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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감정 - 나쁜 감정은 생존을 위한 합리적 선택이다
랜돌프 M. 네스 지음, 안진이 옮김, 최재천 감수 / 더퀘스트 / 2020년 8월
평점 :
‘나쁜’ 감정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 [이기적 감정]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다’라는 말을 언젠가 어디선가 들었는데, 그 뒤로는 하루 종일 너무 과다하고 쓸데없이 머릿속을 채우는 '감정'이라는 놈을 그냥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내가 ‘인간’인 이상, 살면서 이 굴레를 완벽히 벗어날 수 없다면 친하지는 않더라도 그저 그런 관계로는 지낼 수 있는, 그런 뜨뜻미지근한 친구로 이 ‘감정’을 옆에 두겠다고도 다짐했다.
하지만 불안과 우울, 초조 등의 감정은 그래도 곁을 내주기에 버거울 때가 많았다. ‘불안하고 싶지 않아, 우울한 건 싫어, 초조해 하지 않으며 살고 싶어’라는 것이 내심 솔직한 마음이었다.
‘나쁜 감정은 생존을 위한 합리적 선택이다’라는 책의 부제가 말해주듯, 이 책[이기적 감정]은 우리의 삶에 존재하는 고통스러운 감정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책은 크게 4부로 나뉘어 각각 ‘왜 인간의 마음이 쉽게 무너지는지’, ‘감정의 이기적 기원이 무엇인지’, ‘사회적 삶의 기쁨과 슬픔이 무엇인지’, 또 기타 여러 심각한 정신질환들에 대해 다루고 있다. 저자는 진화의학을 개척한 연구자 중 한 명으로서 세계 최초로 불안 클리닉을 설립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는 자신이 심혈을 기울였던 여러 연구들의 결과와 여러 석박들의 의견을 토대로 진화 의학에서 바라보는 인간의 감정을 살펴본다. 특히, Bad feelings, ‘나쁜 감정들’에 대해서. 저자에 따르면 흔히 우리가 좋지 않은 감정이라 여기는 불안과 우울, 슬픔 등도 때에 따라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고 한다. 또 불안한 감정이 우리를 보호한다는 주장을 역설하기도 한다. 위험하거나 손해를 볼 수 있는 상황 앞에서는 불안과 슬픔이 유용하다는 본문의 구절도 인상적이다. 사실 이럴 때 마냥 느긋한 태도로 사태를 주시한다고 해서 딱히 더 나은 해결책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은,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지금까지 살아온 경험으로 잘 알고 있다고 생각된다. 이런 류의 책이 으레 그렇듯, 책은 전반적으로 이론과 실제 예를 차곡히 쌓아가며 하나의 큰 주장을 향해 막바지로 달려간다. 독자는 책을 천천히 읽으며 몰랐던 부분은 얻고, 이미 알았지만 분명한 문장으로 정립되지 않았던 현상은 나름대로 정돈해서 뇌에 새로운 지식으로 저장해 놓을 기회를 얻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11장의 ‘나쁜 섹스도 유전자에는 좋을 수 있다?’에서 커플들의 성행위를 감정과 연결 지어 다룬 점이 흥미로웠다.
책 앞머리에 실린 저자의 한국어판 서문에서 저자는 최근 우리가 코로나 팬데믹 때문에 받는 심각한 정신적 고통에 대해서도 살짝 언급한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라는 말이 어찌 보면 억지로 들릴 수는 있겠지만 백신 등 아직 뾰족한 대응책이 나오지 않는 한 이런 말들로라도 갑자기 멈춰버린 시간들을 잘 이겨내야, 그래야 전염병이 물러난 뒤의 세상도 여봐란듯이 즐길 수 있지 않을까. 부정적인 감정들을 다시 돌아보는 시간, 그렇게 내 편으로 만드는 귀한 시간을 독자들은 어쩌면 이 책의 도움으로 가지게 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