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차별 살인법
저우둥 지음, 이연희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0년 8월
평점 :
절판


오락실 화장실에서 어린아이가 처참하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범인은 곧 잡히게 되는데, 그 범인이 좀 이상하다. 생판 모르는 아이를 죽이고, 살인 후에 피가 묻어 지저분하다고 집에 가서 신었던 구두 대신에 슬리퍼로 갈아신고, 기껏 숨으려고 간 곳이 동네 PC방이다. 그리고 그의 살인 동기는 일도 없고 친구도 없고 돈도 없어서 감옥에서 평생 콩밥을 먹고 싶어서이다. 한마디로 사회적 낙오자인 사이코의 무차별 살인이었다.

그런 놈을 변호하겠다고 나선 윈즈 변호사는 5년전 무차별 살인으로 인해 사랑하는 약혼자를 잃어버린 피해자의 가족이다. 그 당시 사회의 불만으로 가득찬 범인은 그냥 사람이 죽이고 싶어서 죽였다는 무책임한 말을 한채 감옥에서 자살함으로써 세상에서 사라져 버린다. 피해자의 가족들에게만 상처를 남긴 채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런데, 그런 아픔을 가진 윈즈 변호사는 모든 사람들의 욕을 다 받아가며 그의 변호를 맡게 된다. 무차별 살인을 한 이유를 연구하자는 심리상담사 중완칭의 제안으로, 또다른 무차별 살인을 막을 수 있겠다는 목적을 가지고 시작하게 된다. 모든 사건에는 동기가 있다는 믿음이 있었고, 그를 통해 근본적인 동기를 파악함으로써 또다른 희생자를 만들지 않겠다는 일반인이라면 머리로는 이해되나 가슴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이상적인 태도이다.

그 사이에 발생하는 또다른 무차별 살인들이 있었다. 거리의 노숙자가 총에 맞아 살해당하는 사건들이 발생한 것이다. 동일한 총으로 1년의 간격을 두고 발생한 두 건의 사건으로, 살인자들은 아무런 관련이 없는 노숙자를 총으로 쏴 죽이고는 그 총으로 자살해 버린다. 피해자도 가해자도 사라진 그 사건들은 그냥 그렇게 하나의 지나가는 사건으로 끝나게 된다. 하지만, 윈즈 변호사의 오랜 친구였던 다이화 형사의 관심으로 그 총에 검은옷의 남자라는 접점이 있었음을 알아내고, 그 검은옷의 남자는 5년전 윈즈 변호사의 약혼녀가 죽은 열차 플랫폼에서 살인자가 시도했으나 실패한 살해 대상자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윈즈 변호사가 변호를 맡은 어린아이를 죽여버린 무차별 살인자 역시 그와 연관되어 있었다. 결국 윈즈 변호사는 모든 사건의 배경에 있는 그 검은옷의 남자와 모든 것을 계획한 높은 지위에 앉아있는 진짜 악마를 만나게 된다.

여기까지 내용을 보면 이 이야기는 법정추리물일수도 있고, 심리소설일수도 있고, 어두운 권력과의 대결이라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신질환을 가진 살인자 천원칭의 변호를 준비하며 저자는 윈즈 변호사를 통해 사회의 많은 문제점들을 이야기해주고 있다. 무차별 살인은 원한, 돈, 치정 등의 흔한 동기가 아닌 불특정인에 대한 자신의 화풀이이다.

정신질환 분류는 세계보건기구에서 만든 ICD나 미국정신의학협회(APA)에서 발행한 DSM가 대표적이다. 얼마 전에 개정된 ICD-11에서 게임 장애를 새롭게 넣으면서 논란이 되기도 하였다. 이처럼 정신질환의 분류는 논란의 소지가 아직 많이 남아있다. 유사한 질병임에도 잠재적 정신분열증, 분열형 인격장애, 전반성 발달장애 이렇게 부르는 용어들이 달라서 듣는 이가 이해하기 어렵다. 또한, 객관적인 지표나 data가 보다는 감정하는 의사의 주관적 판단에 의지하는 경우가 더 많아 정신과 의사의 경험과 지식, 기준 또는 관점에 따라 진단은 달라질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러한 진단은 그 사람에게 하나의 꼬리표가 되어 증상을 더욱 악화시킬 수도 있기에 조심해야 하는 부분이다.

이러한 정신질환은 신체질환과는 다르게 많은 시간과 관심, 노력이 필요하다. 즉, 정신질환의 치료 또는 경감을 위해서는 돈이 많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이다. 정신질환 범죄자들을 위해 그 많은 비용을 국가에서 부담하기는 사실 어렵기에 그들은 제대로된 치료를 받지도 못하는 게 현실일 것이다. 또한 그들을 위해 세금을 쓰는 것이 동의하는 국민은 사실 거의 없을 것이다. 제대로된 치료를 받지 못하고 감옥에서 더욱 악화된 상태로 출감된 이들은 더욱 더 사회의 밑바닥에서 위험한 존재가 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이러한 심리적으로 불안한 이들을 더 깊은 곳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해주는 사회적 안전망이 충분한 지부터가 아마 지금까지 적은 모든 이야기들의 시작점일 것이다. 저자도 이 소설을 통해 바로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거 같다. 인간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필연적으로 더욱 심화되는 사회적인 문제임은 틀림이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을 듯 하다. 하지만, 이젠 이웃에 누가 사는지 알지 못하고 국가나 민족 차원에서부터 나와 내 가족이라는 개개인들의 이기주의가 점차 심각해지는 현대 사회에서 주변 사람들을 조금 더 살피고 관심을 가지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 사회에서 국가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하지만, 시스템이란 것도 개개인이 실행하지 않으면 돌아가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망이 망가지고 구멍이 뚫려버린다면 이제는 누군가가 원한을 가지지 않도록 착하게 살면 무사한 사회가 아닌, 누군가가 언제가 될지 모르는 그 상황을 항상 두려워하고 조심해야하는 사회가 되어 버릴 것이다. 마지막 장에서 모든 사건을 계획하는 그의 한마디가 생각난다. 아니 그의 한마디라기 보다는, 사회가 우리에게 던지는 한마디일 것 같다. 다같이 많은 고민이 필요한 화두인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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