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애니가 돌아왔다
C. J. 튜더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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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J. 튜더의 전작 ‘초크맨’을 접해보지 못한 상태에서, 후속작 ‘애니가 돌아왔다’를 읽게 되었다. ‘초크맨’의 표지가 워낙 인상 깊었기때문에 서점을 오가며 흥미롭게 지켜보았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기회가 닿지 않아 읽어볼 기회가 없었다.

‘애니가 돌아왔다’는 표지나 북트레일러, 혹은 책 서두의 삽화가 호기심을 자극하여 책을 펼쳐보게 되었다. 역설적이지만 완독 후에는 표지와 삽화 및 북트레일러가 한심해 보인다. 책의 내용과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왜 저런 그림을 넣었고, 북트레일러를 저런식으로 만든 것인지 지금도 이해하지 못하겠다.

책을 펼쳐보게 만들었던 부분은 저자를 제2의 스티븐 킹으로 소개하는 저자 소개가 한 몫을 했다. ‘스티븐 킹’. 이름만 들어도 호기심과 기대감을 갖게 하는 흥행 보증수표. C. J. Tudor에게 그런 수식어가 붙어 있다면 한 번쯤은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책의 내용은 많은 부분에서 ‘스티븐 킹’의 ‘애완동물 공동묘지’를 연상하게 하였다. 적당한 흡입력과 적당한 긴장감, 그리고 너무 비약하지 않는 개연성까지 어디 하나 흠잡을 곳이 없다. 이야기의 앞뒤가 잘 맞고, 전개가 어색하지 않다. 다만 아쉬움이 있다면 전체적으로 전형적인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는 것이다. 아직은 ‘스티븐 킹’에 비견할 수준은 아닌 것 같다.

다만 잠재력 측면에서 ‘스티븐 킹’이라는 수식어가 아깝지는 않은 작가이다. 무엇보다 ‘초크맨’을 출간할 때 이미 ‘애니가 돌아왔다’의 집필이 완료되어있었다는데, 책의 말미 번역자의 글을 따르면 잇따른 후속작 역시 완성되어 번역을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스티븐 킹의 다작성까지도 닮은 모습인가보다. 작가가 대필작가(문하생)을 둔 것이 아닌가 하는 호기심을 일게 하는 대표적 작가, ‘스티븐 킹’과 ‘히가시노 게이고’... ^^ 다작을 하면서도 참신하며 작품의 질을 잃지 않는 이야기 꾼들이다. C. J. Tudor가 더욱 성장하여 이 두 사람의 반열에 오르기를 기대해본다. 동시대에 뛰어난 이야기 꾼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는 큰 혜택이라 생각한다.

나는 이 책을 전자책으로 읽었다. 내용 중 저자가 강조하고자 하는 어귀들이 본문과는 다른 폰트로 작성되어 눈에 쉽게 뜨인다. 궁금하여 종이책을 찾아보니, 종이책에는 italic type으로 처리 되어있음을 알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italic 보다는 전자책과 같이 다른 폰트로 처리하는 것이 가독성이 좋은 것 같다.

끝으로 작품 중 글귀 몇 개를 남긴다.

‘희망으로 가득했던 인생. 하지만 모두의 인생이 그렇다. 희망이다. 확약은 아니다. 우리는 미래에 우리 자리가 마련돼 있다고 믿고 싶어 하지만 예약만 되어 있을 뿐이다. 그 자리가 경고나 환불도 없이, 얼마만큼 가까이 왔는지에 상관없이 당장이라도 취소될 수 있는 게 인생이다. 경치를 감상할 시간조차 없이 달려왔더라도 말이다.’

