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필사 노트
박경리 지음, 유선경 엮음 / 다산초당 / 2026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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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출판사로부터 서적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서평을 작성하였습니다.

1.

토지를 읽는다는 것은 마라톤을 준비하는 것과 같았다. 단숨에 읽었다는 사람도 있지만, 나에겐 그렇지 않았다. 26년간 집필한 토지가 가진 문장의 힘은 강했지만, 때로는 긴 흐름으로 인해 기억력의 한계를 경험하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현재 대학에 와서 만화책으로 토지를 완독하고, 그 뒤 소설 도전을 기웃거리다가 방학이 끝나가던 찰나인지라 다음 방학을 활용해볼까 한다.

2.

1894년 갑오농민전쟁에서 1945년 해방까지의 내용 속에서 저자는 1969년부터 1994년 8월 15일까지 토지를 집필했다(6)고 한다. 엮은 이는 토지에서 147개의 글귀를 가져오며,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필요한 문장을 가져왔다고 서문을 남겼다. 특히, 1897년 한가위는 고종이 황제 즉위식을 거행하고 국호를 조선에서 대한제국으로 바꾸어 선포한 해였다.

3.

교육학적 관점에서 배운 점은 좋은 읽기가 곧 좋은 쓰기와 성찰로 이어진다는 사실이다. 필사는 단순히 글씨를 예쁘게 쓰는 활동이 아니라, 한 문장의 속도를 늦추고 의미를 자기 언어로 다시 구성하는 학습 과정이 될 수 있다. 교육 현장에서도 긴 고전을 전부 읽어야 한다는 부담만 주기보다, 핵심 문장을 골라 필사하고 토론하며 자신의 경험과 연결하는 활동을 한다면 학생들이 문학을 시험 지문이 아닌 삶의 질문으로 만날 수 있겠다고 느꼈다.

4.

전체적인 소감은 토지를 아직 완독하지 못한 사람에게도 좋은 첫 입구가 되고, 이미 읽은 사람에게는 다시 돌아갈 이유를 만들어 주는 책이라는 느낌이다. 방대한 분량 앞에서 멈칫했던 독자도 한 장씩 필사하다 보면 박경리 문장이 가진 단단함과 따뜻함, 인간을 바라보는 깊은 시선을 자연스럽게 만나게 된다. 빨리 읽고 많이 아는 시대에, 한 문장을 손으로 쓰며 오래 생각하는 시간이 얼마나 귀한지 다시 알려 주는 책이다.

5.

종합하면 토지 필사 노트는 박경리의 토지 20권에서 건져 올린 147편의 문장을 통해, 인간과 세상, 관계와 삶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공식 필사집이다. 필사와 어휘력 책으로 알려진 유선경 작가의 편집 덕분에 고전의 문장이 낯설고 멀게 느껴지지 않으며, 독자는 읽는 사람에서 쓰는 사람으로, 쓰는 사람에서 생각하는 사람으로 자연스럽게 이동하게 된다. 고전 읽기를 부담이 아니라 하루 한 문장으로 시작하는 성찰의 습관으로 바꾸어 주는 책이라고 느꼈다

★생각나는 구절

모두 바빠서 날뛰는 계절이다. (1-237)

달콤한 봄의 입김은 언제 일이었던지, 버들가지의 그 여린 연둣빛은 꿈속에서나 보았던 빛깔은 아니었던지, 굳어버린 적막 속의 끝없는 빙화의 수림은 전율같이 참혹하게 아름다웠다. (13-40)

살아남는다는 것은 쉽잖은 일일세. 남을 죽게 하는 일보다 더 어려운 일인 게야, 내가 살아남는다는 것은. (20-416)

기와집 지붕에서 비상하려는 새를 혹은 비룔을 연상한다면 초가는 땅에 뿌리를 박은 식물을 연상하게 되지요. (13-229)

어디서든 마음으로 지켜주는 눈이 있다는 것은 삶에의 의지가 된다. (8-363)

그 빛들을 다 가져야지. 하늘의 빛 땅의 빛 모든 것을 내 속에 가져야지. (13-286)

