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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그러면 아비규환
닉 혼비 외 지음, 엄일녀 옮김 / 톨 / 2012년 8월
평점 :
이 책은 마치 과자 종합 선물 세트를 받은 듯한 기분을 선사해줬다. 물론 나는 일곱 살 부근
의 나이라는 가정하에 말이다. 큼직한 박스 안에 과자가 잔뜩 들어있었던 그것은 언제나
선망의 대상이었다. 조심스럽게 리본을 끌려서 박스 안에 좋아하는 과자가 있는지를 확인하는
그 순간에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 순간이야 말로 행복이라는 말로밖에 설명할 수 없을거다.
무엇을 먼저 먹을 것인가, 무엇을 제일 나중까지 남길 것인가에 대한 아이로서는 심도깊은
고뇌가 존재했었던 과자 종합 선물 세트. 그런 선물세트를 이 책을 읽으며 떠올릴 수 있었다.
물론 과자 선물 세트도, 책도 멋지다는거다. 정말이지 이토록 멋지다니...!
일단 작가의 면모를 살펴보자. 첫 번째 소설을 쓴 사람은 닉 혼비다. 바로 그 닉 혼비.
쓰는 책마다 영화가 되고마는 그 닉 혼비의 세계를 몇 페이지를 넘기자마자 만날 수 있다.
스티븐 킹은 어떤가! 비록 매우 짧은 페이지를 차지하고 있어서 스티븐 킹의 원고는 참으로
비싼 모양이라고 막연하게 짐작하게도 만들었지만, 일단 이 책 속에는 스티븐 킹의 소설이
있긴 하다. 물론 한 권의 소설에서 만날 수 있었던 그의 세계가 그 한정된 페이지 안에서
모두 찾아낼 수 있는건 아니었지만. 짐 셰퍼드와 마이클 셰이본도 있어서 반가움을 더한다.
작가 하나하나를 모두 나열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힐 정도로 쟁쟁한 작가들이 한 권의
책에 오밀조밀 모여있다. 이 한 권의 책으로 그들 모두를 만날 수 있는거다. 어찌 멋지지
아니할 수 있는가. 이건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만날 수 있는 최고의 선물 세트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을 정도다.
‘안 그러면 아비규환’이라는 제목이 붙어있고 슬쩍 원제를 살펴봐도 짐작할 수 있는 건,
이 책에서 밝고 아름답고 동화속 세상같이 파스텔톤으로 꾸며진 건 아닐거라는 것 정도가
아닐까. 그리고 그 짐작을 기가 막히게 들어맞는다. 일단 첫 소설부터 비중있는 소재로서
세상의 끝이 다루어지고 있고, 그 세상의 끝을 이끌어낼 수 있는 천재지변이 다른 소설
속에서도 역시 중요한 소재로 쓰인다. 비정하고 처참하고 무겁고 사포같이 거친 이야기가
대다수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스토리들이 그 자체에 내재할 수 있는 무게감을 덜어내고
있는 건 분명 이 작가들의 힘이라고 생각된다. 그토록 무겁다면 이 두꺼운 한 권의 책을 그리
궁금해하며, 다음 소설을 기대하며 책장을 넘기지 못했을테니까. 무겁지만 적정한 방법으로
그 무게감을 덜어내주고, 가볍지만 결코 가볍지 않게 이야기를 전개하는 기술을 보고
있노라면 작가들은 참 대단한 사람이다 싶어진다. 어찌 이런 아이디어를 떠올린 것일까,
어떻게 이 이야기가 거짓말이라는 생각을 읽는 동안 조금도 하지 못하는 걸까 신기해진다.
또 하나의 재미가 있다면, 소설마다 다른 소설가들이 언급되는 부분이 있다는거다. 서술하는
중간에 뜬금없이 인용되는 경우도 있었고, 등장인물의 이름으로 출연하기도 했었다.
그런 규칙을 찾아내고나서 이 책을 읽는 게 더 신이 났었다. 미처 찾아내지 못한 게 있을까봐
커피도 한잔 타마시면서 보물찾기하는 기분으로 열심히 행간을 헤매였더랬다.
소설의 줄거리도 독특하고 개성이 넘쳤지만, 비교적 비슷한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작가마다
다른 색으로 이야기를 전개해나가는 게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그런 차이가 존재했었기에
마지막에 자리잡은 그 단편까지 하나하나가 새로웠고, 각자의 재미와 매력 포인트가 존재했었
던 게 아닐까 한다. 일단 읽어보면 후회는 없는 책이라는 것만큼은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