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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의 무소유의 행복
장혜민 지음 / 산호와진주 / 201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지금 노래를 들으며 이 글을 쓰고 있다. 윗집이 너무 시끄러워 노이로제 걸릴 거 같고 그로 인해 마음이 더 퍽퍽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법정스님의 책을 읽고 그 감상을 이렇게 남긴다.
이 책은 법정스님의 일대기와 그 안에서의 에피소드를 담아낸 책이다. 그리고 작가 자신의 견해도 함께 들어있어 읽는 우리에게 깨우침을 주고 있다. 그리고 물음을 함께 던지고 있다. ‘너의 화두는 무엇인가?’, ‘그 화두에 대해서 얼마나 고민하고 있는가.’, ‘그래서 답을 얻었는가.’ 작가는 스님의 이야기를 통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화두를 던지고 있다.
청빈한 삶과 무소유의 정신을 강조하시던 스님. 외양은 가난해 보이고 노곤해 보여도 마음이 넓어야 한다는 것. 어느 것이든 넘치는 게 좋은 게 아니라며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직격탄을 쏘아주시던 분이시다. 자신에게 엄격하고 다른 이에게는 유머를 던질 줄 아시던 스님. 자신에게 관대하고 남에게 퍽퍽해져 있는 우리에게 스님은 제자들의 글을 통해 우리에게 다시금 직격탄을 날리신다. 그리고 그 직격탄에 호되게 혼나고 남에게 관대해지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한 가지 화두가 더 생겼다. 바로 허용의 범위를 정해야 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줏대 없이 이 사람, 저 사람, 사고의 스케일도 제 각각일 터. 어디까지 용서를 해야 하는 걸까. 이게 내가 생각하던 것 중 가장 에매한 것이다. 대체 어디까지가 관용이고, 어디까지가 배알도 없다는 건지 갈피를 잡지 못하겠다.
아이들과 일할 때에도 고민되는 것이 ‘관용의 범위’이다. 어디까지 해야 하는지, 상황 별로 틀려지는 건 일관성이 없어지니 아이들이 헷갈리기 딱 좋다. 앞으로 많이 생각해 보아야 할 화두인 건 확실하다. 그리고 두 번째 화두는 시끄러운 윗집을 어디까지 용서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밤에도 미친 듯이 못 질을 하고, 절구질을 하고, 모터 소리와 쿵쿵대는 소리로 못 자게 하는 그들을 어디까지 이해해야 하는 걸까. 부탁도 해보고 경비 아저씨나 관리 사무소에까지 이야기 했지만 돌아온 건 욕이었다. 정말 잔뜩 얻어먹었다. 그래서 눈이 뒤집혀 같이 버럭 거렸던 기억을 하면 좀 부끄럽기도 하다. 하지만 고쳐지질 않으니 이건 어찌 해야 하는 걸까? 아파트는 공동주택이다. 게다가 고층이다. 자기들만 사는 것도 아닌데 좀 너무 하다.
법정스님이 돌아가신 후, 그 분의 일대기가 많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때이다. 한 두 권이 아닌 수십 권이 쏟아져 ‘법정스님 홍수’ 속에 쓸려갈 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옥석과 돌멩이를 가려내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면 이 책을 추천하는 바이다. 이 혜인 수녀님이 법정 스님께 남기신 편지와 시작하고 일대기를 더 많이 알고 싶다면 말이다.
나의 발인 지하철에서 종이에 이것들을 적었다. 운 좋게 자리에 앉아 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컴퓨터로 옮기는 과정에서 더 플러스 된 부분도 있다. 내가 있는 곳이 도량이라던 스님에 대해 알 수 있게 해준 이 책이 오늘따라 더 청빈해 보이는 건 뭘까. 이 책을 읽었으니 내일도 힘이 나서 열심히 일할 수 있길. 평생을 일하겠지만 집중하고 아이들과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