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우슈비츠의 약사입니다
퍼트리샤 포즈너 지음, 김지연 옮김 / 북트리거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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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시우스라는 인문에 대한 책이다. 그는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약학대학을 졸업하고 이게파르벤의 자회사 바이엘의 영업 사원이었고(9), 우호적인 평판(47)을 가졌던 남자다. 카페시우스는 독일아니 오스트리아 출생도 아니었고 강제수용소에서 복역한 대부분의 군인이나 의사 혹은 장교들처럼 민족주의자도 아니었다(43). 또한, 독일에서 일어나는 대격변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45), 그런 그가 아우슈비츠에서 죽음의천사라 불리는 인문 옆에서 지인들, 어린 자매조차 가스실로 보내게 된다.


나치 전범자들의 집단 재판에서도 반성의 기미가 없었던 그를 보자니 참 책의 선택이 아니러니하다. 얼마 전 읽었던 책에서는 독일의 긍정적 측면, 그러니깐 반성을 통해 나아간 현재의 모습을 바라봤다면 다시 독일의 과거로 돌아가서 독일에 대해 알아가고 있는 것이다. 간혹 책이 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닐까란 생각이 살며시 들기도 한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입구에 새겨진 "노동이 그대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엉뚱한 구호는 열정페이도 아닌 것이란 생각이 든다(이 말은 파르벤에서 모방해서도 사용했다고 한다). 희망을 버리라는 단테의 지옥문 비문의 문구가 더 적절할텐데 말이다. 2만 5,000명의 강제 노동자들의 평균 수명은 고작 3개월이였다고 하니 참으로 고된 아니 죽음과도 같은 시간이었을 것이다.

전쟁만큼 비참한 것은 없다고 나의 스승은 이야기했다. 그러나 이것은 전쟁보다 더 참혹하다. 한 인간이 이렇게까지 망가져버릴 수 있구나란 생각이 든다.

카페시우스는 처음에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우울하고 구역질이 난다. 툭 건드리면 구토가 나올 것 같은 기분이 들 것이다. 처음에는. 그러다가 차츰 익숙해지게 된다(70). 카페시우스에게 수감자는 그저 절멸 대상인 하찮은 존재에 불과했다(85)고 회고하는 장면은 평범한 사람도 상황에 따라서 쉽사리 바뀔 수 있음을 야기한다.

일하고 싶소?라는 질문에 네 라는 대답이 아니면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는 상황을 만들어버리는 시스템의 문제인지, "내가 무슨 죄를 저질렀지? 난 정말 모르겠소!"라고 주장한 사람의 문제인지 답은 내릴 수 없다. 언젠가 다른 책에서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었던 원인에 대해 철저한 분업화를 이야기했다. 그렇기 때문에 중요한 건 올바른 가치관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불법은 인과의 법칙을 논한다. 원인과 결과가 있다는 것이고, 내가 저지른 행위는 내가 수습해야 할 수 밖에 없다는 결자해지와도 상통한다.

그런데, 이 또한 내가 무엇을 잘못 하고 있는지에 대한 부분이 정립되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다.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도록 후대를 길러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미래 사회는 더더욱 피폐해질 것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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