모두가 새로운 얼굴, 새로운 세상이었다. 자신만의 삶의 일부를 의복으로 눈빛으로 몸짓으로 표현하며 지칠 줄 모르게 사람들은 지나가고 또 다가오는 것이었다. 어떤 역경 속에서도 삶 자체가 존재하며 그것이 흐르고 있다는 것은 아름다웠다. 그런 하나하나가 무리지어 흐르고 있다는 것은 더욱 엄숙하고도 경이로운 일이었다. (19-383)

사람이나 짐승이나 자기 태생대로 사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일이오. (16-415)

모든 것은 다리 건너 그곳에만 있다. 넘쳐 흐르게 쌓여 있다. (2-107)

악은 악을 기피하는 법이다. 악의 생리를 알기 때문이다. 언제나 남을 해칠 함정을 파놓고 있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시 궁극에 가서 악은 삼수가 지닌 그와 같은 어리석음을 반드시 지니고 있다. (4-405)

욕망의 완성은 없다. 그것은 인간의, 생명의 불행인 동시 축복이다. 종말이 없는 염원의 연속이기 때문이다.(20-264)

뜻대로 안 되는 것을 뜻대로 살아보려니까 피투성이가 되는 게야. 인간의 인연같이 무서운 거이 어디 있나.(8-65)

나를 키운 거는 바람이고 빗물이고 마을 사람이다.(17-393)

신분의 차이, 생활의 빛깔이 다르다는 것, 그것은 도처에서 자신에게 부딪쳐오는 것이다. (..) 사람 모두가, 역사가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이다.(15-327)

정이란 천지만물, 생명이 움직이는 근본이오.(14-363)

그러나 나를 얽어맨 그것들이 사람 사는 데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나는 내가 자유인 것을 깨달았고 정직해지는 것을 느꼈소이다,(12-379)

안 좋은 일이 있이믄 좋은 일도 있겄지. (12-52)

희망이고 실망이고, 그런 거는 잠시잠시 왔다 가는 거 아니겄나.(13-36)

우리는 씨 뿌리는 사람이며 성급히 걷어들이려 하면 안 되지. 산속에 피는 꽃이 다 같지 않다 해서 꽃이 아닌 것은 아니지 않소?(13-353)

확실하지 않는 것을 생각하면 눈앞에 있는 것은 하나의 점에 불과해. (17-26)

나는 세상에 나와 이룬 것이 없지만 너의 눈물은 뭔가를 이루기 위해 흘리는 것이다. 울어. 많이 울어라. (..) 너의 청춘은 정말 아름답다. 고통도 슬픔도 어쩌면 그렇게 투명하니? 나는 허울만 쓰고 살아왔구나. (18-298)

삶이란 도판에 그려놓은 공식은 결코 아니었다. 삶의 신비는 개인이 어떤 생활의 방식을 취하든 무궁무진하며 끝이 없는 것이었다. (20-413)

세상에 나쁜 사람은 없네라. 다 처지에 따라서 나빠지기도 하고 좋아지기도 하고, 제 살기가 편하믄 머할라고 남을 원망하겄노, 안 그렇나? (2-447)

현재가 견디기 어려우니 희망에 매달릴 수 밖에 없고 생존을 포기할 수 없으니까 희망도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13-84)

싸움이 있을 뿐이다. 자기 자신과의. (6-24)

지난날을 생각허믄 모두가 다 후회스러운 일뿐인디 그 후회스러운 날들이 그립단 말시. (14-351)

생명이 타는 아름다움이 있었다. 시간을 잊을 수 있었던 희열이 있었다. (2-222)

생과 사 그 틈바구니의 빛깔이란 참으로 미묘하다. (8-273)

이서방, 파도가 눈에 뵈지 않는다고 바다가 조용한 건 아닐세. (17-362)

현실이 미래를 잡아먹어서는 안 될 일이야. 만일 우리가 이상을 버리게 된다면, 도덕과 종교를 포함한 이상, 그것을 저버리게 된다면 인류의 장래를 어찌 될까? 종말이지. 지금 이 시점에서 내가 이런 얘기 한다는 것은 모두가 웃을 일이지만 오늘날 세계 각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을 보아라. (17-365)

★질문 한 가지

지금 내 삶에서 오래 붙잡고 싶은 문제 하나를 떠올린다면, 토지의 문장을 필사하며 어떤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보고 싶은가.

★독서 기간

2026. 8. 15. ~ 8. 19.

★함께 읽으면 좋을 책

#박경리#토지

★추천도 지극히 주관적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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