‘나는 가끔 인간을 진정으로 나이 들게 하는 것은 세월의 흐름이 아니라 아끼는 사람들과 사물들의 소멸이라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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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칼 비테 교육법 : 평범한 아버지의 위대한 자녀교육
칼 비테 지음, 김일형 옮김 / 차이정원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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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접하기 전까지 칼 비테라는 사람이 누구인지 몰랐고, 몬테소리, 프뢰벨, 가베 등이 정확히 어떤 지향점을 가지고 있는 교육법인지 몰랐다. 책을 읽기 전 칼 비테라는 사람에 대하여 웹 서핑을 통하여 알아보았다. ‘영재 교육법’이라는 키 워드로 수없이 많은 페이지들이 검색되었다. 더불어 앞서 언급한 몬테소리, 프뢰벨, 가베 등 교구를 통한 학습유도 방식이 칼 비테에게 영감을 얻은 것이라는 글 귀도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난 지금도 정확히 어떤 지점이 ‘영재 교육법’이고, 몬테소리, 프뢰벨, 가베 등의 지향점이 무엇인지 여전히 모르겠다. 칼 비테라는 사람에 대하여 검색을 하다 보니, 아들 칼 비테가 13세에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기네스 북에 가장 어린 나이에 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글을 보았다. 그리고 그 기록은 현재까지 유효하다고 한다. (기네스 기록에는 12세로 기록되어 있다고 함). 자식을 둔 부모로서 호기심이 일었다. ‘어떤 교육법에 대한 이야기일까?’, 200년이나 이전에 쓰여진 내용이 여전히 현실에서 유효할 것인가?

결론부터 이야기 하자면 상당부분 동의하기가 어렵다.  물론 200년 전 시각에서는 혁신적이고 진취적인 방법이었을지 모르겠지만, 오늘날에 적용하기에는 고리타분하고 독선적인 면이 많다.  독자는 글의 상당부분을 걸러서 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

책을 펼쳐 들자 마자 들었던 느낌은 ‘이 사람은 굉장한 독선가에 고집불통이고 무언가에 화가 많이 난 사람이구나’였다.  380페이지가 넘는 내용 내내 저자는 주변인들에게 화를 내고, 심한 경우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을 증오한다.  자신의 고집이나 주장이 틀렸을 수 있다거나, 지나치게 성급한 일반화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380페이지를 오로지 자기 변명과 주장들로 가득 채워 무엇을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  책은 아들 칼 비테를 키우며 겪었던 일에 대한 수기 형식을 띤다.  이 아버지에게 아들은 꼭두각시 인형과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본인의 주장과 생각을 입증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존재로 그려진다.  책을 읽는 내내 과연 ‘이 아이는 행복했을까’ 하는 상념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수없이 많은 인터넷 페이지에서 ‘칼 비테의 영재 교육’을 칭송하고, 그 아들이 9살에 이미 6개 국어를 할 수 있었네, 13살에 이미 철학 박사학위를 받고 18세에 대학교수가 되었네 하는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그 어떤 페이지에서도 그래서 그렇게 우수한 천재(?)가 어떠한 연구 족적을 남겼는가는 찾을 수가 없었다.  겨우 200년 전에 존재하였던 사람이고, 이렇게 많은 교육법 관련 페이지가 있는 것과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그 아들이 학계에 어떠한 기여를 하였고, 얼마나 행복하게 살았는지는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다.  다만 아들을 어린 나이에 박사와 교수로 만들었다는 것에만 집중한다.  이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아버지 칼은 친구와 혹은 주변인들과 교육법에 관련한 논쟁을 하다가, 신이 자신에게 육체와 정신이 건강한 아들을 보내준다면 자신의 교육법을 따라 남들보다 뛰어난 결과를 얻을 수 있음을 입증하겠다고 이야기 하는 부분이 있다.  이는 아들을 자신의 도구로 생각하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대중에게 화가나 있는 자신이, 스스로가 틀리지 않았음을 아들을 통해 입증하겠다는 오만한 집념이 느껴진다.

다만 이 책에서 공감이 가는 부분이 있다면, 적절한 교육을 통하여 아이의 잠재 능력을 키워줄 수 있다는 정도이다.  결과적으로 공교육이 지향하여야 할 지점은 개별 아이의 특수성을 이해한 아이에게 맞는 교육법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래와 같은 구절이 있다.

