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은 깊고 아름다운데 - 동화 여주 잔혹사
조이스 박 지음 / 제이포럼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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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설공주, 라푼젤, 미녀와 야수 등등,, 어릴 적에 많이 읽고 들어봤을 전래 동화들인데요. 그리고 요즘 아이들도 열심히 읽고 보고 듣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나쁜 계모가 마법의 거울을 통해 공주를 찾아내고, 독사과를 먹고 죽은 공주를 왕자가 구해주고, 성에 갇혀있던 공주는 멋진 기사의 도움으로 탈출하고, 무섭게 생긴 야수는 알고 보니 저주에 걸린 왕자였고.. 그러고 보니 공주와 왕자 이야기가 참 많았네요. 그런데 왜 공주만 잡혀가는 걸까요? 기사나 왕자가 공주를 구하려 가야 하는 걸까요? 그리고 그들이 가는 곳은 대부분 깊고 깊은 숲속인 걸까요? 전혀 생각해 보지도 못한 질문들에 살짝 당황하게 됩니다. 너무나도 당연했던 전개였기에 말이죠. 공주는 잡혀가고 왕자가 구해주고 둘은 결혼해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는 하나의 공식이잖아요. 그런데 왜냐고 물어보면,, 저는 모르겠습니다. 이 책이 알려주지 않을까요?

백설공주 이야기는 다들 아실 듯하네요.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여성이 누구누구일까요? 백설공주, 백설 공주의 어머니, 그리고 계모인 마녀.. 이렇게 3명인데요. 책에서는 이들을 조금 다른 시선으로 살펴보고 있었답니다. 눈처럼 하얀 피부, 피처럼 붉은 입술, 흑단처럼 검은 머리를 가진 아이를 원하는 백설 공주의 어머니. 그녀의 이런 바램은 정말 그녀의 욕망일까요? 아니면 사회적 가치, 즉 남자들이 좋아하는 여성의 외모라서 그런 걸까요? 가부장 사회의 요구에 순응하는 전형적인 왕비는 조용히 죽음으로써 사라져버렸답니다. 그렇다면 백설공주는 어떤 여성일까요? 남자들의 로망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그녀는 독사과 조각이 목에 걸려 죽는데요. 그런 그녀를 난쟁이들은 유리관에 전시하고 갑자기 나타난 왕자에게 양도합니다. 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녀라는 타이틀을 가졌지만, 그런 타이틀은 그녀가 쟁취한 것이 아니라 남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었네요.

가장 강력한 존재.. 계모인 왕비는 권선징악 이야기를 완성하기 위한 빌런일 뿐일까요? 남자가 주인공인 사회에서 남자의 힘으로 최고의 권력을 얻은 그녀는 불안할 겁니다. 자신보다 더 예쁜 누군가에 의해 언제든지 추락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기에 악당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게 아닐까요?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서 말이죠. 백설공주가 이렇게 무섭고 참혹한 이야기였다니.. 새롭게 눈을 뜨는 즐거움과 함께 제대로 동심이 파괴되었네요. 하지만, 이것이 바로 인류의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네요.

빨간 모자 이야기도, 잭과 콩나무도, 미녀와 야수까지.. 그 안에 담긴 비밀은 어마어마하네요. 하지만, 책을 덮으면서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저자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과연 무엇일까라는 질문이 계속 떠오르네요. 전래 동화에 숨겨진 의미를 하나하나 분석해서 알려주고자 하는 지식 전달은 아닐 듯합니다. 성차별이 극심한 전래 동화를 이제 그만 아이들에게 읽히라는 주장도 아닐 듯하네요. 그렇다면 과연 무엇일까요? 아마도 이야기의 힘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더라고요. 전래동화 안에 담긴 이야기는 누가 더 우월한 지에 대한 이야기도, 누가 위에 있고 아래 있는 순위 정하기도 아닐 겁니다. 도전에 대해 억압하고 성별에 따른 이미지를 관념화하는 가장 강력한 힘이 바로 이야기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듯싶네요.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이야기가 만들어가는 힘은 여기서 끝이 아니라 계속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 아닐까요?

저는 책을 읽으면서 기억해야 할 부분이나 좋은 구절은 작은 종이에 메모를 하곤 하는데요. 100 페이지 정도까지 메모를 하다가 포기했답니다. 하다 보니 거의 필사 수준으로 해야 하더라고요. 남성과 여성에 대한 사회적 관념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전래동화의 비밀, 부계 중심 사회에서 소년이 남성으로 소녀는 여성으로 성장하기 위한 통과의례들.. 마냥 재미나게 읽었던 이야기들 안에 이렇게나 다양하고 심오한 의미가 있었다니 놀랍고도 신기했거든요. 그리고,, 아직도 남자와 여자라는 이분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서로의 다름을 틀림으로 억압하고 비난하는 현대 사회를 떠올리게 하더라고요.

앞으로 동화책을 공주와 왕자의 모험과 사랑 이야기로 단순하게 읽지 못할 듯하네요. 이게 바로 이 책을 읽으면서 얻은 가장 큰 단점이 아닐까 합니다. 하지만, 인문학적인 접근을 통해 역사 속의 문화와 인간 사회의 어두운 면을 연결할 수 있었기에 너무 좋았네요. 새로운 시선과 놀라운 지식을 얻게 되었거든요. 하지만, 아이와 동화책을 읽으면서 이런 이야기를 하면 안 되겠죠? 동심 파괴는 어른이 돼서 스스로 하는 걸로.. '동화 여주 잔혹사, 숲은 깊고 아름다운데'를 읽으면서 말이죠. 하지만,, 혹시 지금 당장 동심 파괴를 즐기고 싶다면 바로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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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지원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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