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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라이징 ㅣ 레드 라이징
피어스 브라운 지음, 이원열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11월
평점 :
얼마전 <마션>을 통하여 화성을 소재로 한 소설을 만났다. 그래서인지 같은 지역적 소재를 갖는 <레드 라이징>이 관심을 끌었던 것은 사실이다.
두 책은 서두에 모두 화성 지도를 담고 있다. <마션>을 통하여 익숙해진 몇몇 지명이 <레드 라이징>의 지도에서도 보여 약간의 반가움으로 책장을 펼진다.
하지만 첫 페이지를 펼치는 순간부터 두 소설은 완전히 다른 길을 간다. <마션>은 책을 읽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알고 있는 그 유명한 문구, 'I'm pretty much fucked'로 시작한다. 하지만 <레드 라이징>은 강렬한 책 표지와 '제1부 노예'라는 문구로 시작한다.
<마션>이 <로빈슨 크루소>나 영화 <캐스트 어웨이>를 잇는 표류기/생존기라면, <레드 라이징>은 철저히 체제 전복을 꿈꾸는 디스토피아 해방을 위한 여정이다.
인터넷과 전자책, 개인출판의 시대가 되면서 아마추어 작가의 전성시대가 열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마션>의 앤디 위어나 <레드 라이징>의 피어스 브라운은 전문작가가 아니다. 이들은 주위의 우리들 같은 평범한 인생의 경로를 걷던 사람들이다. 작가가 되기 위하여 체계적인 교육과정을 거친 사람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래서인지 두 책에서는 노련한 문체보다는 아마추어적 느낌이 곳곳에서 묻어난다.
<마션>은 기술적인 내용들이 가미되었지만 가볍게 읽어 나갈 수 있는 서적이기 때문에 특히나 곳곳에서 아마추어적 전개가 눈에 띄인다. 하지만, <레드 라이징>의 구성이나 이야기 전개 자체는 탄탄하다. 논리적으로도 체계적인 구성이다. 문제는 스토리 라인에 있다.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소재의 이야기가 소설의 몇몇 부분에서 전개된다. 계급 주의를 소재로 한 소설은 워낙 많으니 접어 두더라도, <헝거 게임>, <배틀 로열>, <무간도> 등 낯설지 않은 이야기 장치들이 곳곳에 버무려져 한 권의 소설을 이루고 있다.
문체의 호흡이 빠르지 않고, 설명이 많은 서두는 흡입력이 떨어진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책을 추천하고 싶은 이유는 현 시대를 살고 있는 고단한 우리내 삶과 많은 부분이 맞닿아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노예이지만 스스로 노예인 것을 자각하지 못하는 사람들... 소설은 주인공 대로우의 입을 통하여, 지배자(골드)가 자신들을 속였다고 외친다. 이 외침에 등장인물 미키는 "네가 노예라는 걸 알았다면 더 행복했겠니?"라고 반문한다.
"인간은 처음부터 평등하게 창조되지 않았다"는 최고 지배 계급의 한 마디. 복종과 인내를 강요하는 시스템....
책에서는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벼룩 이야기가 나온다. 책상위를 뛰어오르고 있는 벼룩 위로 유리컵을 엎어 놓은 후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 그 유리컵을 치워도 벼룩은 유리컵 높이 이상 뛰지 않는다. 본인이 더 높이 뛰어 오를 능력이 있어도 스스로 한계를 만들고 이미 사라져 버린 벽을 존재하는 것으로 기정 사실화 한다.
최하위 계층인 레드들은 이미 500년 전에 화성으로 보내졌지만, 여전히 스스로를 개척자로 알고 있다. 그리고 다른 컬러의 계급들이 이주를 해 오기 위하여 자신들이 희생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다른 컬러들은 이미 300년 전에 화성으로 이주하였다. 레드는 앞으로도 수 세대가 지나야 가능한 것으로 믿고 있는 이 일이 이미 300년 전에 이루어졌던 것이다.
소설을 읽는 내내 우리의 현실 세계와의 매치로 마음이 불편했다. 소설 속에서는 이러한 구절이 나온다.
"지상에 사는 레드들은 임금을 받게 되어 있어. 많지는 않아. 하지만 돈을 받고, 그들을 의존적으로 만들 수 있을 정도의 대접은 받아.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얼마 안되는 돈을 자기들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도록 세뇌 받은 물건을 사느라 써 버리지."
어떤 가게들에서는 일주일 치 급료를 내면 한 시간 동안 한 달짜리 대체현실을 체험하게 해 준다고 한다. 재빠른 녹색 눈을 가진 자그마한 남자 두 명이 내게 오스길리아스라는 곳의 여행 체험을 권한다.
이 얼마나 지금의 우리 사회와 많은 부분이 닿아 있지 않은가?
겉으로는 민주주의와 평등주의로 우리 각자의 자연인이 동등하다 이야기 하지만, 자본주의의 굴레에서 어쩌면 우리는 자본이 설정하는 철저한 계급주의 사회를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레드 라이징>의 계급사회가 컬러(인종)에 따른 생체적 계급사회라면, 우리가 살고 있는 현 시대는 자본에 의하여 결정되고 순종하여야 하는 사회가 되어버렸다. 상위 계급으로의 신분 상승은 점점 소원한 길이 되어 가고 있다.
책의 후반으로 갈 수록 흡입력이 높아지다가 책이 끝나 버린다. 이 책이 시리즈 물이기 때문이다. 이미 미국에서는 2권 <Golden Son>이 출간 되었고, 3권 <Morning Star>가 2016년 2월 9일 출간 예정이다.
이제 본격적인 대로우의 복수와 체제 전복 시도가 시작되려고 한다. 2권, 3권이 기대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