‘100년 뒤에는 내가 이제까지 말한 교육법들이 그릇된 것으로 증명될지 모른다.  모든 아이의 다양한 잠재력을 일깨우고 교육할 수단들이 발견되어 보편화될 것이고, 많은 부모와 교육자가 자녀들을 계속 교육할 기회를 양심적으로 활용할 테니까.  그러면 비로소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비범한 아이의 부모와 평범한 아이의 부모가 똑같이 아이를 가르치게 되므로 평범한 아이가 비범한 아이보다 발전할 기회는 없을 것이라고.  다시 말해 평범한 아이는 비범한 아이보다 뒤쳐져야 한다고.’

개인적으로 지금의 세태는 교육의 과잉이라고 생각한다.  ‘조기교육’, ‘선행학습’, ‘사교육’ 등등 다른 아이와의 조그마한 차이점이라도 만들기 위하여 너무 많은 교육을 아이들에게 강요한다고 생각한다.  과연 그러한 교육을 받는 아이들은 행복할까?  다시 아들 칼 비테로 돌아가보자.  앞서도 이야기 하였지만, 그의 뛰어난 연구업적이나 학자로서의 족적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다.  어쩌면 그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타인과 비슷한 수준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조기교육으로 같은 또래 아이들보다는 빨랐을 수 있지만, 그게 전부인 상황이 되었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아들 칼 비테만큼 빠르게 학위나 교수의 위치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그가 다다른 수준의 교육을 평범하게 쫓아간 수많은 당대의 학자들과 결과적으로는 차별점이 없어졌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아니라면 아버지의 꼭두각시로 혹은 온실 속의 화초로 자라던 아들이 어느 순간 현실 부적응자가 되어 버렸는지도 모른다.  아버지 칼 비테는 아들을 완전히 통제하고 자신의 교육관 및 이상을 형상화하는 도구로 활용했다.


'과연 아들 칼 비테는 행복했을까?  이후 사회구성원으로 잘 적응할 수 있었을까?'


나는 이 책의 어떤 페이지보다, 위와 같은 질문의 답을 구하고 싶었다. 아이를 양육하며 계속 의문이 든다.  과연 모든 부모가 ‘조기교육’ 및 ‘교육열’을 포기하고, 아이의 행복을 최우선에 둘 수는 없는 것일까?  이렇게까지 해서 이 아이들의 삶이 과연 부모세대보다 나을 것인가?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  큰 틀에서 이 조류에서 벗어날 자신 마저 없다는 것이 나의 현실이다.  고민만할 뿐 이러한 세태를 역행하지 못하는 나 자신의 소심함이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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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말센스
셀레스트 헤들리 지음, 김성환 옮김 / 스몰빅라이프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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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스마트폰과 인터넷의 보급으로 정보 습득의 방법이 변화 됨에 따라 말하기와 듣기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오늘 날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다양한 정보를 인터넷을 통하여 습득하고 있고, 스마트폰의 보급은 이러한 정보의 접근을 삶의 전반으로 연결하였다.

문제는 이전 세대들에 비하여 매체에 대한 집중도는 떨어지고 발췌독이 일반화 되고 있다는 것이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모든 텍스트를 정독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세대가 되었다. 심지어 하이퍼 링크를 통하여 관심이 없는 정보는 다른 정보로 대치되는 것이 너무나 쉬운 세상이다.

저자는 말하기를 잘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상대의 이야기를 집중하여 들어줄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대면하여 이야기를 나누는 상황에서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을 때, 인터넷에 익숙한 우리들은 때로 지루함을 느끼며 다른 생각을 한다. 집중력이 분산되어 상대의 이야기는 귓등을 타고 흐른다. 문자 그대로 ‘건성’으로 듣게 되는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저자는 상대의 이야기를 진심어린 마음으로 듣고, 공감할 때 훌륭한 ‘말하기’를 할 수 있다고 전하고 있다.

또한 질문을 할 때, Yes or No로 답변할 수 있는 질문 보다는 열린 질문을 하는 것이 대화를 단조롭지 않게 한다고 주장한다.

