 웅변술을 익혀야 하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 선생님들에게 복종하여야 하는 것이 소년으로서 올 바르게 사는 것이라는 말을 어른들로부터 듣고서, 학교에 가게 되었을 때부터, 나는 온갖 비참하고 불행한 일들과 우스꽝스러운 일들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목적으로 나는 공부를 배우기 위하여 학교에 보내졌지만, 사실 이 가련한 자는 공부가 어떤 쓸모가 있는지도 알지 못하였고, 그런데도 학업을 성취하는 속도가 느릴 때면 매를 맞아야 했습니다. 어른들은 소년들을 그런 식으로 훈육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였고, 많은 사람들이 우리보다 먼저 그 동일한 삶을 살아감으로써, 저 괴롭기 짝이 없는 가시밭길을 닦아 놓은 까닭에, 우리도 그들을 뒤따라서, 아담의 자손들에게 수고와 슬픔을 더해 주는 그 길을 걸어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주님이여, 우리에게는 기억력이나 학습능력이 결여되어 있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나이에 걸맞은 그런 능력들을 우리에게 충분히 공급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공부하는 것보다는 노는 것을 더 좋아하였고, 그래서 벌로 매를 맞은 것이었습니다. 우리를 벌 준 선생님들도 노는 것을 좋아한 것은 우리와 마찬가지였지만, 어른들은 자신들이 빈둥거리거나 노는 것은 "일"이라고 말하면서, 아이들이 놀면, 공부는 안 하고 놀기만 한다고 야단치고 벌을 주었습니다.
그런데도 아이들을 동정하고 어른들을 탓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도리어 이 일을 지켜 본 사람들은, 내가 공부해야 할 나이에 공놀이나 하면서 학업을 소홀히 한 것이기 때문에, 선생님들이 내게 매 맞는 벌을 내린 것은 합당하고 옳은 일 이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 나이에 그렇게 억지로 공부를 한 탓에,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 더 부끄럽고 지저분하게 "놀게 된 것이 아닙니까? 그리고 나를 때린 선생님도 나보다 더 낫게 행한 것이 있었습니까? 그 선생님도 동료 선생님과 시시한 문제로 논쟁을 벌이다가 지면, 내가 친구와 공놀이를 하다가 졌을 때 보다도 더 심하게 분해하며 자존심이 상해서 어쩔 줄 몰라 하지 않았습니까?

나는 나의 소년기를 청년기 때보다도 훨씬 덜한 두려움 가운데 보냈지만,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았고, 특히 강요에 의해서 공부하는 것을 싫어하였습니다. 하지만 나는 강제로 공부하지 않을 수 없었고, 사실 공부를 잘하지도 못했지만, 만일 강제로 시켜서 공부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분명히 공부를 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에, 어쨌든 그러한 강제는 내게 유익한 것이었습니다. 사람이라는것은 자기가 하는 것이 아무리 좋은 일이라고 할지라도, 누가 강제로 시켜서 하면 그 일을 잘할 수 없습니다.
물론, 나를 강제로 공부하게 한 어른들도 결코 잘한 것이 아니었지만, 오직 나의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이 합력하여 내게 선이 되게 하시고 유익이 되게 하셨습니다. 어른들은 자신들이 나에게 강제로 배우게 한 것들이 장차 내게 어떤 식으로 유익하게 사용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고, 어떻게든 출세해서 부귀 영화를 누려야 하겠다고 하는 채워질 수 없는 욕망을 채우려고 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었을 뿐인데, 그러면서도 그것을 천하고 수치스러운 것으로 느끼지도 못하고 너무나 당연시하였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머리카락도 다 세시는 주님께서는, 나에게 강제로 공부를 시킨모든 사람들의 잘못은 나를 위해 사용하셔서 내게 유익이 되게 하셨고, 공부하기를 싫어하였던 나의 잘못은 내게 벌을 주시는 데 사용하셨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