양육을 하는 입장에서 아이를 훈육하는 경우 종종 빠졌던 고민이었다. 아이에게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예/아니오’로만 답변하도록 유도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아이의 이야기를 충분히 듣고 있는 것인가? 이 책을 읽으며 그런 지점에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이에게 열린 질문을 많이 하도록 노력할 생각이다. ‘예/아니오’는 내 생각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대화이니 말이다.

저자는 대화를 촉진하는 다섯 가지 전략을 책 말미에 소개한다.

1) 호기심 갖기
2) 편견 검토하기
3) 존중하는 마음 갖기
4) 논점 유지하기
5) 잘 마무리하기

하지만 그에 앞서 저자가 가장 중요하게 강조하는 것은 ‘잘 들어주기’이다.

나는 내 이야기를 많이 하는 사람일까, 아니면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일까. 후자이고 싶은데 다른 사람들은 나에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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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방구석 미술관 : 가볍고 편하게 시작하는 유쾌한 교양 미술 - 가볍고 편하게 시작하는 유쾌한 교양 미술
조원재 지음 / 블랙피쉬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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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세간에 회자 되던 책이라 호기심에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첫 문장을 접하면서 우선 신뢰도에 의심을 품게 되었다. 과연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작가의 상상일까? 그것도 아니면 어디까지가 작가의 연구이고, 어디까지가 다른 서적의 인용일까?

의심의 시발은 문체에 있었다. 구어체를 사용한다. 구어체를 사용하는 것이 무조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글의 신뢰도를 떨어 뜨리는 것 역시 사실이다. 따라서 작가가 뛰어난 전문성을 가지고 있고, 자신의 견해를 명확히 밝힐 수 있을 때는 지식의 전달을 용이하게 할 수도 있다. 문제는 이 책에서는 전문성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이다.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이야기들을 마치 사실인양 전하고 있다. 글의 앞뒤가 맞지 않는 경우도 있다. 뭉크 편에서 총알이 관통했다고 이야기 했다가 불과 두 문장 뒤에는 손가락에 박힌 총알을 빼냈다고 이야기 한다.

글을 읽으며 ‘이 서적은 딱 팟케스트 수준이구나’라는 의심을 품게 될 즈음, 각 장의 마지막에 달린 팟빵 링크를 만났다. 역시 팟케스트를 도서로 옮겨 놓은 것이 맞았나보다.

요즘 유행하는 얄팍하게 지식을 전달하는 딱 그 수준을 벗어나지 않는다. 물론 입문자에게는 호기심을 상기할 수 있다. 좋은 입문서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논란이 있는 내용들까지 사실인양 적시하는 것은 문제이지 않을까? 예를 들어 고흐편에 언급되는 ‘압생트’가 환각 효과가 있었다던지, 황시증을 유발해서 고흐가 강렬한 노란색을 많이 사용했다는 등은 추정에 불과하다. 압생트에 대한 안정성 문제는 현재도 논란이 있는 주제다.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양 전달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 상상, 추정, 인용, 학계의 정설 등은 명백히 구분하여 읽는 이가 선별적 수용을 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아무리 인문학 서적이라도 이런 식으로 글을 작성하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예를 들어보자. 우리가 논문이나 전문서적을 읽는 경우, 인용된 내용에는 미주 번호를 붙이고, reference에 출처를 적는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미주 번호는 없고, 책 마지막 장에 본인이 참고했던 도서 목록만을 열거한다. 독자는 여전히 어디까지가 작가의 이야기인지 구분할 수 없다.

호기심 삼아 한 번쯤 읽어 보겠다면 말리지는 않겠다. 하지만, 사실과 허구를 구분할 수 없는 이런 서적을 입문용으로 읽게 되면 잘 못된 정보를 사실인양 믿게 되는 오류를 범할 가능성이 있다. 독자의 주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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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엄마의 말하기 연습 - 화내지 않고 상처 주지 않고 진심을 전하는
박재연 지음 / 한빛라이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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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말하기도 연습이 필요하다’라고 역설한다. 우리는 종종 생각하기에 앞서 말이 나가는 경험을 한다. 수많은 격언이 말하기의 유의점에 대하여 주의를 상기하지만, 실천으로 옮기기가 쉽지 않다.

- 한 번 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다
- 탈무드의 ‘혀’에 얽힌 이야기
- 말 한마디에 천냥 빚도 갚는다
- 세 번 생각하고 말로 옮기라

등 많은 격언들이 있다. 하지만, 이를 생활 속에서 실천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나 감정이 격해진 상황에서는 너무나 사랑스러운 내 아이에게 마저 모질게 이야기 하고 뒤돌아서 후회하는 일이 많다. 바쁜 아침 출근 준비와 아이 등원 준비를 하면서 느긋한 아이의 모습을 본다거나, 몇 번씩 주의를 주었음에도 반복되는 실수를 하고 있는 아이를 보면 가끔 평정심을 잃고 마는 경우가 있다.

이 도서는 저자의 그간 강연과 경험을 에피소드와 곁들여 글로 풀어가고 있어, 마치 수필집을 읽는 것과 같은 기분으로 읽을 수 있다. 사실 어디선가 들어보았을 법한 상투적인 이야기고,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의 핵심은 이미 우리 모두가 알고 있을 법한 이야기들이다. 다만 구체적인 사례와 대안을 제시하여 독자로 하여금 한번 더 생각해볼 여지를 준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의 모든 이야기는 ‘삼사일언, 삼사일행’으로 정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앞서도 이야기 했던 것과 같이 사실 책의 내용은 새롭거나 흥미로운 이야기는 없다. 모든 사례들을 일맥상통하는 주장은 대화의 대상이 나의 아이거나, 직장 동료이거나, 그 외 어떤 사람이 되더라도 세 번 생각하고 말하고, 세 번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서로에게 상처를 주거나 후회할 일이 많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사고실험을 ‘속대화’라 칭한다. 저자는 대화를 아래와 같이 세 가지 형태로 구분한다.

- 습관적인 속대화 - 자동적 생각
- 속대화 - 자기 자신과 나누는 대화
- 겉대화 - 상대방과 나누는 대화

습관적인 속대화는 감정적이 되기 쉽고, 속대화로 다시 한번 상황을 정리한 후 상대와 겉대화로 이어져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 ‘삼사일언, 삼사일행’이 공자가 한 이야기라지만, 실제 공자의 가르침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세 번 생각하고 말로 옮기라는 것은 그만큼 더 생각하고 곱씹으며 의도치 않게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미연에 방지하라는 가르침이라 생각한다.

아이와 하루를 보내다 보면 나도 모르게 생각이 들기도 전에 입 밖으로 말이 되어 나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아이이기 때문에 실수하는 것이고, 아이이기 때문에 당장 무언가에 집중하기 보다 본인이 좋아하는 일에 시간을 쏟고 싶은 것일 텐데 그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찰나의 시간에 나의 ‘혀’는 사고를 앞지른다. 그리고 뒤돌아서 후회를 하고, 아이를 안아주며 엄마/아빠의 ‘의도’에 대한 부연 설명을 덧붙이게 된다. 무조건적 반응처럼 마치 뇌를 거치지 않고 하는 발언과 같은 매몰차고 짜증 섞인 말을 아이에게 전하기 전에 설명이 앞섰다면 이러한 ‘후회’도 없었을 텐데 라는 반성을 해보지만 실천하는 것은 여전히 어렵다. 저자의 말처럼 ‘말하기도 연습이 필요한’ 이유가 이러한 것이 아닐까 한다.

오늘 하루는 아이에게 짜증 부리거나 겁박하거나 매몰차게 혼을 내지 않고, 무사히(?) 보냈다. 이러한 상처주고 후회하는 말들 보다는 반복적으로 ‘설명’하고 아이의 이해를 구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결과인가 보다. 이러한 날이 반복된다면 아이도 부모인 나도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한다.

끝으로 책의 서문에 있던 글귀를 다시 읽어 본다.

‘좋은 엄마의 자격 같은 건 없습니다. 지금 아이의 고민을 들어줄 수 있고, 아이가 눈물을 보이며 자신의 아픔을 말할 수 있다면, 당신은 이미 최고의 엄마입니다.’

‘우리는 모두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지금 이대로 좋은 엄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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